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국내 출간 30주년 기념 특별판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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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육체를 통해 스며나오는 가벼움들을 각자의 몫만큼 망각하는 과정'


청주 해피마인드 소장님께서 읽어볼 만한 책으로 꼽았던 책이라 구매해 놓았다가, 지난주 고향에 내려가는 길에 집중해서 읽어보았습니다. 작가는 "모순되는 면이 공존하는 인간의 삶에 대하여 한번 생각해 보자." 이런 느낌으로 소설을 적어 낸 것 같습니다. 저는 마음에 듭니다. 이제껏 사회를 바라보면서, 진료실을 찾아오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바라보면서 항상 이런 종류의 의문들과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죠. 또한, 평소에 품고 있던 성적인 환상들과 공명하는 소설이라 비교적 잘 읽혔습니다.



1. 가벼움에서 무거움으로, 무거움에서 가벼움으로


니체의 '영원회귀'의 개념. 소설 속 앞과 뒤에 마치 회귀하듯이 언급되는 것도 그렇지만, 소설의 목차를 구성함에 있어서도 적용되는 부분이 인상깊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을 역순으로 두는 방식은 몰입감을 높이는 요소이면서도 결말부의 여운이 크게 남겨지도록 하는 장치로 사용됩니다. 작가는 소설 속 모든 요소들을 몽땅 사용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구나 하는 마음이구나. 


소설은 가벼워 보이는 사람에게는 무거워 보이는 삶을, 무거워 보이는 사람에게는 가볍게 보이는 삶을 짊어지우면서 읽는 이들이게 의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이러한 삶의 속성들을 외면하지 않고 잘 알아차려 나가고 있나요? 


2. 키치을 완전하게 털어낸 삶은 과연 존재할까? 


이 소설은 마치 '젊었을 적에는 왕성하게 활동했지만 어느 순간 귀가 순해져 버린 초로의 노인' 과 같은 어조로 풀어나갑니다. 그리고 그 노인은 이야기 후반부 키치(원래는 미학에서 사용되는 용어이지만, 작가는 삶의 전형적인 모습을 대변하는 단어로 재해석 하여 사용한 것 같습니다.)라는 단어를 언급할 때부터는 다소 격앙된 것 같습니다. 마치 자신이 숱한 고초를 겪으면서 깨달은 삶의 진실을 꼭 이야기 하고 싶다 이런 느낌. 분명 작가는 키치를 혐오하고 있지만, 완전하게 키치를 털어낼 수 없다는 모순적인 사실을 통감하고 있는 듯 합니다. 왜냐면 결국 인간은 죽음을 마주하게 되고, 끝끝내는 잊혀지기 때문입니다. '삶이라는 것은 결국 각자의 가벼움을 자기의 몫만큼 망각해 내는 것'. 소설을 끝까지 다 읽어보면서 작가의 의중을 이렇게 가늠해 보았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소설의 결말부를 어떻게 읽어내셨나요?


3. 기타 감상


작중인물인 토마시의 결말부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를 했는지에 대하여 재독해 볼 생각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상담현장에서 개성넘치는 개개의 삶의 흐름을 존중하고 결을 느껴보는 것은 꼭 필요하지만, 그 개성 넘치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은 결국 죽음이라는 하나의 지점으로 이어지기에 어떻게 보면 전형적이라고 느껴질 수 밖에 없는 이야기를 항상 염두하기는 해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프로이드의 초기 정신분석 및 성격구조에 대한 이론체계, 대상관계 이론을 기반으로 인물들을 섬세하게 그려낸 부분이 인상깊었습니다. 특히나 꿈에 대한 내용들은 '꿈의 분석'에 기반했다는 것이 잘 드러나 있어서 눈여겨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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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일리치의 죽음 펭귄클래식 28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은정 옮김, 앤서니 브릭스 서문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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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맞이하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


