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황진이
김탁환 지음, 백범영 그림 / 푸른역사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 '황진이'이야기가 인기다. 톱스타 하지원을 내세운 TV 드라마 '황진이'는 나날이 시청률을 갱신하고 있고, 송혜교를 내세운 영화 '황진이'도 현재 촬영중이다. 황진이를 소재로 한 소설들이 봇물을 이루고 있는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유교의 틀에 얽매여 여성을 억압하던 조선시대에 황진이만큼 자유로운 영혼이 드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많은 주옥같은 시를 남긴 문인으로서의 황진이 자체로도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인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기생이란 신분으로 인해 소설로 꾸며질 풍부한 일화들이 있음도 한 이유이겠지만 말이다.


 '김탁환'이란 저자의 이름과 요즘 한창 인기인 드라마 '황진이' 원작이란 카피에 시선이 확~ 꽂힌 책, <나, 황진이>
그러나 처음 이 책을 폈을 때 조금 당황했다. 흥미진진한 사건들이 펼쳐지는 황진이의 이야기일거라 생각했던 나의 기대와는 달리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황진이의 독백으로 이루어져있다. 담담하게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화자, 황진이. 이 책의 제목에 '나'라는 글자가 괜히 있는게 아니었다. 그건 전체구성을 한 글자로 요약해서 보여주는 글자였던 것이다. 황진이 자신이 삶을 돌이켜보며 독자들에게 나직하게 들려주는 형식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세인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며 부풀어지고 과정된 온갖 이야기 속에 감춰진 진짜 황진이 자신의 본 모습을 보여주려 노력한다.

행주기생인 새끼할머니와 맹인기생 어머니의 뒤를 이어 기생의 길로 들어서야 했던 황진이. 하룻밤의 불장난으로 자신을 태어나게 했던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그런 아버지를 평생 그리워하는 어머니에 대한 애환, 기생이 된 이후 자신과 풍류를 나누었던 벗들과 마음을 나누었던 사랑, 할머니와 어머니의 죽음으로 휘몰아친 슬픔과 유랑의 길, 그리고 스스로 스승으로 모시는 서경덕과의 사제관의 이야기 등을 그저 담담하게 들려주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그 담대함에 놀라고 굴곡진 인생에 안타까우며 그럼에도 다시 일어나 자신을 놓치않는 용기에 박수가 나왔다.

 
기존의 소설과 달리 사건중심의 진행이 아니라 독백식으로 이어져가는 이 소설은, 사실 첨엔 좀 지루했다. 특별한 사건도 없이 줄줄 읖어가는 황진이 자신의 출생과 가문의 이야기는 그닥 흥미롭지 않았고, '~했습니다, 했지요'로 끝나는 말투는 편치 않았다. 그러나 곧 순탄치 않은 그녀의 인생이 펼쳐지면서 이야기는 탄력이 붙었고, 잘못 알려진 자신의 일화에 대해 반박하며 솔직한 심정을 토로하는 부분은 꽤나 흥미로웠다. 물론 이 부분도 - 비록 작가의 철저한 고증이 있었다곤 하나 - 소설의 한 부분이라 온전히 믿기는 힘들겠지만 그래도 이런 관점에서 황진이를 논하는 그 자체가 재미나지 않은가.

이야기가 끝나고 뒷부분에 부록으로 실려있는 황진이 관련 기록은 그래서 더 흥미진진했다. 세상 사람들에게 떠도는 이야기를 기록한 그 책들은 앞서 황진이의 고백과 대조되는 면이 많아서 진실과 소문 사이의 괴리를 느끼게 해주었다고나 할까. 물론 이건 소설속 황진이의 이야기를 사실로 가정했을때 느껴지는 것이긴 하지만 '기생'이라는 평범치 않은 삶을 살았던 그녀이기에 그런 일이 적지 않았음을 유추하는건 어렵지 않을 것 같다.

마지막 자신의 스승으로 모시던 서경덕과의 학문에 대한 논함은 사실 무지한 나에겐 좀 어려운 부분이긴 하지만 서경덕을 좀 더 자세히 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항상 황진이와 엮여 흘러가듯 들었던 화담 서경덕의 사상적 깊이와 인간적 면모, 그의 삶의 자세 등을 함께 볼 수 있었던 뒷부분은 '나,황진이'의 또다른 발견이 아닌가 한다.

