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 - 신달자 에세이
신달자 지음 / 민음사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달자의 봄
우리가 자라던 시대에 가장 각광받던 만화가인 김수정씨의 '오달자의 봄'에서 제목을 따와봤다. '백치애인', '물위를 걷는 여자' 등 필자가 책을 별로 안보던 시절에 발표된 신달자 선생님의 작품들이 아직도 나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어 있을만큼 우리 시대의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그녀는 그 입지를 탄탄히 굳혔다. 그야말로 '달자의 봄'인 것이다. 하지만 어느 누군가 말하지 않았던가. 봄이 아름다운 이유는 겨울을 이겨냈기 때문이라고. 이 책은 그간 작가로서 화창한 봄날을 보내었던 신달자 선생님의 그 춥고 암울했던 인간으로서의 겨울에 관한 에세이다.
희수라는 제자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써내려간 이 이야기들은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화려함 속에 감추어진 지극히 인간적인 그녀의 고백들이자 언젠가 한번쯤은 속시원히 털어놓고 싶었다던 병든 남편과의 치열했던 애증의 세월에 관한 기록들이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별다른 어려움없이 성장했던 그녀의 삶은 심교수를 만나 결혼을 하면서 변하기 시작한다. 돈을 아끼려고 애당초 신혼 여행지로 계획했던 부산에서 인천으로 방향을 급산회한 로맨틱함과는 전혀 거리가 먼 지극히 현실적인 남편. 허름한 여인숙에서 첫날밤을 보내며 이제 허영따윈 버려라고 얘기하던 남편이란 사내. 내 가족의 평안과 안위보단 고통받는 이웃에게 보다 큰 관심을 두었던.. 우리나라 노사문제를 20년 일찍 내다보았던 의식있는 학자이자 냉철한 이성을 지녔던 그 사람. 결국 그 꿈 한번 제대로 세상에 펼쳐 보지도 못하고 저 멀리 요단강 건너갔던 그래서 더 안타깝고 가슴 먹먹하기만한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 없었던 남편이라는 사람.
1977년 그 남편이 뇌졸증으로 쓰러졌다. 가망이 없다는 의사의 말을 뒤엎고 극진한 간호끝에 그 사람은 23일만에 의식을 되찾았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그렇게 다시 살아난것이 앞으로 24년간 얼마나 큰 고통을 안겨다 주리라는 사실을. 그 후 남편은 반신불수의 몸으로 24년간 지내야했고 몸의 불편은 육체적인 면에서 끝나지 않고 고매하던 그 사람의 정신까지 갉아먹었다. 애기처럼 변해버린 남편. 그로인해 수없이 남들앞에 비굴한 모습을 보이며 남편의 비위를 맞추어 줘야했던 아내.
필자의 가족들은 치매로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경우를 제외하곤 오랜 시간동안 병석에 누워있던 사람이 없었다. 모두들 큰병없이 적당히 천수를 누리시고 조용히 가족들 곁을 떠났갔다. 그래서 장기 입원 환자로 인해 가족들이 겪는 고통을 솔직히 잘 모른다. 하지만 남편의 병 수발을 하면서 차라리 그 사람이 그렇게 죽어버렸으면 다른 가족들의 고통이 덜할것이라고 생각했다던 신달자 선생의 인간적인 고백에 그 고통이 짐작되었다.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자기가 사랑하던 사람이 편안히 죽기를 바라는 그 마음이.. 그리고 자신의 꿈을 이루어보지 못하고 남겨질 아내와 자식들이 눈에밟혀 마지막 순간까지 가슴으로 피를 토하며 울부짖은 그 사람의 마지막 가는길이..
무지막지한 병원비를 감당하기 위해 남편이 사둔 관악산 자락의 집을 헐값에 팔았다던 이야기가 나온다. 그걸 헐값에 사서 홀라당 자기가 챙겨먹은 부동산 업자가 있었다. 곧 서울대학교와 관악구청이 들어서고 현 시세로 100억을 호가할지도 모르는 세상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신달자 선생은 그 당시 너무나 절박하였고 또한 세상을 너무나 몰랐었노라고 고백했다. 필자는 그 대목을 보다가 너무 화가 나서 담배 한대 피워 물었다. 어떤 TV광고에 이런 문구가 나오질 않았던가. 남의 슬픔을 이용해서 장사하지 않겠습니다라고.. 약삭빠른 자들이 득세하는 세상은 죽음 앞에서도 예외가 없다는 사실이 씁쓸했다.
결국 2000년 그 남편은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신달자 선생 또한 유방암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순수 시를 버리고 베스트셀러 작가로 전향했다고 동료 문인들의 조소와 비아냥을 감내해야 했던 시절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 숱한 고통을 겪고 나이 마흔이나 되어서야 겨우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고 고백하는 작가. 고통도 어려움도 매 순간 힘이 되어준 가족들이 있었기에 지금같은 '달자의 봄'을 맞이할 수 있었나보다.
따스하고 화창한 봄날같이.. 신달자 선생님의 앞날에 좋은일만 가득하길 팬으로서 기원해 본다. 그리고 끝으로 '나 죽거든 결혼하지 마!'라며 마지막 가는길 못다한 사랑에 절규하던 고 심현성 교수의 명복을 비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