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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감옥에서 - 어느 재일조선인의 초상
서경식 지음, 권혁태 옮김 / 돌베개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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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조선인의 옥중증언(獄中證言)

국민주의에 대한 저항적 글쓰기

  

경계는 감옥이다. 근대의 국민국가라는 기획에 포섭되지 못한 변방의 존재들은 그 경계에 갇힌 수인으로서 살아왔다. 세계는 국민-국어 공동체인 국민국가로 조각났고 그 단절의 기획 속에 수많은 경계인이 양산되었다. 지구는 국민만을 정회원으로 하는 회원제 클럽이 되었고 인간은 오로지 국민으로서 허용될 뿐이다. 인간으로서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은 오로지 국민의 이름으로만 하사되었다. 어느 국가에도 귀속되지 않는 무국적자들은 국가와 언어라는 이중의 감옥에 갇혀 폭력적 현실을 견뎌왔다.

여기, 한 수인이 고백을 한다. 나, 언어의 감옥에 갇혀있노라고. 그리고 증언을 한다. 감옥 안에서 그가 보고, 듣고, 말한 것을. 그 고백록이자 증언록인 재일조선인 서경식 교수의 언어의 감옥에서-어느 재일조선인의 초상이 지난 3월 번역·출간되었다.

서경식은 1951년 일본 교토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일본에서 일본어로 강단에 서는 한국인이다. 그의 고향도, 그가 꿈을 꾸는 언어도 모두 일본의 것이지만 그를 한국인이라 규정하는 것은 그의 국적이 한국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국적(한국)-모국어(한국어)/영주국(일본)-모어(일본어)의 단절적 존재인 그는 스스로를 재일조선인이라 칭한다.

 

재일조선인은 누구인가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재일조선인을 만나본 적이 없다. 아마 대부분의 독자들이 그러할 것이기에 서경식은 재일조선인의 정체역사에 대한 친절한 설명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재일조선인은 한반도(조선반도)에 혈통적 뿌리를 둔 일본 거주민들을 일컫는 말이다. 일제 식민지 시대에 수백만의 조선인이 자의와 타의로 일본에 건너갔고, 해방 이후에도 수십만이 일본에 잔류했다. 해방 전, 황민이라는 이름의 일본국 국민이었던 이들은 해방 후 국적을 자동으로 박탈당했고 동시에 국민으로서의 모든 권리 역시 박탈당했다. 그러나 이들은 해방된 국가의 주권자의 지위 또한 얻지 못했다. 조국이 곧 분단되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재일조선인의 국적 문제를 협의할 대표성 있는 단일 정부가 없다는 이유로 조선적이라는 실질적 무국적자 집단을 방치했고 심지어 탄압하였다. 재일조선인들은 국민으로서의 권리도,외국인으로서의 지위도 부여받지 못한 회색인으로 갖은 멸시를 견디며 살아갔다.

1965 한국에서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킨 한일협정이 체결되면서 국적문제가 공식적으로 논의되었다. 그러나 이는 반쪽짜리 협정에 불과했다. 재일조선인에게 주어진 권리는 남한국적을 선택하면 일본 영주권이 주어진다는 냉전적 폭력이었다. 또 재일조선인들은 대한민국의 군사정권을 인정이라는 하나의 타협과, 식민지 지배를 사과하고 반성하기는커녕 군사정권과 공모해 재일조선인의 인간적인 권리를 거부하려는 일본정부와의 이중의 타협에 직면해야 했다. 그러나 그 타협을 거부하기에 재일조선인들이 처한 현실은 너무나 열악했다. 영주권이 없다는 것은 삶의 터전이 불법이라는 이름하에 언제든 빼앗길 수 있다는 의미였고, 국적이 없다는 것은 여권이 없다는 뜻이므로 국가 간 왕래가 불가능하다는 뜻이었다. 타협의 갈림길에서 당시 많은 청년운동 세력들이 분열되기도 했고 서경식 역시 착잡한 마음으로 영주권 신청 기한 막바지에 신청했다고 한다.

