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 - 세계적인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가장 속물적인 돈 이야기
석영중 지음 / 예담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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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톨스토이와 함께 러시아의 대문호인 도스토예프스키가 돈을 위해 작품을 썼다고?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 이책을 접했을때 제목이 너무 자극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아마 나말고도 많은 분들이 그렇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도스토예프스키가 정말 그랬어?하며 약간의, 그러나 아주 강력한 호기심이 솟아났다. 그 위대한 작가가 돈을 위해 펜을 들었다니, 어찌 궁금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고상한 문학은 세속적인 돈 따위(?)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아직 팽배하지만, 글쓰기가 곧 밥벌이인 작가의 입장에서 보면 작품과 돈은 불가분의 관계인 셈이다. 그러나 이책이 흥미를 끄는 가장 큰 이유는 저자가 분석하려는 대상이 단지 돈만을 벌기 위해 말도 안되는 글을 써댄 무늬만 작가가 아닌,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고전'이란 이름으로 여전히 많은 독자들의 열렬한 지지와 사랑을 받고 있는 대작가 도스토예프스키라는 점일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제껏 끝까지 완독한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이 없다는 사실이 문득 떠오랐다. 어째 (이제서야) 살짝 부끄러워진다. 그러나 이내 주변에 나같은 이들이 적지 않다는 점에 위안을 받는다. 물론 이건 하찮은 핑계일 뿐이다. 그러나 이름만 들어도 묵직한 고전문학, 그것도 장황한 문체로 이어지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은 그의 이름만큼이나 선뜻 다가서기가 쉽지 않은 걸 어쩌랴. 그의 작품을 온전히 읽진 못했지만 그래도 그에 대한 궁금증은 남아있기에 직접 책을 읽기에 앞서 이책을 집어들었다. 돈의 관점에서 바라본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삶과 문학, 어째 흥미진진할 것 같다.


가난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난 도스토예프스키는 투철한 절약정신으로 일생을 보낸 그의 아버지와 돈에 대한 철학을 달리 했다. 수중에 들어온 돈을 내일을 기약하기보단 주저없이 오늘을 신나게 즐기는 데 사용했고, 그런 헤픈 씀씀이로 인해 그는 평생을 돈에 쪼들리는 궁핌한 생활을 했단다. 돈이 부족하니 매번 출판사로부터 작품료를 선불로 받았고, 항상 돈이 절박한 불리한 입장에서 계약을 하다보니 그는 다른 작가들에 비해 턱없이 싼 값에 책정됐으며, 빠듯한 기한을 맞추기 위해 미친듯이 작품을 쓰다보니 충분한 퇴고를 마치지 못한 경우가 부지기수였다고. 설상가상으로 가난한 살림에 도박에 빠져들어 그나마 갖고 있던 돈을 날리는가 하면, 여인에게 사랑을 고백하느라 빚을 얻기에 주저하지 않았다고 하니 이쯤되면 이 남자 정말 구제불능이란 생각이 슬며시 고개를 든다.

그러나 대작가의 삶에 실망스럽다고 해서 여기서 책을 덮는 우를 범하진 마시라. 설마 저자가 작가의 명성에 흠집을 내기위해 이책을 썼으려고. 본격적인 작품 분석에 앞서 책의 앞머리에 이런 이야기를 미리 꺼내놓은 것은, 낭비가적인 기질이 다분한 그의 성격과 삶을 먼저 살펴봄으로써 그의 작품들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다. 실제로 그의 작품에는 돈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돈을 중심으로 얽히고 설킨 작품속의 다양한 인물군상들을 통해 도스토예프스키는 평생동안 돈에 대한 고민과 긴장을 놓치 못했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형성된 돈에 대한 탁월한 이해와 철학들을 쏟아낸다. 작품을 통해 드러나는, 인간에게 있어 돈의 중요성을 깨닫고 돈의 역할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권력 등 돈에 대한 모든 것들을 꿰뚫어본 그의 통찰력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는 제목처럼 '돈'이라는 관점에서 그의 작품들을 바라보고 분석한 책이다. 그렇기에 이책의 내용이 작품 전체를 아우르진 못하지만, 통속적인 것과 가장 거리가 멀 것 같은 고전문학을 '돈'이라는 가장 세속적인 시선으로 접근한 신선한 발상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문학에 대한 저자의 풍부한 지식은 충분히 흥미로웠다. 작가와 작품의 이야기를 엮어내는 저자의 유려한 글솜씨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들을 한결 친숙하게 느끼게 해주었다.

