지난 해엔 책 읽는 게 별로 재미가 없어서 게으름을 피웠다. 소설도 지겹기만해서, 올해를 어떻게 시작할까 궁리하다 고른 건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열흘 동안 겨우 200여 페이지 보다가 집어던졌다. 가벼운 읽을거리를 찾으니 역시 소설이다. 

 

  

 1. 걸

 처음 두 개의 단편을 읽고 나서, 이 아저씨 모든 여자들이 그저 girl이길 바라는 게 아닐까, 의심이 모락모락 피어 올랐다. 세 번째 단편은 제목이 아예 이다. 이 아저씨는 여자들이 로 살아가고 싶어한다고, 나이를 먹는다는 단순한 이유로 그러한 바람을 억누를 필요가 없다고, 여자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옹호하는 듯이 얘기한다. 하지만 말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음흉해 보이는걸. 자신을 아름답게 가꾸고 삶을 즐기면서 젊게 사는 당당한 이 되라고 부추기는 건 다테마에고 실은 외모에 좀 더 신경 쓰고 타인들에게 부드럽게 대하는 나긋나긋한 여자를 보고 싶다는 게 혼네인 것 같단 말이지. 아니면 말고.

 

 

 2. 삼월은 붉은 구렁을

 처음 접한 온다 리쿠의 작품 <네버랜드>가 시시해서 다른 걸 볼까 말까 잠깐 고민하다 골랐다.

 재미도 있고 잘 된 작품이기도 한데, 왜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드는 걸까. 예전 같으면 이 작품에서 파생되었다는 <흑과 다의 환상>이나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 <여섯 번째 사요코> 같은 책들을 줄줄이 사들였을 텐데, 어째 그다지 내키지 않는다. 온다 리쿠는, 다시 어떤 기회가 생기면 보게 될까.

 

 

 

 3.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흥미진진하게 읽었고,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들도 많았는데, 정리는 잘 안 된다. 이런 책을 읽으면 저자와 논쟁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게 아니라 그저 한발 빼고 으음, 그래? 정도의 반응밖에 안 나온다. 이런 태도가 아렌트가 주장한 악의 평범성의 바탕일지도 모른다.

 한길사는 교정, 교열을 제대로 안 보나. 번역이 좋은지 나쁜지는 알 수 없으나, 최소한 문장의 조사 정도는 제대로 써 줘야 하지 않을까. 조금이라도 이상한 문장이 나오면 턱턱 걸려서 그냥 넘어갈 수 없으니, 내가 지나치게 까탈을 부리는 건지.  

 

 

 

 4. 신 기생뎐

 최근 본 한국소설(몇 권 되지도 않지만.) 중 가장 빼어난 작품. 마냥 가벼워지려고 하지 않는 점도 마음에 들고, 각각의 인물들에 대한 작가의 따스한 시선도 좋고, 인물들의 감정에 몰입도 잘 되고, 맛깔나는 사투리와 순우리말 구사도 재미있다. 모처럼 사전 찾아가며 흐뭇해서 읽었다.

 

 

 

 

 

 5. 데이 워치

 <나이트 워치>를 워낙 재미있게 읽어서 도대체 다음 편은 언제 나오냐고 목 빼고 기다리고 있었다. 신간 소식 보자마자 바로 주문, 그 날로 시작해 금방 다 읽어버렸다.

 제목은 <데이 워치>로 어둠의 세력인 주간경비대가 주인공이어야 하지만, 아무래도 작가는 빛의 세력 편이 아닐까. 빛과 어둠은 선과 악이 아니라 각자의 본성과 가치에 기반하여 인간 세계와 관계맺는 방식이라고 하면서도, 주간경비대가 더 나쁘게 보인단 말이지.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야간경비대가 주인공 같잖아.

 그나저나 <더스크 워치>는 2008년에야 나온다는데. 아우, 좀 더 빨리 내주면 안될까요오~?

 

 

 6. 눈과 피의 나라 러시아 미술

 그러고보면 내가 알고 있는 많은(?) 화가들 중에 러시아 사람은 샤갈과 칸딘스키 정도였던가.

 브루벨의 그림에 홀딱 반했다. 이 책의 표지로 쓰인 <백조 공주>를 서재 이미지로 삼다.

 러시아. 언제쯤 가 볼 수 있을까. 트레티야코프 미술관도 에르미타쥬도 가고 싶어 죽겠다.

 

 

 

 

 7. 톰 존스

 무려 1400여 페이지. 서평단 신청 괜히 했나 싶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의외로 재밌다. 술술 넘어가는 정도가 아니라 부분부분 박장대소하고 있다. 이 달 말까지 끝냈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이제 겨우 200페이지 넘어간 참이라, 글쎄.

 

 

 

 

 

올해는 부지런히 읽어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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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da 2007-01-26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다들 좋다는 온다 리쿠, 심지어 알라딘 편집팀에서 무더기로 추켜세운 그 온다 리쿠가 별 감흥이 없던 걸요... 6번이 심히 끌립니다. 푸른색이 시리도록 눈부셔요.^^

mong 2007-01-26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톰존스 그렇단 말이죠?
2권도 얼렁 사 놓고 시작해야겠네요!

nada 2007-01-26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여간 몽님의 두꺼운 책 밝힘증(?)은 알아줘야 해욤 =3=3 (근데 저도 박장대소라는 말에 솔깃~)

urblue 2007-01-26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꽃양배추님, 전 일본 소설이 좀 시들해진건지, 기대했던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도 재미가 없더라구요. 온다 리쿠도 그렇고, 저 <걸>도 그렇고. 야마모토 후미오 여사의 신간들도 안 땡겨요. -_-
이주헌씨 책은 처음인데, 재미있던걸요. 저자 말대로 맛뵈기밖에 될 수 없다는게 아쉽습니다. 몇 권으로 나눠 내도 좋을텐데 말이죠.
톰 존스도 재미있습니다. ^^

몽님, 1권만 사셨나보네요. 얼른 시작하세요. ^^
두꺼운 책 밝힘증이 있으셨군요. 전 너무 두꺼운 책은 저자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시작을 못 하겠더라구요. <젠틀 매드니스>는 수면제로 썼잖아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