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더 사랑해
션.정혜영 지음 / 홍성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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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조용히 아름다움을 발산하는 사람들이 있다. 남들보다 튀려고 안달하지 않아도 내면의 아름다움이 저절로 빛을 발하는 사람들. 이책의 저자 션과 정혜영 부부 또한 그런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충만하고, 그 넘치는 사랑이 따뜻한 나눔으로 이어져 다른 이들까지 행복하게 만드는 사람들. 이책을 읽는 내내 ’참 아름답다!’라는 감탄사가 입 안을 맴돌았다. 션ㆍ정헤영 부부, 하나님 안에서 행복한, 참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사실 연예인들이 낸 책들은 자신의 유명세를 내세운 내용없는 돈벌이용 책이라는 편견에 그리 눈길을 주지 않는 편이다. 그러나 김혜자 님의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처럼 항상 예외는 있는 법, 이책 또한 그러했다. 일단 그들의 믿음을 바탕으로 한 신앙서적이고, 아름다운 부부의 진솔한 가정 이야기다. 최소한 돈벌이용 날림책에 대한 우려는 덜어놓아도 된다. <오늘 더the 사랑해>는 션과 정혜영 부부가 그동안 자신들의 미니홈피에 올린 사진과 글들을 정리해 출간한 포토 에세이집이라고 한다. 그래서 책의 절반은 그들 가족의 사진이, 나머지 절반은 믿음과 가정에 대한 그들의 진실한 고백들로 채워져있다.


2004년 새해 첫날 콘서트에서 6000명의 팬들이 보는 앞에서 션에게 프러포즈를 받고 행복해하는 정혜영의 사진으로 시작하는 이책은(첫 사진부터 감동이다!), 션과 정혜영 부부가 서로를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을 통해 한 가정을 이루어 하음이ㆍ하랑이라는 사랑의 결실을 맺기까지 그들 부부가 걸어온 일련의 과정과 일상의 모습들을 애정이 듬뿍 담긴 사진과 서로를 향한 편지와 짧은 메모와 고백들로 담아두었다. 책 전체를 감싸는 그들 부부와 아이들을 향한 사랑의 마음은 너무나도 애틋하고 감동적이어서 이책을 보는 이들로 하여금 부러움과 질투를 동시에 느끼게 만든다. 그러나 서로를 향한 그들의 지칠 줄 모르는 사랑 고백에 결국 입가엔 미소가 피어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들 부부의 사랑의 고백들이 흔히 접하는 다른 연예인들 에세이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바로 그들의 모든 사랑의 중심에 바로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점이다. 주님을 통해 새로운 삶을 알게 된 션과 그런 션을 통해 하나님을 영접하게 된 정혜영, 그들은 그분의 놀라운 사랑을 날마다 체험하며 매순간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늘 자신과 함께 하는 자신의 사랑스런 반쪽을 통해, 자신들을 쏙 빼닮은 하음이와 하랑이의 눈을 통해, 그리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고 찬양한다. 그들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코끝이 찡해진다.


<오늘 더the 사랑해>는 크게 다섯 개의 테마로 이루어져 있다. 그들 부부의 만남과 결혼을 통한 한 가정의 형성, 첫째 하음이와 둘째 하랑이에 대한 각각의 마음들, 결혼을 통해 일궈가는 소중한 나눔의 실천, 마지막으로 정혜영의 깜짝 솜씨 발표회가 이어진다. 엄마ㆍ아빠를 쏙 빼닮은 두 아이 하음이와 하랑이는 이름부터가 감동이었는데, 하음이는 ’하나님의 마음’의, 하랑이는 ’하나님의 사랑’의 줄임말이란다. 자신의 아이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닮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길 바라는 부모의 바람이 이름속에 고스란히 피어난다. 무엇보다 자신의 아이들이 세상에서 잘 되기보다 그 아이들로 인해 세상이 잘 되길 바란다는 그들의 이야기는 또 하나의 감동이었다.