또한 이책은 『가난한 사람들』, 『죄와 벌』, 『백치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등 도스토예프스키의 대표적인 작품 7편을 예로 들고 있는데, 각각의 작품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돈의 이야기를 그의 드라마틱한 실제 삶과 연계해 풀어내어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단락마다 첫머리에는 그책의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해 두어 미처 책을 읽지 못한 독자들을 배려하고 있다. 다루고 있는 작품의 내용을 이해해 글을 좇아가는데 도움이 된다는 점에선 여러모로 유용했으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처럼 줄거리 요약을 통해 작품의 결말까지 알아버린 점은 못내 아쉬웠다. 물론 결론을 알지 않고는 작품 분석을 할 수가 없으니 하나마나한 불평이지만;)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이 여전히 사랑받는 건 돈과 치정, 살인이라는 가장 세속적인 소재로 이야기를 이어가면서도 그 안에 심오한 철학을 담아내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런 작품이 나올 수 있었던 바탕엔 그의 고단한 삶의 영향도 적지 않으리라. 형의 빚을 떠안고 사람들에게 매정하지 못했던 이유로(자신의 헤픈 씀씀이는 물론 포함) 평생을 궁핍 속에서 살았던 그의 삶은 무척이나 안타깝지만, 어쩌면 그의 삶이 그렇게 고단했기에 지금의 주옥같은 작품들이 탄생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가난에 시달리고 시간에 쫓겨 작품을 쓰면서도 자신만의 기준을 지키려 애썼고, 충분히 퇴고할 시간을 갖지 못했음에도 불멸의 고전으로 불리는 작품들을 써낸 그는 진정 천재임에 틀림없다.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는 '돈'을 통해 그간 어렵게만 느껴지던 도스토예프스키를 한결 가깝게 재미있게 들려주는 책이다. 이책을 통해 그의 삶의 이야기와 작품의 개략적인 내용들을 맛볼 수 있어 즐거웠고, 어려울 거라는 편견에 미리 손을 거둬들였던 그의 작품들에 대한 호기심이 파릇파릇 돋아났다. 그러나 한편으론 그의 작품들을 먼저 읽어보고 이책을 읽었더라면 더 재미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남았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들에 대한 막연한 거리감을 갖고 있다면 이책을 통해 그것들에 대한 새로운 흥미를 얻을 수 있을 것이고, 이미 그의 문학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이책을 통해 그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재미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전자에 속하는 나는 이제 저자가 전해준 도끼 문학의 재미를 직접 느끼기 위해 그의 작품 속으로 여행을 떠나볼까 한다. 그런데 나같은 도스토예프스키 초보는 과연 어떤 작품부터 읽는 게 가장 좋을까. 이제부터 살짝 고민을 해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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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로 고래잡는 글쓰기 - 글 못 쓰는 겁쟁이들을 위한 즐거운 창작 교실
다카하시 겐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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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애초부터 소설쓰는 법을 배우기 위해 이책을 잡았던 건 아니다. 시시껄렁한 혼잣말을 끄적대는 것도 힘에 부치는 내가 소설이라니, 무슨 말씀을. 그저 지금 쓰는 잡문 나부랭이나마 제대로 맛깔나게 써보는 것이 나의 소소한 희망사항이다. 이 책, '글 못 쓰는 겁쟁이들을 위한 즐거운 창작 교실'이란다. 글 못 쓰는 겁쟁이, 딱 나네.. 이런 생각이 들자 <연필로 고래잡는 글쓰기>란 다소 뜬금없는 제목도 확~ 땡겨준다. 그래, 연필을 창 삼아 어디 고래나 한 번 잡아 볼까. 이렇게 책을 펼쳤다.

그런데 그저 '글쓰기법'을 알려주는 줄 알았더니 아니다. 저자는 처음부터 '소설'에 대해 이야기한다. 소설 쓸 생각이 없던 나는 어찌하나. 책을 덮어야 하나. 그런데 그러기엔 이 책, 너무 재미있다! 소설책도 아닌 것이, 인문서적이 이렇게 재밌어도 되는 건가(물론 안 될 건 없지만;). 게다가 웃기기까지 한다. 사실 읽는 동안 많이 웃었다. 여태껏 작법관련책을 별로 접해보진 못했지만 이렇게 웃기고 이렇게 재미있는 글쓰기 책은 처음이다. 그래서 소설 쓰는 법을 배울 생각이 전혀 없었음에도 흔쾌히 그를 따라 고래잡는 '소설' 쓰기의 세계로 향했다(내가 생각한 소설과 그가 말하는 '소설'은 조금 다르다. 뒷부분에 언급하련다;). 솔직히 그의 수업을 듣게 된 건 순전히 책이 너무 재미있어서, 뒤에 이어질 내용이 궁금해서 도저히 중간에 책을 덮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지만 말이다.


