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초원에서 보내는 편지 - 평생 잊지 못할 몽골의 초원과 하늘,그리고 사람 이야기
강제욱 외 지음 / 이른아침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 사랑은 알아야 생기는 감정입니다. 처음 공항에 내렸을 땐 즉시 후회했고, 일주일이 지나자 신기해 보였으며, 한 달 째엔 매력을 느꼈고, 1년 후에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된 나라, 바로 몽골입니다. (85쪽, 윤광준)


학창시절 세계사를 제법 잘 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몽골에 대해서 생각나는 거라곤 징기즈칸과 유목민, 초원 정도밖에 없다. 얼마전에는 몽골이 독립국가로 존재하는지조차 가물거려 '중국에 강제통합된 것 아니었어?'라며 무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학창시절 세계사 시험 백점이 부끄러운 나의 무지에 부끄러울 따름이다. 그러나 따져보면 이건 유럽으로 대표되는 서양의 역사를 중점적으로 기록하면서 우리 주변국의 역사에 대해서는 가벼이 대하는 국정교과서의 책임도 있지 않을까 싶다(..고 변명해본다.)

핑계는 그만두고 수첩 뒤에 딸린 자그마한 세계지도를 펼쳐 그속에서 몽골을 찾아본다. 오홋, 나의 무지와 상관없이 몽골은 대륙의 중간에 오롯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비록 네이멍구자치구를 끝내 중국에 강제로 빼앗겼고, 국토의 적지 않은 부분을 사막이 차지하고 있지만 지도로 본 몽골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큰 영토를 가진 나라였다. 학교를 졸업한지 수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세계지도에서 몽골을 짚어보며 징기즈칸의 후예 몽골을 생각해본다.

그러다 얼마전 몽골 초원의 사막화를 다룬 티비 프로그램을 접했다. 티비속에서는 우리와 너무나 닮은 얼굴을 가진 몽골인들이 사막으로 변해버린 황무지를 다시 초원으로 되돌리고자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들의 그런 노력들이 헛되지만은 않았는지 모래 바람만 사납게 불어대던 황무지에 뿌리를 내린 생명이 열매의 기적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들 손에 들려진 감자 몇 알은 그 증거였다. 그걸 보고 있자니 갑자기 몽골이라는 나라, 드넓은 초원과 그곳을 유랑하는 유목민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그때 마침 이책이 눈에 들어왔다.


- 한국에서는 매일 한두 번씩 샤워를 하던 나였지만 이곳에서 머문 닷새 동안은 자연스레 양치 하나만으로 끝냈어. 물과 불은 그들의 공동체를 지켜내는 최후의 수단이라고 하니 그리 불편하지 않던걸. 먼지가 풀풀 나는 너른 들판을 하루 종일 걸어 다녀도 가려움은커녕 언제나 기분 좋을 만큼 옷이 고슬거렸어. 매일 샤워를 해대는 우리가 잘 씻지 못하는 그들보다 영혼은 더 오염되어 있는 걸 보면 참 아이러니 해. (169쪽, 진아라)


<몽골, 초원에서 보내온 편지>는 몽골을 사랑하는 6명의 사진작가들이 그곳을 여행한 이야기와 그들의 시선으로 담아온 사진들로 구성되어 있다. 글들은 모두 누군가에게 띄우는 편지의 형식을 띠고 있는데, 제목속의 '편지'는 이유있는 단어였던 셈이다. 편지라고는 하나 사사로운 내용은 거의 없는, 몽골에 대한 그들이 생각을 담아놓은 글이지만 그래도 누군가의 편지를 함께 읽는 듯한 느낌이 들어 보통의 에세이와는 또다른 편지글만의 친근감이 느껴졌다. 작가들이 편지를 쓰는 대상들도 다양했는데, 그중 강제욱 님의 '후씨 아저씨'는 마지막에 깜짝 반전의 재미를 선사한다. 