 

윤동주 서시에서 발견한 언어의 감옥

 

이러한 연유로 그는 모국/모국어가 한국/한국어인 한국인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모어는 일본어이다. 심지어 그의 일본어는 뛰어난 일본어 표현으로 일본 에세이스트 클럽상을 받을 정도이다. 근대 국민국가 울타리의 세 꼭짓점을 이루는 국적-모국어과 모어 사이의 단절은 그에게 하나의 거대한 벽이다. 그를 둘러싼 단절의 벽은 그에게 거대한 감옥이 된다. 소년의 눈물에서 뛰어난 일본어 표현으로 상을 수상한 그는 수상 인사말을 통해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구식민지 종주국인 일본에서 태어난 나는 원래는 모어여야 할 언어(조선어)를 이미 박탈당하고 과거 종주국의 언어를 모어로 해서 자라났습니다. 나는 모든 것을 일본어로 생각하며 모든 것을 일본어로 표현합니다. 그렇다면 나는 일본어라는 언어의 벽에 갇힌 수인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감옥에 갇혀 있는 나는 어떻게 해서라도 좀더 넓은 곳으로 나가고 싶었고 이전에 갈기갈기 찢어진 동포들에게 내 마음을 전하고 싶어 번민의 나날을 보내왔습니다.

그가 느낀 언어의 벽은 이를테면 일어로 번역된 윤동주의 서시이다. 일제 강점기 저항적 문학의 상징이자 민족시인으로 불리는 윤동주의 서시 중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가 이부키 고가 번역한 윤동주 시집에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을 사랑해야지라고 번역돼있다. 직역해도 아무런 어려움이 없는 문장이 굳이 의역이 돼있다. 20년 넘게 중쇄를 거듭하는 이 시집에 실린 서시의 의역에 대해 조선 문학 연구자인 오무라는 다음과 같은 비판을 제기했다.

윤동주가 서시를 쓴 19411120일은 일본 군국주의 때문에 많은 조선인들과 그들의 민족 문화 모두가 죽어가던시대였다. ‘죽어가는 것들사랑해야지라고 부르짖는 윤동주는 이 모든 것을 죽음으로 내모는 자들에 대해 격렬한 증오심을 가지고 있을터이다. 이를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을 사랑해야지라고 해버리면 죽어가는 것들도, 죽음으로 내모는 자도 모두 사랑하는 것이 되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이부키 고는 이 비판에 대해 모든 죽어가는 것들모든 살아 있는 것들과 이어동의(異語同意)라며 윤동주는 군국주의에 대한 증오심 따위가 아니라 실존 응시의 사랑 고백을 말하고 있다고 반론한다. 즉, 오무라 편에서는 윤동주 작품에서의 저항의 정신을 강조하고 이부키 편에서는 의도적으로 저항의 정신을 폄하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서경식은 윤동주의 시를 접할 때에도 일본 및 일본인이 받아들여야 할 고발이 아닌 일반적인 실존 응시의 사랑 고백으로 읽기를 선호하는 식민주의적 권력행사를 발견한다.

문제는 한국과 일본의 대부분의 독자가 이 같은 어긋남을 알아차리는 것조차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일본의 독자에는 수많은 재일조선인 독자들도 포함된다. 따라서 서경식은 이들이 번역문을 비교해보는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이들은 일본어 번역에 가해진 일본인 주류의 심리를 반영하는 편향에 노출되며, 식민지 민중의 자손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마저 아이러니컬하게 종주국의 지()의 식민주의적 지배구조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 역시 모국어로서의 조선어모어로서의 일본어의 분열이라는 아포리아에 맞닥뜨린 수인의 처지임을 토로한다.

 

국민주의라는 계속되는 식민주의

 

우리가 서경식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하는 것은 그가 단지 스스로가 감옥에 갇힌 수인이라 고백하는데 있지 않다. 감옥에 갇혀 있는 그는 누구보다도 자신을 가두고 있는 감옥 밖의 힘들에 대하여 날카로운 시선을 던진다. 그리고 그는 그가 보고 듣고 깨달은 것을 증언한다. 그의 증언은 요컨대 계속되는 식민주의에 대한 저항이다. 그는 우파의 야비한 욕설이 울려 퍼지고 리버럴 세력은 공허한 양비론을 중얼거리며 방관하는 이 때에 이런 무참한 사회를 젊은 세대에게 남겨주게 되어 황량한 현실을 살아가야만 하는 젊은 세대에 대한 책임감에서 무거운 마음을 북돋아증언하고 또 증언한다.