 
서얼과 여성이라는 신분적 굴레를 자신의 능력으로 벗어던졌던 그 시대의 용기있는 사람 - 황진이. 그러나 그 속에 수많은 상처와 고뇌를 품었던 그녀. 그런 그녀를 우리는 '기생'이란 신분에 끼워맞춰 세상의 흥미꺼리로 만들어버린게 아닌가 안타깝지만, 지금이라도 예인과 문인으로서의 진정한 황진이를 재발견하는 작업이 이루어지니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시대와 신분을 뛰어넘어 진정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그녀, 황진이의 고뇌와 번민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자. 이 책에서 '인간 황진이'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참, 책과 함께 어울어진 백범영 선생의 멋진 수묵화는 이 책을 한층 멋스럽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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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의 교과서 - 꿈을 이루는
하라다 다카시 지음, 김하경 옮김 / 혜문서관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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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누구나 성공을 꿈꾼다. 자신이 종사하는 분야에서 성공을 원치않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위한 필수교재가 나왔으니 바로 하라다 다카시의 <성공의 교과서>이다. '교과서'라는 말의 저 포스;;처럼 과연 이 책은 막연하게 성공을 다루는 여느 자기계발서와 달리 본격적으로 '성공'하는 방법에 대해 체계적이고 구체적으로 접근한다.

 우선 지은이가 말하는 '성공에 도달하는 7단계'는 다음과 같다.
1. dream : 큰 꿈을 그린다
2. goal : 꿈을 구체적인 목표로 바꾼다.
3. plan & check : 목표 달성의 방법을 생각하고, 의욕의 스위치를 켠다.
4. do : 작은 성공을 반복하여 자신감을 높인다.
5. see : 목표를 계속 확인하여 포기하거나 잊지 않도록 한다.
6. share : 역량을 키워 인정받는 사람이 된다.
7. achieve : 마침내 목표를 달성하고 더 큰 목표를 향하라

많은 자기계발서에서 강조하듯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해선 자신만의 꿈을 그리고 그것을 보다 구체적으로 현실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추상적인 꿈은 언제나 저멀리 닿을 수 없는 존재처럼 느껴지는 반면, 구체적으로 형상화한 꿈은 바로 피부로 느낄 수 있기에 그것을 향한 실행의지를 더욱 북돋을 수 있다. 목표를 구체화했다면 이젠 적극적인 실행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목표실행에 있어서는 한 번에 최종목표에 다가가려 욕심 부리지 말고 그 사이에 중간목표와 당면목표를 책정하여 계속 조절해 나가도록 하자. 또한 실행정도에 따라 이 목표들-중간,당면목표-을 계속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 번에 큰 성공을 이루려 하기 보단 중간목표나 당면목표를 달성하는 작은 성공들을 차근차근 맛보다 보면 그에 따른 성취감과 함께 최종 목표를 향한 자신감을 키울 수 있고, 처음부터 최종목표로 달려갈 때 느낄 수 있는 실패와 좌절을 피할 수 있다. 이렇게 자신의 목표를 계속 각인시키며 역량을 키우다 보면 어느새 목표에 닿아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성공에 관해 다루는 책들은 많다. 이 책도 그 수많은 책들중 하나다. 그러나 이 책이 다른 책에 비해 내 눈에 띄는 이유는 성공을 향해 목표를 세우고 실천하는 방법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책에도 기존에 접했던 내용들도 많이 포함되어 있긴 하지만, 좀 더 구체적인 접근이 작심삼일을 밥 먹듯 하는 나에겐 꽤나 유용했다. 나처럼 자신의 꿈으로 향하는 방법이 막막하신 분들이 있다면 '성공의 교과서'와 함께 그 방법을 모색해 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참고로 두께는 그닥 두껍지 않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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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플러스 세대공감 Old & New
상상플러스 제작팀 엮음 / 동아일보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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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KBS 2TV의 인기 프로그램 '상상플러스-세대공감 OLD & NEW'가 책으로 나왔다. 책자로 발간된 상상플러스는 그간 방송에 나왔던 '10대가 모르는 어른들의 말'과 '어른들이 모르는 10대의 말'들을 선별하여 싣고 있다. 전판이 컬러로 구성된 이 책은 특히 그 구성방식이 마치 TV 방송을 그대로 재현하듯 퀴즈를 통해 단서를 주고 그 단어를 추리하게 한 뒤 뒷장에 정답을 실어놓아 다시금 그 의미와 활용을 되새길 수 있게끔 되어있어 누구나 재미있게 볼 수 있을 듯 하다. 물론 단서는 그 문제가 나왔을 때 출연한 출연진들의 사진과 익살스런 장난들도 함께 실어놓아 재방송을 보는 기분이 든다.

