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둥치는 밤 읽기책 단행본 9
미셸 르미유 글 그림, 고영아 옮김 / 비룡소 / 200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천둥치는 밤」은 무수한 빛의 입자들이 물방울처럼 떠다니는 상상력의 진수를 보여주는 책이다. 먼 훗날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한 소녀를 만났노라 기억함직한 우리들의 평범한 사유를 들추어 내준다. 천둥이 치고, 잠이 오지 않는, 그것도 무서운 밤에 ‘내가 사는 세계는 어떤 곳일까’라는 결코 만만찮은 의문을 가지게 된 소녀의 물음상자 안이 궁금해진다.
  끝도 없는 의문의 바다에 사방으로 튀어 오르는 철없는 물고기들이 파닥거리는 듯 신선한 내음을 풍긴다. 이 물음들을 한 장 한 장 펴내갈 때마다 내가 느꼈었던 미지의 나락 속으로 자꾸만 빠져들어 가고 그것은 마치 돌아오기 아쉬운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흥미진진하다. 미셸 르미유의 이 짧고도 강렬한 물음들은 무릎을 탁 치게 되는 동감을 자극하고, 사려 깊은 구성력으로 상상의 세계를 정신없이 맛보게 해준다. 이 책을 돋보이게 하는 다른 한 가지는 시각적 퀄리티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가 이다. 붓선이 적고 채색도 생략하였지만 기괴한 동선과 여백을 많이 둔 특징들이 막연한 의문들에 대한 물음표를 지우고 아릿한 순간을 맛보게 도와준다. 내적 열망의 수평이 한쪽으로만 걷잡을 수 없이 기우는 순간, 이런 상상을 하는 시간들이 모여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신비롭고 진정한 세계속의 나를 만나는 낯설음을 느끼게 해준다. 「천둥치는 밤」은 의식적이지 않으면서도 의지적이지 않은 그저 누구나 도달하게 되는 계단의 어느 지점에서 쉬어가는 여유를 그리고 있다. 지금의 내가 사는 세상을 돌아보고 우리의 의식에 묻혀있던 의문들을 과감히 꺼내어서 그 답을 향해 떠나도록 우주선을 태워주는 것이다. 이는 어린이들에게 ‘자아’와 ‘세상’에 대한 집요한 고민에 다다랐을 때 외롭고 지치게 하지 않을 의지와 이미지를 심어줄 것이다. 
   때때로 어린이들에게 사상이나 철학, 예술의 이론과 경험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미술관에 데려간다거나, 클래식 음악을 억지로 들려주고, ‘철학이란 무엇이다’라고 친절히 써놓은 책을 읽히는 것이 과연 어느 정도나 유효할지 의심스럽다. 배운다는 것은 거창한 경험을 통한 것보다는 일상적인 환경 속에서 체득한 것이어야 자연스럽고 진실하다. 그런 의미에서 그림책은 아이들이 평상시에 접할 수 있는 가장 친숙한 매체일 것이고 이 안에 담겨질 내용들에 대해 어른들의 고민은 끝이 없다. 작가는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어떠한 방법으로 다가가야 하는지에 대한 충실한 해답을 그려놓은 것 같다. 이 세상 누구도 정답을 알 수 없는 엉뚱하고도 미지의 물음들만을 담고 있지만 오히려 이 점이 주목해야 하는 부분이다. 작가는 ‘다만 자신의 상상 속에서만 맴돌 수 있는 그것’ 일뿐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철학과 예술의 진정한 면모는 아닐까.
  영혼의 허기는 어른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천둥이 치는 그런 밤에는 어린이의 마음속에 어김없이 노크를 할 것이다. 내면의 그윽한 숲길 위에 서 있다면 맨발이어도 좋을 그 어느 순간에, 아이들이 이 책의 소녀처럼 진정 잡힐 듯 잡히지 않는 푸른 꿈이었노라 기억할만한 성장통을 유쾌히 즐겨야 하지 않을까. 우리들의 소중한 사유들이 바로 이 숲길 위에서 잉태되고 배가 또 다시 불러오는 순환의 풍요와 정신의 성장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달콤한 감각에 감염되고 푸르른 꿈을 간직하게 되는 「천둥치는 밤」과 같은 작품들이 우리 어린이들의 주변을 가득 채울 날이 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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