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킨 시크릿 - 아름답고 건강한 피부미인이 되는 아홉 가지 비밀
리즈 얼 지음, 조성희 옮김 / 이끼북스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피부 좋기로 소문난 엄마와 달리 내 피부는 사춘기 때부터 시작된 뾰루지와의 전쟁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일명 저질피부다. 컨디션이 꽤 좋을 때도 한두 개쯤의 뾰루지를 옵션으로 달고 있는 것은 보통이며, 지난 수년간 그런 과정을 통해 남겨진 흔적들로 넓어진 모공은 말할 것도 없고 얼굴 곳곳에 눈물겨운 상처들이 자리잡고 있다. 호르몬 불균형으로 발생한다던 사춘기 여드름은 이제 성인 여드름으로 이름만 바꿔단 채 여전히 날 괴롭히고 있다. 피부 미인, 그건 내게 너무나 먼 이야기일 뿐이다. 

쌩얼, 민낯이라는 신조어가 생기고 도자기 피부가 각광받고 있는 요즘의 대세는 단연 피부 미인이다. 같은 이목구비를 가졌더라도 깨끗한 피부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면 한층 빛이 나는 건 당연지사! 일전에 물건을 보러 가게에 들어갔다가 잡티 하나 없는 그야말로 우윳빛 투명 피부의 알바생의 얼굴에 나도 모르게 자꾸 눈길이 갔던 적이 있다. 그리 예쁜 얼굴은 아니었는데 고운 피부만으로도 어찌나 예쁘게 보이던지! 그 순간 수시로 뾰루지 산이 솟고 울긋불긋 단풍으로 물드는 내 피부가 그렇게 원망스럽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피부가 이런 까닭에 피부 건강이나 화장품 등에 관심이 많다. 물론 관심만 많고 게을러서 실천은 거의 안 하지만. 얼마전에는 천연화장품 만드는 과정을 배웠는데, 단순히 화장품을 만드는 방법 뿐만 아니라 우리 피부의 구조와 기능 같은 가장 기초적인 내용과 화장품 재료의 종류와 성질 같은 전반적인 지식을 함께 접할 수 있어 흥미로웠다. 그래서 요즘 피부나 화장품, 아로마 오일에 관해 다룬 책들을 관심을 갖고 찾아보고 있다.

이책 <스킨 스크릿>도 바로 그런 이유로 만나게 됐다. 책표지 윗부분에는 니콜 키드먼을 닮은 듯한(물론 그녀보다는 조금 더 풍만하고 조금 더 눈가 주름이 많지만) 여인네의 사진과 Liz Earle이란 글자가 적혀 있었다. 책제목 보다도 위에 적혀 있던 단어 '리즈 얼'은 바로 영국에서 유명한 뷰티 서적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방송 진행자였고, 현재 자신의 이름을 내건 화장품 브랜드 회사를 운영중인 이책의 저자 이름이었다. 더불어 눈가의 주름에도 불구하고 탱탱한 피부를 자랑하는 사진 속의 그 여인네이기도 했다. (와우!)

'아름답고 건강한 피부미인이 되는 아홉 가지 비밀'이라는 부제처럼 이책은 크게 9개의 꼭지로 구성되어 있다. 피부 요인과 기능, 구조, 타입 등을 다룬 1장을 시작으로 피부에 좋은 식물성 원료들의 종류와 효능, 연령별로 달라지는 피부 상태와 관리 방법, 우리 몸의 부위별 관리법과 사용하면 좋은 화장품들 등을 소개하고 있다. 뒷부분에서는 자외선 차단의 중요성과 문제성 피부의 해결방법, 영양 상태나 운동 등을 통한 건강 상태가 피부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다소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는 피부의 구조나 식물성 원료들의 소개 부분은 이미 천연화장품 과정에서 접해봤던 내용이라 지루하기보다는 오히려 재미있었고, 연령대별 피부에 관한 부분이나 부위별 관리법 들은 현재 내 상태와 비교해 가면서 필요한 부분을 체크해가며 읽느라  분주했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자외선 차단에 대해서도 간단하게 언급해 놓았고, 나의 가장 큰 고민인 여드름은 물론 습진, 건선(마른버짐), 주사(rosacea) 같은 문제성 피부에 대한 설명과 해결책도 함께 제시하고 있다.

