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 - 신달자 에세이
신달자 지음 / 민음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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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자의 봄


 

 

우리가 자라던 시대에 가장 각광받던 만화가인 김수정씨의 '오달자의 봄'에서 제목을 따와봤다. '백치애인', '물위를 걷는 여자' 등 필자가 책을 별로 안보던 시절에 발표된 신달자 선생님의 작품들이 아직도 나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어 있을만큼 우리 시대의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그녀는 그 입지를 탄탄히 굳혔다. 그야말로 '달자의 봄'인 것이다. 하지만 어느 누군가 말하지 않았던가. 봄이 아름다운 이유는 겨울을 이겨냈기 때문이라고. 이 책은 그간 작가로서 화창한 봄날을 보내었던 신달자 선생님의 그 춥고 암울했던 인간으로서의 겨울에 관한 에세이다.

 


희수라는 제자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써내려간 이 이야기들은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화려함 속에 감추어진 지극히 인간적인 그녀의 고백들이자 언젠가 한번쯤은 속시원히 털어놓고 싶었다던 병든 남편과의 치열했던 애증의 세월에 관한 기록들이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별다른 어려움없이 성장했던 그녀의 삶은 심교수를 만나 결혼을 하면서 변하기 시작한다. 돈을 아끼려고 애당초 신혼 여행지로 계획했던 부산에서 인천으로 방향을 급산회한 로맨틱함과는 전혀 거리가 먼 지극히 현실적인 남편. 허름한 여인숙에서 첫날밤을 보내며 이제 허영따윈 버려라고 얘기하던 남편이란 사내. 내 가족의 평안과 안위보단 고통받는 이웃에게 보다 큰 관심을 두었던.. 우리나라 노사문제를 20년 일찍 내다보았던 의식있는 학자이자 냉철한 이성을 지녔던 그 사람. 결국 그 꿈 한번 제대로 세상에 펼쳐 보지도 못하고 저 멀리 요단강 건너갔던 그래서 더 안타깝고 가슴 먹먹하기만한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 없었던 남편이라는 사람.

 


1977년 그 남편이 뇌졸증으로 쓰러졌다. 가망이 없다는 의사의 말을 뒤엎고 극진한 간호끝에 그 사람은 23일만에 의식을 되찾았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그렇게 다시 살아난것이 앞으로 24년간 얼마나 큰 고통을 안겨다 주리라는 사실을. 그 후 남편은 반신불수의 몸으로 24년간 지내야했고 몸의 불편은 육체적인 면에서 끝나지 않고 고매하던 그 사람의 정신까지 갉아먹었다. 애기처럼 변해버린 남편. 그로인해 수없이 남들앞에 비굴한 모습을 보이며 남편의 비위를 맞추어 줘야했던 아내.

 


필자의 가족들은 치매로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경우를 제외하곤 오랜 시간동안 병석에 누워있던 사람이 없었다. 모두들 큰병없이 적당히 천수를 누리시고 조용히 가족들 곁을 떠났갔다. 그래서 장기 입원 환자로 인해 가족들이 겪는 고통을 솔직히 잘 모른다. 하지만 남편의 병 수발을 하면서 차라리 그 사람이 그렇게 죽어버렸으면 다른 가족들의 고통이 덜할것이라고 생각했다던 신달자 선생의 인간적인 고백에 그 고통이 짐작되었다.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자기가 사랑하던 사람이 편안히 죽기를 바라는 그 마음이.. 그리고 자신의 꿈을 이루어보지 못하고 남겨질 아내와 자식들이 눈에밟혀 마지막 순간까지 가슴으로 피를 토하며 울부짖은 그 사람의 마지막 가는길이..

 


무지막지한 병원비를 감당하기 위해 남편이 사둔 관악산 자락의 집을 헐값에 팔았다던 이야기가 나온다. 그걸 헐값에 사서 홀라당 자기가 챙겨먹은 부동산 업자가 있었다. 곧 서울대학교와 관악구청이 들어서고 현 시세로 100억을 호가할지도 모르는 세상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신달자 선생은 그 당시 너무나 절박하였고 또한 세상을 너무나 몰랐었노라고 고백했다. 필자는 그 대목을 보다가 너무 화가 나서 담배 한대 피워 물었다. 어떤 TV광고에 이런 문구가 나오질 않았던가. 남의 슬픔을 이용해서 장사하지 않겠습니다라고.. 약삭빠른 자들이 득세하는 세상은 죽음 앞에서도 예외가 없다는 사실이 씁쓸했다.