가족에 대한 사랑 만큼이나 그들의 나눔의 실천 또한 참 아름다웠다. 매년 결혼기념일마다 일 년 동안 매일 만 원씩 모은 돈 365만원을 들고 청량리의 무료급식소 ’밥퍼’에 가서 봉사를 나누고, 한 달에 3만 5천원으로 빈곤한 한 어린이를 후원하는 ’컴패션’을 통해 6명의 아이들을 보살피고 있다. 첫째 딸 하음이의 성대한 돌잔치 대신에 그돈으로 서울대학교 어린이 병원을 찾아 두 명의 아이에게 심장병 수술을, 한 명의 아이에겐 인공와우 수술을 시켜 주었고, 하음이의 이름으로 매일 만 원을 모아 하음이의 생일에 귀가 안 들리는 어린이의 인공와우 수술을 돕고 있다. 그외에도 다일천사병원과 홀트, 나눔 강연 등으로 직접 나눔의 아름다움을 실천하고 있다.

어쩌면 돈 많이 버는 연예인인데 그정도가 뭐 대수냐,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많이 가졌다고 많이 나눌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나눔에는 그만큼 용기가 필요하다.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다르듯이 말이다. 그런 점에서 실천하는 션과 정혜영 부부의 따뜻한 나눔과 봉사는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지 않나 싶다. 최수종ㆍ하희라 부부와 차인표ㆍ신애라 부부와 함께 참 닮고 싶은 아름다운 연예인 부부의 모습이다.


주변에 결혼한 커플들이 알콩달콩 잘 살고 있음에도 결혼에 대해 별다른 감흥이 없었는데, 서로를 향한 애정고백으로 점철된 이책을 읽으면서 결혼생활이라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서로를 사랑하고, 시간이 지나도 그 마음이 더 애틋해져 갈 수 있다면 말이다. 물론 책속에 드러나있진 않지만 그들도 생활 속에 작은 다툼이나 부침이 있을 것이다. 삼십 여년을 전혀 다르게 살아온 사람들이 함께 살면서 왜 그런 일이 없겠는가. 그러나 그것을 '사랑'과 '믿음'의 이름으로 현명하게 이겨내며 주님 안에서 아름다운 믿음의 가정을 만들어가는 모습이 참 예쁘다. 부부는 서로 닮아간다는 말처럼 자신들도 닮아가는 것 같다는 션과 정혜영 부부는 겉모습 뿐만 아니라 예쁜 마음까지 참 닮은 것 같다.

<오늘 더 사랑해>는 션과 정혜영 부부의 사랑 고백이자, 아이들을 향한 감동의 노래이며, 조용히 나눔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책이다. 그리고 그것들을 가능하게 하신 하나님을 향한 간증집이다. 믿음과 사랑으로 하나 된 그들 부부가 오래오래 지금처럼 예쁘게 잘 살아서 그들의 아름다운 나눔을 통해 세상이 조금이나마 더 변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도 그들처럼 향기를 품고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 주절주절 - 책 읽는 동안 ’션과 같은 남자만 만난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결혼한다!’를 외쳐댔다. 아, 그러나 현실에서 그런 남자를 만나긴 정말이지 쉽지 않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음, 그런 남자 만나려면 내가 먼저 정혜영이 되어야 하나. 아, 그런 거라면 그야말로 대략 난감이다;; -ㅅ-;; 그녀는 쌩얼도 너무 이쁘다구! ㅋㅋ







그들 홈피에 달린 덧글들로 채워진 책뒷면 표지.. 완전 감동이닷! ^ㅅ^


책의 시작과 끝. 두 사람이 만나 네 사람이 되었다. 멋진걸!


역시 둘이 만나 넷이 되었다. 행복한 모습이 참 아름답다. ^ㅂ^


이 사진보고 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






- 션과 정혜영의 아름다운 간증, 그리고 동시에 닭살 애정 퍼레이드!! @@ (솔로 주의!)










