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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에서 하늘 보기 - 황현산의 시 이야기
황현산 지음 / 삼인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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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예술에 감화되어 빠져버리는 일은 초침이 다음 눈금으로 이동하지 못하고, 그만 미지의 공간으로 낙하해 버리는 일과 같다. 크레바스 사이로 그 끝을 모르고 펼쳐진 수많은 벽과 틈의 공간 속을 헤매는 유희의 세계. 별안간 일어나는 사유의 돌발 사태에 제 영혼의 무게를 체화하며 새로운 세계로의 발 디딤을 내딛는 일인 것이다. 잠시 뿐이라도 경험 후 멈춰졌던 초침이 미세한 소리를 드러내며 앞으로 나아갈 때, 이전의 나와는 좀 변화한 자각이 생기는 일이 그것이다. 누구나 반드시 예술을 사랑하게 되는 순간을 이렇게 맛보는 건 아니겠지만 깊게 감화돼본 사람은 이 깊은 정신의 계곡에서 자꾸만 헤매고 싶어질 것이다. 그러지 않을 도리는, 도저히 없는 것이다.




책을 찾아 읽거나, 음악을 듣고, 그림이나 영화를 보고 살아야 하는 일이 삶에서 도저히 멈춰지지 않는 이유는 이것들이 만나게 하는 수많은 세상, 의미들이 나를 부르고 있기 때문은 아닐지. 예술이 주는 보이지 않는 포옹의 온도는 인생을 보다 윤택하게 누리게 되리라는 믿음을 갖지 않을 수 없게 한다정신의 윤활유가 되어 준 예술의 이모저모를 생각하게 되고그제야 눈에 보이지 않던 가치들에 대한 경외감이나 추구해야 하는 이유들도 더러 배우게 되는 일이다

 

 

 

 

 

황현산의 두 번 째 산문집 <우물에서 하늘 보기>에서 작가는 스물일곱 편의 시를 소개하고 그것에 고리를 문 인생의 저변을 짚어낸다. 예술의 여러 장르 중에서도 유독 시는 난해하다거나 친절하지 않다는 이유로 외면을 받고 있는데, 이러한 기획으로 광범위한 독자를 만났다는 사실이 반가운 일이다. 작가의 말을 보니 신문에 연재된 글인 만큼 썩 괜찮은 호응과 지지를 받은 모양인데 그래 더욱 괄목할 만하다. 작가의 의도대로 시를 쉽고 친근하게 만날 수 있었고,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상의 반영을 맞물려 생각해 볼 수 있으니 더욱 그 의의를 찾을 수 있었을 것 같다.

 

 

문득 이 한권의 책으로 작가가 소개한 시에 단 한번이라도 각인되어 울림을 받은 사람이라면, 더는 예술의 무용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했다. 특히 인생의 바닥을 치게 될 때 엿보게 되는 인생의 쓴 면이, 한 편의 시와 말로 치유되어 흘러가는 풍경이란 참으로 근사하다. 극단의 고요가 주는 인고의 시간을 예술은 은유하고, 우리를 다시 살아내라고 마음의 폭풍을 잠재우기도 한다.

 

 

황현산은 시를 설명하고 작가를 언급하는 과정에 있어 단한 번도 예술적 숭고함에 대한 칭송을 직접적으로 하지 않는다. 그 안에 숨겨진 말의 은유와 비유를 훑는 일처럼 예술의 위대함을 과시하거나 적시하지 않고, 은은히 배어나오게 하거나, 오히려 좀 냉철하게 이야기하는 면이 있다. 여느 시화들에서 흔히 봐온 식이라면 표현의 아름다움에 대한 감동에 치중하게 되었을 텐데, 황현산의 글은 보다 온도가 낮고 보편적 세계관에서 벗어난 시인의 낯선 방을 응시하게 하는 면이 그 특징이다. 시론에 덧붙여 지금의 우리가 사는 세상의 맞닿은 지점을 말하는 걸 잊지 않는 것으로 늘 시는 가까이에 있다는 걸 보여준다

각각의 시세계를 말할 때 그것의 내밀한 해석과 이해를 돕는 철학은 물론, 우리 삶에 그 연결고리를 엮으며 의미를 증폭시켜 확장해 나가는 면이 이 책의 묘미다.

 

 

 

사람들이 흔히 하는 오해로 시가 아름답기만 한 것이라는 착각을 그는 굳이 아니라고 설명하기 보다는, 낯선 시를 하나 놓고 그 틈만으로도 이야기하는 방식을 택하기도 한다. 가령 여자를 위한 사상이나 말도 없었던 옛시대에 시는 주어진 윤리 바깥으로 비어져 나온 그야말로 내팽개쳐진 사람들을 위한 말이었다는 시선을 내놓는다

온갖 제도나 윤리로도 외면당한 사람의 말이 늘 시로 만들어져 그 여지들을 조금씩 확장해 나간 것이라는 해석은 참으로 신선하고 놀라운 면이다.

이 책을 보는 기쁨 중에 가장 큰 것이 이와 같이 시로 하여금 그 시대와 사회의 이면을 들추고, 그러면서 예술의 속성과 만나는 일이 아닐까 싶다. 이 절묘한 상응을 가능케 해준다는 점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가령 작가의 친구로부터 목도한 삶의 아이러니가 시를 부르는 장면 같은 시화편도 좀 인상 깊었다. 진정으로 바람 하던 친구의 삶의 태도가 오히려 본인을 무용한 사람이게 했다는 고백은 얼마나 뼈아픈 진심인가. 왜 우리는 굳이 삶의 치부를 들추고 그 안을 헤집고 마는걸까,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생각해보면 그건 시가 아주 밀접하게 접혀있던 이면을 아프게 헤집는 만큼 또 보듬어주는 일이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이러한 과정이야 말로 시인의 내적고통이 발화되는 시인의 언어이며, ‘가 말하는 세상, 예술의 본연인지도 모르겠다. 삶의 한 편이 특정한 시를 생각나게 하고, 또 그 시는 우리의 생과 무관하지 않다는 이치는 단순하고 어렵지 않은 연상이다.

 

 

작가는 둔중한 것에서 날카로움을 발견하라는 태도, 단단한 것에서 무른 것, 중요도의 질서를 바꾸는어떤 여지의 세상을 항상 꿈꾸라고 말한다. 그것은 궁극으로 시가 희망을 남기기 위한 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시를 쓴다는 것은 끊임없이 기적을 만드는 일과 같은데, 극단의 극치들이 모여 중앙으로 모인 이 기적과도 같은 일을 조금 더 사랑해보는 건 어떨까 싶어진다.

 

 

한 편의 시를 읽고 이런 시간이 쌓여갈 때마다 손바닥만 하게 고인 이해의 물이 길을 트고 한 데 모여 정수의 우물을 만드는 과정은 예술이 가는 길과 같아 보인다.

과거와 미래라는 지금이 아닌 것들에 대한 오랜 은유를 를 통해 이야기 하는걸 듣고, 이 끝도 안 보이는 예술적 낭비의 사치를 우리는 기꺼이 지키고 이어 나가야만 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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