 


결국 2000년 그 남편은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신달자 선생 또한 유방암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순수 시를 버리고 베스트셀러 작가로 전향했다고 동료 문인들의 조소와 비아냥을 감내해야 했던 시절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 숱한 고통을 겪고 나이 마흔이나 되어서야 겨우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고 고백하는 작가. 고통도 어려움도 매 순간 힘이 되어준 가족들이 있었기에 지금같은 '달자의 봄'을 맞이할 수 있었나보다.

 


따스하고 화창한 봄날같이.. 신달자 선생님의 앞날에 좋은일만 가득하길 팬으로서 기원해 본다. 그리고 끝으로 '나 죽거든 결혼하지 마!'라며 마지막 가는길 못다한 사랑에 절규하던 고 심현성 교수의 명복을 비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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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얼중얼
신천희 지음 / 새론북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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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고추만은 제발..

 

 

 

1982년이었다. 비록 필자의 나이는 어렸지만 아직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동네 단골 오락실에서 한 스님이 겔러그를 하는걸 보았다. 그것도 총알빼서.. 기억하는 분들 있을지 모르겠다. 총알을 뺀다는 의미는 첫번째 스테이지에 등장하는 쫄병인똥파리를 일부러 죽이지 않고 남겨두었다가 계속 총알을 피하며 한 백여바퀴인가 돌리면 그 다음 스테이지 부터는 몬스터 전체가 총알을 쏘지않아 몇시간이고 계속 할 수 있던 일종의 얍삽이였다. 어린 마음에도 그것이 나쁜짓 같아 쉽사리 행하기를 꺼려했던 일인데 스님이란 작자가 버젓이 그걸 하고 있었다니 분명 그는 땡중 즉 땡초였을 것이다.

 


이 책을 쓰신 소야스님은 스스로를 땡초라 자처하는 분이다. 비록 전자오락 따위는 하지 않겠지만 술 참 좋아하시는것 같다. 오죽하면 비가오는 날이면 무조건 한 잔 꺾어야 한다는 '우주인'의 멤버이겠는가. 나는 중이니까(中2) 열네살이다라고 주장하는 괴짜스님. 대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동화 작가이자 동시를 쓰는 시인이자 공연기획자이기도 한 특이한 이력을 지닌 분이다. 그런 그가 지금은 전북 김제의 무주암이란 토담집에 기거하며 보현이와 호법이란 개커플과 재미나게 살고있다 전해진다. 그 모양이 거지발싸개 같다고 해서 '발싸개'라 이름지은 또 한마리의 강아지가 있었으나 입양을 보냈다. 소야스님의 작명 센스에 한참이나 웃었던 순간이었다.

 


독실한 불교신자이신 필자의 어머니께서 세상에서 제일 귀여워하는 것은 바로 동자승이다. 그런 동자승의 모습이 책 표지에서 부터 페이지마다 가득하다. 그 빠꼼한 표정을 짓고있는 모습이 무척이나 귀엽다. 보고만 있어도 자연스레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피는 못속이나 보다. 난 우리 엄마 아들이니까. 그 동자승처럼 전반적으로 어린이 문학을 하시는 분이라 그런지 순수하고 깨끗한 어린 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깊었다. 소야 스님의 글을 처음 접해보았지만그분의 팬이 될것 같다. 중얼중얼 괴짜스님의 유쾌한 수다. 어린아이 시절로 돌아가 마음이 깨끗하게 정화되는 느낌이다.