 또한 하나의 퀴즈에 대한 질문과 대답이 나오면 그 뒤에 짧게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질문과 함께 실어두었다. 흔히 쓰이고 있는 잘못된 일본어들이나 비속어, 신조어 등에 대한 풀이나 교정들은 짧은 단락이지만 나름 유용했다. 책의 뒷부분엔 '어른들이 모르는 10대들의 말'들이 실려있는데 나름 인터넷 누리꾼 생활을 오래한 나조차도 갸우뚱하게 되는 신조어들이 많았다. 뭔가 새롭고 특색있는 표현을 하고 싶어하는 그들을 나무라는 건 아니지만 너무 심각한 우리말 훼손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책을 쭉~ 읽으면서 방송에서 보았던 단어들이 나와 반갑기도 하고, 이제껏 사투리나 비속어, 은어로 알았던 단어들의 신분(^ ^?)를 발견하곤 새삼 놀라기도 했으며, 한자와 영어 등에 밀려 이제는 거의 자취를 감춘 우리말을 앞에 두고는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또한 심심찮게 보이는 처음 들어보는 단어들에 눈이 커지기도 했다.

무엇보다, 얼마전 방송을 보면서 너무나 놀랐던 '마침맞다'와 거의 동급을 이루는 가장 충격이면서도 반가웠던 단어는  - '삐대다', '식겁(食怯)', '들입다' . 흔히 쓰면서도 사투리인줄만 알았던 이 단어들이 어엿한~ 표준어라는 사실을 알고 얼마나 반갑던지!!! 앞으로도 많이많이 사랑해줘야겠다. ^ 0^
또한 방송에서 처음 들어봤던 '휘뚜루마뚜루'와 함께 '어깃장', '몽니', '모르쇠', '곤죽' 등은 그동안 전혀 들어보지 못했던 생소한 우리말들이었고, '설레발', '주전부리' 등은 '상상플러스' 방송 출연진들이 워낙 자주 쓰는 표현이라 이미 귀에 익은 단어들이었다.
'추렴(각출X)', '두루뭉수리(두리뭉실X)', '본새(뽀대X)', '벌충('보충'과 구분)', '꼼수(꽁수X)'처럼 흔히 쓰던 표현이 조금씩은 틀린 단어라는 걸 알고는 새삼 반성!! 더불어 '구들', '추파', '외탁', '허투루', '감질', '터울', '회수권', '부지깽이' 같은 말들이 실려있는걸 보며 나 혼자 안타까워했다.

 
 세대간의 언어벽을 조금이라도 허물어보자는 기획의도로 시작된 오락 프로그램에서 점차 그 인기와 의미를 더해 이젠 잊혀진 우리말을 찾고 알리는 좋은 교양프로의 성격을 쌓고 있는 '상상플러스 - 세대공감 올드 앤 뉴'. 오락적 요소와 교양적 요소를 섞은 이 프로그램이 이토록 인기를 얻고 있다는 것은 들어본 적은 있지만 잘 쓰이질 않는 때론 들어본 적조차 없는 우리말이 그만큼 많다는 것의 방증인 것 같아 씁쓸하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이 프로그램의 인기는 우리말에 대한 관심이 아직은 이만큼 살아있다는 또다른 희망의 표시이기도 하기에 기쁘기도 하다.

 처음 책이 발간되었을 때 방송의 인기를 등에 업고 출간되는 많은 책들 중 하나가 아닐까 의심했다. 물론 다 읽고 난 지금도 전혀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인기있는 방송의 힘을 덜어내더라도 보다 우리말에 친근하게 다가설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이 책은 나름의 장점이 갖고 있다. 고급속지에 칼라로 실려있는 까닭에 책값이 만만찮은 것이 조금 걸리지만 딱딱한 책을 싫어하는 아이들과 부담없이 볼 수 있고, 우리말을 좀 더 가까이에서 재미있게 배울 수 있는 책들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잊혀져가는 우리말을 찾고 알리는 좋은 프로그램인 상상플러스 - 세대공감 올드 앤 뉴. 앞으로도 더욱 친근한 우리말 파수꾼 역할을 하는 프로그램이 되어주길 바라본다. 더불어 우리말을 다루는 프로그램인 만큼 이왕이면 'OLD & NEW'라는 영어제목보단 더 멋스런 우리말을 내세워 봄은 어떠할까하는 생각도 같이 해 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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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 불확실한 세상에서 크리스천으로 산다는 것
빌리 그레이엄 지음, 전의우 옮김 / 청림출판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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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하나의 기나긴 여행이다. 태어남과 동시에 시작된 그 여행길은 죽음에 이르러서야 드디어 끝을 맺는다.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인생이라는 여행길, 우리는 과연 무엇을 위해 우리의 인생을 쓰고 있는가. 어떻게 살아야 현명하다고 할 수 있을까. 이런 의문에 대한 대답을 담아둔 책이 바로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의 <인생>이다. 이제 곧 아흔을 눈 앞에 두고 있는 그는, 그간 목회자로서 살아오며 겪은 자신의 경험들과 그로 인해 얻은 소중한 깨달음을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나누어 준다.

