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
생 텍쥐페리 지음, 강주헌 옮김 / 예담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생텍쥐페리의 대표작이자 오랫동안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어린 왕자>가 새롭게 출간됐다. 이전에도 워낙 많은 판본의 <어린 왕자>가 있었지만, 이책은 정식으로 생텍쥐페리의 원본 삽화의 라이센스를 사들여 출판한 책이란다. <어린 왕자>의 삽화가 책과는 별도의 저작권으로 관리되고 있으며, 기존의 수많은 <어린 왕자>가 그의 삽화를 무단으로 사용해 왔다는 사실을 이책을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됐다. 전자는 ’어린 왕자’의 삽화를 이용한 다양한 팬시상품들이 꾸준히 출시되고 있다는 점을 볼 때 충분히 수긍이 되지만, 후자는 조금 충격이었다.

어쨌든 정식으로 계약한 책이 출시되었고, 이책은 그점을 강조하고자 책표지 상단에 ’오리지널 삽화가 들어간 정식 한국어판’이란 글귀를 금박으로 큼지막하게 박아놓았다. 원본 삽화의 정식판인 만큼 최대한 삽화를 잘 살리기 위해 책의 판본을 크게 하고 속지는 고급재질을 사용하는 등 신경 쓴 점이 눈에 띈다. 고급스런 양장본 앞엔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어린 왕자의 단독샷을 표지로 내걸었고, 거기다 출간기념 한정사은품으로 어린왕자 스탬프까지 덤으로 주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미 한 권 정도는 소장하고 있을 만큼 포화상태에 이르렀지만 여전히 사랑받고 있는 책이기에, <어린 왕자>의 팬이라면 이런 정성에 살며시 눈길이 돌아가는 걸 막을 수가 없다. 그렇게 나의 두 번째 <어린 왕자>가 내 손에 들려졌다. 


- 수백만 개의 별들에서 오직 하나밖에 없는 꽃을 사랑하고 있는 사람은 그 별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어요. 그 사람은 마음속으로 행복할 수 있어요. 그 사람은 마음속으로 ’내 꽃이 저기 어딘가에 있겠지······’라고 생각할 거라고요. 하지만 양이 그 꽃을 먹어버린다면, 그 사람한테는 갑자기 모든 별이 빛을 잃은 기분일 거라고요! (41쪽)

<어린 왕자>를 처음 읽었을 때가 초등학교 때였나, 중학교 때였나. 언니의 책장에 꽂혀있던 책들을 뒤적이다 군데군데 그림이 그려진 이책을 발견하곤 무작정 읽기 시작했다. 워낙 유명한 책이라 제목도 익숙했지만, 책도 얇고 글자도 큼지막했지만, 그림도 넉넉하게 실려있었지만, 그 모든 조건에도 불구하고 그땐 이책의 내용들을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단순한 동화같은 이야기의 행간 속에 숨겨져 있는 뜻들을 헤아리기엔 그땐 너무 어렸던 듯 하다.  

그러다 섬세한 심리묘사가 일품인 만화가 강경옥 님의 작품에 한창 심취해 있을 때쯤 학원물인 <17세의 나레이션>을 통해 ’어린 왕자와 여우’를 다시 만났다. 사춘기는 이미 지났을 때였지만, 한창 사춘기를 겪는 여주인공을 통해 <어린 왕자>를, 여우가 말한 길들여짐을 다시금 떠올렸다. 내친김에 이번엔 나만의 <어린 왕자>를 한 권 장만했다. 여전히 쉽지 않았지만, 읽으면서 여러가지 생각에 잠겼던 것 같다. 그중 노래가사로도 쓰인 어린왕자와 그의 장미, 만화에서도 만났던 어린왕자와 그에게 길들여진 여우 이야기의 잔상이 가장 진하게 남았었다.

- 그런데 ’길들인다’는 게 무슨 뜻이야?
- 요즘엔 많이 잊혀진 거야.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야.
- 관계를 맺는다고?
- 그래. 내게 너는 아직 수많은 소년들과 다를 바 없는 조그만 소년에 지나지 않아. 그래서 나한테는 네가 필요하지 않아. 물론 너한테도 내가 필요하지 않고. 너에게 나도 수많은 다른 여우와 비슷한 여우에 지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이면 우리는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가 될 거야. 나한테 너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사람이 되고, 너한테 나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여우가 될 테니까······. (중략) 저길 봐! 밀밭이 보이지? 나는 빵을 먹지 않아. 밀은 내게 아무 쓸모가 없어. 밀밭은 내게 아무것도 생각나게 하지 않아. 슬픈 일이지! 하지만 너는 아름다운 황금빛 머리카락을 지녔어. 따라서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밀밭이 아주 근사하게 보일 거야! 밀밭이 황금빛으로 물들 때 너를 기억나게 해줄 테니까. 그럼 나는 밀밭을 스치는 바람 소리까지 사랑하게 될 거야······. (105-7 쪽)