책의 가장 뒷장. ^^
근데 [더] 옆에는 왜 [the]를 쓴 걸까?
영어가 짧은 나로선 아직도 미스터리다; 아시는 분은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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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초원에서 보내는 편지 - 평생 잊지 못할 몽골의 초원과 하늘,그리고 사람 이야기
강제욱 외 지음 / 이른아침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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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 사랑은 알아야 생기는 감정입니다. 처음 공항에 내렸을 땐 즉시 후회했고, 일주일이 지나자 신기해 보였으며, 한 달 째엔 매력을 느꼈고, 1년 후에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된 나라, 바로 몽골입니다. (85쪽, 윤광준)


학창시절 세계사를 제법 잘 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몽골에 대해서 생각나는 거라곤 징기즈칸과 유목민, 초원 정도밖에 없다. 얼마전에는 몽골이 독립국가로 존재하는지조차 가물거려 '중국에 강제통합된 것 아니었어?'라며 무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학창시절 세계사 시험 백점이 부끄러운 나의 무지에 부끄러울 따름이다. 그러나 따져보면 이건 유럽으로 대표되는 서양의 역사를 중점적으로 기록하면서 우리 주변국의 역사에 대해서는 가벼이 대하는 국정교과서의 책임도 있지 않을까 싶다(..고 변명해본다.)

핑계는 그만두고 수첩 뒤에 딸린 자그마한 세계지도를 펼쳐 그속에서 몽골을 찾아본다. 오홋, 나의 무지와 상관없이 몽골은 대륙의 중간에 오롯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비록 네이멍구자치구를 끝내 중국에 강제로 빼앗겼고, 국토의 적지 않은 부분을 사막이 차지하고 있지만 지도로 본 몽골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큰 영토를 가진 나라였다. 학교를 졸업한지 수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세계지도에서 몽골을 짚어보며 징기즈칸의 후예 몽골을 생각해본다.

그러다 얼마전 몽골 초원의 사막화를 다룬 티비 프로그램을 접했다. 티비속에서는 우리와 너무나 닮은 얼굴을 가진 몽골인들이 사막으로 변해버린 황무지를 다시 초원으로 되돌리고자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들의 그런 노력들이 헛되지만은 않았는지 모래 바람만 사납게 불어대던 황무지에 뿌리를 내린 생명이 열매의 기적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들 손에 들려진 감자 몇 알은 그 증거였다. 그걸 보고 있자니 갑자기 몽골이라는 나라, 드넓은 초원과 그곳을 유랑하는 유목민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그때 마침 이책이 눈에 들어왔다.


- 한국에서는 매일 한두 번씩 샤워를 하던 나였지만 이곳에서 머문 닷새 동안은 자연스레 양치 하나만으로 끝냈어. 물과 불은 그들의 공동체를 지켜내는 최후의 수단이라고 하니 그리 불편하지 않던걸. 먼지가 풀풀 나는 너른 들판을 하루 종일 걸어 다녀도 가려움은커녕 언제나 기분 좋을 만큼 옷이 고슬거렸어. 매일 샤워를 해대는 우리가 잘 씻지 못하는 그들보다 영혼은 더 오염되어 있는 걸 보면 참 아이러니 해. (169쪽, 진아라)


<몽골, 초원에서 보내온 편지>는 몽골을 사랑하는 6명의 사진작가들이 그곳을 여행한 이야기와 그들의 시선으로 담아온 사진들로 구성되어 있다. 글들은 모두 누군가에게 띄우는 편지의 형식을 띠고 있는데, 제목속의 '편지'는 이유있는 단어였던 셈이다. 편지라고는 하나 사사로운 내용은 거의 없는, 몽골에 대한 그들이 생각을 담아놓은 글이지만 그래도 누군가의 편지를 함께 읽는 듯한 느낌이 들어 보통의 에세이와는 또다른 편지글만의 친근감이 느껴졌다. 작가들이 편지를 쓰는 대상들도 다양했는데, 그중 강제욱 님의 '후씨 아저씨'는 마지막에 깜짝 반전의 재미를 선사한다. 

이책에서 6인의 사진작가들은 자신만의 독특한 시선으로 몽골을 경험하고 사유하고 바라보며 그 모습을 펜과 카메라 렌즈에 담아낸다. 초원, 사막, 눈이 시리게 푸른 하늘 등의 이국적 풍광과 순박한 미소의 사람들, 북적이는 몽골의 도시와 그뒤에 감춰진 그림자, 설 곳을 잃어가는 유목민들, 산업화로 파괴되어 가는 환경 등 몽골의 어제와 오늘 - 정치, 사회, 역사, 문화 등의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이렇게 몽골에 대해 각기 다른 시선으로 그려낸 글과 사진 들을 한 권의 책을 통해 다양하게 맛볼 수 있다는 점이 이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또한 그것은 기대 이상의 즐거운 경험이었다. 


