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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 산책 - 사유하는 방랑자 헤르만 헤세의 여행 철학
헤르만 헤세 지음, 김원형 편역 / 지콜론북 / 2024년 10월
평점 :
사유하는 방랑자 헤르만 헤세가 당신의 여정에 행운이 깃들기를 기원하며 보내는
이탈리아 여행 안내서라서 신기했다.
여행 안내서 '베데커'에서 소개하는 관광지가 아니라
여행자들이 종종 놓치는 특별한 곳을 추천하는 헤세는
가능한 한 많은 것들을 눈에 담는 것보다
하나의 도시, 호수, 지역을 철저하고 자세하게 알아가는 것을 추천한다.
그가 열 번째 이탈리아 여행을 앞두고 있었을 때 로마를 아직 보지 못했을 정도니
헤세처럼 천천히 이탈리아를 음미할 수 있는 여행자는 드물기는 하겠지만,
헤세의 여행 철학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한다.
피렌체 카르투시오회 수도원에서 자신을 안내하던 수도사에게
왜 이제는 수두원에서 이런 그림을 그리지 않냐고 헤세가 물었더니
나이든 수도사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우리 방문객들은 이런 질문을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500년이 넘지 않은 것에는 관심이 없거든요.
그들은 우리를 경멸합니다.
우리 선조를 존경하는 만큼이나 우리를 경멸하지요." 라고 말했다.
헤세가 작별 인사를 하며
"아마도 그들은 여러분 안에서 자신의 시대,
어쩌면 자신을 경멸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라는 말을 건내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헤세가 피렌체에 있는 동안 시간을 충분히,
그리고 열심히 활용하려고 노력했는데
보볼리 정원에서 몇 번의 오후를 게으르게 보내고
꿈꾸며 보낸 시간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많은 도시를 돌아다니며 유명한 궁전들을 보았지만,
보볼리 정원에서 금붕어가 있는 분수 연못에서 보낸 시간이
더 인상적이고 결코 잊히지 않기를 바란다고 하니
피렌체를 방문하면 온종일 보볼리 정원을 제대로 즐겨보고 싶어졌다.
무해한 산책이나 알려지지 않은 예배당을 방문하거나,
거리에서 즐거운 대화나 심지어 금붕어 연못을 보기 위한
15분의 여유도 없이 인증샷만 찍고 바쁘게 다니는 관광객의 모습을
경계하는 헤세의 여행 태도가 잘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헤세의 예술적 안목과 자연에 대한 주의 깊은 관찰력이 돋보이며
낯선 풍경과 도시에서 단순히 유명하고 눈에 띄는 것만을 좇지 않고
본질적이고 깊은 것을 이해하고 사랑으로 받아들이면
우연한 일들, 사소한 것들이 특별한 빛을 발한다는 것을 알려주며
여행을 통해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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