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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 나를 미치게 만들지 마 그러지 않으면 후회할 거야 ㅣ 우리를 지배하는 7가지 욕망의 심리학 3
로버트 서먼 지음, 정명진 옮김 / 민음인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인간의 마음을 다루는 학문이라는 점에서 심리학은 무척이나 매력적인 학문이다. 독심술까진 아니더라도 상황에 따른 상대의 심리상태를 예측하여 미리 대비할 수도 있고, 때론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내 마음의 고삐를 쥐어주는 길잡이 역할을 해주기도 한다. 작년 이맘 때쯤 그 유명한 <설득의 심리학>을 접했는데 그 책을 계기로 심리학 서적은 어려울 거라는 편견을 깰 수 있었다. 그 후 대중적으로 씌여진 여러 심리학 서적을 접하곤 하는데 인간의 다양한 심리상태를 접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우리를 지배하는 7가지 욕망의 심리학'이란 부제를 단 이 책은 '7가지 욕망 - 시기, 탐식, 화, 게으름, 탐욕, 정욕, 자만'을 다룬 심리학 시리즈 중 세 번째 책이다. 이 시리즈에 눈길이 간 건 무엇보다 '욕망의 심리학'이란 부제 때문이었다.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없애고 싶어하는 7가지 욕망들. 그것들을 다룬 심리학이란 점이 흥미로웠다. 7가지 모두 궁금하지만 그 중 나의 고민 목록 중 하나인 <화>를 집어들었다.
<화>는 화에 대한 정의와 함께 화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으로 시작한다. 기독교, 불교 등의 여러 종교적 시선과 동서양의 철학 속에 거론되었던 화에 대한 이야기를 인용하며 화의 근원을 찾아간다. 화는 왜 생기는지, 그것은 다른 감정과 어떻게 다른지,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유익한지 해를 끼치는지, 화를 내는 것과 참는 것 중 어떤 것이 좋을 지 등등의 문제를 옛 성현들의 글을 구구절절 인용하며 그 본질을 찾고자 한다.
작고 얇은 양장본인 이 책은 가벼운 외모와는 달리 그 속에 담고 있는 내용의 무게는 꽤 묵직하다. 다른 대중적 심리학처럼 쉽고 부담없이 읽을 수 있을 거란 생각으로 넘기기 시작했던 책장은 서문을 지나면서 자꾸만 빠져드는 깊이에서 헤어나질 못해 쉽게 넘어갈 생각을 하질 않는다. 이 책은 나같은 문외한이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만만한 심리학 서적이 아닌, 보다 철학적이고 전문적인 책의 냄새를 풍긴다. 책 또한 역시 겉모습만 보고 판단할 게 아닌가 보다.
책의 중반 쯤에 접어들자 그나마 흥미로운 부분들이 눈에 띄었는데, 화를 하나의 정신적 중독으로 보는 견해였다. 이 책은 화를 찾아가는 길의 도중에 여러 종교와 철학 사상들을 제시하긴 하지만, 과거 티베트 불교 승려였던 저자의 영향 때문인지 전체적으로 불교 사상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불교에 대해 잘 알진 못하지만 그나마 우리에게 친숙한 중국 불교가 아니라 인도 불교에 가까운 티베트 불교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라 좀 생소하기도 하다.
저자가 온갖 어려운 말들과 난해한 인용구들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화'를 이기는 것은 '용서'라는 것이다. 화는 나와 상대의 마음에 상처를 내는 내면적 살인의 일종이고, 그 상처는 또다른 화를 불러 일으킨다. 그것은 결국 악순환을 일으킨다. 그것을 끊는 것이 바로 용서다. 용서는 상대를 위한 것일 수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나를 위한 것이다. 누군가를 미워하게 되면 미워하는 사람이 더 힘들 듯이 화도 마찬가지다. 상대에 대한 화로 나를 상처내기 보다는 그것을 용서함으로써 나의 마음을 지키는 일이 현명한 일이 아닐까.
<화>는 인간의 기본 감정 중 하나인 '화'에 대해 보다 깊고 진지하게 생각해 볼 기회를 마련해 주었으나, 아직 학식이 짧은 내게는 다소 어렵게 느껴져 읽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이 책은 나와 같은 심리학 새내기보다는, 보다 심층적이고 깊이있는 책을 찾고 있는 분들에게 더 반가운 책일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