굳이 그의 증언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일본의 식민주의가 계속되고 있음을 똑똑히 보고 있다. 얼마 전, 일본은 대지진으로 국가적 재난에 처하고 한국은 그런 일본을 위문하며 성금과 구호물자를 보내던 시기에 독도를 일본영토라 기술한 교과서 검정을 강행했다. 독도 문제는 일본의 계속되는 식민주의가 집약적으로 표출된 사례라 할 수 있다. 일본의 반성은 자신들이 패배한 전쟁에 국한된 것이며, 그 이전의 식민지배는 당시의 관점에서는 불가피한 것이었고, 그 방법 역시 제국주의 시대인 당시엔 불법적이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청일전쟁부터 시작돼 을사조약에 이르기까지 진행된 내정간섭과 점진적인 식민지화 과정은 도의적으로는 잘못되었을지 몰라도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으며 그 과정에서 진행된 독도 편입 행위 역시 합법적 행위였다는 것이다. 여전히 조선의 식민 지배를 긍정하고 그 식민주의의 유산을 계승하려는 시류가 일제 패망 60년도 더 지난 지금에도 강고히 흐르고 있다.

서경식은 이렇게 일본에서 계속되는 식민주의를 국민주의라 부른다. 그는 국민주의를 배타적 내셔널리즘인 국가주의와 구별하여 소위 선진국(구식민지 종주국)의 다수자가 무자각 상태로 가지는 자국민 중심주의라 규정한다. 국민주의자들은 자신을 내셔널리즘에 반대하는 보편주의자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지만,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많은 권리가 국민국가의 국민이라는 조건으로 보증되는 일종의 특권이라는 사실과 그 특권의 어두운 역사에 눈 감는다. 사회적·경제적 풍요를 국민의 자격으로 누리면서도 그 국민이 속한 국가의 정치적·역사적 책임은 시민이라는 탈 뒤에 숨어 회피한다는 것이다. 그 탈 뒤의 비겁한 공간은 새역모와 야스쿠니에서 매우 가깝다. 90년대 중반부터 가속화되고 있는 일본 사회의 우경화는 일부 극우 인사에 의해 이뤄진 것이 아니라 일본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국민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서경식은 진단하고 있다.

 

화해라는 이름의 폭력

 

언어의 감옥에서는 번역서이다. 즉, 이 책은 원래 일본어 공동체에 헌정된 책이었다. 실제로 독서 내내 이 책은 한국인보다는 일본인들이 읽어야 하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3화해라는 이름의 폭력을 읽으며 한국어 공동체에서 이 책이 소개된 이유와 의의를 백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서경식 계속되는 식민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선 일본을 제대로 알아야 하며, 일본을 제대로 알기 위해선 일본의 리버럴 세력의 사고와 행동의 문제점을 잘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한국 체류 중 한국 사람들이 일본 우파에 대해선 경계하고 비판의식을 갖고 있지만 일본의 리버럴 세력에 대한 인식은 부정확한 데다 오해에서 비롯된 호의를 품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일본 사회의 소수자임과 동시에 식민지 지배의 산증인인 재일조선인으로서 서경식은 이러한 이해 부족이 안타까운 일일 뿐만 아니라 위험한일이라고 말한다.