 


자랑같지만 살아오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재밌다는 소리를 꽤 듣고 지내온 필자가 보았을때 소야 스님의 유머감각은 그 내공이 상당하다고 판단되어진다. 이세상에서 가장 훌륭하고 바람직한 유머는 타인의 단점을 부각시키지 않고 남을 짓밟고 올라서지 않은 상태에서 우러나오는 유머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소야 스님이 이 책에서 보여주는 유머는 상당히 고급유머이다. 다음은 필자가 가장 재미있게 본 대목이라 잠시 소개해 보고자 한다.

 


'하늘을 날기 위해서는 중이라는 신분에 쓸데없이 휴대하고 다니는 고추를 잘라버리면 되는 일이다. 하늘을 날 수 있다는데 그까짓 쓸모도 없는 고추 잘라버리는 게 뭐 그리 어려우랴! 소야! 가자! 병원으로! 머지않아 날아다니는 소야를 기대하시라!'

 

(P. 130)

 


최근에 한 시사프로그램에서 소위 말하는 유명한 사찰의 큰스님들의 호화스럽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고발하는 모습을 접하였다. 그 스님들이 타고 다니는 차가 베라크루즈 정도는 기본에 아우디, 포르쉐가 왠말이더냐. 부모님은 불교이고 누나와 여동생은 천주교이고 고모네는 기독교라 여기저기 다 얽혀있는 필자의 입장에서 어떤 특정 종교를 비하할 생각은 없지만 세금 안내고 부동산 투기에 열중하시는 목사님들이나 고급 외제차 끌고 다니는 스님들의 모습. 이건 좀 아니지 않느냐. 성철스님과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자기 나름대로 해석해버리는 모습에 어이가 없었다. 이에 반해 자신의 고추마저도 무소유 하리라는 소야 스님의 모습은 많은걸 시사해주는 대목이었다.

 


자연을 벗삼아 청빈한 삶을 살고있는 유쾌한 괴짜 스님. 중얼중얼 밤새 즐거운 수다를 떨어보자.

 


그래도 스님.. 고추만은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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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마음 - 썩어빠진 교육 현실을 유쾌하고 신랄하게 풀어낸 성장소설
호우원용 지음, 한정은 옮김 / 바우하우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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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고도 갑갑한 우리들의 자화상



 

많은 이들이 이 책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분명 대만의 이야기인데 우리의 그것과 놀라우리만치 흡사하다고. 이 책은 대만이라는 거울을 통해서 바라보는 우리나라 교육계가 떠안고 있는슬프고도 갑갑한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발단은 참으로 사소한 것이었다. 주인공인 시에정지에란 중3학생이 수업 중 만화책을 본 것이 발단이었다. 이에 담임인 잔선생은 교실 밖으로 책상과 의자를 옮겨 수업을 받게하는 체벌을 내린다. 정지에는 비록 학업성적은 우수한 모범생의 범주에 속하는 학생이었지만 평소 농담으로 수업분위기를 흐리고 선생님에게 따지기 좋아하는 학생으로 찍혀 있었고 결정적으로 방과 후 행해지는 자신의 수학 과외수업에 유일하게 참여하지 않는 학생인지라 다분히 사적인 감정이 들어가게 되었고 체벌기간은 일주일로 연장되었다.



그 사실을 시에정지에의 어머니 친구가 보게 되었고 신문기자 출신인 주인공의 어머니가 학교를 방문하기에 이른다. 우리가 자라왔을때도 그렇지만 자식이 학교에서 사고를 치면 세상 모든 부모들은 선생님 앞에서 죄인이다. 하지만 아들이 부당하게 구타를 당한 사실까지 알게 된 정지에의 어머니는 더이상 공손히 고개를 조아리는 부모로 남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엄마는 이 모든 걸 그냥 보고만 있지 않을 거야. 정지에, 마음놓고 공부해!'



이렇게 기나긴 싸움은 시작되었다. 장지에의 엄마는 언론을 동원하고 이에 사건은 일파만파 걷잡을 수 없는 경지로 퍼져나간다. 그러던 중 장지에는 웨이치와 아이리라는 든든한 지원군도 얻게되고 일찌기 이런 대만의 갑갑한 교육환경을 피해 해외에서 유학을 하고있는 친구들의 응원도 얻게된다. 연이은 언론 보도와 친할머니의 기자회견을 통하여 급기야는 교육청 앞에서 연일 대규모 집회를 실시하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자퇴생들을 비롯한 제도권에서 벗어난 아웃사이더들이 자진해서 하나의 축제를 연상케하는 장관을 연출했던 집회의 모습은 사뭇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지루한 투쟁이 계속되던 중 '마음의 문을 열어요. 오색의 봄빛이 보일 거예요. 봄날이 길지는 않지만, 잠시라도 슬픔과 아픔이 사라질 테니까요.' 처연한 노래를 부르던 천웨이란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한다.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면서.