그럼 어떻게 연필로 고래를 잡을 수 있을까. 저자는 느긋하게, 그러나 치밀하게 계획된 글쓰기의 세계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그의 수업은 여러 면에선 다소 뜬금없어 보이기도 하는데, 개인적으론 그런 점들이 이책을 더욱 재미있고 특별하게 만들지 않나 싶다. 물론 나처럼 그저 즐기려는 생각이 아닌, 글쓰기에 대한 '실용적인' 어떤 '방법'을 배우고자 이책을 집어든 독자라면 '이게 무슨 글쓰기 법이야? 얼른 글 잘 쓰는 방법이나 가르쳐 달라고!'라며 버럭 화를 낼지도 모르겠다. 그런 분들은 이책을 과감히 덮고 시중 의 쏟아져 나오는 실용적 글쓰기 '기술'을 가르쳐주는 책들을 찾아보시는 게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

책의 목차는 다소 불친절하다. 큰 덩어리 뿐만 아니라 겐이치로가 던져준 열쇠의 페이지까지 같이 소개해주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독자들에게 일일이 찾아보는 재미를 선사하려고 그런 것은 아니겠지, 설마. 초등학생들의 소설 수업으로 시작된 겐이치로의 글쓰기 수업은 그 시작만큼이나 아주 독특하다. 무엇을 주제로 어떤 방법으로 글을 써야 하는지 미주알고주알 알려주는 다른 작법책과 달리 그는 소설 쓰기에 앞서 가장 먼저 할 일로 아무 것도 시작하지 않은 상태를 충분히, 마음껏, 실컷 즐기라고 말한다. 그리고 섣불리 글을 시작하지 말고 글과 상관없는 전혀 다른 것들을 떠올리며 고래 다리가 몇 개인지 조사하라고 귀뜸해준다. 이건 또 무슨 뜬금없는 말인가.


그러나 그가 던져주는 열쇠들을 하나하나 받다보면 어느새 그의 황당무계한 글쓰기법을 조금씩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에리히 캐스트너의 이야기를 빌려 겐이치로는 이야기란 쓰는 게 아니라 붙잡는 거라고 말한다. 세상을 다른 시선으로 볼 때 당신 앞에 나타나는 이야기, 그것을 붙잡으면 바로 당신만이 쓸 수 있는 소설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주위를 떠도는 이야기는 흠씬 얻어맞은 개와 같아서 섣불리 다가가면 도망쳐 버리기 일쑤다. 반짝 떠오른 아이디어가 금새 사라져버리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성급히 말을 걸거나 다가가기 보다는 그저 즐겁게 놀아주라고 한다. 잘 하겠다는 의무감을 던지고 즐겁게 놀아주라고. 그러면 그 '얻어맞은 개'도 조금씩 당신에게 다가올 것이라고.

이야기를 붙잡았다면 이제는 날아오는 공을 받아보자. 세상의 온갖 이야기들이 공이 되어 우리에게 날아온다. 이책에서 저자가 던져준 공 중에는 다소 난해하거나 충격적인 것들도 있었다(몇몇은 행여 어린애들이 볼까 겁나던;). 그 공을 받느냐, 피하느냐는 당신의 몫이다. 그러나 다양한 공들을 보다 정확히 붙잡음으로써 우리는 세상을 바라보는 넓은 시야와 안목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충분한 연습을 통해 날아오는 다양한 공들을 정확히 잡을 수 있게 된다면 이제 그것들을 흉내내어 보자. 아기가 엄마의 말을 흉내내듯 다양한 공들을 흉내내다 보면 어느새 성큼 성장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이제 살아있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써보자, 살짝 즐거운 거짓말도 뿌리면서.


처음에 나는 소설을 쓰기 위해 이책을 읽은 게 아니라고 말했다. 그리고 모든 수업이 끝난 후 다카하시 겐이치로는 이렇게 말한다. 이책에서 가르쳐준 '소설'은 우리가 생각하는 소설이 아니라 그보다 더 넓은 범위의 언어 덩어리라고. 소설의 원천이 되는 것이 바로 '소설'이라고 말이다. 그러니 나는 이책을 제대로 집어든 셈이다. 이책은 일반적인 소설 뿐만 아니라 저자가 말하는 '소설' 쓰는 법이 함께 포함된 책이기 때문이다.

