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상과 매혹의 고고학 - C.W.쎄람의 사진으로 보는 고고학 역사 이야기
C. W. 세람 지음, 강미경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알고 있는 것보다 앞으로 알고 싶은 것이 더 많다는 점에서 고고학은 여전히 매력적인 학문이다. 모르는 것 만큼 앞으로 찾아낼 수 있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험난한 학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수없이 흐른 역사의 시간 속에서 많은 부분들이 손실되고 파괴되어 수수께끼로 남아버린 고대 문명에 대한 의문의 해답을 찾고자 끊임없이 도전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위대한 발견을 꿈꾸며 그들은 자신의 청춘과 재산과 목숨까지도 내놓았다. 그들의 그러한 열정과 노력 덕분에 세월의 흔적에 묻혀 잠들어 있던 수많은 고대 유적과 유물들이 발굴되었고, 그것들의 재해석을 거쳐 현재의 고고학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다. C.W.쎄람의 <몽상과 매혹의 고고학>은 바로 이런 이들의 열정이 만들어낸 '고고학의 역사'를 담고 있는 책이다.

명확한 것보다는 의문부호로 채워진 부분들이 더 많아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다는 점에서 고고학은 <인디아나 존스>나 <툼 레이더> 같은 판타지 영화의 단골 소재로 등장했다. 그것들은 고고학이 대중과 한결 친숙해지는 계기가 되어주긴 했지만, '어려운 학문'이란 편견을 완전히 없애주지는 못했다. 나 역시도 고고학에 대한 호기심은 있었지만 막연한 어려움에 쉽게 다가서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이책을 만났는데, '사진으로 보는 고고학'이란 부제가 눈길을 끌었다. 예전에 몇몇 고고학 관련책을 읽으면서도 고대 문명의 발굴과 복원, 재해석 등에 대한 과정이 글로만 설명되어 있어 답답하고 궁금했던 터라 320여점의 풍부한 사진 자료들을 통해 '보여주는 고고학'을 실현한다는 이책에 군침이 돌았다. (그러나 나는 책의 부제에서 '사진으로 보는'에 너무 집중해버린 나머지 '고고학 역사 이야기'란 뒷부분을 미처 보지 못하는 우를 범했고, 그런 이유로 책을 읽으면서 살짝 당황했다;)


그런 유혹에 기꺼이 빠져들어 멋드러진 표지의 두툼한 양장본의 책을 넘기기 시작했다. 저자의 말대로 이책에 수록된 사진 자료는 여느 책보다 풍부하고 다양해 내용의 이해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유적의 발굴 과정이나 그와 관련된 그림, 유물이나 유적 등의 사진들은 그간의 궁금증을 많이 해결해 주었다. 비록 한밤중에 혼자 집을 지키는 와중에 이집트 미라들의 적나라한 모습들이 담긴 사진들이 끊임없이 이어진 것은 다소 유감스러웠지만;; 무엇보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보여주는 고고학'을 실현하기 위해 기존의 책들처럼 글과 사진이 따로 놀지 않고 그 둘이 한 지면에서 적절하게 놓여지도록 편집에 신경을 쓴 점이었다. 이책은 내용과 사진이 따로 놀아 책장을 앞뒤로 넘겨가는 수고를 하지 않고 한 번에 볼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앞선 저자의 말처럼 이책은 고고학의 전반적인 그림을 그리기보다는 고고학을 탄생에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의 '고고학의 역사'들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래서 고고학의 큰 획을 그었던 발굴들을 성공시킨 사람들의 이름과 열정과 성공과 실패로 채워진 행적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계속 이어지는 생소한 이름들과 그들의 업적에 대한 이야기가 솔직히 조금 지루했지만, 상인 슐리만이 어린 시절에 품었던 꿈 하나로 고대 트로이를 발견하고, 친구와의 내기를 한 스물 일곱의 교사 그로테펜트가 전문가들도 성공하지 못한 페르세폴리스의 설형문자를 해독하는 등 전문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 이룬 고고학의 역사들을 좇는 것은 흥미로웠다.


<몽상과 매혹의 고고학>은 고대 그리스ㆍ로마에서 시작해 이집트, 바빌론과 아시리아 등을 거쳐 중앙 아메리카에 이르기까지 비교적 다양한 지역의 고고학을 다루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고대 이집트와 중앙 아메리카의 문명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그러나 언급되는 곳이 대부분 유럽 주변으로 한정되어 있고, 저자가 유럽인이다 보니 비유럽지역 문명에 대해 서술할 때는 서양인 특유의 시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점은 다소 아쉬웠다.

또한 책을 읽는 동안 고대 문명의 발굴을 위해 모든 걸 바친 그들의 열정과 도전에는 박수를 보내지만, 발굴이란 미명 아래 마구 훼손되거나 약탈당한 유물들에 대해서는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언젠가 대영박물관이나 루브르박물관은 식민지에서 약탈해 온 유물들로 채워진 약탈박물관이라 비아냥대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각종 고대 유물, 미라들은 물론 제법 덩치가 큰 건물까지 자국으로 약탈했다니 그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와 함께 불현듯 제 위치를 찾지 못한 채 석굴암 마당에 방치되어 있던 돌조각들이 떠올랐다. 일제강점기에 발견된 석굴암은 본존불을 비롯 석굴 내부의 여러 조각들을 약탈해 가려던 일본인들에 의해 분해되었는데 급작스런 해방으로 급히 떠나느라 다행히 그대로 남겨졌다고 한다. 그러나 석굴의 원모습이 남아있지 않아 일본인들에 의해 분해된 돌조각들은 아직도 온전한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일부는 비바람을 맞고 있다고. 눈부신 문명과 빛나는 유산을 물려받았지만 그것들을 지키지 못한 채 약탈당한 약소국의 비애를, '자랑스런' 고고학의 발굴 뒷켠에서 발견했다.


저자의 말처럼 고고학의 개척기는 지났다. 그러나 얼마전 고려시대 침몰한 배에서 수천점의 고려청자를 발견한 것이나 경주 남산에서 1300년 만에 발견된 대형 마애불 등을 볼 때 현재에도 여전히 수많은 발굴이 이루어지고 있다. 오히려 발전된 과학기술의 힘을 빌려 과거에는 상상도 못했던 방법들이 발굴에 동원되고 있어 앞으로 더욱 많은 발굴이 기대된다. 저자는 현실과 다소 동떨어진 낭만과 모험이 고고학의 큰 역사를 이룬 것처럼 앞으로 이루어갈 고고학에서도 상상력의 힘은 크게 작용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나 역시 그의 생각에 동의한다.

<몽상과 매혹의 고고학>은 멀고 어렵게만 느껴지던 고고학을 대중들과 조금은 가깝게 해주는 책이라 생각된다. 비록 아주 쉽고 재미있게 읽히는 책은 아니지만 고고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한 번쯤은 읽어볼 만한 책이 아닐까 싶다.








* 오탈자) 308쪽 8째 줄 : 오른쪽 → 왼쪽 (편집이 사진을 왼쪽으로 두었는데 미처 수정을 못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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