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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따라 유럽의 변경을 걸었다 - 푸시킨에서 카잔차키스, 레핀에서 샤갈까지
서정 지음 / 모요사 / 2016년 2월
평점 :
좋아하더라도 먼 나라의 작가나 작품이라면, 숱하게 읽은 터라 사소함마저 다 안다고 자부하더라도 다시보면 생경해지는 그 무엇이 있다. 아는 게 진정 알았던 건지 싶은 엄연한 '다름'이 느껴지고 마는 일이다. 마치 생전 처음 가보는 여행지에 덩그러니 놓이게 되는 스산한 기분 같은 것이다. 계절에 상관없이 느껴지는 거리감 같은 게 이와 같지 않을까. 상상 속에서만 벌어지는 풍경과 실제로 맞닥뜨린 현실적 당혹감의 괴리는 그렇게 쉽게 맞지점을 향해 달려갈 수 있는 거리는 아닐 것이다. 상상만 하든 실제로 찾아나서든 분명한 건 동경이라는 감정만으로 자신의 지식의 산을 이루는 분명한 동기를 준 셈이라, 그 감정이 어떤 발로로 이어질지에 앞서 중요하게 꼽고 싶어진다. 사실은 이 거리를 좋아해서 이대로 머무는 지도 모르기 때문에.
살면서 동경하는 그 어떤 것들과 마주하게 되는 일이란 쉽지 않은 일이다. 반복해 이야기해도 모자를 만큼 운이 따라야 하는 일이고, 마음 안의 열정이 내 발을 움직이게 만들 수많은 조건과 두려움에서 해방되어야 가능해지는 일이라 그렇다. 그래 마음에서만 일어나는 동요를 소중히 간직만 하며 살아가는 쪽도 충분히 응원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어쨌든 운이 좋아 기회를 갖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는 언제라도 부럽고 배울게 많지만, 그 열정의 바깥으로는 이해되는 부분이 협소해지는 건 어쩔 도리가 없다. 개인의 취향과 개성을 부러움만으로 흥미롭게 바라보게 된다 해도 그 공감대가 열정에 대한 부러움 하나라면 이내 설득력이 떨어져 버리기 때문이다. 가령 작가가 좋아하는 고유한 장소와 풍경, 소리와 냄새 따위들이 주는 밀접함이 자신의 공감대에 따라 완전한 일치가 되어 큰 몰입의 즐거움을 줄 수도 있지만 반대로 전혀 동요되지 않을 심드렁한 채로 그렇게 멀어질만한 일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거리감'이라는 말에는 작품의 높은 질적 수준과 진정성과는 별도로 다뤄져야 한다는 점이다. 아무리 훌륭한 글귀를 보더라도 각자의 마음을 울리는건 서로 다른 이유와도 같다.
<그들을 따라 유럽의 변경을 걸었다>는 그 일치와 가장 먼 가장자리의 심경으로 읽어도 좋은 책이다. 이상한건 익히 잘 알고 있는 작가의 챕터를 먼저 읽게 된 경우라도 새로 알게 되었다거나 하는 것 말고는 별 재미가 들지 않기도 했고, 잘 알지 못한 작가의 본고장 방문기는 감정의 절차에 따라 수순대로 밟고 지나간다는 생각으로 읽게 되는 점이 흥미로웠다. 이런 마음이 드는 건 저자의 노고에 대한 비례로 읽히는 일은 아님을 다시 한 번 밝히고 싶다.
아무래도 이 책이 익숙한 기행기의 절차를 밟지 않는 이유가 클 것 같은데, 쉽고 편한 안내자로서구성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 같다. 우선 여기에 나오는 작가와 작품에 대한 바탕 지식이 고르게 있어야만 전반적인 풍경을 이해할 수 있도록 축조했다. 딱히 몇몇 작가와 여행지의 생소함을 제외하고는 유명한 인물과 장소의 발자취를 따르고 있는데도 저자의 마음대로 따라가기는 쉽지 않은 거리감이 있다. 소소하게 일상적 감상과 추억을 드러내는 식으로 접근한다고 해도 감상적이라는 인상이 드는 건 아니고, 열망적이거나 큰 깨달음 따위로 여운을 남기는 식이 아니어서 잔잔한 여정이라는 인상보다는 좀 학문적이라는 인상이 더 들기도 한다. 특정한 주제에 따라 전개되지 않는 면에서 거리와 차이를 느끼게 되는 것이 이 책의 특징이다.
저자의 예술적 애착에 대한 면은 꼭 문학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림과 음악에도 확장되어 다양한 면을 보게 되는 게 좋았다. 러시아인 푸시킨에서부터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 조르바, 고려인인 화가 니코라이박과, 고흐, 샤갈, 폴란드의 얼굴인 쇼팽 등 그저 유명인으로만 접했던 여러 예술가들이 살던 고향 또는 삶의 터전인 곳에서 직접 보고 탐구한다.
소개되는 사진과 실제 작품들을 소개하는 볼거리를 상세히 제공함으로써 매우 충실하고 구체적인 정서적 정보를 얻게 된다.
무엇보다 이 책의 강점은 이 모든 게 번역본이 아니라 우리 작가의 발자취로써 연구되고 정리된 형태로 읽을 수 있다는 것 자체라는 것인데 매우 희귀하다는 인상을 준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정보와 풍경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저자가 얼마나 예술작품에 대한 사랑과 열정으로 접근했는가, 그리고 상상의 세계에서 드디어 현실과 조우하는 기쁨을 기꺼이 누려도 좋을 성취감을 배우게 된다. 마침내 자신의 것으로 확장해 나가는 용기와 여정을 함께 지켜보는 재미로써 이 책을 누리면 되었다.
신록이 눈부신 유럽의 변경에서 많은 예술가들을 만나고 더 알게 되는 즐거움은 마치 초여름 아침의 상쾌함과 마주하는 인상으로 다가온다. 예술가들에게도 아침은 내면의 잠재된 창조성이 일깨워지는, 오감으로 기운이 돋아나는 새로움을 주는 시간이 아니었을지.
언제라도 지속 가능한 꿈으로 간직하다가 마침내 현실에 마주하는 순수한 기쁨을, 그리고 공간과 시간을 더듬으며 흙을 밟고 주변을 살피는 진지한 모색의 성실과 열정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다음 여정의 단초가 되는 오늘이기를 바람하며 책을 덮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