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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팅게일의 침묵 ㅣ 가이도 다케루의 메디컬 엔터테인먼트 2
가이도 다케루 지음, 권일영 옮김 / 예담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데뷔작 <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으로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상을 수상한 현직 의사 출신 소설가 가이도 다케루의 신작이 나왔다. 전작을 꽤 재미있게 읽어서 후속작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거의 일 년 만에 출간소식이 들려왔다. 궁금한 마음에 덥썩 집어들었는데 두께가 장난이 아니다. 슬쩍 마지막장을 넘겨보니 전부 530쪽이 넘는다. 헉. 그러나 손에 잡았을 때 책의 느낌은 여전히 좋다. 다른 일본소설들도 쓸데없는 양장본이 아니라 이런 느낌 좋은 반양장본으로 만들면 좋으련만. 여튼 두께의 압박감에 살짝 기죽었으나, 그렇다고 다구치와 시라토니 콤비의 활약을 포기할 수는 없지. 책장을 넘겨 그들의 주요 활동무대인 도조대학병원으로 빠져든다.
그의 두 번째 작품인 <나이팅게일의 침묵>은 전작의 배경과 주인공이 그대로 이어지는 연작소설 형태를 띠고 있다. 이책에도 전작과 같이 도조대학병원을 주요배경으로 다구치와 시라토니가 등장한다. 전편처럼 다구치는 처음부터(왜냐면 도조대학병원에 몸 담고 의사니까), 시라토니는 중반이 넘어서야(사건이 터져줘야 나타날 건수가 생기니;) 등장한다. 그리고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인 사요와 미즈토를 포함해 주요 등장인물들이 쏙쏙 등장한다. 이번엔 소아과병동이 주무대다.
오렌지 신관 2층 간호사 사요는 그녀만의 특별한 노래 솜씨로 병원의 송년회 장기자랑에서 1등을 차지한다. 그날 밤 단짝 쇼코와 술집 거리를 거닐다가 묘령의 남자 시로사키의 갑작스런 초대에 가릉빈가(극락에 살면서 고운 목소리로 노래한다는 사람 머리에 새의 몸을 지닌 상상의 새)라고 불리는 가수 사에코의 라이브 콘서트에 참석하는 행운을 누린다. 그러나 사에코의 노래 『랩소디』를 듣던 사요가 갑작스레 비명을 지르고, 그것을 계기로 얼떨결에 무대 위에 올라간 사요가 사에코의 『랩소디』를 다시 부르는 도중에 사에코는 피를 토하며 쓰러진다.
한편 소아병동에 근무하는 사요의 담당환자인 미즈토와 아쓰시는 레티노블라스토마(망막아세포종, 안암의 일종이라고)를 앓고 있다. 암이 다른 곳으로 전이되기 전에 안구 적출수술을 받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지만 어린 나이의 그들이 감당하기엔 현실은 너무 잔인하다. 특히 상태가 심각하나 미즈토는 눈을 빼느니 차라리 죽겠다며 수술을 거부하고, 그의 부모는 병원을 찾지 않는다. 수술 동의를 받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사요는 미즈토를 겨우 달래 그의 아버지를 만나지만, 알콜중독에 폐인의 모습으로 나타난 그는 자식에게는 관심도 없는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한다. 그리고 얼마후 미즈토가 증오해 마지않던 그의 아버지가 시체로 발견됐다. 그것도 내장들이 모두 토막난 채로.
<나이팅게일의 침묵>은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이 두 가지 이야기가 서로 스쳐가듯 맞물리면서 진행된다. 그 중심엔 특별한 노래 재능을 가진 상냥한 간호사 사요와 자신을 학대한 아버지를 증오해 수술을 거부하는 슬픈 운명의 소아안암 환자 미즈토가 있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특별한 노래를 둘러싸고 가릉빈가 사에코와 그의 매니저이자 작곡가 시로사키가, 토막살인 해결을 위해 뛰어다니는 사건 담당 가노와 비호감 외모에 명석한 두뇌를 탑재한 우리의 천재 시라토니가, 그리고 그 사이에 언제나 그렇듯 본인의 의사와 전혀 상관없이 사건 속에 말려들어 졸지에 해결에 약간이나마 도움을 주는 구치외래의사 다구치가 등장한다. 그외 병원 내 다양한 조연들이 소소한 재미를 준다.