몇년 전엔 우연히 인터넷에서 어린왕자의 그림과 함께 떠도는 글귀를 만났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게 가장 어렵다는 글, 출처가 <어린 왕자>로 되어있다. 가슴을 치는 말이었지만, 어쩐지 생소했다. <어린 왕자>에 정녕 저런 글귀가 있었던가. 우습게도 그글의 출처를 확인하고자 다시 <어린 왕자>를 읽기 시작했고, 책에는 그런 글귀가 없었다. 조금 황당했지만 그 덕분에 다시 <어린 왕자>를 읽었고, 이번엔 장미도 여우도 아닌, ’사람들 틈에 끼여있어도 외롭긴 마찬가지지..’라고 읖조리는 사막의 뱀을 발견했다. 어쩌면 그때 그 노란 뱀처럼 많이 외로웠는지도 모르겠다.

-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외롭긴 마찬가지야. (90쪽)


그리고 이번에 다시 <어린 왕자>를 만났다. 4 번째 만남인가. 그동안 어린 소녀였던 나는 이미 이렇게 늙어버렸는데, 책 속의 어린 왕자는 여전히 어린 모습 그대로다. 어리다고 하기엔 너무 철학적이고, 생각이 많은, 사실 겉만 어리지 속은 애늙은인 우리의 어린 왕자. 여전히 가녀린 몸과 밀밭을 닮은 금발머리를 빛내며 소리도 없이 불시착한 비행사에게 다가가 양을 그려달라고 한다. 묻는 말엔 대답을 않고 선문답 하는 것도 여전하다. 그래도 그와 머무는 동안 조금씩 자신의 작은별과 하나뿐인 장미, 지구에 오기까지 거친 수많은 별들과 거기서 만난 이상한 어른들, 지구에 도착해 처음 만난 뱀과 길들임에 대해 알려준 여우의 이야기들을 풀어놓는다.

- 참 재밌기도 할 거예요! 아저씬 5억 개의 작은 방울들을 갖고 , 난 5억 개의 우물을 가지면 말이에요······. (141 쪽)
지구에서의 모든 여행을 끝내고 마침내 어린 왕자가 자신의 별로 돌아가던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텅빈 사막을 보는 알 수 없는 기분이란. 그러나 그가 자신의 별로 무사히 돌아갔으리라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자신이 길들인 하나뿐인 장미를 위해 물을 주고 유리덮개를 씌우는 등의 책임을 다 할 테고, 비행사가 그려준 양이 바오밥나무를 먹어치우는 걸 보며 기뻐할 것이다. 무엇보다 그가 여행중에 수없이 만난 어리석은 어른들을 닮은 삶을 살진 않을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읽은 건 똑같은 <어린 왕자>인데, 이책은 신기하게도 읽을 때마다 매번 다른 캐릭터를, 다른 글귀를, 그리고 다른 깨달음의 맛을 건넨다. 처음엔 장미의 특별함이, 다음엔 여우의 길들여짐이, 그리고 뱀의 외로움을 거쳐 이번엔 길들인 것에 대한 ’책임’이 내 마음에 콕 박힌다. 다시 읽을 때마다 예전에 무심코 지나갔던 단어들이 하나둘 되살아나 새로운 깨달음을 던져주는 건 참 즐거운 경험이다. 이제서야 조금씩 <어린 왕자>의 참맛을 알아가는 걸까. 매번 다시 책장을 넘길 때마다 이 작은 우화에 이렇게 깊고 다양한 의미들이 담겨있다는 것에 놀라게 된다. 이책이 오랜 세월동안 꾸준한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리라.

오늘, 황금빛 밀밭의 머리색을 가진 이 생각 많은 작은 꼬마의 이야기에 잠시 귀 기울여보는 건 어떨까.



- 잘 가. 비밀을 가르쳐줄게. 아주 간단해. 마음으로 봐야만 잘 보인다는 거야. 정말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중략) 네가 네 장미꽃을 위해 바친 시간 때문에네 장미꽃이 그처럼 중요하게 된거야. (중략) 사람들은 이런 진리를 잊어벼렸어. 하지만 너는 이 진리를 잊어버리면 안 돼. 네가 길들인 것에게 언제까지나 책임을 져야 하니까. 네 장미꽃을 책임져야 한다고······.(112-3 쪽)











☞ 삽화 정식 계약판임을 알리는 표지의 문구.


☞ 덤으로 주는 DIY 스탬프의 그림 살펴보기.


