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 함께 - 생각하는 그림책 2
제인 시몬스 글.그림, 이상희 옮김 / 청림아이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요즘 아이들은 참 좋겠다,라는 생각을 할 때가 종종 있다. 특히 이런 멋진 책들을 만날 때는 더욱 그렇다. 청림아이의 '생각하는 그림책' 시리즈 두 번째 책인 제인 시몬스의 <둘이 함께>. 별 다섯 개가 아깝지 않은, 너무나 흡족한, 완전 반해버린 그림책이다.

커다란 개 복슬이는 비오는 어느날 작은 개 땅꼬마를 만난다. 비가 그친 하늘을 함께 바라보며 생긋 웃던 둘은 금새 친해져 모든 것을 함께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자신과 다른 친구의 새로운 면을 하나둘 발견하게 된다. 땅꼬마는 몸집이 큰 복슬이가 올라가지 못하는 강둑 위를 좋아했고, 복슬이는 땅꼬마가 들어가지 못하는 강에서 헤엄치는 것을 즐거워했다. 땅꼬마는 햇볕을 좋아하고 빨리 걸으며 작은 과자를 먹었지만, 복슬이는 그늘을 즐기고 느리게 걸으며 큰 뼈다귀를 더 좋아했다. 결국 두 친구는 서로의 취향이 너무 다른 것을 이유로 더이상 친구를 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비가 그친 하늘을 바라보며 멋진 날씨라고 함께 외치며 웃음짓던 복슬이와 땅꼬마는 왜 더이상 친구를 할 수 없다고 했을까. 함께 하기에 모든 것을 '근사하게' 느꼈던 둘 사이를 모든 게 '끔찍하게' 느끼도록 만든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건 바로 나와 다른 취향을 가진 친구를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이라고 이책은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서로 다른 것을 좋아할 때엔 친구가 될 수 없을까? 이책의 주인공 복슬이와 땅꼬마는 함께 그답을 찾아나간다.

결별을 선언했던 복슬이와 땅꼬마는 즐거웠던 때를 생각하며 서로를 그리워하고 곧 다시 화해한다. 그간 함께 했던 시간을 통해 서로의 차이를 알게 된 두 친구는 따로 또 같이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다. 그러자 예전엔 함께 할 수 없는 이유로만 느껴졌던 모든 것들이 이내 다르게 다가왔다. 거대한 벽처럼 느껴졌던 다름은 그저 사소한 차이에 불과했던 것이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순간 두 친구는 다시 행복해졌다. 햇볕과 그늘에서 각자의 과자와 뼈다귀를 먹으며 '함께' 즐거워했고, 땅꼬마가 강둑 위를 걸을 때 복슬이는 강에서 헤엄을 치며 '함께' 행복해했다. <둘이 함께>는 복슬이와 땅꼬마를 통해 나와 다른 것을 좋아하는 친구와 각각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도 '함께'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이책을 읽는 아이들에게 보여준다.

친하게 지내다가도 토라지고 다시 화해하는 복슬이와 땅꼬마의 모습은 같이 놀다가도 서로 싸우고 또 금새 화해하는 아이들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 장난꾸러기 조카들만 봐도 그렇다. 둘이 너무 잘 놀다가도 금새 울고불고 싸우는가 하면, 뚝뚝 흘리던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다시 낄낄대며 함께 논다. 그런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이책의 복슬이와 땅꼬마처럼 자신과 다른 취향을 가진 타인을 이해하고 함께하는 법을 조금씩 배워나간다. 울다가 웃기를 반복하는 개구쟁이 조카들을 보면서 '단순한 것들!'하며 언니랑 키득대며 웃곤 하지만, 한편으로는 쉽게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는 어른들과 달리 금방 화해하는 아이들이 부럽다는 생각도 해본다.

처음엔 파스텔톤의 귀여운 그림들이 너무 예뻐 선택한 책이었는데, 그림은 물론 책의 내용도 기대 이상이었다. '관계 맺기'라는 쉽지 않은 주제를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쉽고 재미있게 담아낸 이책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간단하지만 어려운 주제를 예쁜 이야기로 풀어낸다. 따뜻한 글과 귀여운 그림을 혼자 해낸 작가 제인 시몬스에게 반해 그녀의 다른 작품들을 검색해봤지만 아쉽게도 찾을 수가 없었다. 이책을 계기로 조만간 그녀의 작품들을 더많이 만날 수 있길 바라본다.





책속에서. ^ㅇ^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몽상과 매혹의 고고학 - C.W.쎄람의 사진으로 보는 고고학 역사 이야기
C. W. 세람 지음, 강미경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알고 있는 것보다 앞으로 알고 싶은 것이 더 많다는 점에서 고고학은 여전히 매력적인 학문이다. 모르는 것 만큼 앞으로 찾아낼 수 있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험난한 학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수없이 흐른 역사의 시간 속에서 많은 부분들이 손실되고 파괴되어 수수께끼로 남아버린 고대 문명에 대한 의문의 해답을 찾고자 끊임없이 도전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위대한 발견을 꿈꾸며 그들은 자신의 청춘과 재산과 목숨까지도 내놓았다. 그들의 그러한 열정과 노력 덕분에 세월의 흔적에 묻혀 잠들어 있던 수많은 고대 유적과 유물들이 발굴되었고, 그것들의 재해석을 거쳐 현재의 고고학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다. C.W.쎄람의 <몽상과 매혹의 고고학>은 바로 이런 이들의 열정이 만들어낸 '고고학의 역사'를 담고 있는 책이다.

