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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미술관 ㅣ 마로니에북스 세계미술관 기행 1
파올라 라펠리 지음, 하지은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7년 4월
평점 :
미술에 대한 지식은 얕지만 그림을 보거나 그와 관련된 책 읽기는 좋아하는 내게 반가운 책이 나왔다. '세계 미술관 기행'이란 이름으로 나온 이 시리즈는 반 고흐 미술관을 필두로 내셔널 갤러리, 오르세 미술관, 프라도 미술관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을 주제로 삼아 그 속에 전시되고 있는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특정 작가나 사조를 중심으로 그와 관련된 작품들을 다루었던 기존의 책들과 달리, 각 미술관에서 전시중인 다양한 화가의 작품과 여러 사조의 그림들을 한꺼번에 감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술관 기행 시리즈는 무척이나 매력적인 시도임에 틀림없다.
이 책 <반 고흐 미술관>은 '세계 미술관 기행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으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위치한 '반 고흐 미술관'을 소개하고 있다. '고흐'를 전면에 내세운 이 미술관은 그 이름에 걸맞게 대규모의 고흐 작품을 소장 및 전시하고 있는데, 『까마귀가 나는 밀밭』, 『해바라기』 같은 고흐의 대표작을 비롯하여 『감자 먹는 사람들』 등의 초기작과 습작, 밀레의 모작 등 총 200점이 넘는 그림과 1천 여점의 드로잉, 수십 점의 판화, 4권의 화첩 등이 그것이다. 뿐만 아니라 고흐가 테오와 그의 가족, 지인들과 주고받은 750통의 편지와 그가 교류했던 화가들과 바꾼 그림 등도 함께 전시되고 있다.
고흐처럼 유명한 화가의 그림이 유례없이 한 곳에 대규모로 모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고흐가 활동하던 시대에 그의 그림은 안타깝게도 평단이나 대중의 눈길을 끌지 못해 잘 팔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고흐 그림의 대부분은 경제적으로 그를 지원한 미술상이었던 동생 테오가 보관하고 되었고, 고흐와 테오가 죽은 뒤 테오의 아내와 아들의 손을 거쳐 지금의 미술관에 안착하게 됐다. 그 덕분(?)에 우리는 유명한 그의 그림을 한 곳에서 감상할 수 있게 되었으나 평생을 가난에 시달렸던 고흐를 생각하자면 '덕분'이란 표현은 미안할 뿐이다.
<반 고흐 미술관>은 작품 소개에 들어가기에 앞서 책의 앞머리에 미술관의 설립 배경과 역사, 건물의 설계나 자재, 고흐와 태오의 자취와 주변인들의 간략한 소개 등을 싣고 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작품 소개에 접어든다.
책에 실린 작품들은 몇몇 경우를 제외하곤 대부분 그려진 순서대로 배열되어 있는데, 습작이나 모작에서 출발한 그림은 뒤로 넘어갈수록 점차 고흐 특유의 색채나 화법을 띠기 시작한다. 책 속의 습작이나 모작 등을 통해 대가의 서툴렀던 시절을 보는 재미나, 그간 접해왔던 작품들과는 다른 분위기의 수채화나 드로잉을 통해 고흐의 또다른 면을 찾아보는 맛이 제법 쏠쏠하다. 더불어 그가 즐겼던 정물화나 사람이 있는 풍경화, 자주 등장하는 자화상을 비롯한 인물화 등도 여전히 친근했는데, 그 중 일본 판화에 심취해 있던 고흐가 자신의 그림에 그 기법을 사용한 것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그와 함께 그 시대에 유럽까지 뻗은 일본문화의 영향력에 기분이 묘해졌다;)
각각의 작품 소개는 우선 그림의 전체 사진을 통해 독자가 감상할 기회를 부여하고, 그 밑에 그것이 그려진 당시의 정황이나 배경 같은 뒷이야기 및 작품에 대한 해설이나 평가 등을 소개해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더불어 옆에는 '그림 속으로'라는 꼭지를 마련하여 그림 중에 주목할 만한 부분을 확대하여 보여주며 필요에 따라 세부적인 설명을 덧붙여 놓았다. 또한 몇몇 그림들은 일부분을 크게 확대하여 싣고 있는데, 사진을 통해 그림의 전체적 질감이나 붓의 터치, 물감의 두께 등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생생해 마치 미술관에서 직접 관람하는 듯한 감흥을 전해준다. 개인적으로 이 점이 가장 맘에 들었다! ^ ^
수많은 예술가 중에 빈센트 반 고흐가 유난히 대중의 관심을 받는 이유는 환상적이고 강렬한 그의 그림이나 그림에 대한 그의 열정과 천재성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귀를 자르는 기행이나 정신질환, 자살 등 드라마틱한 삶을 살다간 예술가에 대한 연민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사후에 누구 못지 않은 평가와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고흐이지만 생전엔 너무도 외롭고 힘겨웠던 그의 삶이 이 책의 작품설명 안에도 전반적으로 깔려있다. 그러나 가난에 시달리고 정신병으로 고통받는 와중에도 진심으로 그를 믿어줬던 동생 테오와 그의 지인들이 있었기에 고흐의 삶이 불행하지만은 않았으리라 생각해 본다.
책을 읽으면서 그저 강렬한 색채의 향연에 빠져들어 좋아했던 『까마귀가 나는 밀밭』이 고흐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걸 알고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가슴에 총을 쏜 곳도 바로 밀밭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그림 속 강렬한 노란 밀밭의 풍경이 갑자기 무척 서글퍼 보였다. 또한 책을 덮을 때까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고흐의 그림인 『별이 빛나는 밤』을 비롯 유명한 그의 몇몇 그림들이 안 보이길래 찾아봤더니 안타깝게도 그것들은 다른 미술관에 소장 중이라고.(그렇다! 이 책은 반고흐 작품집이 아닌 반고흐 미술관 책이었던 걸 깜박한 것이다! ^ ^;) 이 책에서 유명한 그의 대표작들을 더 많이 만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그가 전 생애를 걸쳐 열정을 쏟았던 풍부하고 아름다운 작품들을 통해 대중에게 고착된 이미지의 고흐를 넘어 예술가 '고흐'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어 흐뭇했다.
세계 각지에서 자신만의 빛을 발하는 미술관들을 직접 다 찾아다닐 수는 없지만, '미술관 기행 시리즈'를 통해 책상에 앉아 그것들을 방문할 기회를 마련할 수 있어 좋았다. 흡족한 마음으로 반 고흐 미술관 관람을 끝낸 지금, 이번엔 어느 미술관으로 여행을 떠날지 행복한 고민에 빠져 본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