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한 매미처럼 향기로운 귤처럼 - 이덕무 선집 돌베개 우리고전 100선 9
이덕무 지음, 강국주 편역 / 돌베개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린아이 혹은 처녀처럼

 

 

 

근자에 주변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추천했던 책은 이덕무와 그의 벗들 이야기를 다룬 '책만 보는 바보'라는 책이었다. 필자는 그 책을 통하여 이덕무의 책에 관한 사랑에 큰 감흥을 받았었고 그간 국사 교과서 속 '청장관전서' 이덕무 여덟글자로만암기했던 그 분은 시대를 뛰어넘어 내 마음속의 슈퍼스타가 되었다. 그런 청장관의 시와 문장을 만난다는 사실은 처음부터 나를 설레이게 만드는데 충분했다.

 


유난히 깔끔한 느낌이 들었던 일전에 본 정약용 시 선집 '다산의 풍경'을 펴낸 돌베개의 우리고전 100선 시리즈 중 한권인 이 책은 다산의 경우처럼 각각의 시와 문장마다 예의 그 친절한 해설을 하나하나 싣고있어 이해를 돕고 있으며 여전히 정갈한 구성으로 책을 손에 잡은 이들의 마음을 평안하게 하는 매력을 지니고 있는듯 하다.

 


스스로를 간서치 즉 책만 보는 바보라고 칭했던 청장관답게 처음 소개되는 시도 나를 조롱하다라는 '조오(嘲吾)'로 세상의 이익에 약삭빠르게 영합하지 않는 영리하고 꾀바르게 행동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자신의 모습을 노래하면서 그의 시 세계가펼쳐진다. 허약한 몸으로 태어나 병마에 종종 시달리고 서얼이란 갑갑한 신분의 굴레를 짊어지고 가난에 시달려도 단 한순간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그의 학구열과 '선귤'(깨끗한 매미와 향기로운 귤)이란 자호에서 엿볼 수 있는 삶을 대하는 그의 청빈한 마음가짐 그리고 인생관들이 여러 시편에서 잘 묻어 나오고 있다.

 


그러한 시들도 좋지만 필자의 눈길을 사로잡은 글은 바로 '어린아이 혹은 처녀처럼'이란 문장이었다. 문득 대학시절 은사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유독 후학을 가르침에 있어 우리 학과 만큼은 서울대를 따라 잡을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을 유지하자는 마인드와 함께 고난이도의 수업방식을 추구하셨던 열정 충만한 교수님들 이셨던지라 모든 과목을 항상 원서로 수업을 진행하곤 했었는데. 책이 어려운건 둘째치고 원서이다 보니 권당 몇만원을 호가하는 책값에 우린 항상 불만을 토로하곤 했었다.그런 우리들의 질문에 한 교수님이 말씀하시길 '모름지기 책 값이란 여러분들이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해서 실무를 접할때 어느 순간 막히는 부분이 생겼을때 그때 이책을 한 번 찾아봄으로써 그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다면 그것 하나만으로도 5만원이라는 책값의 몇 배는 더 버는것이다.'라고..

 


의미가 얼마나 상통할지는 의문이지만 필자에게 있어 개인적으로 이덕무의 저 문장을 만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이 책의 다른건 다 기억이 안날지라도 책보기와 글쓰기를 즐겨하는 사람에겐 청장관의 저런 마음을 배울 수 있다는것은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 되어질 만큼 인상깊은 문장이었다.

 


하지만 아이가 장난치며 즐기는 것은 '순수한 마음'이 있는 그대로 발산된 것이며, 처녀가 부끄러워하며 감추는 것은 '순수한 진정'이 자연스레 드러난 것이니, 이와 같은 것은 억지로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P. 95)


이덕무는 진실한 마음을 도외시한 채 아름답고 훌륭한 문장만을 지으려는 태도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세련미가 떨어질지라도 아이와 처녀의 마음처럼 자기의 순수하고 진실한 마음을 드러내는 게 참된 글쓰기의 요체라는 것이다. 이 글은 '참된 글은 무엇인가? 진정이 발현된 글이다'라는 한마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P. 101 해설)

 


그 외 익히 널리 알려진 일화들이지만 '책 읽는 선비의 말'에 등장하는 책밖에 모르는 바보등지에서 나타나는 청장관 이덕무의 책에 대한 사랑과 한사의 겨울나기, 책을 읽어 좋은 점 네 가지등의 문장에서 보여주는 독서와 공부에 관한 그의 뜨거운 열정등은 다시봐도 순간순간 나태해지는 필자의 생활 습관과 세상 온갖 유혹에 쉽사리 흔들리려 하는 나의 약한 의지에 따끔한 일침을 가하는 좋은 자극제였다. 또한 누이의 죽음을 가슴아파하며 절절히 써내려간 '누이의 죽음을 슬퍼하는 글'을 비롯한 몇 편의 제문들에서는 그의 인간적인 면모도 엿볼 수 있어 특히 좋았다.

 


'도대체 글을 즐겨 하지 않는다면 무엇을 좋아해야 한단 말입니까? 나를 귀머거리와 장님으로 만들 작정이십니까?'

 


모든 것을 다 버릴 수 있지만 책만은 버릴 수 없다고 했던 청장관의 이 한 마디가 불에 달군 인두가 되어 필자의 가슴 깊숙한 곳을 지진다. 기분이 아릿하다. 분명 좋은 느낌이다.

 


그렇게 내맘속의 슈퍼스타로 영원하라 청장관. 이덕무 포에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