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중독 - 새것보다 짜릿한 한국 고전영화 이야기
조선희 지음 / 마음산책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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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짝 퀴즈 두 문제. 「바람난 가족」의 원조 격인 「자유부인」이 개봉한 것은 언제일까? 1974년 반공영화의 걸작 「증언」을 만든 감독은?

정답은 1956년, 임권택 감독이다. 자유당 치하인 1956년 “어떻게 하면 짧은 인생을 엔조이하냐가 문제지”라고 말하는 가출주부가 등장하는 영화가 개봉됐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사람은 얼마 없을 것이다. 임권택 감독이 35년 전 국가주도로 기획된 반공영화 「증언」을 찍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도 몇 안 될 것이다.

미지의 한국 고전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클래식 중독』이 지난달 20일 출간됐다. 저자는 한국 고전영화의 세계를 하길종, 이장호, 장선우 등 전설적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중심으로 ‘생생’하게 들려준다. 이 ‘생생함’은 저자의 경력에서 우러나온 것이라 그 느낌이 남다르다. 저자는 1995년부터 5년간 영화 주간지 『씨네21』의 편집장을 지냈고 2006년 9월부터 3년 동안 한국영상자료원장으로 일했다.

조선희씨가 소개하는 필모그래피는 단순한 감독 연대기 그 이상이다. 그는 감독의 작품을 자신의 경험과 밀접하게 엮어가며 오랜 친구를 소개하듯 나긋나긋하게 들려준다. 이런 식이다. 그는 1996년 장선우 감독의 「꽃잎」을 시사회에서 만난다. 첫인상이 퍽 나빴던 이 친구를 10년 후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재회한 그는 그제야 「꽃잎」의 진면목을 발견한다. 다큐멘터리와 픽션, 흑백과 컬러를 조합하는 표현의 자유자재로움과 노래 「꽃잎」으로 영화의 이미지를 견인해내는 모습에서 그는 「꽃잎」이 걸작임을 확신한다.

이야기는 정성일 영화평론가와 장선우의 다른 걸작에 대해 주고받은 문자로 이어진다. 문자 한통에서 시작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작정하고 사회통념에 싸움을 건 영화 「거짓말」, 한국 모더니즘 영화의 걸작 「만추」(이만희 감독)의 뒤를 잇는 「경마장 가는 길」 등 장 감독의 여러 작품의 영화사적 의의를 이해하게 된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의 흥행 실패 후 제주도에 은둔해버린 장 감독을 만나 포구에서 새벽까지 소주를 마신 이야기를 통해 그의 근황까지 알 수 있다.

저자는 영화인들의 친일행각, 군사정권 시대의 사전검열, 홀대받는 영화사 등 읽는 이를 자못 심각하게 만드는 이야기도 들려준다. 영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동명의 사실주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지만 계속되는 검열 끝에 ‘에로영화’로 전락했다. 우울한 역사는 과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임기를 보장받은 기관장이 정치적 이유로 부당한 사퇴압력을 받는 현실은 바로 지금, 2009년 이야기다. 앞으로도 한국 영화의 부흥이 계속 이어지려면 한국 영화사의 화려한 전설뿐 아니라 저자가 생생하게 들려주는 암울했던 시간 역시 분명하게 기억해야 할 것이다. 

(대학신문, 2009년 10월 1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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