앞서 이야기했 듯이 다카하시 겐이치로는 이책을 통해 글쓰기에 대한 기술을 전해주진 않는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본질적인 것, 즉 글쓰기에 임하는 기본적인 자세와 마음가짐에 대해 이야기한다. 바보처럼 세상을 세세히 관찰하고, 바닥에 누워 세상을 바라보다 이야기를 붙잡은 캐스트너처럼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잘 하려는 의욕보다 글쓰기 자체를 즐기라고 조언한다. 다양한 공(이야기)들을 붙잡아 안목을 넓히고, 그것들을 흉내내어 자신의 것으로 체화시켜 가다보면 어느새 자신의 이야기를 쓸 수 있을 거라고, 그땐 자신만이 쓸 수 있는 이야기를 붙잡아 쓰라고 이 재미있는 괴짜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가르쳐준다.


이것도 글이라고, 몇 자 끄적이는 게 힘들 때마다 새삼 글쓰는 일을 업으로 삼은 분들에 대한 존경심이 불쑥불쑥 솟곤 한다. 이책을 읽으면서도 그랬다. 이렇게 유쾌하고, 재미있게, 그리고 제대로 글을 써낸 다카하시 겐이치로가 참말로 존경스러웠다. 그의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이책은 그와의 첫만남인데, 단 한 권으로 이 괴짜 작가님에게 반해버렸다. 그의 소설들은 또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 모르겠지만, 조만간 제목으로만 무수히 들어왔던 그의 <우아하고 감성적인 일본야구>라는 공을 붙잡아보려 한다. 나는 과연 그 공을 붙잡아서 흉내까지 낼 수 있을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일단 날아오는 공을 피하지는 않으련다.




- 날아오는 수많은 공 속에서 당신의 인연을 찾아주십시오. 좋아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것을 찾아주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흉내 내 주십시오. 몇 번이고 수없이 읽어주십시오. 읽고 또 읽고 그렇게 베껴 써주십시오. 거듭 거듭 베껴 썼다면 그 다음은 그 문장으로, 그것을 쓴 사람의 시선으로 이 세계를 바라보십시오. 그것을 쓴 사람의 감각으로 이 세계를 걷고 만져주십시오. 만일 그것이 당신에게 필요한 것이라면, 타인의 감각이며 시선이 조금씩 당신의 내면에 흡수되고, 자신의 감각이나 시선과 뒤섞여 새로운 감각과 시선으로 변화해 갈 것입니다. 만일 그것이 당신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땅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식물처럼 이윽고 시들어 갈 것입니다. 하지만 시든 식물은 그저 죽는 것이 아닙니다. 분해되어 무수한 구성요소로 변해 땅의 깊숙한 안쪽에 스며들어 다른 생물에 흡수되기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을 것니다. (132~3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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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성서 이야기
이경윤 엮음 / 삼양미디어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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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팔리는 책이 성경이라고 한다. 지구촌의 수많은 크리스찬들이 최소한 한 권의 성서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쉽게 납득할 수 있는 이야기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성경을 완독한 사람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 왜 그럴까. 깨알같은 글자가 빼곡하게 박힌 엄청난 두께가 주는 압박 때문에? 물론 무시 못할 요인이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천지창조에서 시작된 구약시대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와 예수님의 탄생과 부활로 이루어진 신약시대에 이르기까지 성경에 담긴 방대한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 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기적들, 비유와 상징으로 채워져 좀처럼 뜻을 헤아리기 어려운 예언서들의 난해함 등이 좀 더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또한 성서가 여러나라의 언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본래의 의도와 달리 조금씩 달라지는 경우도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성경이 번역되던 시기와 현재에 사용되는 언어 간의 적지 않은 차이가 성경읽기를 어렵게 만드는 또다른 장해물이 아닌가 싶다. 이런 점을 해결하고자 '현대어 성경'처럼 요즘말로 번역되어 읽거나 이해하기가 쉬운 성경이 있긴 하지만, 대중화의 길은 쉽지 않다. 한글성경보다 영어성경이 오히려 더 이해하기 쉽다는 이야기까지 들을 때면 성경의 우리말 번역 부분이 더욱 아쉽게 느껴진다.