3화해라는 이름의 폭력은 이러한 위기감의 발로에서 실린 글들이다. 요컨대 일본의 리버럴 지식인의 사상적 퇴락에 대한 증언인 것이다. 그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일본의 박유하 열풍을 꼽는다. 한국에서는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한 화해를 위해서가 일본 학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리버럴 계열의 신문인 아사히신문사의 오사라기 지로 논단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박유하는 화해를 위해서에서 일본의 지식인이 자신에 대해 물어왔던 만큼의 자기비판과 책임의식은 지금껏 한국은 가진 적이 없었다며 한일 간 갈등의 책임을 한국에게 돌린다. 여기서 일본의 지식인은 누구이며 한국은 무얼 지칭하는가. 일제 군국주의를 옹호하는 이들은 일본의 지식인이 아니며, 이라크 파병을 반대하고 베트남전을 반성하는 한국 지식인은 한국이 아니란 말인가? 또 박유하는 “‘용서는 피해자 자신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라며 한국인들이 피해자로서의 내셔널리즘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자기비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래야만 상처를 받기 전의 평화로운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며. 용서는 당연히 진상규명, 책임 승인, 사죄, 보상이 이루어질 때 가능하다는 통념조차도 배격하는 이러한 주장은 같은 논리로 따르자면 일본이 북조선 때리기를 열렬히 하는 일본인 납치 사건 역시 마찬가지의 논리를 댈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인들은 북한의 책임 있는 행동 이전에 우선 그들을 용서해야 한다. 일본인 스스로의 상처받지 않은 평화로운 마음을 위해.

이렇게 어설픈 주장에 일본의 리버럴 지식인들은 왜 열광하는가? 서경식은 일본 리버럴 학계의 기이한 박유하 열풍에서 그들에게 숨겨진 욕구를 읽어낸다. 그들은 우파의 노골적인 국가주의에 반대하며 이성적인 민주주의자라고 자임한다. 그러나 동시에 식민지배를 통해 획득한 일본 국민의 특권이 위협받는 것에 불안함을 느낀다. 따라서 한일 간 화해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자신들의 책임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이들의 모순적 태도로 인해 화해의 책임이 한국에 있다는 박유하식 화해론이 열광적으로 환영받는 것이다. 이렇게 극우 세력뿐 아니라 일본의 좌파인 리버럴 세력들마저도 화해라는 이름의 폭력으로 책임의 공을 피해자들에게 돌리고 있다. 서경식은 박유하 현상을 바라보며 1990년대 이후 일본의 리버럴 세력의 사상적 퇴락을 선언한다.



쁘레모 레비와 서경식

 

전작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에서 서경식은 아우슈비츠의 생존자이자 현대 증언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인 프리모 레비의 삶과 자신의 삶을 겹쳐놓은 바 있다. 언어의 감옥에서에서도 많은 지면을 프리모 레비에 대한 이야기에 할애하고 있는데 이는 아무래도 그에게서 증언자로서의 자신의 운명을 읽고 있기 때문일 게다. 프리모 레비는 그의 유작 익사된 자와 구조된 자의 결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젊은이와 대화하기가 점점 곤란해지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의무인 동시에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시대착오라고 여겨질지 모른다는 위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을지 모른다는 위험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이야기해야만 한다. 개인적인 경험의 범위를 넘어서 우리는 총체적으로 어떤 근본적이고 예측할 수 없었던 사건의 증인인 것이다. (중략) 이것은 한 번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에 다시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이것이 우리가 말하고 싶은 핵심이다.

서경식은 느낄 것이다. 점점 더 일본인들과 대화하기가 힘들어진다는 것을. 학계에선 그의 주장이 내셔널리즘의 굴레에 갇힌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는 비판을 듣고, 젊은 일본인들은 아예 식민주의 같은 문제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그는 이야기를 멈추지 않는다. 재일조선인으로서의 그의 삶 자체가 총체적으로 어떤 근본적이고 예측할 수 없었던 사건의 증언이기 때문이다.

