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다 한 사랑이 너무 많아서 문학과지성 시인선 492
황인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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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8 매일 시읽기 30일

송년회
- 황인숙

칠순 여인네가 환갑내기 여인네한테 말했다지
˝환갑이면 뭘 입어도 예쁠 때야!˝
그 얘기를 들려주며 들으며
오십대 우리들 깔깔 웃었다

나는 왜 항상
늙은 기분으로 살았을까
마흔에도 그랬고 서른에도 그랬다
그게 내가 살아본 가장 많은 나이라서

지금은, 내가 살아갈
가장 적은 나이
이런 생각, 노년의 몰약 아님
간명한 이치

내 척추는 아주 곧고
생각 또한 그렇다 (아마도)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못다 한 사랑이 너무 많아서>>(2016)는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된 황인숙의 일곱 번째 시집이다. 2007년 이후 거의 십 년만이다. 어제 올린 황인숙의 대표시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에도 드러나듯 이 시인의 시들은 기본적으로 애잔하면서 쾌활하다. 해설을 쓴 조재룡 평론가는 황인숙의 시들이 ˝우수와 명랑˝을 띄고 있다고 말한다. 동감한다. 나는 해설을 꼼꼼히 읽지는 않는 편인데(많이 어렵고, 말장난 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이 평론가의 글은 잘 읽혔다. 그래서 다 읽었다.

우리네 인생이란 언제나 좀, 때론 많이, 쓸쓸하다. 쓸쓸함의 저변에는 애잔함이 깔려 있다. 내가 쓸쓸하면, 쓸쓸해 봤으면, 타인도 그러하리라, 우리는 짐작할 수 있다. 밝고 환한 웃음들 이면에는 너나없이 쉬이 내뱉지 못하는 울음들이 숨겨져 있음을, 이 나이쯤 이르면, 아니 이 나이까지 이르지 않아도 다 안다. 고파도, 슬퍼도, 아파도, 표정이 어두우면 인생까지 어두워질까 염려스러워 사람들은 허허실실 웃는다. 그렇게 명랑함을 가장한다.

황인숙의 명랑함은 가장되지 않다. 이 시인의 명랑함은 ‘길고양이 밥 주기‘라는 시에서 드러나듯 고양이들의 ˝핏줄 속 명랑함˝을 닮은 듯하다. 인생은 고달프나 우리 안에는 ‘명랑함‘이 내재해 있으니 어느 때든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황인숙의 시들은 술술 읽힌다. 우리 동네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재미 있다. 삶에 지쳤을 때 읽으면 위로가 된다. ‘풉‘하고 웃게도 된다.

오십대가 되기 전까지 시인은 ˝항상 늙은 기분˝으로 살았단다. 나는 아니었고, 우리 엄마는 그랬다. 우리 엄마가 55세 무렵부터 달고 산 말 중 하나는, ˝내가 5년만 젊었으면˝ 하는 소리였다. 5년이 흘러 보니, 엄마는 5년 전 할 수 있던 일을 하지 않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또 5년 후, 또 5년 후에도 그랬다. 그랬기에 엄마는 언제나 나의 반면교사였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도 있지만, 사실 나이는 숫자보다 더 많은 함의를 지닌다. 나는 어떤 나이에 이르면 내가 생각한 모습만큼 커 있지 않아서(몸이 아닌 정신이) 늘 당황스러웠다. 초딩 때 본 중학생, 중딩 때 본 고등학생, 고딩 때 본 대학생, 대딩 때 본 직장인 선배, 20대 때 본 30대, 30대 때 본 40대, 40대 때 본 50대, 그들은 내게 언제나 뿌리 단단히 박힌 큰 나무들 같았다. 내가 막상 그 나이에 이르고 보면 나는 늘 뿌리가 언제 뽑힐지 모를 위태위태한 묘목이었다.

그 이유를 어느 날 내가 깨달은 간명한 이치는 그 나이가 내가 처음 사는 나이이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많은 십대, 이십대, 삼심대, 사십대, 오십대가 있어도 나의 ~대는 언제나 처음이다. 그래서 낯설다. 낯선 것들은 당혹감을 준다. 당혹스러운데 그렇지 않은 척하며 산다. 왜 누가 봐도 나는 어른이거든.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내가 그랬듯, 내가 큰 나무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오늘의 나는, 앞으로 살아갈 날들 중 가장 젊은 날을 살고 있다. 그러니 허리 곧게 펴고 앞으로!

그리고 매일 시읽기 30일을 자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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