교회를 다닌 적도 없고 성경을 읽어본 적이 없을지라도 하나님의 천지 창조, 다윗과 골리앗, 지혜의 왕 솔로몬, 홍해를 가른 모세의 기적, 마굿간에서 태어나신 아기 예수, 십자가에서 못박히셨지만 사흘만에 다시 부활하신 예수님 등 성경 속 이야기들을 적어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들에 호기심을 품고 성경을 펼쳐봤지만 위와 같은 이유로 중도하차한 사람들도 적지 않을 듯 하다. 성경 속의 이야기는 궁금하지만 성경을 읽기는 힘든 사람들, <상식으로 알아야 할 성서 이야기>는 바로 그런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제목 속의 '상식'이란 단어에서 눈치챌 수 있듯이 <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성서 이야기>는 신앙서적이 아니다. 이책은 역사, 철학, 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성경이 담고 있는 방대한 이야기들 속에서 '가장 핵심되는 사건, 즉 성경에 등장하는 주요한 역사적 사건들'을 중심으로 엮어놓은 인문서적, 또는 종교서적이다. 그래서 이책의 저자는 신앙인의 시선이 아닌 중립적인 관찰자의 입장에서 성경 속 사건들을 해석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고 비판적 시각을 견지하는 것은 아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탄생을 기점으로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으로 나뉘어져 있다. 구약이 하나님의 천지 창조, 아담과 하와로 대표되는 최초의 인류 탄생과 에덴동산에서의 추방, 그리고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이 하나님과 이어가는 이야기라면, 신약은 예수님의 탄생과 죽음, 부활 등으로 이어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이책 또한 성서 속의 시대와 사건을 주도한 주요 인물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이책의 편집 중 가장 도드라지는 점은 성경 속 각각의 이야기마다 그와 관련된 명화들을 대거 수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럽의 많은 명화들이 성경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떠올려볼 때 둘의 만남은 아주 적절하다. 책이 전하는 성서 이야기와 그것을 바탕으로 그려진 명화들을 함께 살펴봄으로써 성서 속 장면들을 쉽게 납득할 수 있고, 또한 성서의 이해를 통해 명화를 좀 더 깊이있게 감상할 수 있기도 했다. 또한 각각의 명화에는 간략하게나마 부연설명도 잊지 않아 책장 넘기는 재미가 쏠쏠했다.

더불어 이책의 또다른 특징은 앞서 이야기했듯이 신앙인의 시선이 아닌,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관찰자의 시선으로 성경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크리스천이 아닌 일반 독자들이 궁금해하는 성서속 내용에 대해서는 '성서만화경'이란 별도의 코너를 두어 학계의 이론이나 주장, 다른 민족에게서 발견되는 여러 신화와 전설, 기존의 성경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외경 등 성서 외의 자료들을 덧붙여 제시함으로써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성경은 기독교의 경전이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인생의 모든 진리가 담겨있는 책이다. 성경 속 여러 인물들과 다양한 사건ㆍ사고 등을 통해 인생의 다양한 모습들을 엿볼 수 있으며, 그들의 지혜 등을 통해 우리 삶의 소중한 교훈을 얻을 수도 있다. 또한 성경은 세계의 역사와도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성서 이야기>는 제목 그대로 상식 수준을 넘지 않는 수준에서 성경에 담겨있는 역사 이야기를 살펴보고 있다. 성서를 쉽게 읽히고 싶다는 기획 의도에 맞게 책의 내용도 깊이 보다는 넓고 얕음을 택한다. 그래서 성경을 자주 접하는 크리스천이나 크리스천은 아니지만 성경을 가까이하는 독자들에겐 이책이 다소 심심하게 느껴질 듯 하다. 반면 성경이 담고 있는 이야기들을 알고는 싶지만 그 방대함과 난해함에 선뜻 다가서지 못한 일반 독자들은 쉽고 부담없이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내용이나 편집에 공들인 책에서 만나는 오탈자는 진한 아쉬움을 남긴다. 이책 또한 그러했는데, 171쪽에서 시작된 예언자들의 활약에서 선지자 엘리야는 '엘리[아]'와 '엘리[야]'라는 표기가 그 부분이 끝날 때까지 계속 함께 사용되고 있다. 소제목 또한 예외가 아니니, 같은 인물을 이렇게 두 개의 표기로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을까. 또한 185쪽의 4째줄에는 한글 [은] 대신에 [dms]라는 영어 오탈자가 그대로 인쇄되어 있는 어처구니 없는 글을 볼 수 있다. 이제껏 한글 오탈자는 많이 봤어도 한글 대신에 그 자리에 영어 오탈자가 있는 경우는 처음이라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다. 아무리 1판 1쇄라고는 하지만 이건 좀 심하지 않은지. 출판전에 좀 더 세심한 교정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185쪽 4째줄 - 여호와김왕의 이 판단dms 결국 유다 왕국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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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메레르 4 - 상아의 제국
나오미 노빅 지음, 공보경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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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드디어 나왔다!
작년부터 나를 달뜨게 만든 '테메레르 시리즈'의 4권 「상아의 제국」이 드디어 출간됐다!

