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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뒤통수
Victor Pelevin 지음 / 경남대학교출판부 / 2000년 9월
평점 :
품절
어제밤에 이 책을 집어들었다. 빅토르 펠레빈에 대해서는 나름 기대를 가지고 있었는데, 첫 페이지를 읽기 시작하면서 벌써 기대감이 와장창 부서져버렸다.
역자 '심민자'씨는 경남대학교 국제언어문화학부에 재직중이란다. (2000년 당시) 이 책 낼 때 아마 무지 바쁘셨던 모양이다. 대학원생도 아니고 학부생들에게 '해석'해 오라는 과제를 내 주고, 그걸 그대로 책으로 만든 듯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개판인 문장을 만들 수가 있을까. 심지어 대학원생 한 명이 달라붙어 조금만 손을 봤더라도 이 정도는 아니지 싶다.
일단, 부제가 "소비에트 영웅 우주비행사들에게 받치는 글"이다.
다음 문단을 보자.
나는 '코스모스'라는 영화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에는 금속으로 만든 우주선이 우뚝 솟아 있었는데, 그것은 마치 어떤 거대한 사랑의 언월도가 땅 속에 틀어박혀 있는 모습과 같은 티타늄 연기의 경사진 원주에 서 있었다.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 우주선과 함께 장래의 꿈인 우주 비행사의 인격체가 형성된 것이 아니라, 집에서 한 블록 떨어져 있는 어린이 놀이터에 나무로 만든 모형 비행기에서 시작되었다. 그것은 비행기라고도 말할 수 없는, 두 개의 자그마한 창문을 갖고 있는 장난감 집이었다. 보수 기간 중에 한 쌍의 날개가 그려지고 허물어진 담장의 판자로 추스려 만든 고리를 이 장난감 집에 못으로 박히자마자 녹색으로 도색되었다. 그 다음에 서너 개의 커다란 붉은 별이 그 위에 색칠되었다. 이 조그마한 장난감집 안으로 두서너 명이 들어갈 공간이 있었고 그 안에서 군대 징집소의 벽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아주 작은 삼각형의 문을 가진 조그마한 다락방도 있었다. 이 다락방은 우리 소꿉동무들의 묵시적인 합의에 의해 파일럿의 선실로 간주되었다. 장난감 비행기가 격추되면, 비행기 기체 안에 앉아있던 아이들이 먼저 뛰어 내렸고 이내 뒤 문쪽을 향해 포효 소리를 내뿜자 비행사가 -물론 시간이 허락한다면- 그들을 뒤따라 탈출할 수 있었다. 군대 징집소의 사무실이 보이는 밑으로부터 하늘, 구름, 땅 지면을 식별할 수 있었으며 창문을 통해 구레나룻 모양의 제비꽃들과 다 시들은 먼지 낀 선인장들도 볼 수 있었다. (13~14p)
이 문단 뿐이 아니다. 100여 페이지를 읽는 동안 거의 대부분의 문장이 이런 식이다. 내 아무리 문장보다 주제나 구성을 중시한다해도 그건 읽을 수 있는 수준일 때의 얘기다. 설마 빅토르 펠레빈이 이렇게 썼다는 건 아니겠지? 아무리 봐도, 외국어를 막 익히기 시작한 사람이 사전을 찾아 단어 하나하나의 뜻을 적어놓고 해석을 시도한 것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역자의 실제 번역 솜씨인지도 모르겠다. '머리말'에도 이상한 문장들이 들어 있으니. 그러고도 잘도 작가와 친분이 있다는 머리말을 썼다. 뛰어난 작가라고 칭찬하면서 이 따위 번역을 한다는게 미안하지도 않은가?
작가에게 이메일이라도 보내주고 싶은 심정이다. 당신의 작품이 얼마나 엉망으로 출판되었는지 아느냐고, 다시는 심씨에게 번역을 맡기지 말라고.
러시아 문학 애호가로서 역자에게도 부탁한다. 다시는 당신 이름으로 된 번역서를 보는 일이 없기를. 이런 책을 다시 봤다간 테러리스트가 될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