책의 후반부에 다다르면 음식과 운동, 수면과 마음가짐 등 보다 본질적인 피부와 건강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피부에 충분한 영양을 공급해줄 건강식과 그 레시피를 소개해 놓았고, 생활 속에서 손쉽게 할 수 있으면서도 효과만점의 간단한 운동법들도 자세히 실어두었다. 거기에 더해 미인은 잠꾸러기라는 말처럼 숙면을 취하는 것과 편안한 휴식을 통해 마음을 편안히 하는 것 또한 피부 건강에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투명하고 탄력있는 피부는 모든 이들의 로망이다. 그런 피부를 갖기 위해 좋은 화장품으로 꾸준하게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외적인 것 못지 않게 내적인 건강을 챙기는 것도 중요하다. 즉, 좋은 피부를 가지고 싶다면 우선 몸이 건강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책의 저자가 책의 후반부에서 언급한 것처럼 건강한 몸이야 말로 매력적인 피부를 위한 가장 든든하고 확실한 밑거름이다.

A4 크기의 큼지막한 책에 깨알처럼 작은 글자들이 촘촘히 박혀 있어 처음엔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친근한 말투로 자세하게 풀어놓은 피부 이야기들이 읽을수록 재미있었다. 더불어 평소에 궁금한 자잘한 궁금증에 대한 상세한 조언과 정보들을 많이 얻을 수 있었다. 가끔씩 의견을 달리하는 부분이 있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친자연주의와 친환경주의적 관점을 견지하는 저자의 입장에 공감하는 부분도 많았다. 피부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유용한 지식들을 적지 않게 얻을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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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만화책 - 캐릭터로 읽는 20세기 한국만화사, 한국만화 100년 특별기획
황민호 지음 / 가람기획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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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인생의 만화책 - 캐릭터로 읽는 20세기 한국만화사 | 황민호 | 가람기획 | 2009-10-15 


어느날 저녁, 기분이 너무 우울해져 읽던 책을 덮고는 옆에 놓여있던 책장으로 눈길을 돌렸다. 머릿 속에서 수십수만가지로 가지치기를 하는 우울함을 말끔하게 몰아낼 만큼 강력한 이야기 꺼리를 찾던 중 흥미진진한 여러 소설들을 제치고 빛의 속도로 내 눈에 꽂힌 책이 있었으니, 바로 만화 이야기를 들려주는 황민호의 『내 인생의 만화책』이었다. 제목부터 만화와 함께 한 옛추억의 즐거움을 떠올리게 해줄 것 같은 강렬한 느낌이 전해졌다고나 할까. 슬그머니 책을 꺼내들고는 이불 속으로 몸을 묻고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얼마전 '한국만화 100주년 기념 전시회'가 열렸다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 한국 만화가 벌써 100살을 맞았구나,라는 생각에 감회가 새로웠다. 요즘은 자주 읽진 못하는 편이지만 평소 만화에 관심이 많기도 하고, 또 제목으로만 전해들었던 전설의(?) 만화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자세히 듣고 싶기도 해서 서울 나들이 기회를 호시탐탐 노렸지만 워낙 먼길이라 틈이 나질 않았다. 그 사이 전시회는 막을 내렸고. 올초 서울에서 돌아온 후에 파주에서 한국 만화 작품들을 전시중이라는 소식을 접했을 때만큼 짙은 아쉬움이 남았다. 

한국 만화 전시회는 나와는 인연이 닿질 않는 모양이라며 체념할 때쯤 한국 만화 100주년을 기념해 지난 만화 이야기를 풀어놓은 이책을 만났다. 내심 반가웠다. 전시회에서 눈으로 보진 못했지만 이책을 통해 글로써 우리 만화들에 대한 이야기를 만나볼 생각을 하니 가슴이 설렌다. 책표지에 앙증맞게 놓여있는 둘리와 독고탁, 까치, 고인돌, 주먹대장 등의 캐릭터들이 반갑고, 그와 함께 그들이 활약하던 만화를 보며 깔깔대던 내 어린날의 모습이 떠올라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떠올랐다. 





