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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효주, 손끝으로 세상과 소통하다 - 초밥장인 안효주의 요리와 인생이야기
안효주.이무용 지음 / 전나무숲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학창시절에 소풍의 즐거움 중 하나가 엄마가 손수 싸주신 김밥을 먹는 것이었다. 아마 많은 친구들이 그러했으리라. 그때는 지금처럼 김밥전문집이 대중화되지 않은 때라 김밥은 소풍이나 나들이 같은 특별한 날에나 만날 수 있는 음식이었으니까. 그래서 가족들 중 누군가가 소풍을 가게되면 김밥을 함께 먹을 수 있다는 기쁨에 즐거워하곤 했었다. 김밥을 싸실 때마다 엄마는 항상 초와 설탕으로 양념한 밥을 준비하셨는데, 그것은 '엄마표 김밥'의 가장 큰 특징이었다. 김과 속재료 사이에 자리잡은 초밥(초로 양념한 밥)의 새콤달콤한 맛은 김밥속 다른 재료들과 멋지게 어울렸고 그맛은 매번 어린 나를 감탄시켰다. 물론 지금도! 아, 생각만해도 침이 고인다. 쓰읍. ;)
그래서 난 '초밥'을 보면 가장 먼저 엄마의 김밥속 새콤한 식초 냄새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사실 그 둘은 '식초'라는 공통점 밖에 없지만, 어린날의 추억은 기분좋게 식욕을 자극하는 새콤한 향기만으로 그것들을 함께 이어준다. 이런 '엄마표 김밥'의 영향으로 내게 '초밥'은 낯설긴커녕 추억의 향기를 머금은 음식처럼 느껴졌다. 더불어 바다를 끼고 있는 도시에서 수시로 싱싱한 생선회를 접하며 살아온 내 입맛은 밥과 생선살이 공존하는 초밥이라는 음식과 더욱 빨리 친해지는 바탕이 되어주었다.
<안효주, 손끝으로 세상과 소통하다>는 그 유명한 일본만화 <미스터 초밥왕>에 '한국 초밥왕'으로 소개된 초밥 장인 안효주 씨의 초밥에 대한 열정과 철학, 그리고 초밥을 향한 그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맛볼 수 있는 책이다. 대개 성공한 사람들의 에세이가 그러하듯 이책 또한 지금의 자리에 서기까지 거쳐왔던 힘들고 어려웠던 지난날에 대한 회상으로 시작되리라 생각했는데, 웬걸, 그의 책은 첫시작부터 초밥과 초밥을 향한 그의 열정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삶의 모든 시작과 끝이 초밥인 남자, 과연 '한국의 초밥왕'답다.
내로라하는 호텔 주방을 책임지고 있던 그는 어떤 행사를 통해 <미스터 초밥왕>의 작가 테라사와 다이스케와 만나게 된다. 그곳에서 다이스케는 그에게 한국만의 초밥을 만들어달라는 제안을 하고, 그것을 수락한 그는 초밥의 달인인 작가의 혀를 만족시키기 위해 한국만의 색깔을 내면서도 초밥 본연의 맛을 잃지 않는 초밥을 개발하기 위해 많은 고민과 실험을 거듭한다. 그 결과 한국의 대표음식인 인삼의 쓴맛을 제거하고 초밥과 적절히 어우러지게 완성한 인삼초밥의 개발에 성공하고, 그것은 까다로운 초밥왕 작가 다이스케의 입맛을 만족시킴은 물론 그와 그의 초밥이 '한국의 초밥왕'으로 만화속에 등장하는 계기가 된다.
책의 첫 에피소드만으로도 초밥에 대한 그의 열정과 실험정신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기존의 초밥에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재료와 새로운 맛을 향한 실험을 계속하는 그의 도전정신이 아마 지금의 그를 있게 한 가장 큰 원동력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단락 「맛의 드라마를 연출하다」의 '오마카세'의 가장 마지막 반전인, 손님을 앞에 두고 즉석에서 새로운 초밥을 만들며 그 스릴을 즐기는 그의 모습을 통해 끝없는 실험정신과 그러면서도 그것을 즐길 줄 아는 여유를 함께 여유까지 느낄 수 있었다. 역시 장인이다.