명확한 것보다는 의문부호로 채워진 부분들이 더 많아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다는 점에서 고고학은 <인디아나 존스>나 <툼 레이더> 같은 판타지 영화의 단골 소재로 등장했다. 그것들은 고고학이 대중과 한결 친숙해지는 계기가 되어주긴 했지만, '어려운 학문'이란 편견을 완전히 없애주지는 못했다. 나 역시도 고고학에 대한 호기심은 있었지만 막연한 어려움에 쉽게 다가서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이책을 만났는데, '사진으로 보는 고고학'이란 부제가 눈길을 끌었다. 예전에 몇몇 고고학 관련책을 읽으면서도 고대 문명의 발굴과 복원, 재해석 등에 대한 과정이 글로만 설명되어 있어 답답하고 궁금했던 터라 320여점의 풍부한 사진 자료들을 통해 '보여주는 고고학'을 실현한다는 이책에 군침이 돌았다. (그러나 나는 책의 부제에서 '사진으로 보는'에 너무 집중해버린 나머지 '고고학 역사 이야기'란 뒷부분을 미처 보지 못하는 우를 범했고, 그런 이유로 책을 읽으면서 살짝 당황했다;)


그런 유혹에 기꺼이 빠져들어 멋드러진 표지의 두툼한 양장본의 책을 넘기기 시작했다. 저자의 말대로 이책에 수록된 사진 자료는 여느 책보다 풍부하고 다양해 내용의 이해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유적의 발굴 과정이나 그와 관련된 그림, 유물이나 유적 등의 사진들은 그간의 궁금증을 많이 해결해 주었다. 비록 한밤중에 혼자 집을 지키는 와중에 이집트 미라들의 적나라한 모습들이 담긴 사진들이 끊임없이 이어진 것은 다소 유감스러웠지만;; 무엇보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보여주는 고고학'을 실현하기 위해 기존의 책들처럼 글과 사진이 따로 놀지 않고 그 둘이 한 지면에서 적절하게 놓여지도록 편집에 신경을 쓴 점이었다. 이책은 내용과 사진이 따로 놀아 책장을 앞뒤로 넘겨가는 수고를 하지 않고 한 번에 볼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앞선 저자의 말처럼 이책은 고고학의 전반적인 그림을 그리기보다는 고고학을 탄생에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의 '고고학의 역사'들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래서 고고학의 큰 획을 그었던 발굴들을 성공시킨 사람들의 이름과 열정과 성공과 실패로 채워진 행적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계속 이어지는 생소한 이름들과 그들의 업적에 대한 이야기가 솔직히 조금 지루했지만, 상인 슐리만이 어린 시절에 품었던 꿈 하나로 고대 트로이를 발견하고, 친구와의 내기를 한 스물 일곱의 교사 그로테펜트가 전문가들도 성공하지 못한 페르세폴리스의 설형문자를 해독하는 등 전문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 이룬 고고학의 역사들을 좇는 것은 흥미로웠다.


<몽상과 매혹의 고고학>은 고대 그리스ㆍ로마에서 시작해 이집트, 바빌론과 아시리아 등을 거쳐 중앙 아메리카에 이르기까지 비교적 다양한 지역의 고고학을 다루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고대 이집트와 중앙 아메리카의 문명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그러나 언급되는 곳이 대부분 유럽 주변으로 한정되어 있고, 저자가 유럽인이다 보니 비유럽지역 문명에 대해 서술할 때는 서양인 특유의 시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점은 다소 아쉬웠다.

또한 책을 읽는 동안 고대 문명의 발굴을 위해 모든 걸 바친 그들의 열정과 도전에는 박수를 보내지만, 발굴이란 미명 아래 마구 훼손되거나 약탈당한 유물들에 대해서는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언젠가 대영박물관이나 루브르박물관은 식민지에서 약탈해 온 유물들로 채워진 약탈박물관이라 비아냥대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각종 고대 유물, 미라들은 물론 제법 덩치가 큰 건물까지 자국으로 약탈했다니 그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와 함께 불현듯 제 위치를 찾지 못한 채 석굴암 마당에 방치되어 있던 돌조각들이 떠올랐다. 일제강점기에 발견된 석굴암은 본존불을 비롯 석굴 내부의 여러 조각들을 약탈해 가려던 일본인들에 의해 분해되었는데 급작스런 해방으로 급히 떠나느라 다행히 그대로 남겨졌다고 한다. 그러나 석굴의 원모습이 남아있지 않아 일본인들에 의해 분해된 돌조각들은 아직도 온전한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일부는 비바람을 맞고 있다고. 눈부신 문명과 빛나는 유산을 물려받았지만 그것들을 지키지 못한 채 약탈당한 약소국의 비애를, '자랑스런' 고고학의 발굴 뒷켠에서 발견했다.