학부시절 '메멘토 모리'라는 책을 통해서 알게 된 톨스토이의 명작 이반일리치의 죽음. 이후에 심리학에 대한 공부를 하게되면서, 죽음을 이야기할 때 첫 번째로 거론되는 문헌이 바로 이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세 죽음', '습격' 이렇게 3개의 단편소설이 한 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이 소설은 이반 일리치의 죽음이 동료들에게 알려지는 부분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이후 주인공의 죽음을 바라보는 지인들의 위선적인 모습을 보고 있자면, 앞으로의 전개가 심상치 않음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글이 '체험'에 초점 맞추어져 있어, 따로 줄거리를 요약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엔 주인공의 극적인 변화를 위해 설정해 놓은 장치들이 과하다 싶지만, 시절이 때를 만나 올라오는 실존에 대한 의문은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을 수 있을만큼 강력하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의 마음속에서 평생 숨어 있다가 종국이 되어서야 쏟아져 나왔던 그 답은 과연 무엇이였을까요? 



세 죽음


폐포 깊숙이 스며든 죽음의 그림자를 맞이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그려냅니다.  글을 읽고나서 '가만... 소설의 제목은 세 죽음인데?' 이런 의문이 들게 되면 작가의 의도가 반절 이상 성공한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한 의문을 가지고 마지막 단락을 다시 한번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습격 -지원병의 이야기-


러시아 군이 타타르인과 전투에 임하는 2일 동안 지원병의 위치에 있는 화자가 겪은 것을 담담하게 풀어냅니다. 화자의 시선에서는 인물이 두 갈래로 나뉩니다. 어긋나있지 않은 한 명, 그리고 어긋나 있는 나머지 인물들, 이렇게 말이죠. 톨스토이는 이 작품을 통해서 다수의 사람들이 군집을 이루어 계급을 부여받고 전쟁에 임하는 모습과 홀로 있을 때의 모습이 어긋나 있음을 연극적으로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는 전쟁이라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한 명을 소설의 처음과 중간, 끝부분의 중심에 두었기에, 저는 이 소설이 인간의 군상을 비꼬려는 의도보다는, 인간이 지향해야 하는 바에 대해 좀 더 집중하고 있다고 결론내어 봅니다.


소설 초반에 나오는 플라톤의 인용문 '용기란 두려워해야 할 대상과 두려워 할 필요가 없는 대상을 아는 것'을 마음에 두고 쭉 읽어나가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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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
존 버거 지음, 강수정 옮김 / 열화당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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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에서 죽은 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두는 건 이전에는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들에게 두어야 할 시간조차 쪼개어 성공을 위해 분투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됩니다. 따라서 필자가 글머리에 '죽은 이들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이제 정치적인 행위가 되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어느 정도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지금은 세상에 있지 않지만 글 쓸 당시 초로의 나이였던 필자는 유럽 곳곳 자신의 삶 속에 끼여들었던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남기면서, 독자들에게 이 '정치적인 일'을 함께 즐겨주었으면 하는 마음을 내비치고 있습니다.

죽은 이들과 함께하기는커녕, 마주하는 이들과 함께하지도 못하는 독자들에게...


리스본

필자의 어머니는 망자가 된 이후 자신이 있을 곳을 리스본으로 정했습니다. 하지만 살아생전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곳이라 이곳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은 불명확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장소가 환기하는 인물 간의 추억이 없는 것이겠지요. 어머니와 오가는 일상적인 대화. 리스본의 정서. 산업화의 물결을 제대로 타지 못하고 쇠락의 길로 접어든 리스본의 비어있는 느낌은  어머니의 부재에 대한 허전함과 겹쳐집니다. ''네가 찾아낸 것만을 쓰렴.' 어머니의 당부의 말과 같이 어머니와 대화하는 필자의 감정선은 지나치지 않습니다.


제네바

필자는 리스본에서 어머님을 추억한 뒤, 딸과 함께 제네바에서 생을 마감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무덤을 방문하여 추모합니다. 추모라기보다는 영감을 얻기 위해 방문한 느낌. 그는 제네바의 정서를 표현하는데 애를 많이 먹었던 것 같습니다. '살아 숨 쉬는 사람만큼이나 모순적이고 불가사의한 도시', 어린 남자의 고민을 알아차린 매춘부의 '거기 좀 앉아요. 가서 뭘 좀 가져올게요.'라는 말을 남기는 것과 같은 정서. 저는 생소한 비유들을 통해 인물과 장소를 엮으려는 시도에 고개를 갸우뚱했으며, 이로 인해 산만해져버린 시선은 보르헤스가 남긴 글에 공감을 얻으면서 제자리를 잡았습니다.


