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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얼중얼
신천희 지음 / 새론북스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스님..고추만은 제발..
1982년이었다. 비록 필자의 나이는 어렸지만 아직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동네 단골 오락실에서 한 스님이 겔러그를 하는걸 보았다. 그것도 총알빼서.. 기억하는 분들 있을지 모르겠다. 총알을 뺀다는 의미는 첫번째 스테이지에 등장하는 쫄병인똥파리를 일부러 죽이지 않고 남겨두었다가 계속 총알을 피하며 한 백여바퀴인가 돌리면 그 다음 스테이지 부터는 몬스터 전체가 총알을 쏘지않아 몇시간이고 계속 할 수 있던 일종의 얍삽이였다. 어린 마음에도 그것이 나쁜짓 같아 쉽사리 행하기를 꺼려했던 일인데 스님이란 작자가 버젓이 그걸 하고 있었다니 분명 그는 땡중 즉 땡초였을 것이다.
이 책을 쓰신 소야스님은 스스로를 땡초라 자처하는 분이다. 비록 전자오락 따위는 하지 않겠지만 술 참 좋아하시는것 같다. 오죽하면 비가오는 날이면 무조건 한 잔 꺾어야 한다는 '우주인'의 멤버이겠는가. 나는 중이니까(中2) 열네살이다라고 주장하는 괴짜스님. 대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동화 작가이자 동시를 쓰는 시인이자 공연기획자이기도 한 특이한 이력을 지닌 분이다. 그런 그가 지금은 전북 김제의 무주암이란 토담집에 기거하며 보현이와 호법이란 개커플과 재미나게 살고있다 전해진다. 그 모양이 거지발싸개 같다고 해서 '발싸개'라 이름지은 또 한마리의 강아지가 있었으나 입양을 보냈다. 소야스님의 작명 센스에 한참이나 웃었던 순간이었다.
독실한 불교신자이신 필자의 어머니께서 세상에서 제일 귀여워하는 것은 바로 동자승이다. 그런 동자승의 모습이 책 표지에서 부터 페이지마다 가득하다. 그 빠꼼한 표정을 짓고있는 모습이 무척이나 귀엽다. 보고만 있어도 자연스레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피는 못속이나 보다. 난 우리 엄마 아들이니까. 그 동자승처럼 전반적으로 어린이 문학을 하시는 분이라 그런지 순수하고 깨끗한 어린 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깊었다. 소야 스님의 글을 처음 접해보았지만그분의 팬이 될것 같다. 중얼중얼 괴짜스님의 유쾌한 수다. 어린아이 시절로 돌아가 마음이 깨끗하게 정화되는 느낌이다.
자랑같지만 살아오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재밌다는 소리를 꽤 듣고 지내온 필자가 보았을때 소야 스님의 유머감각은 그 내공이 상당하다고 판단되어진다. 이세상에서 가장 훌륭하고 바람직한 유머는 타인의 단점을 부각시키지 않고 남을 짓밟고 올라서지 않은 상태에서 우러나오는 유머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소야 스님이 이 책에서 보여주는 유머는 상당히 고급유머이다. 다음은 필자가 가장 재미있게 본 대목이라 잠시 소개해 보고자 한다.
'하늘을 날기 위해서는 중이라는 신분에 쓸데없이 휴대하고 다니는 고추를 잘라버리면 되는 일이다. 하늘을 날 수 있다는데 그까짓 쓸모도 없는 고추 잘라버리는 게 뭐 그리 어려우랴! 소야! 가자! 병원으로! 머지않아 날아다니는 소야를 기대하시라!'
(P. 130)
최근에 한 시사프로그램에서 소위 말하는 유명한 사찰의 큰스님들의 호화스럽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고발하는 모습을 접하였다. 그 스님들이 타고 다니는 차가 베라크루즈 정도는 기본에 아우디, 포르쉐가 왠말이더냐. 부모님은 불교이고 누나와 여동생은 천주교이고 고모네는 기독교라 여기저기 다 얽혀있는 필자의 입장에서 어떤 특정 종교를 비하할 생각은 없지만 세금 안내고 부동산 투기에 열중하시는 목사님들이나 고급 외제차 끌고 다니는 스님들의 모습. 이건 좀 아니지 않느냐. 성철스님과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자기 나름대로 해석해버리는 모습에 어이가 없었다. 이에 반해 자신의 고추마저도 무소유 하리라는 소야 스님의 모습은 많은걸 시사해주는 대목이었다.
자연을 벗삼아 청빈한 삶을 살고있는 유쾌한 괴짜 스님. 중얼중얼 밤새 즐거운 수다를 떨어보자.
그래도 스님.. 고추만은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