저자의 말처럼 고고학의 개척기는 지났다. 그러나 얼마전 고려시대 침몰한 배에서 수천점의 고려청자를 발견한 것이나 경주 남산에서 1300년 만에 발견된 대형 마애불 등을 볼 때 현재에도 여전히 수많은 발굴이 이루어지고 있다. 오히려 발전된 과학기술의 힘을 빌려 과거에는 상상도 못했던 방법들이 발굴에 동원되고 있어 앞으로 더욱 많은 발굴이 기대된다. 저자는 현실과 다소 동떨어진 낭만과 모험이 고고학의 큰 역사를 이룬 것처럼 앞으로 이루어갈 고고학에서도 상상력의 힘은 크게 작용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나 역시 그의 생각에 동의한다.

<몽상과 매혹의 고고학>은 멀고 어렵게만 느껴지던 고고학을 대중들과 조금은 가깝게 해주는 책이라 생각된다. 비록 아주 쉽고 재미있게 읽히는 책은 아니지만 고고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한 번쯤은 읽어볼 만한 책이 아닐까 싶다.








* 오탈자) 308쪽 8째 줄 : 오른쪽 → 왼쪽 (편집이 사진을 왼쪽으로 두었는데 미처 수정을 못한 듯;)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굿바이, 게으름 - 게으름에서 벗어나 나를 찾는 10가지 열쇠, 개정판
문요한 지음 / 더난출판사 / 200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좀 게으르다. 요즘은 점점 더 게을러지고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자가 이자를 만드는 복리이자처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나를 덥치는 게으름이란 녀석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처음엔 지저분한 책상을 치우지 않는 정도의 작은 게으름이었는데 어느새 먼지가 뽀얗게 쌓인 방을 아무렇지도 않게 큰 게으름으로 커져있는 느낌이랄까. 현실을 자각한 순간 멈칫했다. 게으름을 방치할수록 나는 점점 더 게을러졌고 그 게으름이 어느새 나의 일부가 되어 나 자체가 게으름으로 똘똘 뭉쳐버린 것만 같았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하는 마음에 책장을 뒤져 꺼내든 책이 바로 <굿바이 게으름>이다.

<굿바이 게으름>은 출간과 함께 독자들 사이에 훈훈한 입소문이 돌던 책이었다. 정확히는 기억이 안나는데 작년에 인터넷 서점인지 신문인지에서 올해의 책으로도 선정됐었고, 잡지나 신문 같은 책소개 코너에서 눈에 띄는 책, 추천책 등으로 여러 번 소개되기도 했었다. 주변에서도 심심찮게 이책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는데, 회사 지원도서로 이책을 읽었다던 동생도 한 번쯤은 읽어볼 만한 책이라며 내게 권한다. 오~ 별점도 짠 녀석이 웬 일? 그랬는데, 직접 읽어보니 그럴만한 책이 아닌가 싶다. 괜히 입소문 타던 책이 아니었다. 이 게으름뱅이! 진작 책장에서 꺼내 읽어주지 그랬어!하며 살며시 반성!반성! 책장을 펼친다.

- 게으름은 늪과 같다. 처음에 빠져나오면 탈출이 가능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힘들어진다. 그때부터는 탈출하려고 발버둥칠수록 늪에 더 깊이 빠져버린다. 게으름에 친숙해지기 시작하면서 자기화(自己化)가 이루어진다. 마치 자신이 원래부터 게으른 사람이었던 것처럼 정체성으로 굳어져간다. (중략) 그러나 다 타버린 잿더미 속에서도 불씨가 남아 있듯, 스스로 끝났다고 선언하지 않는 이상 우리에게는 가능성이 늘 함께한다. 삶이란 가능성의 다른 이름인 것이다. (13~14 쪽)



<굿바이 게으름>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1부 「새로 쓰는 게으름」은 이론편으로 게으름의 전반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게으름의 정의, 유형, 원인, 그리고 게으름에 대해 논했던 철학들까지. 이제껏 별 생각없이 대해왔던 게으름에 대해 조목조목 밝혀놓은 내용들이 신선하고 흥미롭다. 특히 게으름의 진행과정이나 유형, 변형된 형태 등을 다룬 부분에서는 마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입이 쩍~ 벌어졌다. 어쩜!어쩜! 완전 내 모습이잖아! 헉, 내가 이렇게까지 게으름뱅이였구나! 혼자말하며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읽는내내 얼마나 뜨끔하던지! 뜨끔! 뜨끔! 왕뜨끔!! 콕콕~ 찔러대는 그 강도가 너무 강해서 책을 덮기 전에 가슴에 구멍이라도 나는 줄 알았다.