아침의 기억

버질과 프로스트의 시.

마세도니오 페르난데스의 음성

많은 사람들의 사랑, 또는 대화.

그것이 부적임엔 틀림없지만, 부질없나니

내가 이름 붙일 수 없는 어둠에는

내가 이름 붙여서는 안 되는 어둠에는


삶의 은유를 만끽하고 싶은 시인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그리고 필자가 삶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함께 그려보게 됩니다.


크라쿠프

2차 세계대전 당시 폴란드의 상흔이 온전하게 보전되어 있는 크라쿠프. 크라쿠프의 소박한 거리 풍경 속에서 그는 친구로, 멘토와 멘티 관계로 많은 것을 나누었던 한 인물을 추억합니다. '환상이 결여된 그의 시각도 사랑했었다. 그는 환상을 품지 않았기 때문에 환멸도 겪지 않았다.' 전쟁이 할퀴어간 대지에서 평상심을 유지하며 살기 위해선 이런 냉정한 시각이 도움이 되리라. 어머님은 아련함을 남기는 것과 달리 그를 추억함은 비통한 마음을 불러일으킵니다.


아일링턴

런던의 외곽 아일링턴에서 대학교의 열정을 공유했던 오랜 벗과 이야기. 친구의 죽은 아내에 대한 그리움과 학창시절 함께 젊음의 꽃을 나누었던 추억이 오버랩 됩니다. 나이가 들어도 친구와 만났을 때는 역시나 이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가 싶네요. 다만 다른 점은 흘러간 것을 추억한다는 것. 저는 나이가 들어 젊음의 완전함을 나누었던 추억을 꼽씹어 볼 수 있을지... 젊음이 가기 전에 몸의 온전함을 완성해보고 싶습니다.


퐁다르크 다리

프랑스의 아르데슈 강이 흐르는 골짜기. 이 강물이 만들어낸 동굴 안 크레마뇽인들이 남긴 벽화를 바라보면서 그는 남편이 고고학자였고, 죽음을 앞둔 친구의 어머님을 떠올립니다. 그가 너무 이른 시기의 사람들에게 감정이입을 했던 탓일까요? 마치 화석을 건네주는 느낌을 받으면서, 책에 집중하기가 힘들어집니다.


마드리드

마드리드의 한 호텔 라운지에서 필자는 친구를 기다리며 출입문을 드나드는 사람들을 바라봅니다. 화려한 사람들의 모습에 현혹되지 않고 나와 이어질 수 있는 부분부터 천천히 찾아가는 잔잔한 시선. 전형적인 작가, 혹은 화가의 시선입니다. 시선의 중간에 돌아가신 은사님의 모습이 엿보입니다. 그에게 배운 것을 기반으로 먹고살아갔기 때문인지, 그의 시시콜콜한 부분을 넘어가면서 글을 마무리 짓습니다.



"우리네 삶 속으로 스며드는 생의 수는 헤아릴 수 없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혼자만의 공간, 혼자만이 가질 시간이 필요하다고들 말합니다. 이는 삶의 궤적이 커져갈수록, 앞으로 다시 만나지 못할 사람들이 늘어갈수록, 함께 숨 쉬고 있지 않은, 죽은 이들이 내  삶속에 많아질수록, 그때로 돌아가 그들과 대화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저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Erik H.Erickson이라는 분석가가 인생의 궤적을 그려본 'Eight Stage of the life Cycle'의  마지막 구간인 'Stage 8 : Intergrity vs Despair'이 떠올랐습니다. 60대에서 죽음을 마주하는 사람들이 통합하고자 하는 것은 소설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에서 다루는 '내 삶 속으로 스며드는 생들'이 아니겠는지요?