몽골에 대해 거의 백지에 가까웠던 나는 이책의 '편지'들을 통해 많은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됐다. 몽골은 스탈린의 도움으로 독립에 성공했으나 끝내 네이멍구자치구를 중국에 빼앗긴 그들의 역사가 남일 같지 않아 가슴 아팠고, 무분별한 개발로 삶의 터전인 초원을 빼앗겨 불법채금자인 닌자 광부로 내몰린 유목민들의 처지나 생태계과 파괴되어 사막화되는 초원의 모습은 서글펐다. 네이멍구자치구에서는 주변국의 영토는 물론 역사까지도 자기네 것이라 우기는 뻔뻔한 중국의 역사왜곡의 흔적들을 보며 함께 흥분했고, 공산주의의 영향으로 시작된 불교 말살 정책으로 죽임을 당한 수많은 승려들과 어처구니없이 파괴당한 불교유산들을 보며 화가 났다. 또한 넉넉치 않은 생활속에서도 '행복한가?'라는 질문에 대부분이 '그렇다'라고 대답했다는 몽골인들, 그들의 소박함은 물질적 풍요에 탐닉하느라 정신적 행복을 잃어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되돌아 보게 했다.

책속 몽골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이 많았지만,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역시 몽골의 때묻지 않은 자연과 사람들이었다. 지평선이 보이는 푸른 초원, 말을 타고 신나게 달리는 사람들, 밀가루를 뿌려놓은 것처럼 빛나는 밤하늘의 별들도 멋졌지만, 우리나라를 '솔롱고스(무지개의 나라)'라 부르며 낯선 이방인에게 수태차를 함께 따뜻한 미소를 보여주는, 좀 더 친해지면 그들의 전통주인 마유주와 보드카를 권하는 그들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게르에서 유목민들과 함께 생활하며 지켜본 그들에 대한 이야기는 처음의 호기심을 넘어 약간의 경외감마저 일게 했다. 물이 부족해 세수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단순한 조리법으로 요리한 음식을 매일 먹어도 행복한 그들, 가축들이 먹을 양이 줄어든다고 나물조차 먹지 않으며 자연에 순응하는 삶을 사는 그들의 모습은 참 아름답다.


- 사실 몽골의 풍경은 말 등에 올라타서 바라보아야 제격입니다. 말 잔등의 진동을 느끼며 한층 높아진 시야로 보는 너른 대지의 청량감과 땅의 감촉은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가축과 인간이 하나되는 느낌은 몽골이 아니면 체험할 수 없는 기회입니다. (중략) 위험하지 않느냐고요? 당연히 위험합니다. 하지만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면 각별함도 포기해야 합니다. 적당한 위험을 감수하고 즐기는 자세가 몽골에 가까이 다가서는 가장 중요한 팁이랍니다. (95쪽, 윤광준)


