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틴랜드
섀넌 헤일 지음, 오정아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읽어본 적이 있는가? 그것을 원작으로 제작된 BBC 방송국의 6부작 드라마 <오만과 편견>은? 드라마를 봤다면 혹시 한순간이나마 '젖은 셔츠의 콜린 퍼스'에 열광한 적이 있는가? ... 이중 하나라도 해당된다면 당신은 섀넌 헤일이 창조한 또 하나의 세상 <오스틴랜드>의 재미를 느낄 준비된 독자다.

서른세 살의 싱글녀 제인은 제인 오스틴의 열렬한 팬이다. 청소년 때 빠져든 오스틴의 작품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으며, 그것을 자신의 연애기준으로 삼은 채 살아왔다. 그녀는 또한 BBC 방송국의 드라마 <오만과 편견>의 열혈 매니아다. 특히 다아시를 연기한 콜린 퍼스, 그중에서도 '젖은 셔츠의 콜린 퍼스'에 홀딱 마음을 빼앗겨버려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아직 드라마를 보진 못했지만, 실제로 콜린 퍼스는 그 드라마를 통해 높은 인기를 누렸고, 역대 최고의 '다아시'로 선정되었다고.) '콜린 퍼스의 다아시'를 절대적으로 숭배하는 그녀는 자신의 기준인 다아시와는 다른 행동을 일삼는 현실의 남자들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그결과 그녀의 연애는 매번 상처만 남긴 채 실패의 길을 걷는다.

어느날 제인의 엄마는 먼 친적인 캐럴린 대고모님을 모시고 제인의 아파트를 방문한다. 엄청난 부자인, 그러나 죽음을 얼마 앞두지 않은 대고모님에게 좋은 인상을 남겨 그녀의 유산의 콩고물이라도 받아보려는 엄마의 얄팍한 작전인 셈. 엄마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대고모님은 제인이 화분 뒤에 숨겨둔 「오만과 편견」 드라마 DVD를 발견하고 그녀에게 의미심장한 웃음을 건넨다. 그리고는 다아시에 대한 제인의 마음을 단숨에 짚어내며 그에 대한 집착을 버리라는 조언을 남긴다. 얼마후 제인은 대고모님의 죽음과 함께 그녀에게 남긴 유산에 대한 통지를 받고, 뜻밖의 유산과 그 유산의 당황스런 실체를 알고는 심각한 고민에 빠진다.

대부분의 재산을 자선단체에 기부한 대고모님이 그녀에게 남긴 유산은 바로 제인 오스틴의 작품에 나오는 19세기의 풍경을 재현해 놓은 마을에서 19세기식의 일상과 로맨스를 즐기는, 그러니깐 일종의 19세기 테마파크인 '펨브룩 파크'에 다녀올 수 있는 영국행 휴가여행상품권이다. 다아시의 환상에서 벗어나 독신녀의 노선을 걷고자 하는 제인에게 다아시가 존재했던 시대로의 여행을 유산으로 남긴 대고모님. 그녀는 제인이 다아시의 환상속으로 직접 몸을 던짐으로써 다아시의 환상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을 권하는 배려깊은 유산을 남긴 것이다. 그리고 고민 끝에 제인은 대고모님의 유산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영국의 펨브룩 파크,라 불리는 마을에 도착한 제인은 그때부터 19세기 복장으로 갈아입고 완벽한 변신을 꿈꾸며 현실이면서 현실이 아닌 드라마같은 공간으로 뛰어든다. 21세기에서 19세기로 들어가자 이모와 이모부가 미국에서 돌아온 '조카' 제인을 반기고, 매력적인 미소를 던지는 앤드루스 대령과 초기의 엘리자베스의 눈에 비친 다아시처럼 무뚝뚝하고 싸가지 없는 노블리 씨 같은 신사도 등장한다. 또한 그녀처럼 19세기의 로맨스를 즐기기 위해 이곳을 찾은 차밍 양과 어스트와일 양도 연극에 합세하고, 저택 바깥에는 꺽다리 정원사가 그녀를 유혹한다. 정해진 각본도 대사도 없이 등장인물 모두가 자신의 진짜 모습을 감추고 19세기의 다른 사람을 연기하는 그곳, 펨브룩 파크. 제인은 그곳에서 과연 자신을 사로잡았던 다아시의 환상과 남자들에 대한 마음을 미련없이 벗어던질 수 있을까.

<오스틴랜드>는 제목에선 눈치챌 수 있듯이 제인 오스틴의 작품과 인물과 대사로 이루어진 '오스틴 월드'이다. 이야기의 전체적인 얼개는 주인공 제인이, 그리고 작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오만과 편견>을 뼈대로 해서 패러디했다. 작품 속 주인공의 이름은 제인 오스틴의 이름을 따 제인으로 정했고, 그녀가 찾은 펨브룩 파크는 엘리자베스의 마을이다. 엘리자베스와 다아시의 첫 만남과 첫 인상, 그들 사이의 대사, 계속 이어지는 그들의 만남, 청혼과 거절, 그리고 드디어 진실한 사랑에 이르는 과정은 <오스틴랜드>의 제인과 노블리 씨가 그대로 밟아가되 그때그때 재치있게 각색된다. 

<오만과 편견>을 보았다면 <오스틴랜드>의 그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이어져 결론날지 대충 짐작하면서도 21세기에 맞게 상황을 적절히 비틀고 양념을 첨가한 작가의 재기발랄함 덕분에 매번 긴장감을 느끼는 재미를 맛볼 수 있었다. 섀넌 헤일은 청소년 소설인 <프린세스 아카데미>를 통해 처음 알았는데, <오스틴랜드>는 전작과는 또다른 느낌의 소설이었다. 타켓이 되는 대상이 다르고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일련의 사건을 겪고난 뒤 내면의 성장을 맛보는 주인공의 즐거운 변화는 <오스틴랜드>에서도 여전히 만나볼 수 있었다. 펨브룩 파크에서, 그리고 그곳을 떠나면서 벌어지는 깜작 사건들을 겪으며 제인은 그토록 바라던 자신만의 다이시의 진실한 사랑을 만나게 되고, 그와 함께 한층 자신감을 가지게 된다. 

<오스틴랜드>는 <오만과 편견>을,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그리고 드라마 <오만과 편견>의 콜린 퍼스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 아닐까 싶다. 진지하고 무거운 이야기에서 벗어나 가볍게 그리고 유쾌하게 읽을 소설을 찾는다면 당신을 <오스틴랜드>로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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