☞ 책 속 삽화. 이 책의 표지 외에도 <어린 왕자>의 표지로 많이 쓰이는 또다른 삽화이기도 하다.


☞ 다른 어린왕자 삽화와의 비교. 라이센스의 문제일뿐 삽화는 똑같다.
   어린왕자가 지구의 여행을 끝내고 자기별로 돌아가는 모습의 삽화. 이걸 보는데 눈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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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틴랜드
섀넌 헤일 지음, 오정아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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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읽어본 적이 있는가? 그것을 원작으로 제작된 BBC 방송국의 6부작 드라마 <오만과 편견>은? 드라마를 봤다면 혹시 한순간이나마 '젖은 셔츠의 콜린 퍼스'에 열광한 적이 있는가? ... 이중 하나라도 해당된다면 당신은 섀넌 헤일이 창조한 또 하나의 세상 <오스틴랜드>의 재미를 느낄 준비된 독자다.

서른세 살의 싱글녀 제인은 제인 오스틴의 열렬한 팬이다. 청소년 때 빠져든 오스틴의 작품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으며, 그것을 자신의 연애기준으로 삼은 채 살아왔다. 그녀는 또한 BBC 방송국의 드라마 <오만과 편견>의 열혈 매니아다. 특히 다아시를 연기한 콜린 퍼스, 그중에서도 '젖은 셔츠의 콜린 퍼스'에 홀딱 마음을 빼앗겨버려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아직 드라마를 보진 못했지만, 실제로 콜린 퍼스는 그 드라마를 통해 높은 인기를 누렸고, 역대 최고의 '다아시'로 선정되었다고.) '콜린 퍼스의 다아시'를 절대적으로 숭배하는 그녀는 자신의 기준인 다아시와는 다른 행동을 일삼는 현실의 남자들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그결과 그녀의 연애는 매번 상처만 남긴 채 실패의 길을 걷는다.

어느날 제인의 엄마는 먼 친적인 캐럴린 대고모님을 모시고 제인의 아파트를 방문한다. 엄청난 부자인, 그러나 죽음을 얼마 앞두지 않은 대고모님에게 좋은 인상을 남겨 그녀의 유산의 콩고물이라도 받아보려는 엄마의 얄팍한 작전인 셈. 엄마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대고모님은 제인이 화분 뒤에 숨겨둔 「오만과 편견」 드라마 DVD를 발견하고 그녀에게 의미심장한 웃음을 건넨다. 그리고는 다아시에 대한 제인의 마음을 단숨에 짚어내며 그에 대한 집착을 버리라는 조언을 남긴다. 얼마후 제인은 대고모님의 죽음과 함께 그녀에게 남긴 유산에 대한 통지를 받고, 뜻밖의 유산과 그 유산의 당황스런 실체를 알고는 심각한 고민에 빠진다.

대부분의 재산을 자선단체에 기부한 대고모님이 그녀에게 남긴 유산은 바로 제인 오스틴의 작품에 나오는 19세기의 풍경을 재현해 놓은 마을에서 19세기식의 일상과 로맨스를 즐기는, 그러니깐 일종의 19세기 테마파크인 '펨브룩 파크'에 다녀올 수 있는 영국행 휴가여행상품권이다. 다아시의 환상에서 벗어나 독신녀의 노선을 걷고자 하는 제인에게 다아시가 존재했던 시대로의 여행을 유산으로 남긴 대고모님. 그녀는 제인이 다아시의 환상속으로 직접 몸을 던짐으로써 다아시의 환상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을 권하는 배려깊은 유산을 남긴 것이다. 그리고 고민 끝에 제인은 대고모님의 유산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영국의 펨브룩 파크,라 불리는 마을에 도착한 제인은 그때부터 19세기 복장으로 갈아입고 완벽한 변신을 꿈꾸며 현실이면서 현실이 아닌 드라마같은 공간으로 뛰어든다. 21세기에서 19세기로 들어가자 이모와 이모부가 미국에서 돌아온 '조카' 제인을 반기고, 매력적인 미소를 던지는 앤드루스 대령과 초기의 엘리자베스의 눈에 비친 다아시처럼 무뚝뚝하고 싸가지 없는 노블리 씨 같은 신사도 등장한다. 또한 그녀처럼 19세기의 로맨스를 즐기기 위해 이곳을 찾은 차밍 양과 어스트와일 양도 연극에 합세하고, 저택 바깥에는 꺽다리 정원사가 그녀를 유혹한다. 정해진 각본도 대사도 없이 등장인물 모두가 자신의 진짜 모습을 감추고 19세기의 다른 사람을 연기하는 그곳, 펨브룩 파크. 제인은 그곳에서 과연 자신을 사로잡았던 다아시의 환상과 남자들에 대한 마음을 미련없이 벗어던질 수 있을까.