여행에세이를 좋아해 즐겨 읽지만 몽골을 본격적으로 다룬 책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미지의 땅 몽골에 대한 이야기들은 그래서 더욱 즐거웠다. 6인의 작가들이 재미난 글과 멋드러진 사진을 통해 보여주는 몽골에 대한 애정은 이책을 읽는 내게도 담뿍 전해왔다. 그와 함께 그저 지도속에서나 존재했던 몽골이 내 안에서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그들의 눈과 귀를 빌린 덕분에 이제는 징기즈칸과 고비사막 외에도 몽골을 떠올릴 수 있는 것들이 꽤나 많아졌다. 그래서 행복했다. <몽골, 초원에서 보내온 편지>는 나처럼 몽골에 대해 잘 몰랐던 독자들에게 몽골만이 가지는 매력을 한껏 보여주는 책이다. 그리고 읽는 내내 눈이 즐겁고 가슴이 따뜻해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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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수 1 - 투사편, 인간의 운명을 가를 무섭고도 아름다운 괴수 판타 빌리지
우에하시 나호코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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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판타지 소설의 재미에 제대로 빠져들게 했던 <테메레르> 이후 또 한 편의 멋진 판타지 소설을 만났다. 이번엔 동양 판타지다. 일본소설에 한창 빠져들던 시절에도 본격적인 판타지 소설은 거의 접해보지 못했었기에 우에하시 나호코의 판타지 소설 <야수>를 처음 만났을 때는 솔직히 조금 생경했다. 일본식 판타지 소설이라.. 혼자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문득 미야자키 하야오가 만든 지브리 애니메이션들이 떠올랐다. 그래, 지브리의 애니가 있었구나! 미야자키의 애니들은 항상 익숙한 현실을 넘어 신기한 판타지의 세계를 펼쳐 보이지 않는가. 그간 보아왔던 지브리의 애니들이 떠오르자 갑자기 이책 <야수>가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신들의 나라에서 건너와 신성한 피를 가졌다는 요제의 딸들이 다스리는 나라, 료자 신성왕국. 신으로 칭송받는 '요제'는 온전히 백성들의 존경심을 바탕으로 한 왕권을 갖고 있고, 요제에게 충성을 맹세한 가신 대공 아르한은 '투사' 부대로 형성된 막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신성왕국을 수호하며 실질적인 군권을 행사한다. 분리되었지만 적절하게 유지되는 왕권과 군권의 균형은 신성왕국에는 평화로운 시대를 이어나간다. 그러나 아르한의 군사력이 갈수록 강성해지고 그를 왕으로 추대하려는 자객 무리가 요제를 시해하려는 일이 잦아지면서 요제와 아르한 사이에는 서로를 향한 경계와 미묘한 갈등이 싹트기 시작한다.

대공령의 투사지기 마을. 어린 소녀 에린은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다. 녹색의 눈동자를 가진 엄마 소욘은 아료(안개의 백성) 출신이라는 이유로 사람들로부터 천시 받지만 뛰어난 의학지식으로 최강의 투사 '엄니'를 관리하는 투사지기로 일하고 에린은 그런 엄마를 항상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던 어느날 날카로운 비명소리와 함께 소욘의 '엄니'들이 이유로 모른 채 한꺼번에 몰살당하고, 투사를 제대로 돌보지 않은 죄로 소욘은 사형에 처해진다. 사형이 집행된 엄마를 구하기 위해 에린은 강속으로 뛰어들고, 소욘은 망설임 끝에 목숨과도 같던 아료의 계율을 깨고 손가락 피리를 불어 에린을 구한다.

강가에 쓰러져있던 에린은 우연히 벌치는 노인 조운에게 발견되어 그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란다. 나이답지 않게 성숙하고 살아 움직이는 모든 생명체에 예민한 감수성을 보이는 에린의 남다른 재능을 눈여겨 본 조운은 에린에게 이것저것 가르치기 시작하고 에린은 스펀지처럼 그 지식들을 왕성하게 흡수해간다. 어느날 귀한 약초를 캐려고 벼랑으로 향하는 조운이 걱정된 에린은 몰래 그를 따르고 낙마 사고가 일어난 조운을 돕는 동안 우연히 야생 왕수와 그것이 투사를 향해 내지르는, 엄마의 손가락 피리와 닮은 소리와 그 소리에 반응해 경직된 투사의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거대한 야생 왕수의 아름답고 신비한 모습에 매료당한 에린은 그 이후 틈만 나면 벼랑으로 찾아가 야생 왕수와 새끼의 모습을 관찰하고, 그것은 훗날 에린이 리란을 통해 운명을 바꾸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엄마를 잃은 채 홀로 남겨졌다는 공통점을 가진 왕수 리란을 만난 에린은 생명을 가진 것들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바탕으로 리란과 대면한다. 정해진 왕수사육법이 아닌 진심을 담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리란을 대했고 그 결과 누구도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인간에게 절대 길들여지지 않는다는 새끼 왕수 리란과 교감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사람과 동물이 다르듯 에린과 리란의 사이가 항상 순탄하지는 않다. 자신의 생각과 다르게 행동하며 통제되지 않는 리란을 보며 에린은 좌절과 체념을 경험하지만 그래도 마지막까지 리란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에린의 마음에 화답하듯 리란은 커다란 날개를 움직이며 에린에게 날아온다. 마지막 그 장면에서 가슴 한 켠을 찡해지며 괜시리 눈물이 났다. 벅찬 감동의 열쇠, 그것은 바로 진심인 것이다.