'저는 학교에 가면 사고, 이해, 존중, 나눔 이런 것들을 배울 수 있을 줄 알았고, 삶이 내게 준 모든 것들을 더 잘 이해하고 세상을 더 많이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줄 줄 알았어요. 학교에 들어가서 저는 제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알았어요. 학교는 경기장이고 공부는 안간힘을 쓰고 노력해야 할 싸움이라고 말했어요. 선두가 되기 위해서 저는 이해, 존중, 나눔을 모두 내던지고 냉혹, 위선, 욕심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P.451~452)



그로인해 장지에는 혼란에 빠진다. 왜 가만있는 애를 들쑤셔서 자살하게 만들었냐는 천웨이 어머니의 비난, 옮겼던 반에서 행해지는 '옳은 일' 보다는 '안정'을 찾던 학부모들의 시위. 이젠 이 시위에 국회의원들 까지도 가담하고 결국엔 잔 선생은 사표를 낸다. '저도 피해자였습니다'란 잔 선생의 마지막 한마디는 씁슬하다. 교육부장관까지 몰아내는 성과를 거두지만 일종의 정치권력에 대한 난잡한 싸움으로 변질되었고 지켜보는 이들도 탐탁치가 못하다.이제 장지에는 판단하질 못한다.  이 싸움이 과연 누구를 위한 싸움인 것인지.



저자인 호우원용도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한다. 장지에는 말을 잃고 눈물이 많아졌다. 스스로 침묵을 택하였다. 웨이치는 미국으로 유학을 가려고 떠듬떠듬 영어를 공부하고 있다. 도피를 택하였다. 아이리는 좋아하는 컴퓨터를 더 공부하고 싶어 다시금 제도권으로 편입한다. 일종의 타협이다. 필자도 어느것이 최선인지 선택을 못하겠다. 저자의 말처럼 우리모두 피해자이자 동시에 가해자인 '공범구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숙제를 남기며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개인적으로 인생을 살면서 한가지 아쉬운점이 있다면 인생에 큰 전기를 마련해줄 만큼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 내겐 없다는 사실이었다. 원체 많이 맞으며 학창시절을 보냈었다. 군대시절 보다 중학생 시절 몇배는 더 맞은것 같다. 그렇다고 필자가 딱히 불량스러운 학생이었던것도 아니다. 그냥 우리는 단체로 그렇게 맞으면서 지내왔다. 지금도 그 시절 친구들을 만나면 그저 그 험난했던 시절을 무사히 지나쳐온 그런 끈끈한 동지애부터 느끼게 되곤 한다. 우린 그 누구도 이런 '옳은 일'에 대해 작은 반란조차도 못 느꼈던듯 하다. 우리 뿐만 아니라 선후배들도 남들도 모두다..



아마 10년도 더 지난일 같은데 어느 날 밤 TV에서 '썸머힐' 학교에 대한 특집 프로그램을 보고 깜짝 놀랐던 적이 있었다. 그 후로 국내에서도 민사고니 뭐니 그런 대안학교들이 생겨났던것 같다. 10년이면 꽤 긴 시간 같은데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 교육현실은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어 보인다. 일찍 결혼한 친구들은 이제 슬슬 애들 학원문제로 고민하기 시작한다. 나도 언젠가는 겪게 될 우리 아이들의 교육문제라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가슴이 답답하다. 



