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한의학 지도를 찾다
상수의학회 편집부 엮음 / 주민출판사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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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듯하지만, 제 갈 길 가고 있는 한의대 교육에 대한 비평"



저의 직업은 한의사입니다. 그리고 현재 한의사를 대상으로 하는 사설 강의들은 최소한으로 듣고자 하는 입장입니다. 왜냐하면 강의하시는 분들 특유의 확신에 찬 강한 어조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답답한 마음이 들기 때문입니다. 한의학 공부가 막막하여 의지할 곳이 필요할 때는 이렇게 강한 확신이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불안한 마음을 달랠 수는 있겠지만, 자칫 그들의 권위에 의존하게 되면서 주체성을 잃고 추종자가 될 여지도 있습니다.


이 책은 강의록입니다. 현장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해주면서 집중을 유도하였기에 빠른 시간안에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전술한 마음에 연유한 걱정 또한 들었습니다. 


누군가에 대한 비난으로 큰 성장을 이룰 수 있는 단체는 없다.


기존 한의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학제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분들은 이 책을 접하면 시원한 사이다를 한 잔 들이켜는 느낌이 들겠다. 하지만 거기에 들어간 탄산이 조금 과했다고 봅니다.


최근 모교에 기공학 특강을 맡게 되어. 관련한 사람들과의 인터뷰 및 여러 분야의 자료를 수집하였으며, '12경락의 흐름은 기수련으로 체험할 수 없는 성질의 것' 을 명확하게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학부생들에게 '기수련이 한의학 공부의 방법론이 되기에는 무리가 있다. 다만, 자신에 대해 좀 더 이해하고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 수련에 투신해 보는 것은 충분히 가치있는 일이다.' 라는 잠정적 결론을 곧 전해 줄 예정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이 책의 2부 '경락은 흐르지 않는다.'를 주요 골자로 한 상수의학회의 주장을 접하니 반가움이 밀려옵니다. 저와 전혀 다른 곳에서 시작했지만 비슷한 결론에 도달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여러 문헌들을 통해 공부해온 바와 다른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책에서 말한대로 醫經(의경, 중의학의 발전에 지대한 기여를 하여 마치 경전처럼 인식하고 있는 책들을 지칭)은 당시에 통용되던 이론을 모티브삼아 만든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대부분 침법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부산물이기 때문에 이것을 그대로 상한론(漢代 장티푸스로 추정되는 전염병이 창궐하였을 때, 이를 한약을 통해 구제했던 기록을 모아 치료이론을 정립한 의서)에 대입하면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之'의 오류. 이 책의 연사분은 '醫經의 모티브가 되었던 이론의 적용을 침법에 국한하지 않고, 한약을 논하는 부분까지 확대 해석 하시고 계신 것 같아. 이 부분을 지적해 봅니다. 


(한의학을 공부할 때는 의경과 침구 본초, 방제를 따로 따로 짚어보는 의식적인 습관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의 발전사가 모두 다르기 때문입니다. 한의사 선생님들께서 전공과목을 공부할 때 놓치기 쉬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전공자들에게 통용되는 용어를 사용하였기에 글을 접하는 비전공자들 분들에게 죄송합니다.


이 책은 쉽게 접하기 어려운 내용을 밀도있게 다루어 출판물로서의 의미가 있으며, 침법에 있어서는 이론과 실재를 이어주는 훌륭한 가교역할을 충분히 해 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한의학을 처음 공부하는 후배들에게 추천해주기에는 부담스러운 책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 책의 가치를 후하게 매기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상수학회라는 곳이 어떤 결은 가진 모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차츰 성장해서 성숙된 출판물들을 만들어내는 모습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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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학의 기원
야마다 케이지 지음, 윤석희.박상영 옮김 / 수퍼노바(도서출판)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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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漢,韓)의학에 대해, '대학원생'의 마음으로 공부해보고자 한다면" 



한(漢,韓)의학의 인체관은 도교의 양생 사상 및 상.수학에서 모티브를 받아 형성된 Holism 및 Vitalism에 바탕을 두고 발전해 나갔기 때문에,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신비감 및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과거 한국에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용어가 유행하게 되고 특히 우리 것(국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무렵(1990-2000년)의 한국 사람들은 이런 신비감을 풍기는 한의학에 큰 기대감을 가졌으며, 사회생활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Well-being life를 위해, 혹은 나의 삶에 빠진 뭔가를 채우고자 한의대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이 다수 발생하는 등 사회적인 센세이션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렇게 외연을 확장하게 된 한의계는 2010년 근방에 접어들어서 이제 이미지의 부각만으로는 현 의료계에서 발언권을 얻을 수 없음을 인지하고 내실을 다지는 시기에 접어들어 간 것 같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접어 들어간 까닭은 내부적으로는 고전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한의학의 뿌리가 정말 무엇인지, 혹은 의료인으로서 한의학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적용할지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으며, 외부적으로는 타 의료인과의 연대 및 적대적으로 교류하는 분위기 속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젊은 연구자들이 주축이 되어 내실을 다지고 있는 현대 한의학에 대한 언급을 굳이 하지 않더라도, 한의학을 인체관을 서술한 서적들과 치료기술에 대한 부분을 나누어서 바라보고, 의료의 역사를 공부하는 학문인 의사학을 제대로 공부하다 보면 한의학에 대한 신비로움은 자연스럽게 사그라들게 됩니다. 나아가 '한의학은 나름의 의미를 가지면서 작동하는 치료 모델을 가지고 임상하는 사람들이 발전시킨 학문이구나' 하는 것을 알 수도 있습니다. 한의학을 구성하는 이론들은 누군가(속칭 깨달은 자)가 '발견'해서 전승해온 것이 아니라 아니라 역사 속에서 치료를 위해 '고안'되고 발전해온 것이죠. 


리뷰를 핑계삼아 지면을 빌려, 한의학에서 소비하는 네러티브에 관심을 가지시는 불특정인 분들에게 '상고주의에 대한 환상'을 벗겨내시라는 이야기를 잠시 하였습니다. 


샛길에서 잠시 나와서 다시 책에 집중하겠습니다. 이 책은 한의학의 뿌리를 밀도 있게 탐구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본다면, 한(漢)나라 전후로 한의학의 기본 뼈대가 어떻게 자리 잡혀 왔는지를 사료를 통해서 차근차근 바라보고 있습니다. 


사료들을 인용하면서 추론하는 논문의 형식을 띠고 있어 마음 편히 읽기에는 부담이 됩니다. (한자로 구성되어있는 인용문이 만들어내는 장벽도 상당히 큽니다.) 하지만 참고문헌을 꼼꼼하게 확인하면서 공부하는 대학원생의 마음으로 한의학의 뿌리를 바로 알고자 하는 분들과, 교과서를 좀 더 심도 있게 공부하고자 하는 한의대 예과생들에게는 이 책이 많은 도움을 주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저자인 야마다 게이지 선생님이 참고한 조셉 니덤(Josep Needham)의 저서들도 이런 방식으로 중국 문화를 전반적으로 살펴보니(번역이 되어 있는 것보다는 되어 있지 않은 것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지만) 중국문화에 대한 심화된 공부를 하고자 하시는 분들이 계신다면, 관련된 책을 찾아서 공부해 보시는 것을 추천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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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이 평한 기고물이 있어 링크해 봅니다 : http://www.mjmedi.com/news/articleView.html?idxno=33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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