저자는 이책에서 게으름의 판단 기준을 '삶의 방향성 유무'에 두고 있다. 그와 함께 '게으름이란 삶의 에너지가 저하되거나 흩어진 상태'라 정의한다. 게으름에는 작은 게으름과 큰 게으름이 있다. 옷을 벗어 아무데나 둔다거나 잘 씻지 않는다거나 하는 작은 게으름은 대체로 사소한 게으름이다. 아무리 완벽한 사람도 이런 게으름 한두 가지는 있기 마련이다. 문제는 큰 게으름이다. 큰 게으름은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삶의 방향을 잡는 데 게으름을 피우는 걸 말한다. 즉 자신의 삶을 관통하는 일정한 방향없이 삶의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저자가 이책을 통해 이야기하는 문제의 '게으름'다.

선택을 하지 않고 미루는 것 또한 게으름이다(내 특기다; -_-;). 중요한 일을 미루고 쓸데없는 일을 하는 것도, 시작을 미루거나 막상 눈 앞에 닥치면 막판에 몰아서 하는 것도, 인생의 큰 밑그림없이 그날 하루하루 순간의 기쁨을 추구하며 사는 것도 모두 게으름의 다른 모습이다(앗, 모두 내 얘기잖아; orz). 또한 늘 무언가를 열심히 하며 바쁘게 움직이지만 그것들이 모여 일정한 방향을 이루지 못하고 여기저기 흩어져 버린다면 그것도 게으름이라 할 수 있다. 게으름의 유형이 여기까지 이르면 독자들은 책 속에서 자신의 뜻밖의 게으름을 적어도 한두 가지는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나의 게으름이 삶의 방향을 잃고 헤매는 큰 게으름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한 나처럼 말이다.

- 결국 게으름에서 벗어나는 것은 정신력의 문제다. 게으름의 원인이 무엇이든지 간에 결론은 우리가 더 강해지는 수밖에 없다. 너무 당연한 말일까? 그럼 어떻게 해야 삶의 에너지를 향상시킬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삶의 에너지를 일정한 방향으로 통합'해야 한다. 무질서한 정신에 지향성, 목표의식, 동기가 부여될 때 삶의 에너지는 통합된다. 그러므로 게으름 탈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방향성을 갖추는 것이다. (107쪽)


2부 「게으름과의 결별」은 실천편으로, 게으름으로부터 벗어나는 실제적인 방법이 담긴 '게으름에서 벗어나는 10가지 열쇠'가 실려있다. 그러나 게으름에 대한 다른 시각으로 바라봐 신선함을 던져줬던 1부에 비해, 2부에서 저자가 제시하는 10가지 방법들은 대부분 기존의 자기계발서에서 여러 번 접해왔던 내용이라 조금은 식상했다. 기존과는 다른 구체적이고 생생한 해결방안을 기대했었는데 살짝 실망스러웠다고나 할까. 그러나 저자는 그런 독자들을 위해 각각의 방법 말미에 추상적이고 막연하게 느껴지는 해결방법들을 보다 구체적으로 행동에 옮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실천지침'을 마련해 두었다. 그리고 그 실천지침을 통해 지금껏 간과했던 자신의 문제점과 그것의 해결방법을 좀 더 진지하게 구체적으로 고민하도록 이끌어준다.

게으름뱅이의 마음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듯 저자는 이책에 소개된 10가지 방법을 모두 따라하려고 무리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편안하게 책을 읽다가 마음에 와닿는 부분을 발견했다면, 그때 잠시 멈춰서서 책이 알려주는 실천지침을 잘 적용해 자신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 보라고 이야기한다.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실천하다보면 게으름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적인 말과 함께. 또한 저자는 직접적 실천에 앞서 무엇보다 게으름에서 벗어나겠다는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무슨 일이든 먼저 마음을 바로 잡지 않고서는 그 뜻을 이루기 힘들듯이 게으름 탈출 또한 마찬가지다.

10가지 키워드 말미에는 그것들을 하나로 압축하는 '오문ㆍ오감 일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오문ㆍ오감 일기는 과거 한 줄, 현재 세 줄, 미래 한 줄로 이루어진 5줄의 짧고 부담없는 일기를 쓰되 오감을 총동원해 쓰는 게 요령이다. 짧은 질문과 짧은 답이지만 매일 오감을 동원해 쓰는 일기는, 마음을 좀먹는 부정적인 기운을 털어버리고 감사와 희망같은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정신으로 교정하는 정신 훈련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고. 책의 예시를 보면 이정도는 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 정신에너지를 강화시키는 것 중에 운동을 빠트려서는 안된다. 몸과 마음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운동은 사람의 몸을 건강하게 해주는 동시에 정신 건강 역시 향상시켜주는 천연의 보약이다. 최근의 뇌과학 연구를 보면 운동을 통해 대뇌피질의 혈관 생겅이 이루어지고 신경세포가 발생한다는 사실이 하나둘씩 밝혀지고 있다. 그래서 두뇌훈련을 하고 싶다면 퍼즐 같은 오락보다 달리기같은 유산소운동이 더 효과적이다. 나를 포함해 운동에 유난히 게으른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게으름 때문에 운동을 포기하는 사람들만큼이나 운동을 통해 게으름에서 벗어난 사람들도 많다. 그만큼 운동은 그 자체로 사람의 정신을 강하게 만들고 삶에 질서를 부여한다. (226~227 쪽)