이상적인 교육환경이란 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노력해야 할것이다. 고민해보자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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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매미처럼 향기로운 귤처럼 - 이덕무 선집 돌베개 우리고전 100선 9
이덕무 지음, 강국주 편역 / 돌베개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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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 혹은 처녀처럼

 

 

 

근자에 주변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추천했던 책은 이덕무와 그의 벗들 이야기를 다룬 '책만 보는 바보'라는 책이었다. 필자는 그 책을 통하여 이덕무의 책에 관한 사랑에 큰 감흥을 받았었고 그간 국사 교과서 속 '청장관전서' 이덕무 여덟글자로만암기했던 그 분은 시대를 뛰어넘어 내 마음속의 슈퍼스타가 되었다. 그런 청장관의 시와 문장을 만난다는 사실은 처음부터 나를 설레이게 만드는데 충분했다.

 


유난히 깔끔한 느낌이 들었던 일전에 본 정약용 시 선집 '다산의 풍경'을 펴낸 돌베개의 우리고전 100선 시리즈 중 한권인 이 책은 다산의 경우처럼 각각의 시와 문장마다 예의 그 친절한 해설을 하나하나 싣고있어 이해를 돕고 있으며 여전히 정갈한 구성으로 책을 손에 잡은 이들의 마음을 평안하게 하는 매력을 지니고 있는듯 하다.

 


스스로를 간서치 즉 책만 보는 바보라고 칭했던 청장관답게 처음 소개되는 시도 나를 조롱하다라는 '조오(嘲吾)'로 세상의 이익에 약삭빠르게 영합하지 않는 영리하고 꾀바르게 행동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자신의 모습을 노래하면서 그의 시 세계가펼쳐진다. 허약한 몸으로 태어나 병마에 종종 시달리고 서얼이란 갑갑한 신분의 굴레를 짊어지고 가난에 시달려도 단 한순간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그의 학구열과 '선귤'(깨끗한 매미와 향기로운 귤)이란 자호에서 엿볼 수 있는 삶을 대하는 그의 청빈한 마음가짐 그리고 인생관들이 여러 시편에서 잘 묻어 나오고 있다.

 


그러한 시들도 좋지만 필자의 눈길을 사로잡은 글은 바로 '어린아이 혹은 처녀처럼'이란 문장이었다. 문득 대학시절 은사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유독 후학을 가르침에 있어 우리 학과 만큼은 서울대를 따라 잡을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을 유지하자는 마인드와 함께 고난이도의 수업방식을 추구하셨던 열정 충만한 교수님들 이셨던지라 모든 과목을 항상 원서로 수업을 진행하곤 했었는데. 책이 어려운건 둘째치고 원서이다 보니 권당 몇만원을 호가하는 책값에 우린 항상 불만을 토로하곤 했었다.그런 우리들의 질문에 한 교수님이 말씀하시길 '모름지기 책 값이란 여러분들이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해서 실무를 접할때 어느 순간 막히는 부분이 생겼을때 그때 이책을 한 번 찾아봄으로써 그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다면 그것 하나만으로도 5만원이라는 책값의 몇 배는 더 버는것이다.'라고..

 


의미가 얼마나 상통할지는 의문이지만 필자에게 있어 개인적으로 이덕무의 저 문장을 만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이 책의 다른건 다 기억이 안날지라도 책보기와 글쓰기를 즐겨하는 사람에겐 청장관의 저런 마음을 배울 수 있다는것은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 되어질 만큼 인상깊은 문장이었다.

 


하지만 아이가 장난치며 즐기는 것은 '순수한 마음'이 있는 그대로 발산된 것이며, 처녀가 부끄러워하며 감추는 것은 '순수한 진정'이 자연스레 드러난 것이니, 이와 같은 것은 억지로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P. 95)


이덕무는 진실한 마음을 도외시한 채 아름답고 훌륭한 문장만을 지으려는 태도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세련미가 떨어질지라도 아이와 처녀의 마음처럼 자기의 순수하고 진실한 마음을 드러내는 게 참된 글쓰기의 요체라는 것이다. 이 글은 '참된 글은 무엇인가? 진정이 발현된 글이다'라는 한마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P. 101 해설)

 