<오스틴랜드>는 제목에선 눈치챌 수 있듯이 제인 오스틴의 작품과 인물과 대사로 이루어진 '오스틴 월드'이다. 이야기의 전체적인 얼개는 주인공 제인이, 그리고 작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오만과 편견>을 뼈대로 해서 패러디했다. 작품 속 주인공의 이름은 제인 오스틴의 이름을 따 제인으로 정했고, 그녀가 찾은 펨브룩 파크는 엘리자베스의 마을이다. 엘리자베스와 다아시의 첫 만남과 첫 인상, 그들 사이의 대사, 계속 이어지는 그들의 만남, 청혼과 거절, 그리고 드디어 진실한 사랑에 이르는 과정은 <오스틴랜드>의 제인과 노블리 씨가 그대로 밟아가되 그때그때 재치있게 각색된다. 

<오만과 편견>을 보았다면 <오스틴랜드>의 그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이어져 결론날지 대충 짐작하면서도 21세기에 맞게 상황을 적절히 비틀고 양념을 첨가한 작가의 재기발랄함 덕분에 매번 긴장감을 느끼는 재미를 맛볼 수 있었다. 섀넌 헤일은 청소년 소설인 <프린세스 아카데미>를 통해 처음 알았는데, <오스틴랜드>는 전작과는 또다른 느낌의 소설이었다. 타켓이 되는 대상이 다르고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일련의 사건을 겪고난 뒤 내면의 성장을 맛보는 주인공의 즐거운 변화는 <오스틴랜드>에서도 여전히 만나볼 수 있었다. 펨브룩 파크에서, 그리고 그곳을 떠나면서 벌어지는 깜작 사건들을 겪으며 제인은 그토록 바라던 자신만의 다이시의 진실한 사랑을 만나게 되고, 그와 함께 한층 자신감을 가지게 된다. 

<오스틴랜드>는 <오만과 편견>을,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그리고 드라마 <오만과 편견>의 콜린 퍼스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 아닐까 싶다. 진지하고 무거운 이야기에서 벗어나 가볍게 그리고 유쾌하게 읽을 소설을 찾는다면 당신을 <오스틴랜드>로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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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 영문법 백과사전] 서평단 알림
실용 영문법 백과사전 - 영어 학습자가 알아야 할 영문법의 모든 것
최인철 지음 / 사람in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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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서평단 서평도서]


내가 가장 힘들어하는, 가장 기피하고 싶은 것 중의 하나가 영어다. 중딩 때 영어 선생님에 대한 반감으로 흥미를 잃은 이후 영어는 늘 벗어날 수 없는 굴레처럼 느껴졌다. 수학과 함께 일주일에 6시간씩 배정되어 있던 고등학교 시간표를 벗어나던 날, 아! 드디어 지긋지긋한 영어로부터 해방이로구나!하며 두 팔 번쩍들고 '만세 만세 만만세'를 외치고 싶었지만, 요즘 세상이 어디 그런가. 중고딩시절 가장 중요한 과목으로 치부되던 쌍두마차 수학과 영어. 관련학과가 아닌 이상 일상 생활에서 미적분에, 행렬, 수열을 계산할 일은 거의 없기에 수학은 졸업과 함께 바이바이~를 외치는 게 가능하지만, 영어는 원서로 되어 있는 대학교재로부터 토익ㆍ토플 등 취업전선에 이르기까지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나같은 심각한 영어울렁증 환자는 아직까지도 영어로 인해 괴로움에 몸부림치곤 한다.

그렇다고 영어를 공교육으로 표방하겠다는 요즘, 영어울렁증을 핑계로 완전히 담을 쌓을 수는 없는 법. 미운 아이 떡 하나 더 주는 심정으로 머리에도 안 들어오는 영어책을 붙들고 있기 마련이다. 영어에 관한 한 듣기(아예 안 들림)는 물론 말하기(발음 구림), 독해(대충 감으로?), 영작(비문 남발) 등 어느 것 하나 부담스럽지 않은 게 있을까만 그중에서 가장 힘든 건 뭐니뭐니해도 문법이다. 아마 나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그렇지 않을까 싶다. 기초만 잘 닦아두면 오히려 힘들지 않을 수 있다는 문법이건만, 기존의 잘못된 주입식ㆍ암기식 교육의 병폐가 가장 확실하게 나타나는 꼭지 또한 문법이다.