책은 크게 다섯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초밥에 대한 그의 열정과 철학이 담겨있는
「요리로 교감하다」, 요리사가 초밥의 선택권을 전적으로 가지고 맛의 향연을 펼쳐보이는
「맛의 드라마를 연출하다」, 초밥을 만드는 과정과 그에 임하는 자세를 엿볼 수 있는
「초밥의 기본을 말하다」, 초밥을 즐길 때 지키면 좋은 예의를 논하는
「초밥의 매너를 말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금의 초밥왕이 되기까지 걸어왔던 개인사와 그길의 등불이 되어준 스승님에 대한 존경, 초밥 장인으로서의 앞으로의 포부 등을 들려주는
「행복한 요리사를 꿈꾸다」. 단락마다 각각 다른 이야기들이 담겨있지만 매번 초밥을 향한 그의 애정과 멈추지 않는 열정, 겸손한 마음가짐 등은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권투를 그만두고 우연히 일을 하게 된 곳이 초밥집이라 일식에 몸담게 되었다는 그의 지난 이야기를 듣다보면 어쩌면 초밥은 그에게 이미 정해진 하나의 운명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초밥의 최고 장인에 오르기까지 그에게도 적지 않은 고난이 있었다. 그러나 고난을 헤치고 성공한 다른 사람들처럼 그 또한 수많은 연습과 각고의 노력을 통해 자신의 목표를 향해 쉬지 않고 달렸고, 차근차근 성공의 계단을 밟아나갔다. '한국의 초밥왕'은 초밥을 향한 지칠줄 모르는 그의 열정과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그의 겸손한 자세가 합쳐져 만들어진 것이다.
책을 읽는 동안 그의 초밥 이야기도, 그의 삶도, 그의 열정도 모두 존경스러웠다. 자신이 원하는 것에 진정으로 미칠 수 있는 사람들만이 그곳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그를 통해 다시 한 번 느꼈다고나 할까. 항상 주변탓만 하며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미치지 못한 채 미지근한 태도로 삶을 허비하고 있는 나 자신을 다시금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의 열정은 그렇게 하나의 자극으로 다가왔다.
<안효주, 손끝으로 세상과 소통하다>는 '인간' 안효주보다 '요리사' 안효주에 초점을 맞춘 책이다. 그래서 그의 개인적인 성공담보다 초밥에 대한 이야기가 훨씬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고난을 딛고 성공한 이야기를 기대했던 독자라면 조금 서운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초밥왕으로부터 듣는 초밥 이야기가 궁금했던 독자라면 꽤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듯 싶다.
먹음직스런 초밥들이 자신의 자태를 한껏 뽐내고 있는 책장들을 넘기는 동안 입 안에 고여드는 침을 넘기느라 힘들었다. 꼴깍꼴깍 침 넘기는 소리가 얼마나 귀를 자극하는지. 하긴 맛깔스런 초밥들을 눈 앞에 두고 어찌 태연할 수 있으랴. 책에 실려있는 사진을 보며 그가 묘사하는 초밥의 맛을 상상해 본다. 꿀꺽~ 침을 삼키며 마침내 마지막 장을 덮었다. 언젠가 입에 넣는 순간 사르르 녹아버린다는 '안효주표 명품 초밥'을 먹어보고 싶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땐 폼나게 먹어주리라! 내일은 엄마랑 오랫만에 맛있는 김밥이나 말아봐야겠다. 초와 설탕으로 버무린 새콤달콤한 밥으로 만든 엄마표 명품 김밥, 사진 속 그의 초밥 못지 않게 내 혀를 자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