"우리네 삶 속으로 스며드는 생의 수는 헤아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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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빈 방 - 죽음 후에 열화당 영혼도서관
존 버거, 이브 버거 지음, 김현우 옮김 / 열화당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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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빈 방


책의 만듦새가 담고 있는 텍스트와 충분하게 호응이 되어 마음에 듭니다.


짧은 분량의 책이지만, 소장 가치가 충분하게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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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이를 상실한 다음에는 이를 충분하게 애도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사별에 대한 어떠한 마음들이 일상생활을 무너뜨리는 지경이 되면


흐트러졌다는 의미에서 'Disorder'라는 이름을 붙인 진단을 내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일정한 의식(ceremony)을 통해서 이를 다시금 'Order'하게 만들어 볼 수 있겠죠.


이 책을 읽고 있다 보면, 그러한 의식 속에 함께 참여하고 있는 느낌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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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제목인 flying skirts는 그녀의 단발머리에 대한 별명이며... 영문 제목, 한글 제목 모두 좋습니다.


침대에 누운 당신이 온몸을 꿰뚫는 것 같은 고통 때문에 움직이지도 못할 때, 고통을 가라앉히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모르핀이나 코르티손 주사를 한 대 더 놓아 주거나 몸을 받치는 배게들을 다시 맞춰주는 일밖에 없었을 때, 식사를 위해 몸을 일으키지도 못하고 빨대로 뭘 마실 수만 있었을 때, 겨우 찻숟가락 -당신이 좋아하던 손잡이가 달린 그 숟가락으로 음식을 조금만 먹을 수 있었을 때, 하루에 여섯 번씩 당신의 몸을 씻겨 줘야 했을 때, 기저귀로 대소변을 받아야 했을 때, 욕창을 막기 위해 발뒤꿈치와 팔꿈치를 닦아 줘야 했을 때, 당신은 비할 데 없이 아름다웠소. 그 비할 데 없는 아름다움은 당신의 용기에서 나오는 것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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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급생
프레드 울만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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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찌즘이 독일을 점점 잠식하고 있었을 당시의 시대 상황과 비밀을 간직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하는 시기인 사춘기 소년의 마음을 가감 없이 잘 표현한 작품입니다.


소설 초반에는 명문가 자제인 콘라딘과 함께하고 싶은 주인공의 솔직한 마음이 잘 드러나 있고, 저 또한 이러한 마음을 모르는 게 아니라 몰입하여 쭉 읽어 나갔습니다.


중간중간 아름다운 독일 교외 지역의 풍경이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지만 독일과의 연결고리가 전혀 없는 저로서는 막연한 이미지를 떠올리면서 넘어가게 되어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나이가 들고 유럽에 대한 이미지가 풍부해진다면 다시 읽어보면서 이를 좀 더 즐겨봐겠습니다.


두 사람의 갈등이 고조되는 순간부터는 자신들의 배경 때문에 사회에 나와서는 갈라설 수밖에 없는 두 아이의 모습이 명확해졌고, '이런 인간의 동물적인 본성을 자극하는 이데올로기가 수면 위로 올라와 사람들의 마음을 잠식해 갈 땐, 다수자의 입장에 있는 개개인들은 최대한의 이성을 발휘함에도 어느 한계점 이상의 반응을 보이지는 못할 것'이라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게 되면서(그의 편지에 잘 드러남.) 소설 속에서 튕겨져 나왔습니다.


다시금 소설에 몰입하기 위해, 한국 의료체계 안에서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린 저의 직업적인 위치를 생각하면서 감정선을 다시 잡아보았습니다. (감정선을 잡으면서 여러 이슈들이 떠올라 머리속을 해집어 놨지만 여기서는 따로 언급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짧은 길이를 가진(총 135page의 중편소설) 이 소설이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는 이유는 마지막 한 줄에 있는 것 같습니다. 이 한줄과 제목이 공명을 일으키면서 저에게는 상당한 여운을 남기는 것 같고 소설 중간의 의문도 해소를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 한 줄이 궁금하다면, 책을 사서 읽어보시는 것을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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