영어시험에 답을 찾기 위해 영어 공부를 하던 시절, 그 유명한 맨투맨 영어, 성문영어 등등 유명 문법책을 숱하게 스쳐왔다. 그리고 책에 소개된 문법 설명과 예문들을 (시험을 위해) 열심히 외우고 또 외웠다. 문법책들은 제목이 다르고 저자가 달라도 대부분 문법설명은 정형화되어 있었고, 소개되는 예문들 또한 틀에 박힌 듯 비슷비슷했다. 그런데 그 시절 시험문제의 답을 위해 열심히 외웠던 그 문법과 예문들, 과연 실제로 영어 회화를 할 때 얼마나 쓰일 수 있을까?

현대 영어에서는 거의 쓰지 않는 문법이나 설명을 위해 억지로 만든 예문들을 천편일률적으로 싣고 있는 기존의 영문법 책들에 대해 반기를 든 책이 나왔다. '실용'이란 글자를 앞머리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실히 드러낸 책 <실용 영문법 백과사전>이 바로 그것. 이책의 저자는 기존의 책들이 실용 영어를 고려하지 않고 이미 사장됐거나 어색한 표현들이 난무하는 죽은 예문들을 구태의연하게 계속 인용해 영어를 가르치는 까닭에 문법이 실제 영어에 제대로 적용되지 못하고, 그로 인해 우리나라 학생들의 영어 실력이 제대로 향상되지 않음을 지적한다. 그리고 그런 문제점을 개선하고자 기존의 영문법 책들과는 차별화된, 실제 회화에서 많이 쓰이는 '살아있는 영어 표현과 구문'들을 중심으로 '실용 영어'에 보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영어 문법 설명을 시도한다.


책은 크게 구문/품사/EFL 이중언어 모델/어휘/발음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문법 책인 만큼 구문/품사가 책의 절반 정도를 차지한다. 그리고 문법 못지않게 실용영어의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는 어휘/발음에도 꽤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구문은 품사를 뺀 나머지 영문법으로 '구문+품사=영어문법'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구문의 첫장은 '부정문/의문문을 만드는 방법' 등 중학교 1학년 영어책에나 나올 법한 아주 기초적인 내용들이 실려있어 순간 당황했다. 그러나 실용영어에서 주의해야 할 점, 틀리기 쉬운 부분을 조목조목 정리해둔 것들을 찬찬히 읽다보니 가장 기본적인 부분부터 '제대로' 시작하려는 저자의 의도를 눈치챌 수 있었다. 어휘와 발음 부분도 실제로 사용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이책의 특징은 문법에 대한 장황한 설명보다는 최소한의 설명과 살아있는 영어표현을 쓴 다양한 예문에 집중한다는 점이다. 문법은 물론 다른 꼭지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책은 실제 영어회화에 필요한 문법, 구문, 발음, 관용표현과 단어들을 중심으로 설명을 이어나간다. 책 전체를 '실용'이란 키워드로 묶을 수 있는 셈이다.

그중 'EFL(English a Foreign Language) 이중언어 모델'은 기존의 문법책에선 볼 수 없었던 좀 생소한 꼭지였다. EFL 이중언어 모델이란 영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는 경우 모국어가 영어 학습에 방해가 된다고 단정지었던 지금까지의 견해와 달리 학습 초기단계에서 모국어를 적절히 활용하면 영어습득에 시너지 효과를 줄 수 있다는 견해다. 그래서 이 꼭지에서는 일상적으로 자주 쓰이는 모국어 표현들을 가장 적절한 영어표현으로 옮겨두었다. 평소 '이걸 영어로 뭐라고 하지?'하며 답답했던 경험이 있는 학습자라면 이 꼭지의 진가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


<실용 영문법 백과사전>은 제목처럼 '실용 영어'에 충실한 영문법책이다. 실제로 써먹지도 못하는 문법이나 예문들을 줄줄이 늘어놓는 책이 아니라 책의 예문을 외워서 바로 써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살아있는 영어 표현을 지향하는 책이다. 그야말로 실용서다. 또한 이책의 문법 설명에는 우리가 이제껏 흔히 봐왔던, 공식처럼 외웠던 규칙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의미를 중심으로 살펴봄으로써 살아있는 영어 학습을 시도하고 있다.