사실 자신을 게으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정도의 차이일 뿐 누구나 게으름에서 완전히 자유롭진 못하다. 나 또한 앞에서 고백했듯이 게으름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러나 게으름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충분히 벗어날 수 있는 늪이다. 혹시 인생의 방향을 잡지 못하고 삶의 에너지를 집중하지 못한 채 살지는 않았는가. 나는 안된다고, 되는 일이 없다고, 시도해봤자 또 실패할 게 뻔하다고 비관적인 생각에 젖어 자포자기하며 살지는 않았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이제껏 큰 게으름을 피우고 있다. 이책이 알려주는 것처럼 우리 삶에 방향성을 부여하고, 자신을 게으르게 만드는 비관적인 생각은 떨쳐버리고 그대신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생각으로 마음을 채워보자. 이제는 큰 게으름에서 벗어나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해 노력을 기울일 때다.

- 우리는 씨앗인 채로 세상에 태어났다. 삶이란 우리가 갖고 태어난 씨앗들을 가꾸고 키워서 꽃을 피우고 다시 씨앗을 뿌리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성공이란 꽃을 피우느냐 피우지 못하느냐의 문제이지 무슨 꽃을 피우는지, 몇 개의 꽃송이를 터뜨리는지, 언제 꽃망울을 터뜨리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략) 나는 게으름에서 벗어나는 것도, 진정한 행복을 만나는 것도, 그리고 삶에서의 성공도 결국 하나라고 본다. 즉, 자기로서 살아가는 가의 문제인 것이다. 결국 삶의 목적은 피어나는 데 있다. (250~251 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자 몸 만들기 4주 혁명
한동길 지음 / 아우름(Aurum)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다이어트를 고민할 만큼 살이 쪄본 적이 없었던지라 운동이나 식이요법을 필사적으로 해본 적이 없지만, 최근 점점 중앙집중형(!)으로 변신해가며 무너지는 라인을 보고 있자니 운동의 필요성에 대한 압박감이 슬며시 고개를 쳐든다. 일부러 시간을 내어 운동을 하기는커녕 잠시의 틈만 나도 뒹굴뒹굴 굴러다니거나 인터넷으로 들어가 버리는 귀차니스트 주제에 건강한 몸과 멋진 몸매 타령을 하는 건 염치 없는 노릇이지만, 어떤 절박한 상황에 놓인다면 이 귀차니즘도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간만에 만난 친구와 수다 떨며 하는 우스개 소리, 나이 들어 빠진 얼굴살이 모두 뱃살로 가는 것 같다며 둘이서 깔깔댄다. 아, 그렇게 정곡을 콕~ 찌르다뉘! 나이드니 줄어드는 건 볼살이오, 늘어나는 건 뱃살이라. 이것이 귀차니스트의 슬픈 운명이다.

그럼 그게 운명이려니 하며 탄력없이 늘어지는 볼살과 삐져나오는 뱃살을 마냥 바라만 보고 있을 것이냐. 그럴 순 없다. 봄바람 살랑살랑 불어오는 춘삼월에 그 무슨 우울한 소리! 언제나 그렇듯 올해도 봄바람과 함께 슬슬 운동을 결심해 본다. 작심삼일이라도 아예 안 하는 것보단 낫지 않을까 둘러대며. 예전에 다니던 요가를 다시 시작할까, 헬스클럽에 등록해 볼까, 아님 근검절약 정신에 입각해 돈 한 푼 들지 않는 집 앞 운동장 돌기를 해 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운동책을 살펴보다 딱 꽂힌 책, <여자 몸 만들기 4주 혁명>. 표지속 빛나는 탄력있는 그녀의 복근에서 눈을 뗄 수 없었기도 했지만, 이책이 눈에 띈 건 무엇보다 자기 몸에 맞는 ’체형별 맞춤 운동법’을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일률적으로 따라하는 운동이 아니라 내 몸에 맞는 운동법을 알려준다니 오호~ 궁금하다.


체형에 따른 맞춤 운동을 강조한 <여자 몸 만들기 4주 혁명>에서는 여성의 체형을 크게 외배엽 체형(마른 체형), 중배엽 체형(근육질 체형), 내배엽 체형(뚱뚱한 체형)으로 나누고, 다시 외배엽 체형은 전신허약 체형과 상체허약 하체비만 체형, 중배엽 체형은 상체 길고 하체 짧은 체형과 상체 짧고 하체 긴 체형, 내배엽 체형은 상체비만 하체허약 체형과 전신비만 체형으로 분류한다. 책의 앞부분에는 각 체형의 특징에 관한 설명과 함께 자가 체크란을 두어 자신이 어떤 체형을 직접 알아볼 수 있게 해두었다. 또한 본격적인 운동에 앞서 ’Pre Workout’라는 체력 테스트로 자신의 기초체력 수준을 체크하고 부족한 체력을 보강할 것을 권하고 있으며, 운동 전후 부상의 위험을 방지하고 운동효과를 높이는 스트레칭 방법도 실려있다.

