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틀어놓고도 그 앞에 앉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등을 돌리고 싱크대 앞에서 일을 하면서 소리를 듣고, 가끔씩 고개를 돌려 화면을 보았다. 그러고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2003년 4월, 아버지는 간암 말기 판정을 받으셨다. 드라마 속의 아버지처럼 매년 정기검사를 했고, 그 전 해에도 아무 이상이 없었는데, 암이 퍼진 속도가 어찌나 빨랐는지 암인걸 알았을 때는 이미 손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병원에서는 어쩔 수 없다 했고, 아버지도 엄마도 항암치료를 원하지 않았고, 서울에 있는 자식들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자식들은 웅담이니 상황버섯이니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들만 집으로 부쳤고, 엄마는 시골에서 재배한 돌미나리를 사들여 아침저녁으로 즙을 만들어드렸다. 아버지가 위독하시다는 전화에 몇 번씩 고향으로 달려갔다. 낮일 때도 있었고 한밤일 때도 있었다. 안정이 되었다고, 괜찮아지셨다는 말을 듣고 그 날로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결국 두 달 만에 아버지는 가셨다. 

 

드라마의 아버지는 한적한 길가에 차를 세워놓고 바닥에 주저앉아 운다. 장기이식도 불가능하고 항암치료를 한댔자 확률은 10%가 안 된다. 더 살고 싶은데, 아직 할 일도 많은데, 왜 내게 이런 일이. 어머니도 운다. 아버지가 암인걸 알았을 때, 아버지가 항암치료를 포기하겠다고 했을 때. 어머니는 아버지를 그냥 보낼 수 없을 것이다.  

 

우리 아버지 저렇게 우셨을까. 엄마랑 알콩달콩 좀 더 살고 싶다고, 아들 딸 결혼하고 손자들 낳는 것까지 보고 싶다고, 이렇게 빨리 가기는 싫다고, 우셨을까. 얼마나 아프셨을까.

 

나쁜 일만 오는 건 아니라고 작가는 말한다. 아버지의 병으로 가족 간의 불화와 반목이 사라지고 서로를 좀 더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으니까. 부모에게 무심하던 못된 딸년은 아버지가 얼마 못 사신다는 걸 알게 된 이후에야 집에 자주 전화를 하고 자주 찾아가게 되었다. 그제서야 홀로 남은 엄마와 사이 좋은 딸이 되었다.

 

아버지는 이제 안 계시지만, 그래도, 살아있는 이 순간이 기적이라는 걸, 나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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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져 2006-12-18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부작을 보면서 많이 울었어요.
단순히 아픈 사람에 대한 비가, 가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에게까지 보내는 위안.
작가가 모름지기 저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고개를 끄덕였네요.

chaire 2006-12-18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 어무이는 취향이 하도 특이하셔서, 이 드라마를 봐야 한다는 저의 주장에 따라 1회는 같이 봐주셨지만, 이후로는 '게임의 여왕'을 고수, 결국 저는 1회와 4회 약간만 볼 수 있었어요. 얼마만의 노희경인데! 아쉬웠더랬죠. 근데 일부만 봐도, 자꾸 피하고 싶은 기분이었어요. 조금만 몰입하면 울 거 같아서. 블루 님에게는 더더욱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였겠어요. 아픈 이들의 눈물은, 진짜 가슴이 미어져요.

Mephistopheles 2006-12-18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이라는 드라마를 보고 엄청나게 울었던 까닭에..
이 드라마는 외면해 버렸어요..

로드무비 2006-12-18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엉터리 샌드위치를 만들어 딸아이와 입이 터지도록 베어무는 이 순간이
기적이란 걸 자주 까먹어요.

아영엄마 2006-12-18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 이야기가 아니라서 더 맴이 아프네요. (아버지는 그래도 치료라도 좀 받다 가셨지 엄마는 말기 판정받고 그냥 아파서 고생만 하시다 가셔서...ㅠㅠ)

깍두기 2006-12-18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라마였네. 어디서 한 거예요? 다시 보기 되나?

ceylontea 2006-12-19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맘이 아프네요..
사람이 살아있는 순간 기적임을 잊지 말아야겠어요..

urblue 2006-12-19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희경 작가의 아버님이 암으로 얼마전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실제로 아버지와 불화하다 발병으로 화해하게 되었다고 하네요. 그래서 이런 드라마를 쓸 수 있었던 거겠죠. 우리들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니까.
MBC에서 방영한 4부작 드라마입니다. 아마 다시 보실 수 있을거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