증언은 무엇보다 사태의 재발을 막는 데 있다. 주변국이 일본의 일거수일투족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그들이 일으킨 적 있었던 사건을 다시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더군다나 또다른 군국주의 패전국인 독일과 달리 일본은 사죄와 반성조차 하지 않는 나라이기에 그 위험성은 뜬소리로 들리지 않는다. 일본은 일본의 프리모 레비인 서경식의 증언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자신들이 저지른 만행에 아직도 신음하고 있는 구식민지 민중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일그러진 초상을 바로잡고 일본사회의 비인간화를 막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나 이는 미번역 언어의 감옥에서를 비롯한 서경식의 일본어 저술과 그 독자들에게 주어진 몫이다. 번역된 언어의 감옥에서의 독자인 나에게는 다른 몫이 있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피지배 민족의 후손으로서 그의 통렬한 비판에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보단 세계 곳곳에서 제국주의적 확장에 편승하고 있는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느끼는 불편함이 더 컸다. 과연 대한민국은 베트남에게 응당한 사죄와 보상을 했던가. 물론 일본과 달리 김대중 대통령이 공식적인 사과를 하였지만, 많은 국민들은 마음속으로 경제발전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정당화하고 있진 않은지, 라이따이한과 같은 전쟁 피해자들에 대한 책임 있는 보상이 이루어졌는지를 돌아보게 됐다. 또 현재도 진행 중인 아프간·이라크 파병은 어떠하며 외국인 노동자 정책은 어떠한가. 마치 아우슈비츠의 악몽을 간직한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에서 분리장벽의 악몽을 만들어내고 있듯이, 일본 제국주의의 피해자인 우리가 오늘날 한국민 중심주의를 표방하고 있진 않은지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 때인 것 같다. 서경식이 프리모 레비의 피해자 속의 내재된 가해성에 대한 성찰에 주목하듯 말이다.

거시적인 측면뿐 아니라 미시적인 개인적·일상적 측면에서도 언어의 감옥에서는 나에게 많은 고민거리를 던져주었다. 이를테면 이런 질문이다. “전공 상 아이들을 외국에서 낳고 기를 가능성이 큰 데, 아이들의 모어는 무엇으로 해야 할 것인가? 국민으로 기를 것인가 외국인으로 기를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국가, 민족, 언어와 같이 개인의 정체성을 구현하는 요소들에 대한 성찰이 필수적인 듯하다. 서경식의 언어의 감옥에서가 아니었다면 국적-모국어-모어가 일치된 울타리 안의 나에게서 울타리 밖의 자녀가 태어날 수 있다는 깨달음을 한참 뒤에 얻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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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중독 - 새것보다 짜릿한 한국 고전영화 이야기
조선희 지음 / 마음산책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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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짝 퀴즈 두 문제. 「바람난 가족」의 원조 격인 「자유부인」이 개봉한 것은 언제일까? 1974년 반공영화의 걸작 「증언」을 만든 감독은?

정답은 1956년, 임권택 감독이다. 자유당 치하인 1956년 “어떻게 하면 짧은 인생을 엔조이하냐가 문제지”라고 말하는 가출주부가 등장하는 영화가 개봉됐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사람은 얼마 없을 것이다. 임권택 감독이 35년 전 국가주도로 기획된 반공영화 「증언」을 찍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도 몇 안 될 것이다.

미지의 한국 고전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클래식 중독』이 지난달 20일 출간됐다. 저자는 한국 고전영화의 세계를 하길종, 이장호, 장선우 등 전설적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중심으로 ‘생생’하게 들려준다. 이 ‘생생함’은 저자의 경력에서 우러나온 것이라 그 느낌이 남다르다. 저자는 1995년부터 5년간 영화 주간지 『씨네21』의 편집장을 지냈고 2006년 9월부터 3년 동안 한국영상자료원장으로 일했다.

조선희씨가 소개하는 필모그래피는 단순한 감독 연대기 그 이상이다. 그는 감독의 작품을 자신의 경험과 밀접하게 엮어가며 오랜 친구를 소개하듯 나긋나긋하게 들려준다. 이런 식이다. 그는 1996년 장선우 감독의 「꽃잎」을 시사회에서 만난다. 첫인상이 퍽 나빴던 이 친구를 10년 후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재회한 그는 그제야 「꽃잎」의 진면목을 발견한다. 다큐멘터리와 픽션, 흑백과 컬러를 조합하는 표현의 자유자재로움과 노래 「꽃잎」으로 영화의 이미지를 견인해내는 모습에서 그는 「꽃잎」이 걸작임을 확신한다.