우에하시 나호코의 <야수>는 가상의 무대인 신성 료자왕국과 가상의 생물 야생 왕수와 투사가 전체 이야기를 차지하는 판타지 소설이다. 왕권을 향한 음모와 갈등, 가공할만한 위력을 지닌 상상의 동물들을 이용한 전투, 왕수와 투사를 순식간에 경직시키는 무성피리라는 독특한 아이템, 다양한 인물들의 등장과 그들 사이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의문 등 <야수>는 판타지 소설의 거의 모든 흥미요소를 골고루 갖추고 잘 버무린 대작이다. 또한 <야수>는 한 편의 훌륭한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엄마를 그리워하는 연약한 소녀였던 에린은 조운과 에살의 도움속에 여러 역경을 슬기롭게 이겨나가고, 리란과 동고동락을 통해 생명에 대한 경이로움을 느끼며 한층 성숙해져 간다. 그리하여 오랜 세월동안 요제와 아료가 지키려고 했던 봉인을 뜻하지 않게 풀어 혼란이 일어날 때에도 새로운 세상을 향한 올바른 길을 열어주는 역할을 충실하게 해낸다.

우에하시 나호코는 <야수>의 '에린(인간)과 리란(야수)'의 관계를 통해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잘못된 태도를 꼬집고, 인간과 동물, 인간과 자연의 '교감과 소통'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왕수나 투사를 왕권과 군권의 상징으로 삼아 서로의 권력에 이용하거나, 야수들을 무성피리로 경직시켜 지배하는 행위는 지극히 이기적인 인간의 일방적 의사전달이다. 거기에 교감이나 소통 따위는 없다. 그러나 인간을 우월한 위치에 있게 해주는 무성피리를 거부하고, 야수를 인간의 소유물이 아닌 하나의 생명체로 존중함으로써 그들을 가로막고 있던 벽을 허물고 소통에 성공한다. 작가는 이런 에린의 모습을 통해 '일방적 명령'이 아닌 '쌍방향적 소통'이야말로 자연을 대하는 인간에게 필요한 것임을 넌지시 알려준다.

책을 읽는 동안 꿈을 꾸는 듯한, 머리속에서 상영되는 스펙터클한 영화를 한 편 감상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 작품과 비교되고 있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명작 애니메이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본지 너무 오래되어 내용도 희미하고, <원령공주>는 아직 보질 못한지라 직접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지만, <야수> 또한 그것들 못지 않은 대작 판타지라 생각된다. 너무나 매력적인 구석이 많은 판타지 소설이라 영화로 만들어도 좋을 듯 한데, 블록버스터 영화도 나쁘지 않지만 그것보다는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이책의 매력을 더 잘 살려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인간과 자연을 아우르는 거대한 스케일과 그속을 채우는 등장인물의 섬세한 내적 심리묘사가 매력적인 소설, <야수>. '단연 최고의 동양 판타지다!'라는 띠지의 문구가 부끄럽지 않은, 올여름에 만난 최고의 판타지로 꼽을 만한 멋진 소설이었다. 판타지 소설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더구나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사랑하시는 분이라면 후회없는 선택이 될 듯 하다.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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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스타 존의 수상한 휴가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북스토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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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첫 정은 정말 무서운 건가 보다. <공중그네>와 <남쪽으로 튀어>로 홀딱 반해서 빠져들었던 오쿠다 히데오였지만 최근 몇몇 작품으로 적잖은 실망감을 맛봤음에도 여전히 그의 이름을 들먹이면 나도 모르게 눈길이 머문다. 이번에도 그랬다. 오쿠다 히데오의 데뷔소설이라는 것과 그 유명한 팝스타 '존 레논'을 소설의 주인공으로 삼되 심각한 상황에서도 익살을 떠는 오쿠다 히데오답게 존 레논을 변비환자로 만들었다는 점이 또 한 번 나를 유혹했다. 그리하여 나는 어느새 <팝스타 존의 수상한 휴가>라는 수상한 제목의 책을 또다시 넘기고 있었다.