다만 문법에 대한 설명은 간략하고 예문이 풍성한 까닭에 영문법에 대한 사전 지식이 미약한 학습자에겐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또한 책제목에서 책의 성격이 워낙 잘 드러나 그럴 일은 없겠지만, '시험 영어'를 위한 영문법 책을 찾은 학습자라면 조금 난감할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영어 책이긴 하지만 한글 맞춤법이나 띄어쓰기가 틀린 부분이 적잖게 보였다. 영어 문법책의 한글을 일일이 걸고 넘어지면 너무 까달스럽게 보일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영어와 함께 우리말도 매끄러운 책이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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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빨개지는 아이
장 자끄 상뻬 글 그림, 김호영 옮김 / 열린책들 / 199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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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내게 가장 좋아하는 책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내 대답은 늘 똑같다. 장 자끄 상뻬의 <얼굴 빨개지는 아이>라고. 그동안 가장 많이 읽어본 책도, 가장 많이 산 책도, 그리고 지인들에게 가장 많이 선물한 책도 모두 그책이라고. 한 마디로 <얼굴 빨개지는 아이>는 내 인생의 책이자 내가 가장 사랑하는 책이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좀머 씨 이야기>와 빠뜨릭 모디아노의 <까트린 이야기>의 삽화를 통해 장 자끄 상뻬를 처음 만났다. 단순하지만 인상적인 그의 그림에 반해 무작정 상뻬의 작품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고, 그렇게 만난 작품들이 <라울 따뷔랭>, <랑베르씨>, <속 깊은 이성친구>, <사치와 평온과 쾌락>, <뉴욕 스케치> 등이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나를 가장 매료시킨 책이 바로 이책, <얼굴 빨개지는 아이>였다.


여기 수시로 얼굴이 빨개지는 이상한 병에 걸린 한 아이가 있다. 그 이름은 마르슬랭 까이유, 이책의 주인공 '얼굴 빨개지는 아이'다. 상황파악 못하고 시도때도 없이 빨개지는 얼굴 때문에 까이유는 주변의 쓸데없는 관심을 받았고, 정작 곤란한 순간에는 빨개지지 않는 얼굴 때문에 오해받기 일쑤였으며, 친구들은 그의 빨간 얼굴을 매번 신기해하는 바람에 친구들과도 점점 멀어진다. 그러나 까이유는 단지 좀 불편할 뿐 그것 때문에 그렇게까지 불행해하지는 않는다.

그러던 어느날 감기 기운이 전혀 없는데도 자꾸만 재채기를 하는 희한한 병에 걸린 르네 라토가 나타났고, 둘은 곧 마음을 터놓는 절친한 친구가 된다. 다른 친구들과 있으면 늘 특이하게 취급받던 까이유의 빨간 얼굴은 라토에겐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았고, 까이유 역시 끊임없는 라토의 재채기를 싫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까이유는 라토의 재채기에 친구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음에 행복해 했고, 라토 또한 까이유의 빨간 얼굴을 근사하게 생각했다. 두 꼬마 친구는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늘 함께 했고, 그저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늘 즐거웠다. 



  마르슬랭은 감기에 걸릴 때마다 그의 친구처럼 기침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흡족해 했다. 그리고 르네 역시 햇볕을 몹시 쬔 어느 날, 그의 친구가 가끔씩 그러는 것처럼 얼굴이 빨개져 버린 것에 아주 흡족해 한 적이 있었다. (62쪽)


<얼굴 빨개지는 아이>에는 이유없이 얼굴이 빨개지고 끊임없이 재채기를 하는 두 꼬마 까이유와 라토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남들과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친구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지내던 두 꼬마는 자신의 단점을 이해하고 감싸주는 특별한 친구를 만나면서 그들만의 진한 우정을 만들어간다. 그리고 그 우정은 오랜 세월이 지나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상뻬는 천진난만한 두 소년의 특별한 우정을 통해 진정한 우정이란 서로의 아픔과 상처를 보듬고 감싸주는 것이라고 독자들에게 넌지시 이야기한다.

또한 평범하지 않은 자신의 모습 때문에 때때로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까이유와 라토는 '그렇게까지' 불행하지는 않다고, 그저 이유가 궁금할 뿐이라고 명랑하게 말한다. 남과 다른 콤플렉스를 갖고 있지만 원망하거나 좌절하기는커녕 그저 그것들을 자신의 삶의 일부로 담담히 받아들이고 다른 방법으로 행복을 찾는 두 꼬마의 모습에서 따뜻한 눈으로 삶을 바라보는 상뻬 특유의 낙천성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마르슬랭은 <그렇게까지> 불행하지 않았고, 단지 자신이 어떻게, 언제 그리고 왜 얼굴이 빨개지는지를 궁금하게 여겼을 뿐이다. (26쪽)

  하지만 르네는 <그렇게까지> 불해하지 않았다. 단지 코가 근질거렸을 뿐이고, 그것이 그를 자꾸 신경쓰이게 만들 뿐이었다. (42쪽)



<얼굴 빨개지는 아이>는 우정에 대해, 삶의 상처에 대해, 그것을 이겨내는 방법에 대해, 그리고 행복해지는 방법에 대해 거창하게 설교하지 않는다. 그저 조금 특이한 두 소년을 통해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서로를 이해하며,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삶에서 행복을 찾는 법을 친근한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들려준다. 서로가 지닌 아픔을 보듬어주며 배려를 바탕으로 한 예쁜 우정을 만들어간 꼬마 까이유와 라토의 이야기는 그래서 더욱 가슴 깊숙이 따뜻한 감동을 전해준다. 