사실 나는 작년에 뜻밖의 실수를 저질렀다. 그건 바로 <테메레르>를 읽어버린 것! 실수라고 할 만큼 그책이 그렇게 재미가 없었느냐고? 천만의 말씀! 오히려 너무 눈물나게 재미있어서 후회했다. 이게 무슨 자다가 남의 다리 긁는 소리냐하면, 사실 나는 출간중인 시리즈물은 웬만해선 섣불리 시작하지 않는다. 감질맛나게 끝나는 책을 덮고서 그 다음 이야기를 기다려본 사람들은 그 고통을 알리라.

처음 <테메레르>를 읽을 때는 아무 의심없이 한 권으로 이야기가 끝나는줄 알았다. 제목에 '1'도 없었고, 500쪽이 넘는 두툼한 두께도 나의 순진한 믿음에 무게를 실어줬다. 그런데 신나게 책장을 넘기다 마지막 장에 이르렀는데 뭔가 이상했다. 일련의 사건들은 일단락이 됐으나 본격적인 이야기는 이제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알고보니 <테메레르>는 6권 완간 예정으로 막 출간중인 시리즈물이었다! 아, 속았다;

그런데 이번엔 다음 책을 기다리는 게 오히려 즐겁다. 다음 책이 나올 때마다 부쩍 성장한 테메레르를 만나는 것도 흥미롭고, 로렌스와 테메레르가 세계를 누비며 펼쳐보일 모험들도 궁금하다. 나오미 노빅은 테메레르 시리즈 각 권마다 놀라운 상상력과 치밀한 사건 전개, 빠른 호흡, 생생한 캐릭터, 방대한 이야기로 나를 매료시킨다. 그러니 그 기다림 또한 즐겁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번에 출간된 <테메레르 4 : 상아의 제국>은 그런 작가의 글솜씨가 절정에 달한 작품이다. 아프리카 대륙을 배경으로 한편으론 역사속의 문제(노예무역)를 끌어들이고, 다른 한 편으론 상상으로 역사를 재창조(아프리카 역사)해 독자들에게 판타지의 묘미를 한껏 선사한다. '테메레르' 패밀리답게 역시나 500쪽을 훌쩍 넘기는 두툼한 두께와 세련된 표지의 외모를 갖춘 4권은 이런 매력적인 이야기로 그간의 기다림을 단번에 보상해준다.

중국과 이스탄불을 거쳐 4권 「상아의 제국」에서는 미지의 대륙 아프리카를 무대로 한 테메레르의 모험이 그려진다. 우여곡절 끝에 프러시아 군인들을 잔뜩 태운 채 영국에 도착한 테메레르는 영국의 다른 용들이 원인 모를 전염병에 걸려 치료법조차 찾지 못한 채 힘들어하고 있음을 알게 되자 상심한다. 그러나 우연히 테메레르가 그병의 항체를 갖고 있음을 알게 되고, 테메레르는 예전에 그병을 치료해주었던 음식을 떠올린다.

전염병에 걸린 용들의 치료법을 찾기 위해 테메레르와 로렌스를 비롯한 한 무리의 용들은 다시 아프리카로 향하는 모험을 시작하고, 아프리카에 도착해 천신만고 끝에 치료제를 찾아내지만, 더 많은 수량을 확보하기 위해 아프리카 내륙으로 들어가다 예기치못한 위험에 빠져든다. 그와 함께 포로로 잡힌 로렌스 일행은 아프리카 내륙으로 끌려가 그동안 베일에 감춰져있던 아프리카 내륙의 부족들과 그곳을 다스리는 용들의 모습이 실체를 엿보게 된다. 


「테메레르」 시리즈의 앞선 이야기들이 시대적 배경과 인물, 테메레르의 혈통과 출신, 주변국과 그들 용에 대한 설명에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면 4권에서는 전편보다 더욱 흥미진진한 본격적인 모험의 세계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상아의 제국」은 총 3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1부에서는 영국에서의 노예무역폐지 논쟁을, 2부에서는 본격적인 아프리카 대륙의 모험을, 3부에서는 프랑스로 날아온 로렌스와 테메레르에게 펼쳐질 또다른 험난한 여정의 물꼬를 틔우는 사건이 등장한다. 

아프리카가 중심무대로 등장하면서 그동안 조금씩 언급되던 노예무역의 문제가 4권에서는 전면에 부각되고, 그와 관련된 윌버포스 의원, 닐슨 경, 에라스무스 목사 부부 등의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갈등이 본격화된다. 또한 테메레르가 노예무역 폐지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관련인물들이 이야기에 큰 비중을 차지하면서 노예무역 문제는 앞으로의 사건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임을 암시한다.

4권에서는 작가의 상상력이 곳곳에서 빛을 발해 기존의 역사를 새롭게 재창조한다. 유럽의 침공에 비참하게 패배했던 아프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이 유럽인들을 몰아내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고, 트라팔가 전투에서 전사한 넬슨 경을 다시 살려내 노예무역 논쟁의 중심인물로 내세운다. 또한 유럽 전역을 떨게 한 나폴레옹은 상대를 존중할 줄 아는 도량이 있는 인물로 그려진다. 