세계를 뒤흔든 유명한 팝스타인 존은 일본인 아내 게이코와의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나자 지난 4년 동안 세계를 여행하며 가족과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고, 여름이면 아내를 따라 일본으로 휴가를 왔다. 그해 여름에도 역시 존은 일본의 가루이지와에서 휴가를 보내는 중이었다. 평화로운 휴가를 보내던 어느날 존은 빵집에서 자신을 부르는 낯익은 목소리를 듣고 화들짝 놀란다. 그것은 어머니의 목소리였던 것이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억제하지 못하고 목소리 뿐만 아니라 뒷모습까지 자신의 어머니와 너무나 흡사한 백인 여성을 뒤쫓아 니테 다리까지 갔던 존은 그녀가 자신의 어머니와는 다른 얼굴을 가진 평범한 백인 여성이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쉰다.

그러나 니테 다리에서의 우연한 만남은 존에게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주는 계기가 되었고, 거기에 방황하던 젊은 날의 잘못들까지 겹쳐져 존은 매일밤 악몽에 시달린다. 원인을 알 수 없는 하복부의 격렬한 통증과 잠들 때마다 찾아오는 악몽, 뒤따르는 호흡곤란에 견디다 못해 병원을 찾은 존에게 의사는 아무 이상이 없다며 약간의 약과 주사를 처방해준다. 그러나 하복부의 통증은 멈출 줄을 모르고 급기야 변비로 발전하고 전전긍긍하던 존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아내 게이코가 알려준 아네모네 병원을 찾는다. 그 수상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기 시작하면서 존은 그동안 자신이 상처를 주었던 사람들과 자신에게 가장 큰 상처를 남긴 어머니를 다시 만나면서 몸을 괴롭히던 변비는 물론 마음을 괴롭히던 상처까지 치유하기 시작한다.

실제로 존 레논은 아들이 태어난 이후 다음 앨범(아쉽게도 그것은 존의 마지막 앨범이 되었지만;)까지 4년간의 공백기가 있었고, 거기에 대해 세상에 알려진 것은 별로 없다고 한다. 오쿠다 히데오는 존 레논의 은둔생활에 호기심을 품었고, 그 기간동안 그의 마음을 치유해줄 만한 사건이 있지 않았을까 짐작했다. 존 레논에 대한 이런 의문과 호기심이 오쿠다 히데오의 엉뚱하면서도 유쾌한 상상력과 만났고 이책이 나왔다.

오쿠다 히데오의 데뷔작인 <팝스타 존의 수상한 휴가>의 가장 큰 매력은 '죄책감에 대한 속죄와 상처의 치유'라는 진지한 주제를 팝스타의 은둔생활과 변비라는 다소 엉뚱한 소재와 연결해 유쾌하게 풀어가는 그의 익살스러움일 것이다. 또한 기존에 알려진 존의 에피소드들을 능수능란하게 각색하고 죽은 사람들이 돌아온다는 일본의 명절인 오봉절과의 절묘한 연결은 읽는 재미를 더한다. <공중그네>처럼 요절복통은 아니지만 변비환자에 대해 민망할 정도의 리얼한 묘사 등은 피식 웃음이 나게 하고, 가볍고 유쾌한 웃음 가운데 인간 내면의 심리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은 여기서도 빛을 발한다. 