그 외 익히 널리 알려진 일화들이지만 '책 읽는 선비의 말'에 등장하는 책밖에 모르는 바보등지에서 나타나는 청장관 이덕무의 책에 대한 사랑과 한사의 겨울나기, 책을 읽어 좋은 점 네 가지등의 문장에서 보여주는 독서와 공부에 관한 그의 뜨거운 열정등은 다시봐도 순간순간 나태해지는 필자의 생활 습관과 세상 온갖 유혹에 쉽사리 흔들리려 하는 나의 약한 의지에 따끔한 일침을 가하는 좋은 자극제였다. 또한 누이의 죽음을 가슴아파하며 절절히 써내려간 '누이의 죽음을 슬퍼하는 글'을 비롯한 몇 편의 제문들에서는 그의 인간적인 면모도 엿볼 수 있어 특히 좋았다.

 


'도대체 글을 즐겨 하지 않는다면 무엇을 좋아해야 한단 말입니까? 나를 귀머거리와 장님으로 만들 작정이십니까?'

 


모든 것을 다 버릴 수 있지만 책만은 버릴 수 없다고 했던 청장관의 이 한 마디가 불에 달군 인두가 되어 필자의 가슴 깊숙한 곳을 지진다. 기분이 아릿하다. 분명 좋은 느낌이다.

 


그렇게 내맘속의 슈퍼스타로 영원하라 청장관. 이덕무 포에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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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광고로 세상을 움직였다 - 데이비드 오길비의 비즈니스 철학과 경영 이야기 다산 비즈니스 클래식 2
데이비드 오길비 지음, 강두필 옮김 / 다산북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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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는 과학이 아니라 설득이다

 

 

 

'광고는 과학이 아니라 설득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라 제목으로 뽑아 보았다. 이 세상에는 기억에 남을만큼 강렬하고 무릎을 탁 칠만큼 기발하고 가슴이 시릴만큼 아름다운 광고들이 참 많다. 그도 그럴것이 가장 창의력이 풍부한 측에 속하는 인재들이 모여서 만들어 내는 30초의 예술.. 그 바닥이 바로 광고판 아니었겠는가.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광고들이 소비자들에게 과연 무슨 '제품'을 팔고자 했던건지 기억이 가물거리는 경우가 많다. 분명 그 광고문구와 음악과 그림은 기억에 오래 남는데 말이다. 그 광고들은 '멋진 광고'이긴 했지만 광고 본연의 목적에 부합하는 '훌륭한 광고'는 아니었나 보다.

 


그런면에서 필자는 최근 '훌륭한 광고'를 한편 보았다. 바로 욕실 및 변기 세정제 광고였다. 자취를 하면서 한가지 느낀 사실은 유독 욕실만은 치워도 치워도 항상 기대에 못 미친다는 사실이었다. 분명 고향집 욕실은 광이 번쩍번쩍 났었는데. 새삼 어머니란 존재의 가족에 대한 희생에 코끝이 찡해졌었다. 난 몰랐다. 대충 치워도 우리집 욕실만큼 광이 날 줄만 알았던것이다. 우리 엄마가 그렇게 고생하시면서 치운것도 모르고.. 그래서 업계 최고의 대기업 제품부터 각종 욕실 청소용품을 거의 다 써보았으나 찌든때는 쉽사리 없어지질 않았다.

 


그러던 중 한편의 광고를 보았다. 유명하고 예쁜 연예인도 나오질 않는다. 그저 변기 청소하는 장면만 보여준다. 갓 결혼한 새댁 같은데 그 신혼집 변기도 내 자취방의 그것처럼 별로 상태가 아름답지 못하다. 그저 변기가 하얗게 변하는 과정만을 보여준다. 그제서야 난 안도의 한숨을 쉬며 가슴을 쓸어 내린다. 아 남의 집 변기도 다 저 모양이구나하고.. 그리고는 다짐한다 저 제품을 나도 한 번 사용해 봐야겠다라고. 머리속에서는 반짝반짝 빛나는 양변기가 그려지고 가슴 한켠에서는 판도라의 상자에서 제일 마지막에 나왔다던 '희망'이란 두 글자가 싹튼다. 난 그 광고에 '설득' 당한 것이다.

