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 하워드 진의 자전적 역사 에세이, 개정판
하워드 진 지음, 유강은 옮김 / 이후 / 201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200712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You can‘t be Neutral On a Moving Train》하워드 진/ 유강은 옮김/
이후(2002)
- 하워드 진의 자전적 역사에세이

역사학자이자 사회운동가인 하워드 진은 노엄 촘스키와 더불어 미국을 대표하는 ‘실천적 지식인‘이다. 2008년 <<하워드 진, 교육을 말하다>>(궁리)를 읽고 나는 이분의 철학과 걸어온 길에 감탄하며 속으로, 내 멋대로 ‘내 인생의 스승‘ 같은 존재로 삼아버렸다. 1922년에
태어난 하워드 진은 2010년 1월 27일에 생을 마감했다. 향년 87세. 심장마비였다. 그의 부고 기사를 신문에서 접하고 나는 또 속으로 그분의 명복을 빌었다. 더 나은 세상, 더 평등한 세상, 더 정의로운 세상을 위해 많은 책을 쓰고 많은 일을 해준 것에 감사하면서. 나와는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를 ‘인생의 스승‘으로 삼을 수 있게 된 것에 기뻐하면서.

그러나 내가 읽은 이 저자의 책은 단 두 권이다.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는 <<교육을 말하다>>로부터 4년 뒤인 2012년에 읽었다. 나는 내 책꽂이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이 두 책을 나란히 세워놓고 내 인생의 나침반으로 삼아야지 생각했다.

표지를 보면 노학자의 앞모습과 뒷모습의 사진이 찍혀 있다. 다르게 보기. 사물도 사람도 세상도 어떤 방향에서,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이고 해석될 수 있다. 표지 디자인이 저자의 의도를 반영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이 책에서 저자는 ˝인류의 잔인한 행위들에 대한 관례적인 나열과는 다른 역사 읽기˝(10)를 시도한다.

˝나는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은 객관성을 가장하지 않았다. 학생들에게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고 말하곤 했다. 몇몇은 이 은유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는데, 어떤 학생들은 이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 그 의미를 자세히 분석해 보기까지 했다. 다른 학생들은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바로 알아챘다. 이미 사태가 치명적인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고, 여기서 중립적이라 함은 그 방향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마한다는 사실을.˝(16)

이 대목을 읽었을 때 나는 무릎을 쳤다. 객관성이라는 것은 빛 좋은 개살구 같은 말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언론이 객관성이라는 허울 아래 내놓는 팩트 체크들. 그러나 팩트는 선별되는 그 순간부터 이미 객관성에서 멀어진다. 선별에는 고른 자의 주관이 담겨 있을 수밖에 없다. 그것을 알기에 저자는 자신이 경험하고 인지한 세상을 객관성으로 치장하지 않고 소외된 이들의 입장에서 편파적으로 이야기한다. 그가 말하고 있는 역사들도 다 사실들이다. 다만 물 속 깊이 감춰져 있던 그 사실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 만 천하에 알렸을 뿐이다.

˝좋지 않은 시대에 희망을 갖는다는 것은 단지 어리석은 낭만주의만은 아니다. 그것은 인류의 역사가 잔혹함의 역사가 아니라, 공감, 희생, 용기, 우애의 역사이기도 하다는 사실에 근거한 것이다. 이 복잡한 역사에서 우리가 강조하는 쪽이 우리의 삶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만약 최악의 것들만 본다면, 그것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을 파괴할 것이다. . . /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우리가 행동을 한다면, 어떤 거대한 유토피아가 미래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미래는 현재들의 무한한 연속이며, 인간이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바대로, 우리를 둘러싼 모든 나쁜 것들에 도전하며 현재를 산다면, 그것 자체로 훌륭한 승리가 될 수 있다.˝(289)

그는 자신의 저 말대로 한평생을 살다갔다. 내가 이분을 더욱 존경하게 된 일화가 있다. 부산에 있는 청소년 인문학 서점 ‘인디고 서원‘의 청년들이 2009년 미국행 비행기를 타고 보스턴 대학 연구실로 날아가 하워드 진과 긴 인터뷰를 했다. 평생을 사회정의와 평등세상을 꿈꾸며 저항하고 투쟁해온 이 분에게 젊은이들이 꼭 지켜나가야 할 소중한 가치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이 분이 한 대답은 자유니, 정의니, 평등이니 하는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그 가치는 ˝Kindness(친절함)˝였다고.

하나의 죽음을 놓고 얼마나 많은 설왕설래가 이어지는지. 죽음도 이후의 분분함도 그저 참담하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상냥하자고, 관대하자고
한 이 분의 말씀이 더욱 생각났다. 따스함이 결여된 비판은 보편성과 지속성을 획득하기 어렵다.

덧붙이는 말. 이 책은 2016년에 개정판이 나왔다. 표지 디자인이 노학자의 주름진 얼굴 캐리커처로 바뀌었다. 짙은 눈썹에 날카로운 눈매. 하지만 나는 기억한다. 사람과 세상을 향한 이분의 선한 미소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