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조용하던 독도가 다시 떠들썩하다. 얼마 전 자민당 의원 셋이 울릉도를 방문하겠다며 정치쇼를 한바탕 벌이면서 한일간의 불안한 정적은 다시 산산조각 났다. 그 이후 일본 정부 차원에서 방위백서에 다시 한번 독도를 자신의 영토로 규정하면서 한일 관계는 급랭하고 반일 감정은 끓어 넘치고 있다. 심지어 이번 방위백서에는 한반도 유사시 독도에 자위대를 파견하겠다는 강한 도발까지 하고 있다.
일본의 독도 도발은 단순히 한 섬에 대한 영토분쟁을 걸어오는 것이 아니다. 독도 강제 편입은 폭력적 제국주의/군국주의의 상징이며 독도에 대한 권리를 지금와서 주장하는 것은 바로 그것의 정당화 혹은 부활을 상징한다. 일본은 2차대전 패전국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반공을 위한 미국의 전략과 한국전쟁의 전쟁 특수를 거치며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의 지위까지 얻었다. 패전은 잠시의 충격이었을뿐, 그들의 자존심은 경제성장을 통해 어느정도 치유받았다.
하지만 1990년대 거품경제 이후 일본의 자존심은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경기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으며, 깔보던 중국에 추월당하더니, 지진과 쓰나미가 몰아닥쳐 원전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위기를 타개할 정치적 리더십은 보이지 않으며, 정권교체로 집권한 민주당은 희망마저 잃게 했다. 경제적으로도 첨단사업은 한국 등에 밀리고 제조업 기반은 신흥국에 잠식 당하는 상황에서 고령화라는 악재까지 겹쳐있다. 심지어 절대 우위에 있던 문화산업도 세월이 변해 한류라는 역풍을 맞고 있다.
이런 지점에서 정권교체 때 한일 우호적 관계 회복을 말했던 민주당 정권까지 독도 도발에 합세하고 있는 것이다. 이 지점은 일본이 만주를 침략하며 군국주의를 본격화했던 1930년대와 매우 닮아있다. 서구 문물을 가장 적극적으로 수용해 제국주의 국가 반열에 오른 일본은 산업화와 경제성장을 구강하고 한반도와 대만 등을 강제적으로 병합하는 등 정치적/경제적으로 성공신화를 구가했다. 하지만 1929년 대공황이 밀어닥치면서 일본의 성공신화는 추풍낙엽처럼 바닥으로 떨어졌다. 실업이 폭증하고 경제가 마비됐다. 영국과 미국에서 케인즈와 뉴딜이 등장하는 동안 일본은 독일처럼 군국주의적 확장을 통한 경제회복을 선택했다. 그들은 만주를 침략했고 중일전쟁을 일으켰으며 태평양 전쟁을 시작했다.
그 결과 그들은 한 때 동아시아, 동남아, 태평양을 아우르는 드넓은 영토를 가진 대 제국을 건설했다. 한반도 남쪽 좁은 땅에 갇힌 우리가 장수왕 시절 고구려의 영토를 보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처럼, 일본의 우익과 그들을 지지하는 많은 국민들은 그 영광의 시절을 기억하며 그로부터 모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것이다. 그리고 일부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한 발 더 나아가고 있다. 평화헌법 9조를 바꿔 자위대를 군대로 바꾸고, 다시 침략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국가를 건설하는 것, 식민지 시절 강제로 빼앗은 땅을 자기네 것으로 만드는 것, 영광의 시절을 정당화하고 미화하는 것을 넘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그것을 '사실'이라 주입하는 것, 이런 것들은 그릇된 과거로 회귀하려는 적극적인 움직임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움직임을 앞장서서 하는 이시하라 도쿄도지사 같은 사람들이 일본 국민들의 대중적 지지를 받고 있다. 강하지 않은 일본에서 '강한' 일본을 말하는 우익인사들에게 국민들이 상처 받은 자존심을 위로받는 것이다. 이런 배경이 있기에 자민당 의원들이 입국거부를 당할 지 뻔히 알면서도 김포행 비행기를 타는 것이다. 자신들이 한 때 지배했던 한국으로부터 입국거부를 몸소 당하며 자신들의 상처난 자존심을 부러 한번 자극하고, 그 상처로부터 과거로의 회귀에 대한 열망을 이끌어내는 것, 그것이 그들의 정치적 술수이다. 독도가 역사적으로 한국 땅인지 일본 땅인지는 그들에게 크게 중요치 않다. 그저 그것이 과거의 영광에 대한 상징이기만 하면 된다. 그들에게 독도는 정치적 자산일 뿐이다.