 '불확실한 세상에서 크리스천으로 산다는 것'이란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이런 불확실하고 흔들림 많은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크리스천에게 좀 더 그리스도에 가까운 삶의 방향과 방법을 제시한다. 또한 <인생>이란 제목에서 느낄 수 있듯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전반적으로 만나게 되는 수많은 고민과 의문에 대해 조목조목 다루며 그에 관한 해결방안과 조언을 담고 있다.

 책은, 크리스천으로서의 기본적이고도 가장 중요한 준비사항을 알려주는 '여행을 준비하다' / 기도, 말씀, 성령, 교회에 대한 가르침를 담은 '힘을 비축하다' / 세상의 고난과 위험에 대처하는 자세와 마음가짐을 다루는 '위기를 만나다' / 결혼, 자녀, 노년생활과 크리스천의 최후 목적지 등 인생길의 마무리가 언급되는 '여행은 계속된다' / 로 크게 4개의 꼭지로 이루어져 있다. 그 속에는 우리 인생길에서 만나거나 거쳐가야 할 여러 단계들에 대한 말씀과 깨달음이 담겨있고, 크리스천으로서 세상에서 만날 수 있는 각각의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에 대한 궁금증에 대한 조언이 제시되어 있으며, 개인적으로 궁금했거나 잘 이해되지 않았던 신앙적 문제에 대한 명쾌한 해설이 적혀있었다.4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두툼한 두께와 빼곡히 차있는 글자들을 보며 지루한 책이 아닐까 지레 겁을 먹었었다. 그러나 읽어내려 가는 순간순간 나의 의문과 의심, 우둔함을 깨치는 지혜롭고 따뜻한 소중한 말씀들을 만날 수 있었다.

 책의 서문에 있는 말처럼 과거를 바꿀 수는 없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도움으로 우리의 미래는 바꿀 수 있다. 말씀과 기도로 그분과 소통하며, 우리의 삶 곳곳에 임재하시는 그분을 느끼며, 나 자신을 온전히 그분께 드린다면,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도 세상에서 방황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이 책을 권한다. 아마 당신의 인생길이 향해야 할 방향을 이 책이 제시해 줄 것이다.

 

-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엡 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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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웃음의 숲을 노닐다 샘터 우리문화 톺아보기 1
류정월 지음 / 샘터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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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사람들의 사소한 농담에도 그 시대의 모습이 담겨있다. 그렇다면 옛 선조들의 우스개에서도 그들의 삶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우리 선조들의 오래된 우스개들을 채록하여 조목조목 해설을 곁들여 살펴본 책이 나왔으니.. 바로 류정월님의 < 오래된 웃음의 숲을 노닐다 - 조선시대 우스개와 한국인의 유머 > 다.

 첫 장에 맛뵈기로 담겨진 이야기 중 어떤 것은 웃기지만 또 어떤 것은 암호풀기 같다. 내가 유독 한자에 약한 탓이기도 하지만 그런 우스개에 즐거워하던 그 시대의 유행을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유교경전의 한 비유나 그 시대상황을 비유한 말들이 농담의 핵심으로 쓰여지면 웃음을 머금기는 더욱 힘들어진다. 심지어 저자의 설명이 있음에도 웃기기는 커녕 여전히 이해 안되는 우스개도 몇 개 있었다;; 요즘 우리 주변의 유행어 몇 개만 떠올려봐도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이렇듯 우리가 가벼이 여기는 우스개 속에도 그 시대상황을 추론하고 짐작할 수 있는 단서들이 깔려있다.


 책의 첫머리엔 '농담의 천자(天子)'라는 별명을 얻은 백사 이항복이 등장한다. 그는 생활에서 웃음을 놓치지 않고 주변상황을 화기애애하게 만든 사람으로 유명했는데 그의 장인어른인 권율 장군과의 버선 일화에선 한참을 웃었다. 어렸을때 읽었은 '오성과 한음'으로 유명한 그를 이 책에서 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 어른이 되어서도 그치지 않는 장난기와 그에 더해진 촌철살인 유머는 과연 그가 농담의 천자임을 인정하게 했다.