본격적으로 체형별 운동법을 소개하는 3장으로 들어가면 각 체형별 지켜야 할 운동수칙과 함께 8가지 운동법이 소개되어 있다. 체형별로 동작의 횟수나 방법들은 조금씩 다르다. 운동방법의 설명은 모델의 동작을 단계별로 배치한 뒤 그 옆에 간단한 설명을 달아두었고, 왼쪽에는 이 동작의 효과를, 오른쪽 위에는 운동 횟수와 주의점을, 그 아래에는 작은 사진으로 연속으로 배치해 두어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각 동작들은 의외로 간단해 따라하기에 그리 어렵지 않다. 오히려 이런 동작으로 크게 운동이 될까 조금은 의심스러울 정도. 그러나 앞서 저자가 밝혔듯이 비교적 쉽고 간단한 동작이지만 하나의 동작에 여러 부위가 자극받도록 고안되어 있어 막상 직접 따라해보면 의외로 여러 근육이 쓰이고 힘도 든다. 또한 큰 공간을 차지하지 않아 어디서든 약간의 공간만 마련한다면 쉽게 운동을 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3장의 체형별 전신운동을 통해 전신의 체지방을 빼고 날씬한 몸매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개개인에 따라 부족함을 느끼거나 좀 더 단련하고 싶은 부분이 있게 마련이다. 4장에서는 이런 욕구를 채워주기 위해 복부, 가슴과 어깨, 엉덩이, 허벅지와 종아리, 팔, 등허리에 대한 부위별 운동법을 소개하고 있다. 3장이 건강에 좀 더 집중하는 운동이라면, 4장은 3장의 운동법이 만들어놓은 건강한 몸을 조화로운 몸매로 만드는 것에 좀 더 무게를 둔 라인 트레이닝이다. 부위별 운동법은 몸매 다듬기는 물론 체력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 체형별 전신 운동법보다 조금 더 고급 동작인 셈. 부위별 운동별은 각 부위의 문제점에 따라 몇 가지로 분류되어 있고, 다시 체형별로 운동 횟수와 방법이 실려있다. 부위별 운동에서도 체형별 맞춤 운동이 가능하게 되어 있는 것도 이책의 장점이다.


<여자 몸 만들기 4주 혁명>이란 제목처럼 저자는 매주 4일간, 4주 동안 이책의 운동법을 착실히 따라한다면 건강하고 아름다운 몸을 만들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과연 4주로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이 들긴 하지만 기초체력 운동 2주(기초체력이 없는 경우에만), 체형별 운동법 4주, 부위별 운동법 4주만 해도 벌써 10주가 되니 짧은 기간이 아닌 셈이다. 10주 동안 매일 4일씩 꾸준히 운동을 한다면 건강하고 탄력있는 몸매로 변신하는 것도 불가능할 것도 없겠다 싶었다.

또한 저자는 이책에 실린 운동법이 기존의 책들과 달리 오직 ’여자만을 위한 운동법’이라고 강조한다. 그간의 공부와 연구를 통해 여성의 신체 구조와 특징이나 호르몬 작용이나 심리 상태 등까지 고려해 공부와 연구를 거듭한 결과 건강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여성에게 적합한 운동을 개발했다는 것이다. 이론적 지식을 바탕으로 트레이너로 활동하는 동안의 지도 경험을 녹여 고안해낸 운동법인 만큼 책 곳곳엔 저자의 자신감은 대단하다.


부실한 체력 덕에 아직 기초체력 향상을 위한 운동을 하는 중이라 책에 실린 운동법의 효과를 바로 증명하진 못해 아쉽지만, 이책이 소개하고 있는 운동법이 쓸데없이 복잡하지 않아 따라하기 쉽고 아무 곳에서나 간편하게 할 수 있는 운동법이라는 점은 아주 만족스럽다. 각 장의 운동법 소개에 앞서 꼼꼼하게 소개해놓은 이론적 설명도 흡족하다. 무엇보다 이책의 가장 큰 미덕은 비교적 세부적으로 분류한 6개의 체형에 따라 자신의 체형에 맞는 운동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책의 내용을 토대로 운동 비디오나 DVD로 제작을 시도해봐도 괜찮을 듯.