무엇보다 용이 인간과 동등한 대접을 받던 중국에서 더욱 발전해 아프리카에서는 용이 인간을 지배한다는 발상이 무척이나 신선하게 다가왔다. 문명이 가장 발달했다는 유럽의 용이 군기 정도의 취급을 받는데 비해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는 용의 권리가 한층 높다는 설정이 흥미로웠다. 이런 설정은 용권신장을 추진하고 있는 테메레르에게 적지 않은 영향으로 작용할 듯 하다.


용들의 전염병으로 시작된 4권은 그 치료제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병이 번지면서 로렌스와 테메레르는 난항에 빠지고 사건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드디어 결심을 굳힌 그들, 5권에서 그들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결정될까? 로렌스와 테메레르는 그 난관을 거쳐 5권과 6권까지 무사히 비행할 수 있을까? 4권 말미에 본격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낸 나폴레옹은 5권에선 어떤 활약을 펼칠까? 

이제 「테메레르」 시리즈도 전체 이야기의 절반을 넘어섰다. 이쯤되면 앞으로의 이야기를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도 있으련만, 여전히 나는 그들의 이야기가 어디로 튈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세계를 펼쳐보이는 작가 나오미 노빅. 그녀의 놀라운 상상력이 이제 얼마남지 않은 테메레르의 모험을 어떻게 꾸려갈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5권이여, 어서 나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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촐라체
박범신 지음 / 푸른숲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촐라체, 이름부터 입에 착착 달라붙는 이곳은 네팔의 히말라야 산맥에 있는 한 봉우리란다.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에베레스트가 있는 곳이라 그런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5천 미터가 넘는 웬만한 높이의 산도 '마운틴(mountain)'이라 부르지 않고 '힐(hill)'이라 부른다고. 숫자만으로는 그 높이를 가늠할 수 없는 나는 감도 잡지 못하지만, 문득 높이 3천 미터가 조금 안되는,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가장 높은 백두산을 히말라야 산맥에 가져다놓으면 귀여운 꼬맹이 취급받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슬쩍 웃음이 흘러나왔다. 

사실 산에 대한 지식이 거의 전무한지라 촐라체라는 지명도 이책을 통해 처음 알게됐다. 히말라야 산맥하면 오직 에베레스트만 떠올리는 단순지식의 소유자인지라 그 안에 존재하는 다른 수많은 봉우리들을 생각도 못한 까닭이다. '촐라체'라는 지명과 함께 또한 박범신 님 작품과의 만남도 이책이 처음이다. 살짝 얼굴이 붉혀지지만 한동안 한국소설, 아니 소설 자체를 거의 읽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어설픈 변명을 해본다.

한참 손놓았던 소설이라는 장르를 조정래님의 <태백산맥>을 시작으로 다시 읽기 시작했다. 그 이후론 가능한 다양한 한국문학들을 접하려고 노력중이다. 다행히 요즘 한국문학이 전성기가 다시 도래했다는 말이 들릴 정도로 다양한 연령대의 작가들이 좋은 작품을 내고 있어 무척 반갑다. 걔중에는 실망스러운 작품들도 몇 있긴 하지만 그보단 멋진 작품들이 더 많아 기분이 좋다. 그러다 때때로 내 마음을 흔들어놓는 멋진 책들을 종종 만나기도 하는데, 이책 <촐라체> 또한 그런 책이었다. 깊이있는 무게감에 읽는내내 가슴이 벅차올랐다.

알려졌다시피 <촐라체>는 네이버 블로그에 연재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던 소설이다. 기성작가의 소설이 블로그에 연재되기는 처음이라 그의 새로운 시도에 주변인들의 우려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그때마다 작가는 자신의 글을 '젊은 독자들에게 읽히고 싶다'라고 대답했다고 하는데, 기존에 그를 잘 몰랐던 나같은 독자들까지 <촐라체>의 매력에 빠져들게 만든 걸 보면 그의 바람은 성공적인 듯 하다(물론 내가 그 '젊은' 독자에 포함된다면 말이다. 아마,, 포함되지 않을까;). 블로그를 통해 좋은 작품을 알게 됐고, 그 인연으로 이책을 읽게 되었기에 그의 새로운 시도가 더욱 고맙게 느껴진다.