눈을 떼지 못할 정도의 전개감이나 배가 아플 정도의 웃음은 없지만 상처받은 영혼을 어루만져주는 따뜻한 소설이었다. 큰 기대없이 가볍게 부담없이 읽는다면 존의 고통과 환희를 즐겁게 즐길 수 있을 듯 하다. 특히 화장실에 오래 머물러야 할 변비환자들이 화장실에서 이책을 읽는다면 존의 리얼한 배변 고통에 대한 묘사에 깊은 공감을 표할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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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 박경리 시집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0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5월 5일 어린이날 그 즐거운 날에 우연히 집어든 신문에서 박경리 님의 타계 소식을 접했다. 오늘이 만우절인가,라는 생각을 할 만큼 정말 놀랐었다. 얼마전 건강이 악화되어 의식을 찾지 못한 채 중환자실에 계시다는 소식을 접하긴 했지만 그래도 곧 훌훌털고 일어나시리라 믿었다. 꼭 그래주시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녀는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벗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하늘나라로 가셨다.

그후 박경리 님의 미발표 신작시들을 모은 유고시집이 출간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때서야 처음 알았다. 박경리 님이 시를 쓰셨구나. 생의 마지막에 선 그녀의 노래는 과연 어떤 것들일까. 궁금해졌다. 시집을 그리 즐기진 않지만, 시와 그리 친하진 않지만 왠지 이 시집만은 꼭 읽고 싶어졌다. 故 박경리 님의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는 그렇게 내 손에 왔다. 

시집에는 생전에 발표하신 3편의 시(까치설, 어머니, 옛날의 그집)와 미발표 신작시 36편, 총 39편의 시가 실려있다. 서른 아홉 개의 노래가 담긴 이책은 작고 얇지만 물리적 무게로는 표현할 수 없는 '박경리'라는 이름의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진다.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라는 시집 제목이나 '희망을 잃지 않았던 것은 남몰래 시를 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라는 띠지의 문장은 시를 읽기 전부터 마음을 아릿하게 만든다.

이책의 시들은 '시'라기 보다는 '에세이'에 가깝다. 박경리 님은 시의 형식을 빌어 군더더기 없는 언어로 자신이 걸어온 인생길을 담담하게 노래한다. 은유나 상징, 비유같은 기교를 배제한 시는 하얀 고무신을 신고 고추밭 사이를 다니며 얼굴 가득 행복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사진속 박경리 님의 모습처럼 꾸밈없이 소박하다. 그녀는 그런 담백함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듯 시를 읊는다. 시어 곳곳에 그녀의 삶이 배어있다.

시집은 네 개의 꼭지로 엮여있는데, 「옛날의 그 집」에는 그녀 자신의 이야기를, 「어머니」는 자신의 어머니와 할머니들에 대한 마음을, 「가을」은 자연을 향한 존경을, 「까치설」은 사회를 향한 시선을 담은 시들로 채워져있다. 담담하고 차분한 어조로 이야기하듯 들려주는 시 한 수 한 수가 모두 가슴을 울렸다. 많은 눈물을 흘렸던 청춘이지만 지나고 보니 그 시절이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는 첫 시부터 가슴이 찌릿했고, 어머니에 대한 기억들은 깊은 감동을 남겼다. 어머니와 할머니에 대한 시들은 지금 곁에 계신 나의 어머니를 비롯해 '우리 시대의 어머니'를 생각해보게 했고, 잘못 돌아가는 사회에 날리는 쓴소리는 지금 우리의 삶을 되짚어보게 만들었다.

이책에 담긴 서른 아홉 편의 시들은 모두 그녀 자신의 이야기다. 그녀는 시라는 형식을 빌어 자신이 살아온 순탄치는 않았지만 그래도 아름다웠던 삶의 이야기를 담담하고 차분한 어조로 들려준다. 길고 길었던 지난날들이 시를 통해 다시 되살아난다. 빛나는 진심이 담긴 시들은 그래서 더욱 진한 감동을 남긴다. 생의 마지막까지 펜을 들고 글을 쓰고 시를 지었던 그녀의 모습을 떠올라 시집을 읽는 내내 마음 한구석이 저려왔다.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고 말하던 박경리 선생님, 부디 그곳에서는 아픔없이 행복함으로 가득찬 나날을 보내길 바라본다.

참, 시집 사이사이에 수록된 김덕용 님의 그림은 시와 잘 어울어져 글의 느낌을 잘 살려낸다. 따뜻함이 가득한 그림들, 그림 자체만으로도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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