 


광고의 힘을 보여주는 사례를 근년에 한 건 더 보았다. 이동통신 분야에서 굴지의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모 그룹. 그리고 항상 2인자의 자리에만 머물러야 했던 모 그룹. 하지만 그 2인자가 영상통화 부분에서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모두가 생각했던 그 1위를 추월했다. 바로 허구한날 TV만 틀면 나오던 중독성 강한 그 광고 때문이었다. 뭐를하라 뭐. 뭐 곱하기 뭐 곱하기로 이어지던. 나도 모르게 이따금씩 그 멜로디를 흥얼거리곤 했었다. 그 회사 부사장 되는분은 최근에 책까지 내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처럼 광고가 지니는 힘은 놀라운 것이었다.

 


'38세의 실업자입니다. 대학을 중퇴했습니다. 요리사, 세일즈맨, 외교관을 거쳐 농사도 지어봤습니다. 마케팅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카피는 써본 적도 없습니다. 광고가 재미있어서 업으로 삼겠다고 결심했으며 연봉 5천 달러를 희망합니다.'

 


이것은 바로 이 책의 저자인 데이비드 오길비의 자기 소개서이다. 그는 이렇게 광고계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세계적인 광고대행사 오길비 앤 매더를 창립했으며 '현대 광고의 아버지'로 불리우게 되었다. 멋지지 않은가? 이제껏 본 자기 소개서 중 최고였다.

 


이 책은 그 광고계의 큰 별 데이비드 오길비가 들려주는 광고에 관한 이야기다. 역자의 말로는 비단 광고업에만 관련된 이야기 뿐만 아니라 오길비의 크리에이티브 철학은 많은 기업가 및 직장인들에게 신선한 충격과 발전의 기회를 제공 해 줄 것이라고 했으나 개인적으로는 저렇게 엄청난 초반부의 포스에 비해 전반적으로는 약간 지루했던 책이었다.

 


오길비가 요리사로서 또한 세일즈맨으로서 일을 하면서 훗날 광고업계의 CEO가 되어 조직을 경영해 나가는 방식을 배운 자전적 이야기들은 꽤 흥미진진했다. 큰 인물이 될 사람은 그런면에서 차이가 나는것인가 보다. 그 후 본격적으로 광고업계에 뛰어들어 클라이언트와 광고회사와의 관계를 비롯한 전반적인 광고업계의 이야기를 기술해 나간 부분들은 다소 지루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역자의 말처럼 5~60년대 미국 산업사회와 21세기 지금의 사회의 차이에서 나오는 괴리감 때문인듯 하다. 아 광고업계란 저렇게 치열한 곳이로구나 하는 정도의 생각이 제일 크게 들었다. 무차별적으로 수용하기만 하던 수많은 광고들 속에서 저런 치밀한 트릭이 숨어 있구나란걸 느꼈다고나 할까.

 


그 외 가슴을 울리는 광고카피쓰기에 관한 이론을 다룬 여섯번째 챕터 KISS, 단순할수록 강력하다를 제외하고는 조직에서 사람을 관리하는 법과 고객이나 거래처를 관리하는 법들을 논하고 있는 챕터들은 여타 경영관련 서적과는 큰 차이점을 보이지 않는것 같다. 필자가 광고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업종에 종사하고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그런면에서는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남는 책이었다.

 


앞서 언급한 저 간략한 한 문장과 자기 마누라도 이 물건을 살 생각을 할 만큼만 광고를 만들어라는 한 마디로 광고에 관한 핵심적인 전략은 충분히 설명했다고 보여진다. 마누라도 결국엔 소비자일테니 말이다. 그리고 항상 자기가 광고로 만든 물건만을 애용한다던 오길비의 철학. 그만큼 자신이 스스로 최고로 생각했던 제품이라 자신있게 고객들에게 사라고 권할수 있는 광고만을 만든다는 자신감있는 마인드. 그러한 것이 인상 깊었다.

 


광고업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필자처럼 수많은 여타 다른 경영관련 서적이랑 큰 차이점을 못 느낄수도 있다. 이 시대의 상황이랑은 약간 동떨어진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전설이 된 데이비드 오길비란 멋진 사나이를 만났다는 사실만큼은 큰 즐거움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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