 이 책엔 여러가지 우스개들이 등장하는데 처가살이에 대한 이야기가 여러 편 나온다. 알려진 것과 달리 조선초기에는 고려시대의 풍습이 이어져 여자의 지위가 남자와 비슷해서 결혼을 하면 처가살이를 했단다. 지금처럼 시집살이를 하는 경우는 조선중기를 거쳐 후기에 이르러 정착한 것으로(더불어 여성의 사회적 지위도 같이 낮아졌다;; -_-;;) 그간의 역사를 짚어볼때 예외적 상황이라 할 수 있단다. 조선초기에 처가살이에 대한 우스개가 많은 것은 이런 사회적 상황에 기인한 것이라고. 이 외에도 술에 관계된 우스개도 실려있다.


 이 책에 실린 우스개들 중엔 점잖은 것들도 있지만 소위 음담패설로 구분되는 야담류의 문헌에서 발췌한 것들도 많아서 성을 소재로 한 우스개도 많이 실려있다. 온갖 선정적인 사진과 동영상이 난무하는 요즘에 비하면 별 것 아니지만, 그 시대적 배경이 남녀칠세부동석을 강조하던 조선이었다는 점을 떠올리면 꽤나 놀랍기도 하다. 또한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성(姓)은 항상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관심사인가 보다.

 그러나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그런 음담을 즐겼던 사람들이 남성이었기에 이야기를 진행하는 관점도, 즐거움을 느끼고자 왜곡하는 시선도 모두 남성위주로 맞춰있다는 것이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비교적 향상된 현대에도 언어폭력이 여전한 상황이니 남성위주의 조선시대는 말해 무엇하랴. 엄연히 결혼을 하고도 떳떳하게 첩을 들이거나 여종을 범하고 기생집을 찾던 남자들이 즐기는 음담에서의 여자는 하나의 인간이라기 보단 자신의 욕망을 푸는 대상에 가깝게 묘사된다. 요즘 소설에서도 간혹 보이는, 강간을 당하고도 즐거워하는 여성의 설정은 대체 어떤 무뇌아들의 발상인지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런 설정들이 곳곳에 깔린 옛날 우스개를 읽으며 우습기는 커녕 화가 치미는건 유독 나뿐일런지.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남자들의 자기중심적 사고를 이 책 속에서도 발견하다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러한 나의 짜증을 눈치챈 듯 다음 꼭지엔 양반을 풍자하고 조롱하는 대담한 여자들이 소개되는데, 그들은 바로 기생이다. 사회적으로 대접받지 못했던 그녀들이지만 자유로운 신분이기에 오히려 주도권을 잡고 양반들을 조롱하는 대담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동안 일방적으로 남자들의 혀에 뭇매를 맞던 여성들의 한을 조금이라도 풀어줬다고나 할까. ㅎㅎ 물론 모든 기생들의 처지가 그러했던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이 책의 뒷부분엔 우스개를 출처한 책들에 언급한 논평을 다루었는데, 민망한 음담을 옮겨두고는 그 밑에 군자로서의 도리를 운운하며 훈계하는 이중성에 한참을 웃었다. 오히려 우스개보다 그 밑에 적어둔 논평이 더 웃긴다. 이것들은 한낱 야한 우스개에서도 도덕적 메시지를 찾으려는 그들의 진심일까, 아니면 음담이나 옮겨적는 자신의 모습을 멋지게 포장하려는 노력일까. 판단은 읽는 사람의 몫이지만, 읽고 있으니 웃긴건 어쩔 수 없다. ^ ^; 조선시대 웃음의 숲에서 맘껏 노닐던 책은 이제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근대시대 신여성과 우스개에 한 꼭지를 할애한다. 여전히 애정을 주로 다루고 있는 잡지의 우스개들에서 근대시대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생각, 시대적 상황을 찾아볼 수 있다.


 웃음으로 살펴본 조선시대의 모습들. 이 책에 담긴 그들의 웃음 속에서 단편적으로나마 그들의 삶을 엿볼 수 있었다. 지금과는 다른 그들의 우스개를 만나 낯설기도 하고, 또는 겉모습만 다를 뿐 너무나 흡사한 정서를 가진 우리네 선조들의 웃음을 만나 반갑기도 했던 책. 책을 펴는 순간 오래된 웃음의 숲에서 우리 선조들의 모습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여.. 보통의 대중들과 다른 모습이나 상황의 사람들을 비하하여 웃음을 유도하는 모습은 옛날뿐만 아니라 요즘에도 적지 않다. 여성, 장애인, 사회적 약자에 대한 비하에서 비롯한 웃음보단 건강한 웃음이 더 많은 우리 사회가 되었음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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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맹이 2006-12-21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주의 리뷰 당선 축하드려요~ 책 재밌어 보이네요. 추천 누르고 갑니다.

simple 2007-01-14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감사합니당~(_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