그러나 내가 여기서 진정으로 문제시 하고 싶은 것은 우리네 정치의 태도다. 우리에게 독도는 단순한 '정치적 자산'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주권의 상징이자 침탈당한 우리네 역사와 자존심을 지키는 보루이다. 독도는 지켜도 그만, 잃어도 그만인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그 자체이다. 우리 국가는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으로 건국되었으며, 일본에게 강탈당한 모든 것을 회복하며 수립된 국가이다. 그런데 지금의 독도는 일본 정치인들에게 뿐만 아니라 우리 정치인들에게도 한낫 정치적 자산으로 대접받고 있다. 독도쇼는 일본이 일방적으로 벌인 것이라기보다는 한일 합작극에 가깝다.
이번 독도쇼를 통해 한국 정치인들은 많은 것을 얻었다. 일본 출생으로 아키하로라는 일본 이름으로 불리며 친일파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던 이명박은 강단있게 입국을 거부시키는 이미지로 자신의 친일 이미지를 털어냈다. 정권 2인자 이재오는 독도까지 직접 가서 독도쇼를 펼치며 급격히 추락하고 있는 자신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켰다. 일부 의원들은 독도특위를 만들어 오는 12일 독도에서 회의를 갖겠다고 한다. 폭력 시위로 악명이 높은 어르신들의 보수단체들이 김포공항 앞에서 일본 의원들의 사진을 불태우며 거친 시위를 하는 모습이 구국의 위인들처럼 보도됐다.
하지만 이번에 입국거부 당한 일본 의원들은 일본의 '야당'의원이면서도 '야당의 야당'인 일부 소장파 의원들이다. 일본에서 그들의 정치적 입지는 매우 좁았고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일본 언론은 큰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그들이 이제 스타가 됐다. 한국이 대통령까지 나서서 요란하게 입국을 거부하면서, 김포공항 대기실에 9시간 동안 밥 먹이고 구슬리면서 그들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진 것이다. 일본언론은 이 사건을 대서특필했다. '자국 국회의원이 옛 식민지 국가 공항에서 입국 거부당했다.' 이 장면은 매우 상징적이며 그 여운은 무의식적일지라도 강렬하다. 앞서 말했듯, 일본인들은 상처받은 자존심을 되새겼을 것이며, 과거의 영광과 현재의 초라함을 비교했을 것이다. 자신들의 일장기를 불태우려는 지난 피식민지 국민들을 바라보며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한국과 일본이 우호적인 관계를 회복하는 길은 분명하다. 일본은 지난 역사에 대해 진정성 있는 사과와 그에 상응하는 배상을 확실하게 하고, 한국은 그 사과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번에 벌어진 독도쇼는 이러한 해결책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네 반일 감정은 더욱 심해졌고, 일본에서는 우익 인사의 영향력이 확대됐다. 우리는 더 사과를 받아들이기 힘든 상태가 됐고, 그들은 더 사과를 안 하려는 상태가 됐다.
물론 혹자는 저들이 먼저 싸움을 걸어 오는데 가만히 쳐다만 보고 있을 수 있냐고 물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싸움을 걸어온다 해서 이런 식으로 이로울게 없는 싸움을 하는게 아니라 한 수 위의 전략으로 대응했어야한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우리는 한 수 위기 때문이다. 독도지배에 대한 훨씬 더 탄탄한 역사적 근거를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독도를 실효지배하고 있다. 가장 크게 이기는 길은 그들에게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고 울릉도까지 고생해서 가서 그들이 관심있는 오징어나 먹고 오게 하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별 이름도 없는 의원이 아무 일 없이 울릉도에 가서 오징어만 먹고 온다면 그게 기삿거리나 되겠는가. 그들이 만약 독도를 방문한다면 그건 더할나위 없이 우리의 큰 승리이다. 독도에 가기 위해선 한국 공항으로 입국해 한국에서 출발하는 배를 타고 한국의 섬을 거쳐야만 갈 수 있다는 사실, 즉 한국의 독도 실효지배를 몸소 입증해주는 길이니 말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들을 무시하기엔 쇼를 벌이고 싶어하는 정치인과 언론인들이 너무 많다. 반일 감정은 거의 모든 국민들이 공유하는 감정이기에 그 감정을 자극할 수만 있다면 쿡쿡 찔러 자신의 인지도와 영향력을 높이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그네들을 말릴 순 없다. 하지만 대통령까지 그 대열에 합류했다는 것, 나는 그것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한 나라의 미래를 진정으로 생각하는 대통령이었다면, 자신의 인기를 위해 국민 감정을 조작할 것이 아니라 국가에 이득이 되는 단호하고 적절한 대처를 했어야 한다고 본다. 입국거부를 하더라도 대통령이 직접 지시를 하며 요란을 떠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물밑으로 진행하거나 페인트 모션을 넣어 그들이 예상치 못하고 있다가 갑자기 물 먹게 했어야 한다.
과거로의 회귀를 꿈꾸는 일본에 대한 단호하고 적절한 대처는 그들이 독도에 함정을 보내거나 한다면 전쟁을 불사하고 우리 함정을 내보내는 것, 별것도 아닌 꼴통 우익들이 오징어 먹으러 온다고 하면 오징어나 잔뜩 먹고 허탕치게 하는 것 그 둘 다이다. 내가 너무 큰 기대를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