이책을 보는 또 하나의 재미! 바로 상뻬의 그림을 즐기는 것이다! 간결하고 담백한 글도, 따뜻함을 주는 이야기도 좋지만 장 자끄 상뻬의 책을 보는 가장 큰 즐거움은 바로 그의 익살스런 그림이 아닐까 싶다. 간결한 그림으로도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을 명확히 보여주고, 단순하지만 작은 부분까지 놓치지 않는 섬세함을 발휘하며, 그림 전체에 특유의 유머감각과 낙천적인 따뜻한 시선을 견지하고, 그런 와중에도 삶을 꿰뚫는 예리한 통찰력을 잃지 않는다.

단지 펼쳐보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이 훈훈해지는 책이 있다면 그건 바로 장 자끄 상뻬의 책이 아닐까 싶다. 












☞ 빨간 얼굴의 마르슬랭 까이유, 재채기 소년 르네 라토를 만나닷!



얼굴이 빨개져도, 재채기를 해도.. 언제나 함께하는 까이유와 라토..  




그들은 정말로 좋은 친구였다.
그들은 짓궂은 장난을 하며 놀기도 했지만,
또 전혀 놀지 않고도, 전혀 말하지 않고도 같이 있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함께 있으면서 전혀 지루한 줄 몰랐기 때문이다. (58~59 쪽)







☞ 그들은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 얘기도 하지 않고 있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함께 있으면서도 결코 지루해 하지 않았으니까. (117~121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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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효주, 손끝으로 세상과 소통하다 - 초밥장인 안효주의 요리와 인생이야기
안효주.이무용 지음 / 전나무숲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학창시절에 소풍의 즐거움 중 하나가 엄마가 손수 싸주신 김밥을 먹는 것이었다. 아마 많은 친구들이 그러했으리라. 그때는 지금처럼 김밥전문집이 대중화되지 않은 때라 김밥은 소풍이나 나들이 같은 특별한 날에나 만날 수 있는 음식이었으니까. 그래서 가족들 중 누군가가 소풍을 가게되면 김밥을 함께 먹을 수 있다는 기쁨에 즐거워하곤 했었다. 김밥을 싸실 때마다 엄마는 항상 초와 설탕으로 양념한 밥을 준비하셨는데, 그것은 '엄마표 김밥'의 가장 큰 특징이었다. 김과 속재료 사이에 자리잡은 초밥(초로 양념한 밥)의 새콤달콤한 맛은 김밥속 다른 재료들과 멋지게 어울렸고 그맛은 매번 어린 나를 감탄시켰다. 물론 지금도! 아, 생각만해도 침이 고인다. 쓰읍. ;)

그래서 난 '초밥'을 보면 가장 먼저 엄마의 김밥속 새콤한 식초 냄새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사실 그 둘은 '식초'라는 공통점 밖에 없지만, 어린날의 추억은 기분좋게 식욕을 자극하는 새콤한 향기만으로 그것들을 함께 이어준다. 이런 '엄마표 김밥'의 영향으로 내게 '초밥'은 낯설긴커녕 추억의 향기를 머금은 음식처럼 느껴졌다. 더불어 바다를 끼고 있는 도시에서 수시로 싱싱한 생선회를 접하며 살아온 내 입맛은 밥과 생선살이 공존하는 초밥이라는 음식과 더욱 빨리 친해지는 바탕이 되어주었다.


<안효주, 손끝으로 세상과 소통하다>는 그 유명한 일본만화 <미스터 초밥왕>에 '한국 초밥왕'으로 소개된 초밥 장인 안효주 씨의 초밥에 대한 열정과 철학, 그리고 초밥을 향한 그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맛볼 수 있는 책이다. 대개 성공한 사람들의 에세이가 그러하듯 이책 또한 지금의 자리에 서기까지 거쳐왔던 힘들고 어려웠던 지난날에 대한 회상으로 시작되리라 생각했는데, 웬걸, 그의 책은 첫시작부터 초밥과 초밥을 향한 그의 열정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삶의 모든 시작과 끝이 초밥인 남자, 과연 '한국의 초밥왕'답다. 