그러나 각각 흥미로웠던 두 가지의 이야기는 함께 어우러져서도 큰 시너지를 만들어내진 못한다. 현직 의사라는 작가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 생생히 살려낸 병원의 모습들은 여전히 흥미로웠지만, 이야기의 전개가 전체적으로 더디고 늘어져서 미스터리 특유의 팽팽한 긴장감을 느낄 수가 없었다. 500쪽을 넘기는 분량 중에 시라토니가 등장하기 전인 300쪽까지 등장인물의 소개와 사건의 설명에 너무 많은 지면을 할애해 지루하기도 했다. 물론 사요와 사에코의 ’공감각적인 신비로운 노래 재능’이라는 다소 생소하고 흥미로운 소재가 등장하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녀들의 재능에 쉽게 공감하지 못해 더 시큰둥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300쪽을 넘어가면 우리의 구원투수, ’로지컬 몬스터’ 시라토니가 등장한다. 그리고 오직 그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사건은 급물살을 타고 진행된다. 이 양반은 늘 이야기의 중반을 넘어서야 얼굴을 들이민다. 일찍 좀 나와서 좀 즐겁게 해주지! (하긴 사건도 안 일어났는데 수사를 할 순 없지만; ㅋㅋ) 구원투수답게 시라토니는 자신의 천재적 두뇌를 마구 회전해 사건 해결에 큰 활약을 하고, 종국으로 치닫던 사건의 해결되면서 어느새 모든 갈등과 의문들이 풀린다.
전작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던 까닭일까. <나이팅게일의 침묵>은 전작 <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의 재미에 미치지 못한다. 책은 더 두꺼워졌지만 이야기의 전개 속도는 더 느려졌다. 결정적으로 이번 이야기는 범인의 존재가 너무 뻔하게 드러난다! 설마?하는 생각에 잔머리를 굴리다 다른 늪으로 빠져버린 독자들도 있겠지만, 애초에 범인의 윤곽이 너무 쉽게 드러나 재미가 반감됐고 예상대로 진행되는 스토리가 김빠졌다. 물론 마지막 부분에 약간의 반전 아닌 반전이 기다리고 있긴 하지만(과연 그게 반전인지 잘 모르겠지만) 그 강도가 약해 기대에 부흥하지 못했다.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곧 나올 3편에서는 2편과 거의 동시간대에 벌어지는 다른 사건들을 다루고 있단다. 2편과 3편은 원래 하나의 이야기로 지어졌으나, 이야기가 너무 복잡하고 분량이 많아서 출판사의 요구에 따라 두 권으로 나누어 씌여진 거라고. 그래서 2편은 1편과 3편을 이어주는 성격이 강해 조금 밋밋하다는 변명(?)과 함께 곧 나올 3편이 더 재미있다는 말까지 유혹성 발언까지 잊지 않는다. 2편이 기대보다 못해 고민하는 나를 꿰뚫어 본 역자의 낚시성 멘트, 놀랍다! 하긴 지루한 연결고리들은 2편에서 이미 끝냈으니 3편은 최소한 2편보다는 재미있겠다 싶기도 하다. 다시 얇은 귀가 팔랑팔랑. 2편에서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갔던 가이도 다케루, 3편에서는 그 날개를 다시 펼 수 있을지 사뭇 궁금해진다.

+ 구시렁구시렁
- 하나, 전작 <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에서도 좀 거슬리긴 했는데, 역시나~ 이번에도 번번이 영어를 그대로 가져다 놓았다. 의학 용어는 워낙 외래어 투성이라 그렇다쳐도, 그외에 충분히 우리말로 바꿀 수 있는 단어들까지 영어를 그대로 가져다 놓은 것은 역자로서 너무 무책임하지??말과 표현으로 바꾸는 작업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외래어를 그대로 가져다 발음만 한글로 표기하기보다 그것을 잘 나타내줄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우리말을 찾는 데 좀 더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치 않나 싶다. 요즘 그런 책들이 점점 늘어나 안타깝다.
- 둘, 입말로 흔히 사용돼 오히려 올바른 맞춤법이 어색한 단어들이긴 하지만, 그래도 활자화된 책이기에 살짝 두 개만 짚고 넘어간다. (사실 나도 쓰거나 읽을 때 무척 어색한 건 어쩔 수 없다;;;)
- 248쪽) 허접한 → 허섭한
- 444쪽) 바래 →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