다만 아쉬운 점은 소개된 운동법의 대부분이 중량볼이나 메디슨 볼 같은 특정 기구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그 대신 비슷한 무게의 아무 공이나 써도 된다고는 하지만 보통 가정집에 1~2kg짜리 공이 흔하게 있냔 말이지(있으면 말고;). 아쉬운대로 물병이라도 챙겨야겠다(물병 들고 운동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좀 웃기긴 하지만;). 허벅지를 묶는 세라밴드는 고무줄로 대신하고, 종아리 운동은 플라스틱 접시를 대신대체해야 할지 조금 고민스럽다. 이불을 깔아놓고 해야하나; -_-; (핑계 그만대고 운동이나 하시지! .. 아, 네;;)

책표지의 모델만큼 멋드러진 몸매까진 아니라도 이책에 실린 ’여자만을 위한 4x4 운동법’을 차근차근 따라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향긋한 봄을 맞아 새롭게 운동 계획을 세우고 있거나, 운동을 하면서도 이게 과연 내 몸에 맞는 것인지 고민스러웠다면 이책을 만나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 주절주절 - 책의 모델이 어째 낯이 익다~ 싶었더니 액션전문배우 김효선 씨라고. 영화 <짝패>의 후반부에 흰 옷을 입고 유려한 액션을 선보였던 그녀의 모습이 기억이 난다. 예전에 윤진서가 주인공으로 나온, 액션전문 여배우의 이야기를 다뤘던 mbc 베스트극장의 <액션배우 정맑음>이란 단막극이 있었는데, 그 이야기가 바로 김효선 씨를 모델로 한 이야기였다고. 책 속에도 운동으로 다져진 그녀의 탄력있는 몸매가 빛을 발한다. 앞으로 영화에서도 그녀를 자주 볼 수 있길 바라며, 반가운 마음에 몇 자 주절거려본다. ^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이팅게일의 침묵 가이도 다케루의 메디컬 엔터테인먼트 2
가이도 다케루 지음, 권일영 옮김 / 예담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데뷔작 <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으로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상을 수상한 현직 의사 출신 소설가 가이도 다케루의 신작이 나왔다. 전작을 꽤 재미있게 읽어서 후속작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거의 일 년 만에 출간소식이 들려왔다. 궁금한 마음에 덥썩 집어들었는데 두께가 장난이 아니다. 슬쩍 마지막장을 넘겨보니 전부 530쪽이 넘는다. 헉. 그러나 손에 잡았을 때 책의 느낌은 여전히 좋다. 다른 일본소설들도 쓸데없는 양장본이 아니라 이런 느낌 좋은 반양장본으로 만들면 좋으련만. 여튼 두께의 압박감에 살짝 기죽었으나, 그렇다고 다구치와 시라토니 콤비의 활약을 포기할 수는 없지. 책장을 넘겨 그들의 주요 활동무대인 도조대학병원으로 빠져든다.

그의 두 번째 작품인 <나이팅게일의 침묵>은 전작의 배경과 주인공이 그대로 이어지는 연작소설 형태를 띠고 있다. 이책에도 전작과 같이 도조대학병원을 주요배경으로 다구치와 시라토니가 등장한다. 전편처럼 다구치는 처음부터(왜냐면 도조대학병원에 몸 담고 의사니까), 시라토니는 중반이 넘어서야(사건이 터져줘야 나타날 건수가 생기니;) 등장한다. 그리고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인 사요와 미즈토를 포함해 주요 등장인물들이 쏙쏙 등장한다. 이번엔 소아과병동이 주무대다.


오렌지 신관 2층 간호사 사요는 그녀만의 특별한 노래 솜씨로 병원의 송년회 장기자랑에서 1등을 차지한다. 그날 밤 단짝 쇼코와 술집 거리를 거닐다가 묘령의 남자 시로사키의 갑작스런 초대에 가릉빈가(극락에 살면서 고운 목소리로 노래한다는 사람 머리에 새의 몸을 지닌 상상의 새)라고 불리는 가수 사에코의 라이브 콘서트에 참석하는 행운을 누린다. 그러나 사에코의 노래 『랩소디』를 듣던 사요가 갑작스레 비명을 지르고, 그것을 계기로 얼떨결에 무대 위에 올라간 사요가 사에코의 『랩소디』를 다시 부르는 도중에 사에코는 피를 토하며 쓰러진다.

한편 소아병동에 근무하는 사요의 담당환자인 미즈토와 아쓰시는 레티노블라스토마(망막아세포종, 안암의 일종이라고)를 앓고 있다. 암이 다른 곳으로 전이되기 전에 안구 적출수술을 받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지만 어린 나이의 그들이 감당하기엔 현실은 너무 잔인하다. 특히 상태가 심각하나 미즈토는 눈을 빼느니 차라리 죽겠다며 수술을 거부하고, 그의 부모는 병원을 찾지 않는다. 수술 동의를 받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사요는 미즈토를 겨우 달래 그의 아버지를 만나지만, 알콜중독에 폐인의 모습으로 나타난 그는 자식에게는 관심도 없는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한다. 그리고 얼마후 미즈토가 증오해 마지않던 그의 아버지가 시체로 발견됐다. 그것도 내장들이 모두 토막난 채로.


