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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빨개지는 아이
장 자끄 상뻬 글 그림, 김호영 옮김 / 열린책들 / 199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누군가 내게 가장 좋아하는 책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내 대답은 늘 똑같다.
장 자끄 상뻬의 <얼굴 빨개지는 아이>라고. 그동안 가장 많이 읽어본 책도, 가장 많이 산 책도, 그리고 지인들에게 가장 많이 선물한 책도 모두 그책이라고. 한 마디로 <얼굴 빨개지는 아이>는 내 인생의 책이자 내가 가장 사랑하는 책이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좀머 씨 이야기>와 빠뜨릭 모디아노의 <까트린 이야기>의 삽화를 통해 장 자끄 상뻬를 처음 만났다. 단순하지만 인상적인 그의 그림에 반해 무작정 상뻬의 작품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고, 그렇게 만난 작품들이 <라울 따뷔랭>, <랑베르씨>, <속 깊은 이성친구>, <사치와 평온과 쾌락>, <뉴욕 스케치> 등이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나를 가장 매료시킨 책이 바로 이책, <얼굴 빨개지는 아이>였다.
여기 수시로 얼굴이 빨개지는 이상한 병에 걸린 한 아이가 있다. 그 이름은 마르슬랭 까이유, 이책의 주인공 '얼굴 빨개지는 아이'다. 상황파악 못하고 시도때도 없이 빨개지는 얼굴 때문에 까이유는 주변의 쓸데없는 관심을 받았고, 정작 곤란한 순간에는 빨개지지 않는 얼굴 때문에 오해받기 일쑤였으며, 친구들은 그의 빨간 얼굴을 매번 신기해하는 바람에 친구들과도 점점 멀어진다. 그러나 까이유는 단지 좀 불편할 뿐 그것 때문에 그렇게까지 불행해하지는 않는다.
그러던 어느날 감기 기운이 전혀 없는데도 자꾸만 재채기를 하는 희한한 병에 걸린 르네 라토가 나타났고, 둘은 곧 마음을 터놓는 절친한 친구가 된다. 다른 친구들과 있으면 늘 특이하게 취급받던 까이유의 빨간 얼굴은 라토에겐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았고, 까이유 역시 끊임없는 라토의 재채기를 싫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까이유는 라토의 재채기에 친구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음에 행복해 했고, 라토 또한 까이유의 빨간 얼굴을 근사하게 생각했다. 두 꼬마 친구는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늘 함께 했고, 그저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늘 즐거웠다.
| 마르슬랭은 감기에 걸릴 때마다 그의 친구처럼 기침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흡족해 했다. 그리고 르네 역시 햇볕을 몹시 쬔 어느 날, 그의 친구가 가끔씩 그러는 것처럼 얼굴이 빨개져 버린 것에 아주 흡족해 한 적이 있었다. (62쪽) |
<얼굴 빨개지는 아이>에는 이유없이 얼굴이 빨개지고 끊임없이 재채기를 하는 두 꼬마 까이유와 라토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남들과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친구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지내던 두 꼬마는 자신의 단점을 이해하고 감싸주는 특별한 친구를 만나면서 그들만의 진한 우정을 만들어간다. 그리고 그 우정은 오랜 세월이 지나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상뻬는 천진난만한 두 소년의 특별한 우정을 통해
진정한 우정이란 서로의 아픔과 상처를 보듬고 감싸주는 것이라고 독자들에게 넌지시 이야기한다.
또한 평범하지 않은 자신의 모습 때문에 때때로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까이유와 라토는 '그렇게까지' 불행하지는 않다고, 그저 이유가 궁금할 뿐이라고 명랑하게 말한다.
남과 다른 콤플렉스를 갖고 있지만 원망하거나 좌절하기는커녕 그저 그것들을 자신의 삶의 일부로 담담히 받아들이고 다른 방법으로 행복을 찾는 두 꼬마의 모습에서 따뜻한 눈으로 삶을 바라보는 상뻬 특유의 낙천성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마르슬랭은 <그렇게까지> 불행하지 않았고, 단지 자신이 어떻게, 언제 그리고 왜 얼굴이 빨개지는지를 궁금하게 여겼을 뿐이다. (26쪽)
하지만 르네는 <그렇게까지> 불해하지 않았다. 단지 코가 근질거렸을 뿐이고, 그것이 그를 자꾸 신경쓰이게 만들 뿐이었다. (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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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빨개지는 아이>는 우정에 대해, 삶의 상처에 대해, 그것을 이겨내는 방법에 대해, 그리고 행복해지는 방법에 대해 거창하게 설교하지 않는다. 그저 조금 특이한 두 소년을 통해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서로를 이해하며,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삶에서 행복을 찾는 법을 친근한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들려준다.
서로가 지닌 아픔을 보듬어주며 배려를 바탕으로 한 예쁜 우정을 만들어간 꼬마 까이유와 라토의 이야기는 그래서 더욱 가슴 깊숙이 따뜻한 감동을 전해준다.
이책을 보는 또 하나의 재미! 바로 상뻬의 그림을 즐기는 것이다! 간결하고 담백한 글도, 따뜻함을 주는 이야기도 좋지만 장 자끄 상뻬의 책을 보는 가장 큰 즐거움은 바로 그의 익살스런 그림이 아닐까 싶다. 간결한 그림으로도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을 명확히 보여주고, 단순하지만 작은 부분까지 놓치지 않는 섬세함을 발휘하며, 그림 전체에 특유의 유머감각과 낙천적인 따뜻한 시선을 견지하고, 그런 와중에도 삶을 꿰뚫는 예리한 통찰력을 잃지 않는다.
단지 펼쳐보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이 훈훈해지는 책이 있다면 그건 바로 장 자끄 상뻬의 책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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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빨개져도, 재채기를 해도.. 언제나 함께하는 까이유와 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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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정말로 좋은 친구였다.
그들은 짓궂은 장난을 하며 놀기도 했지만, 또 전혀 놀지 않고도, 전혀 말하지 않고도 같이 있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함께 있으면서 전혀 지루한 줄 몰랐기 때문이다. (58~59 쪽)
☞ 그들은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 얘기도 하지 않고 있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함께 있으면서도 결코 지루해 하지 않았으니까. (117~121 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