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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마음 - 썩어빠진 교육 현실을 유쾌하고 신랄하게 풀어낸 성장소설
호우원용 지음, 한정은 옮김 / 바우하우스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슬프고도 갑갑한 우리들의 자화상
많은 이들이 이 책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분명 대만의 이야기인데 우리의 그것과 놀라우리만치 흡사하다고. 이 책은 대만이라는 거울을 통해서 바라보는 우리나라 교육계가 떠안고 있는슬프고도 갑갑한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발단은 참으로 사소한 것이었다. 주인공인 시에정지에란 중3학생이 수업 중 만화책을 본 것이 발단이었다. 이에 담임인 잔선생은 교실 밖으로 책상과 의자를 옮겨 수업을 받게하는 체벌을 내린다. 정지에는 비록 학업성적은 우수한 모범생의 범주에 속하는 학생이었지만 평소 농담으로 수업분위기를 흐리고 선생님에게 따지기 좋아하는 학생으로 찍혀 있었고 결정적으로 방과 후 행해지는 자신의 수학 과외수업에 유일하게 참여하지 않는 학생인지라 다분히 사적인 감정이 들어가게 되었고 체벌기간은 일주일로 연장되었다.
그 사실을 시에정지에의 어머니 친구가 보게 되었고 신문기자 출신인 주인공의 어머니가 학교를 방문하기에 이른다. 우리가 자라왔을때도 그렇지만 자식이 학교에서 사고를 치면 세상 모든 부모들은 선생님 앞에서 죄인이다. 하지만 아들이 부당하게 구타를 당한 사실까지 알게 된 정지에의 어머니는 더이상 공손히 고개를 조아리는 부모로 남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엄마는 이 모든 걸 그냥 보고만 있지 않을 거야. 정지에, 마음놓고 공부해!'
이렇게 기나긴 싸움은 시작되었다. 장지에의 엄마는 언론을 동원하고 이에 사건은 일파만파 걷잡을 수 없는 경지로 퍼져나간다. 그러던 중 장지에는 웨이치와 아이리라는 든든한 지원군도 얻게되고 일찌기 이런 대만의 갑갑한 교육환경을 피해 해외에서 유학을 하고있는 친구들의 응원도 얻게된다. 연이은 언론 보도와 친할머니의 기자회견을 통하여 급기야는 교육청 앞에서 연일 대규모 집회를 실시하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자퇴생들을 비롯한 제도권에서 벗어난 아웃사이더들이 자진해서 하나의 축제를 연상케하는 장관을 연출했던 집회의 모습은 사뭇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지루한 투쟁이 계속되던 중 '마음의 문을 열어요. 오색의 봄빛이 보일 거예요. 봄날이 길지는 않지만, 잠시라도 슬픔과 아픔이 사라질 테니까요.' 처연한 노래를 부르던 천웨이란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한다.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면서.
'저는 학교에 가면 사고, 이해, 존중, 나눔 이런 것들을 배울 수 있을 줄 알았고, 삶이 내게 준 모든 것들을 더 잘 이해하고 세상을 더 많이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줄 줄 알았어요. 학교에 들어가서 저는 제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알았어요. 학교는 경기장이고 공부는 안간힘을 쓰고 노력해야 할 싸움이라고 말했어요. 선두가 되기 위해서 저는 이해, 존중, 나눔을 모두 내던지고 냉혹, 위선, 욕심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P.451~452)
그로인해 장지에는 혼란에 빠진다. 왜 가만있는 애를 들쑤셔서 자살하게 만들었냐는 천웨이 어머니의 비난, 옮겼던 반에서 행해지는 '옳은 일' 보다는 '안정'을 찾던 학부모들의 시위. 이젠 이 시위에 국회의원들 까지도 가담하고 결국엔 잔 선생은 사표를 낸다. '저도 피해자였습니다'란 잔 선생의 마지막 한마디는 씁슬하다. 교육부장관까지 몰아내는 성과를 거두지만 일종의 정치권력에 대한 난잡한 싸움으로 변질되었고 지켜보는 이들도 탐탁치가 못하다.이제 장지에는 판단하질 못한다. 이 싸움이 과연 누구를 위한 싸움인 것인지.
저자인 호우원용도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한다. 장지에는 말을 잃고 눈물이 많아졌다. 스스로 침묵을 택하였다. 웨이치는 미국으로 유학을 가려고 떠듬떠듬 영어를 공부하고 있다. 도피를 택하였다. 아이리는 좋아하는 컴퓨터를 더 공부하고 싶어 다시금 제도권으로 편입한다. 일종의 타협이다. 필자도 어느것이 최선인지 선택을 못하겠다. 저자의 말처럼 우리모두 피해자이자 동시에 가해자인 '공범구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숙제를 남기며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개인적으로 인생을 살면서 한가지 아쉬운점이 있다면 인생에 큰 전기를 마련해줄 만큼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 내겐 없다는 사실이었다. 원체 많이 맞으며 학창시절을 보냈었다. 군대시절 보다 중학생 시절 몇배는 더 맞은것 같다. 그렇다고 필자가 딱히 불량스러운 학생이었던것도 아니다. 그냥 우리는 단체로 그렇게 맞으면서 지내왔다. 지금도 그 시절 친구들을 만나면 그저 그 험난했던 시절을 무사히 지나쳐온 그런 끈끈한 동지애부터 느끼게 되곤 한다. 우린 그 누구도 이런 '옳은 일'에 대해 작은 반란조차도 못 느꼈던듯 하다. 우리 뿐만 아니라 선후배들도 남들도 모두다..
아마 10년도 더 지난일 같은데 어느 날 밤 TV에서 '썸머힐' 학교에 대한 특집 프로그램을 보고 깜짝 놀랐던 적이 있었다. 그 후로 국내에서도 민사고니 뭐니 그런 대안학교들이 생겨났던것 같다. 10년이면 꽤 긴 시간 같은데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 교육현실은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어 보인다. 일찍 결혼한 친구들은 이제 슬슬 애들 학원문제로 고민하기 시작한다. 나도 언젠가는 겪게 될 우리 아이들의 교육문제라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가슴이 답답하다.
이상적인 교육환경이란 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노력해야 할것이다. 고민해보자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