하나뿐인 아들을 절에 들여보낸 '나'는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네팔로 계획없는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연히 교생시절 알게 된 제자 상민을 만난다. 상민은 아버지가 다른 그의 동생 영교와 촐라체 북벽을 오를 계획을 이야기하고, 그 인연으로 나는 그들의 베이스 캠프를 맡게 된다. 한겨울 인적없는 촐라체 북벽을 최소한의 장비만 갖춘 채 짧은 기간 내에 오르려는, 위험이 다분한 그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그들 형제는 산행을 시작하지만, 촐라체는 그들이 생각했던 것만큼 만만하지가 않다.

비교적 순조로웠던 첫날과 달리 산행길은 갈수록 험난해지고, 예기치 못한 사건들이 발생하면서 두 형제의 갈등도 깊어진다. 지친 가운데 상민과 영교는 마침내 촐라체 정상에 오르지만 구름으로 뒤덮힌 정상에서 그 기쁨을 만끽할 겨를도 없이 거친 날씨에 하산을 서두른다. 이제 무사히 내려올 일만 남았는데 그들의 하산길은 녹록치가 않다.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크레바스를 피해 신중하게 빙산을 내려오는 상민 뒤에 영교가 그만 발을 헛디뎌 추락하고, 그와 한 밧줄에 묶여있던 상민까지 위험에 처한다.


촐라체는 그들의 몸을 만신창의로 만들었지만, 그 조난 사건은 오히려 상민과 영교가 마음의 문을 열고 서로에게 조금씩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준다. 아버지가 다른 형제라는 모진 인연이 만들어낸 온갖 오해와 그로 인해 생긴 애증의 거대한 벽을 허물기 시작하자 그속엔 작고 상처입은 영혼의 속살이 드러난다. 서로를 미워했던, 그러나 그만큼 사랑했던 두 형제는 서로의 상처를 향해 뒤늦은 화해의 손길을 내민다.

그와 함께 이어지는 극한의 고통스러운 상황속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둘은 정신적 자유를 맛본다. 그들로 하여금 현실을 떠나 촐라체 북벽까지 오게 만든 각각의 죄책감, 세상을 향한 분노, 우울한 현실 등 그간 그들을 짓누르던 삶의 조각들을 촐라체에서 모두 벗어던진다. 그렇게 삶에 대한 애증을 온전히 비워버리자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생을 향한 열망이 다시 되살아났다. 그 열망이 촐라체에서 그들을 살려냈다. 상민과 영교에게 있어 촐라체는 삶의 끝임과 동시에 새로운 시작인 셈이다.


클라이머들를 소재로 한 책이라 쉬지않고 등장하는 생소한 산악 전문용어들 덕분에 책을 읽는 처음 얼마간은 엄청 헤맸다. 피켈, 크레바스, 프렌즈 등등 아는 단어라곤 하나도 없으니 그럴 수 밖에. 다행히 뒷부분에 수록된 '등반 용어'를 뒤적이며 도움을 받았지만, 책을 읽다 매번 뒷장을 뒤적이는 게 여간 번거롭지 않았다. 책 읽는 속도도 느려짐은 말이 필요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정 전문영역을 다룬 소설은 직접 경험하지 못한 낯선 세계를 간접적으로나마 맛볼 수 있다는 점에서 무척 매력적이다. 더불어 얄팍하게나마 그들의 정서를 공감할 수도 있다는 것도 큰 수확이다. <촐라체>도 그런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소설이었다. 예전엔 목숨걸고 산을 오르는 산악인들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는데, 상민ㆍ영교와 함께 촐라체 빙벽에서 동거동락하다보니 그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지금도 완전히 공감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산과 산악인을 소재로 한 이야기지만 <촐라체>는 단순히 산악소설에 머물지 않는다. 빙산과 클라이머는 곧 우리의 인생길과 그길을 걷는 각자의 모습으로 치환되고, 작가는 거대한 빙벽을 오르는 두 형제를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비춰보인다. 거대한 사회속의 '나'라는 존재에 대한 고민과 번뇌가 나로 하여금 그들을 따라 촐라체에 오르게 만든다.

책의 서문에서 작가는 '문학'이 자신의 영원한 촐라체라고 말한다. 책을 덮으며 그가 이번 촐라체를 훌륭하게 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럼 나의 촐라체는 무엇일까. 목숨을 걸고 산을 오른 그들처럼, 글쓰기에 자신을 건 작가처럼 모든 걸 걸 만큼 지독하게 열망하는 것이 내게 있었던가. 책을 다시 넘겨보며 나의 촐라체를 더듬어본다. 벼랑으로 치닫던 현실에서 그들의 마지막 희망이 되어준 촐라체처럼 팍팍한 삶에서 나를 지탱해줄 수 있는 나만의 촐라체를 지금이라도 찾아나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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