이책에서 6인의 사진작가들은 자신만의 독특한 시선으로 몽골을 경험하고 사유하고 바라보며 그 모습을 펜과 카메라 렌즈에 담아낸다. 초원, 사막, 눈이 시리게 푸른 하늘 등의 이국적 풍광과 순박한 미소의 사람들, 북적이는 몽골의 도시와 그뒤에 감춰진 그림자, 설 곳을 잃어가는 유목민들, 산업화로 파괴되어 가는 환경 등 몽골의 어제와 오늘 - 정치, 사회, 역사, 문화 등의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이렇게 몽골에 대해 각기 다른 시선으로 그려낸 글과 사진 들을 한 권의 책을 통해 다양하게 맛볼 수 있다는 점이 이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또한 그것은 기대 이상의 즐거운 경험이었다. 


몽골에 대해 거의 백지에 가까웠던 나는 이책의 '편지'들을 통해 많은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됐다. 몽골은 스탈린의 도움으로 독립에 성공했으나 끝내 네이멍구자치구를 중국에 빼앗긴 그들의 역사가 남일 같지 않아 가슴 아팠고, 무분별한 개발로 삶의 터전인 초원을 빼앗겨 불법채금자인 닌자 광부로 내몰린 유목민들의 처지나 생태계과 파괴되어 사막화되는 초원의 모습은 서글펐다. 네이멍구자치구에서는 주변국의 영토는 물론 역사까지도 자기네 것이라 우기는 뻔뻔한 중국의 역사왜곡의 흔적들을 보며 함께 흥분했고, 공산주의의 영향으로 시작된 불교 말살 정책으로 죽임을 당한 수많은 승려들과 어처구니없이 파괴당한 불교유산들을 보며 화가 났다. 또한 넉넉치 않은 생활속에서도 '행복한가?'라는 질문에 대부분이 '그렇다'라고 대답했다는 몽골인들, 그들의 소박함은 물질적 풍요에 탐닉하느라 정신적 행복을 잃어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되돌아 보게 했다.

책속 몽골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이 많았지만,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역시 몽골의 때묻지 않은 자연과 사람들이었다. 지평선이 보이는 푸른 초원, 말을 타고 신나게 달리는 사람들, 밀가루를 뿌려놓은 것처럼 빛나는 밤하늘의 별들도 멋졌지만, 우리나라를 '솔롱고스(무지개의 나라)'라 부르며 낯선 이방인에게 수태차를 함께 따뜻한 미소를 보여주는, 좀 더 친해지면 그들의 전통주인 마유주와 보드카를 권하는 그들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게르에서 유목민들과 함께 생활하며 지켜본 그들에 대한 이야기는 처음의 호기심을 넘어 약간의 경외감마저 일게 했다. 물이 부족해 세수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단순한 조리법으로 요리한 음식을 매일 먹어도 행복한 그들, 가축들이 먹을 양이 줄어든다고 나물조차 먹지 않으며 자연에 순응하는 삶을 사는 그들의 모습은 참 아름답다.


- 사실 몽골의 풍경은 말 등에 올라타서 바라보아야 제격입니다. 말 잔등의 진동을 느끼며 한층 높아진 시야로 보는 너른 대지의 청량감과 땅의 감촉은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가축과 인간이 하나되는 느낌은 몽골이 아니면 체험할 수 없는 기회입니다. (중략) 위험하지 않느냐고요? 당연히 위험합니다. 하지만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면 각별함도 포기해야 합니다. 적당한 위험을 감수하고 즐기는 자세가 몽골에 가까이 다가서는 가장 중요한 팁이랍니다. (95쪽, 윤광준)


여행에세이를 좋아해 즐겨 읽지만 몽골을 본격적으로 다룬 책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미지의 땅 몽골에 대한 이야기들은 그래서 더욱 즐거웠다. 6인의 작가들이 재미난 글과 멋드러진 사진을 통해 보여주는 몽골에 대한 애정은 이책을 읽는 내게도 담뿍 전해왔다. 그와 함께 그저 지도속에서나 존재했던 몽골이 내 안에서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그들의 눈과 귀를 빌린 덕분에 이제는 징기즈칸과 고비사막 외에도 몽골을 떠올릴 수 있는 것들이 꽤나 많아졌다. 그래서 행복했다. <몽골, 초원에서 보내온 편지>는 나처럼 몽골에 대해 잘 몰랐던 독자들에게 몽골만이 가지는 매력을 한껏 보여주는 책이다. 그리고 읽는 내내 눈이 즐겁고 가슴이 따뜻해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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