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문학과지성 시인선 442
나희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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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02 매일 시읽기 4일

어떤 나무의 말
- 나희덕

제 마른 가지 끝은
가늘어질 대로 가늘어졌습니다.
더는 쪼개질 수 없도록.

제게 입김을 불어넣지 마십시오.
당신 옷깃만 스쳐도
저는 피어날까 두렵습니다.
곧 무거워질 잎사귀일랑 주지 마십시오.

나부끼는 황홀 대신
스스로의 관이 되도록 허락해주십시오.

부디 저를 다시 꽃 피우지는 마십시오.

'어떤 나무의 말'은 나희덕의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문학과 지성사/2014) 시집에서 첫 번째로 실려 있는 시이다. 2015년 올해의 첫 책으로 읽겠다고 구매한 시집이었다.

이 글은 내 어미가 치매 판정을 받기 전, 수술을 받기 전, 요양원에 입소하기 전, 하나뿐인 자식과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아직은 피울 수 있을 때 쓴 것이다.

​책의 제목인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을 시작으로 마음을 끄는 제목의 시들을 몇 편 훑다 1부 첫 시에서 가슴 저 밑바닥부터 차고 오르는 저릿저릿한 아픔에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내게 이 시는 '어떤 나무의 말'이 아닌 '내 늙은 어미의 노래'로 들렸다. 여든둘 생일을 얼마 앞두지 않은 내 노모는 살을 파고들고 뼈를 후려치는 강추위에 또 한 번의 생을 살 아 야 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아니, 달갑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두렵고 무섭다.

'늙음에 관하여' 내게 그 어떤 책보다 더 큰 가르침을 준 것은 내 어미의 존재라는 숨 쉬는 책이다. 예순이 되었을 때, 예순다섯이 되었을 때, 일흔이 되었을 때, 일흔다섯이 되었을 때 내 어미가 노상 하던 말이 있었다. "내가 5년만 젊었어도. . . " 5년이 젊지 않은 그 나이에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것들을 내 어미는 늙었다는, 그것도 많 이 늙었다는 이유로 꿈꾸지 않고 그냥 살았다. 그래도 열심히 살았다.

팔순을 전후로 내 어미는 "5년만 젊었어도" 라는 말을 더 이상 내뱉지 않는다. 어미는 온몸으로 안 것이다. 5년 더 젊어봤자 이미 늙은 몸뚱이고 별볼일 없을 인생이라는 것을. 사는 게 무재미인 내 어미를 울고웃게 하는 건 어린 날과 젊은 날의 즐겁고 아린 추억들, 마흔 고개를 한참 넘어 쉰 고개를 바라보는 딸의 인생.

하나뿐인 어미 떠나면 형제자매 없는 넌 고아가 돼서 어떡하냐고 울먹이는 어미 앞에서 난 퉁을 세게 놓았다. "왜 이러셔 엄마, 내가 엄마보다 훨~~~씬 부자잖아. 엄마 없는 남편도 있지, 아들딸 고루고루 있지. 걱정할 거 하나 없다니까!!!"

그 말에 어미는 눈물을 삼키고 나와 함께 허허실실 웃었다. 자식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부모 앞에선 자식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데, 나는 잘 모르겠다. 나희덕 시인이 노래한 어떤 나무처럼 내 어미도 "가늘어질 대로 가늘어"져 제 속에서 다시 꽃이 필까, 삶이 황홀해질까 두렵다. 아니, 시의 화자는 "관"이 아닌 "꽃"을, 죽음의 그림자 대신 "나부끼는 황홀"을 간절히 바라는 욕망을 역으로 표현했을 가능성이 높다.

내 어미라고 어찌 그런 욕망이 없을까. 그러나 . . . 어미는 안 다. 이제는 정말로 피어날 수 없는 나이임을. 그저 시들고 또 시들고, 지고 또 져, 언제일지 모를 그 날만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존재임을.

남진우 평론가의 해설 중 가슴과 머리에 꽂힌 한 구절. "상실을 살아내는 법." 상실의 대상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육체든 인연이든 살면서 상실의 고달픔과 아픔을 비켜갈 수는 없는 노릇. 남진우 씨 말마따나 "대상의 상실이 남겨놓은 공백을 아물게" 할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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