<나이팅게일의 침묵>은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이 두 가지 이야기가 서로 스쳐가듯 맞물리면서 진행된다. 그 중심엔 특별한 노래 재능을 가진 상냥한 간호사 사요와 자신을 학대한 아버지를 증오해 수술을 거부하는 슬픈 운명의 소아안암 환자 미즈토가 있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특별한 노래를 둘러싸고 가릉빈가 사에코와 그의 매니저이자 작곡가 시로사키가, 토막살인 해결을 위해 뛰어다니는 사건 담당 가노와 비호감 외모에 명석한 두뇌를 탑재한 우리의 천재 시라토니가, 그리고 그 사이에 언제나 그렇듯 본인의 의사와 전혀 상관없이 사건 속에 말려들어 졸지에 해결에 약간이나마 도움을 주는 구치외래의사 다구치가 등장한다. 그외 병원 내 다양한 조연들이 소소한 재미를 준다.

그러나 각각 흥미로웠던 두 가지의 이야기는 함께 어우러져서도 큰 시너지를 만들어내진 못한다. 현직 의사라는 작가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 생생히 살려낸 병원의 모습들은 여전히 흥미로웠지만, 이야기의 전개가 전체적으로 더디고 늘어져서 미스터리 특유의 팽팽한 긴장감을 느낄 수가 없었다. 500쪽을 넘기는 분량 중에 시라토니가 등장하기 전인 300쪽까지 등장인물의 소개와 사건의 설명에 너무 많은 지면을 할애해 지루하기도 했다. 물론 사요와 사에코의 ’공감각적인 신비로운 노래 재능’이라는 다소 생소하고 흥미로운 소재가 등장하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녀들의 재능에 쉽게 공감하지 못해 더 시큰둥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300쪽을 넘어가면 우리의 구원투수, ’로지컬 몬스터’ 시라토니가 등장한다. 그리고 오직 그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사건은 급물살을 타고 진행된다. 이 양반은 늘 이야기의 중반을 넘어서야 얼굴을 들이민다. 일찍 좀 나와서 좀 즐겁게 해주지! (하긴 사건도 안 일어났는데 수사를 할 순 없지만; ㅋㅋ) 구원투수답게 시라토니는 자신의 천재적 두뇌를 마구 회전해 사건 해결에 큰 활약을 하고, 종국으로 치닫던 사건의 해결되면서 어느새  모든 갈등과 의문들이 풀린다.


전작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던 까닭일까. <나이팅게일의 침묵>은 전작 <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의 재미에 미치지 못한다. 책은 더 두꺼워졌지만 이야기의 전개 속도는 더 느려졌다. 결정적으로 이번 이야기는 범인의 존재가 너무 뻔하게 드러난다! 설마?하는 생각에 잔머리를 굴리다 다른 늪으로 빠져버린 독자들도 있겠지만, 애초에 범인의 윤곽이 너무 쉽게 드러나 재미가 반감됐고 예상대로 진행되는 스토리가 김빠졌다. 물론 마지막 부분에 약간의 반전 아닌 반전이 기다리고 있긴 하지만(과연 그게 반전인지 잘 모르겠지만) 그 강도가 약해 기대에 부흥하지 못했다.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곧 나올 3편에서는 2편과 거의 동시간대에 벌어지는 다른 사건들을 다루고 있단다. 2편과 3편은 원래 하나의 이야기로 지어졌으나, 이야기가 너무 복잡하고 분량이 많아서 출판사의 요구에 따라 두 권으로 나누어 씌여진 거라고. 그래서 2편은 1편과 3편을 이어주는 성격이 강해 조금 밋밋하다는 변명(?)과 함께 곧 나올 3편이 더 재미있다는 말까지 유혹성 발언까지 잊지 않는다. 2편이 기대보다 못해 고민하는 나를 꿰뚫어 본 역자의 낚시성 멘트, 놀랍다! 하긴 지루한 연결고리들은 2편에서 이미 끝냈으니 3편은 최소한 2편보다는 재미있겠다 싶기도 하다. 다시 얇은 귀가 팔랑팔랑. 2편에서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갔던 가이도 다케루, 3편에서는 그 날개를 다시 펼 수 있을지 사뭇 궁금해진다.












+ 구시렁구시렁

- 하나, 전작 <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에서도 좀 거슬리긴 했는데, 역시나~ 이번에도 번번이 영어를 그대로 가져다 놓았다. 의학 용어는 워낙 외래어 투성이라 그렇다쳐도, 그외에 충분히 우리말로 바꿀 수 있는 단어들까지 영어를 그대로 가져다 놓은 것은 역자로서 너무 무책임하지??말과 표현으로 바꾸는 작업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외래어를 그대로 가져다 발음만 한글로 표기하기보다 그것을 잘 나타내줄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우리말을 찾는 데 좀 더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치 않나 싶다. 요즘 그런 책들이 점점 늘어나 안타깝다.

- 둘, 입말로 흔히 사용돼 오히려 올바른 맞춤법이 어색한 단어들이긴 하지만, 그래도 활자화된 책이기에 살짝 두 개만 짚고 넘어간다. (사실 나도 쓰거나 읽을 때 무척 어색한 건 어쩔 수 없다;;;)
- 248쪽) 허접한 → 허섭한
- 444쪽) 바래 → 바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