내로라하는 호텔 주방을 책임지고 있던 그는 어떤 행사를 통해 <미스터 초밥왕>의 작가 테라사와 다이스케와 만나게 된다. 그곳에서 다이스케는 그에게 한국만의 초밥을 만들어달라는 제안을 하고, 그것을 수락한 그는 초밥의 달인인 작가의 혀를 만족시키기 위해 한국만의 색깔을 내면서도 초밥 본연의 맛을 잃지 않는 초밥을 개발하기 위해 많은 고민과 실험을 거듭한다. 그 결과 한국의 대표음식인 인삼의 쓴맛을 제거하고 초밥과 적절히 어우러지게 완성한 인삼초밥의 개발에 성공하고, 그것은 까다로운 초밥왕 작가 다이스케의 입맛을 만족시킴은 물론 그와 그의 초밥이 '한국의 초밥왕'으로 만화속에 등장하는 계기가 된다.

책의 첫 에피소드만으로도 초밥에 대한 그의 열정과 실험정신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기존의 초밥에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재료와 새로운 맛을 향한 실험을 계속하는 그의 도전정신이 아마 지금의 그를 있게 한 가장 큰 원동력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단락 「맛의 드라마를 연출하다」의 '오마카세'의 가장 마지막 반전인, 손님을 앞에 두고 즉석에서 새로운 초밥을 만들며 그 스릴을 즐기는 그의 모습을 통해 끝없는 실험정신과 그러면서도 그것을 즐길 줄 아는 여유를 함께 여유까지 느낄 수 있었다. 역시 장인이다.


책은 크게 다섯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초밥에 대한 그의 열정과 철학이 담겨있는 「요리로 교감하다」, 요리사가 초밥의 선택권을 전적으로 가지고 맛의 향연을 펼쳐보이는 「맛의 드라마를 연출하다」, 초밥을 만드는 과정과 그에 임하는 자세를 엿볼 수 있는 「초밥의 기본을 말하다」, 초밥을 즐길 때 지키면 좋은 예의를 논하는 「초밥의 매너를 말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금의 초밥왕이 되기까지 걸어왔던 개인사와 그길의 등불이 되어준 스승님에 대한  존경, 초밥 장인으로서의 앞으로의 포부 등을 들려주는 「행복한 요리사를 꿈꾸다」. 단락마다 각각 다른 이야기들이 담겨있지만 매번 초밥을 향한 그의 애정과 멈추지 않는 열정, 겸손한 마음가짐 등은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권투를 그만두고 우연히 일을 하게 된 곳이 초밥집이라 일식에 몸담게 되었다는 그의 지난 이야기를 듣다보면 어쩌면 초밥은 그에게 이미 정해진 하나의 운명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초밥의 최고 장인에 오르기까지 그에게도 적지 않은 고난이 있었다. 그러나 고난을 헤치고 성공한 다른 사람들처럼 그 또한 수많은 연습과 각고의 노력을 통해 자신의 목표를 향해 쉬지 않고 달렸고, 차근차근 성공의 계단을 밟아나갔다. '한국의 초밥왕'은 초밥을 향한 지칠줄 모르는 그의 열정과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그의 겸손한 자세가 합쳐져 만들어진 것이다.


책을 읽는 동안 그의 초밥 이야기도, 그의 삶도, 그의 열정도 모두 존경스러웠다. 자신이 원하는 것에 진정으로 미칠 수 있는 사람들만이 그곳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그를 통해 다시 한 번 느꼈다고나 할까. 항상 주변탓만 하며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미치지 못한 채 미지근한 태도로 삶을 허비하고 있는 나 자신을 다시금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의 열정은 그렇게 하나의 자극으로 다가왔다.

<안효주, 손끝으로 세상과 소통하다>는 '인간' 안효주보다 '요리사' 안효주에 초점을 맞춘 책이다. 그래서 그의 개인적인 성공담보다 초밥에 대한 이야기가 훨씬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고난을 딛고 성공한 이야기를 기대했던 독자라면 조금 서운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초밥왕으로부터 듣는 초밥 이야기가 궁금했던 독자라면 꽤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듯 싶다.


먹음직스런 초밥들이 자신의 자태를 한껏 뽐내고 있는 책장들을 넘기는 동안 입 안에 고여드는 침을 넘기느라 힘들었다. 꼴깍꼴깍 침 넘기는 소리가 얼마나 귀를 자극하는지. 하긴 맛깔스런 초밥들을 눈 앞에 두고 어찌 태연할 수 있으랴. 책에 실려있는 사진을 보며 그가 묘사하는 초밥의 맛을 상상해 본다. 꿀꺽~ 침을 삼키며 마침내 마지막 장을 덮었다. 언젠가 입에 넣는 순간 사르르 녹아버린다는 '안효주표 명품 초밥'을 먹어보고 싶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땐 폼나게 먹어주리라! 내일은 엄마랑 오랫만에 맛있는 김밥이나 말아봐야겠다. 초와 설탕으로 버무린 새콤달콤한 밥으로 만든 엄마표 명품 김밥, 사진 속 그의 초밥 못지 않게 내 혀를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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