이야기는 정성일 영화평론가와 장선우의 다른 걸작에 대해 주고받은 문자로 이어진다. 문자 한통에서 시작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작정하고 사회통념에 싸움을 건 영화 「거짓말」, 한국 모더니즘 영화의 걸작 「만추」(이만희 감독)의 뒤를 잇는 「경마장 가는 길」 등 장 감독의 여러 작품의 영화사적 의의를 이해하게 된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의 흥행 실패 후 제주도에 은둔해버린 장 감독을 만나 포구에서 새벽까지 소주를 마신 이야기를 통해 그의 근황까지 알 수 있다.

저자는 영화인들의 친일행각, 군사정권 시대의 사전검열, 홀대받는 영화사 등 읽는 이를 자못 심각하게 만드는 이야기도 들려준다. 영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동명의 사실주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지만 계속되는 검열 끝에 ‘에로영화’로 전락했다. 우울한 역사는 과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임기를 보장받은 기관장이 정치적 이유로 부당한 사퇴압력을 받는 현실은 바로 지금, 2009년 이야기다. 앞으로도 한국 영화의 부흥이 계속 이어지려면 한국 영화사의 화려한 전설뿐 아니라 저자가 생생하게 들려주는 암울했던 시간 역시 분명하게 기억해야 할 것이다. 

(대학신문, 2009년 10월 1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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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의 탄생 - 몸, 그 안에 새겨진 근대의 자국
이영아 지음 / 민음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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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도 미용에 관심을 끊지 못하는 한 대학원생은 어느날 ‘육체로부터 유난히 자유롭지 못한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그는 ‘왜 난 내 몸에 대한 강박에 시달려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품고, 답을 얻기 위해 ‘어디서’ 강박이 오는 것인가를 먼저 추적한다.

최근 출간된 『육체의 탄생』의 저자 이영아씨는 그 답을 ‘근대’에서 찾는다. 근대화를 통해 인간은 자신의 몸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게 됐다. 내 몸이 나의 것임을 발견하면서 비로소 나만의 육체가 탄생한 것이다. 저자는 몸에 대한 지식을 축적한 근대화 이후에 우리 몸을 조작하고 통제하는 것이 가능해 졌다고 설명한다. 현대사회에서 육체는 조작과 통제가 능숙할수록 더 많은 자본과 권력을 창출할 수 있는 자산으로 거듭난다.

저자는 개화기를 맞이하면서 “‘몸’은 더 이상 유교적 이데올로기를 실천하는 수단으로 머물기를 거부했다”고 말한다. 유교에서 ‘대를 잇는 매개체’에 불과했던 몸이 단번에 개인의 소유물이 된 것은 아니다. 책은 단발령 논쟁을 소개하면서 개화기 조선 때 근대적인 ‘육체’가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를 보여준다. 유학자들은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를 부르짖으며 상투를 자를 수 없다고 극렬히 저항했지만 결국 ‘위생’이라는 근대적 개념에 밀려 좌절을 맛보게 된다. 1900년대에 들어서면서 단발하는 사람이 급증했고 이발소는 개화와 근대를 상징하는 공간이 된다.

‘몸’의 개인화는 외부억압으로부터 육체의 해방을 의미하는가. 오히려 저자는 “전통적 인식과의 결별을 통해 내 몸은 (부모의 것이 아닌) 나의 것이 됐다고 믿은 순간, 내 몸은 (나의 것이 아닌) 권력의 것이 됐다”고 말한다. 국가는 국익을 위해 ‘생체정치’를 내세우며 개인의 몸을 통제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위생을 위해 운동을 통한 몸의 단련이 권장됐고, 청소년의 성교육도 국가의 관리 하에서 이뤄졌다. 유교이념이 사라진 자리에 몸에 대한 ‘위생’과 ‘교육’이라는 두 담론이 새로운 규율로 들어선 것이다.

확고해보이던 ‘권선징악(勸善懲惡)’의 자리는 어느새 ‘권미징추(勸美懲醜)’에게 넘어간 듯하다. ‘더 근대적인 몸’을 향한 경주는 우리가 끊임없이 더 멋진 몸으로 재탄생할 것을 요구한다. 누구도 멈출 수 없는 ‘강박의 경주’는 근대의 논리, 자본의 논리, 권력의 논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대학신문, 2008년 11월 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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