『내 인생의 만화책』은 '캐릭터로 말하는 20세기 한국 만화사'라는 부제처럼 한국 만화의 전성기였던 1940년대부터 90년대를 풍미했던 대표 만화 캐릭터들을 통해 작가와 작품, 그 시대의 상황 등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엮어낸다. 1940-50년대를 다룬 1장에서는 제목만으로 전해들었던 '코주부'와 어렸을 때 얼핏 본 듯한 기억이 나는 '고바우'와 '주먹대장', 그리고 얼마전 파주에서 있었던 북쇼를 소개하는 티비 프로그램을 통해 처음 접하게 된 '라이파이'가 등장한다. 전설적인 작품으로 들어는 봤지만, 그 시대보다 한참 후에야 태어난 내게는 많이 낯선 캐릭터였다.

그러나 2장 1960-70년대에는 여전히 먼 시대인 것 같은데 의외로 친숙한 캐릭터들이 많이 등장한다. 지금까지 모 아이스크림 광고의 장수모델로 활약중인 '고인돌'을 비롯해 야구 천재 '독고탁'과 지금은 명실상부 최고의 스타캐릭터가 된 '둘리', 어린이 학습 신문에 늘 등장하던 '꺼벙이' 등이 그들이다. 저자가 말하는 작품은 잘 모르겠지만, 그림체를 보니 신문수나 윤승운, 김삼의 만화 또한 어렸을 때 신문에 연재된 걸 가끔씩 본 기억이 떠올랐다. '다모'나 '일지매'는 티비 드라마로 제작되면서 그 존재를 알게 된 작품들이다. 반면 '땡이'나 '불나비' '독대' 등은 이책을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됐다. 허영만의 이강토 역시 마찬가지.

1980년대를 다루는 3장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그래도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갖고 있었는데, 웬걸! 당시 어린이였던 내가 확실하게 기억하는 캐릭터는 애니메이션과 영화로도 제작되어 큰 인기를 끌었던 '둘리'와 '까치 오혜성' 정도가 전부였다. 이럴수가! 반쯤 감긴 눈의 '구영탄'마저 나의 기억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고, '최강타'와 '고도리'는 저자를 통해 그 매력과 의미를 되짚었다. 기존의 만화들보다 성에 대해 보다 자유로운 여성 캐릭터들이 등장한 한희작의 작품들은 스포츠 신문에 연재되는 '야한' 만화라고 생각했었던 그것들이었다. 작가는 몰라도 그림체로 기억을 떠올리는 것 또한 만화의 재미가 아닐까 싶다.

4장에서는 한국 만화 전성기의 끝물에 해당하는 90년대 만화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머리가 좀 더 굵었을 때임에도 아는 건 순정만화를 그리던 김동화가 성인 만화로 옮겼던 '이화' 뿐이었다. '영심이'로만 기억하는 배금택의 대표 캐릭터로 등장한 '변금련'은 물론이고, 김진태의 '황대장'이나 이명진의 '남궁건', 백성민의 '토끼' 역시 이책을 통해 처음으로 접했다. 어째 시대가 흐를수록 예전보다 아는 캐릭터가 더 줄어드는 건지. 순간 좋아하고, 나름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던 한국 만화의 범주가 우물 안 개구리처럼 좁은 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2장의 6,70년대는 소개하는 캐릭터의 분량에서부터 다른 꼭지의 두 배를 훌쩍 뛰어넘는다. 4,50년대부터 주목받기 시작해 기반을 다진 한국 만화들이 질적으로는 물론 양적으로 큰 성장을 이루던 시기란다. 점점 다양한 개성을 가진 캐릭터를 내세운 만화들이 등장했고 기존의 명랑만화에서 벗어나 시대물이나 본격적으로 성인들을 겨냥한 성인만화 등 새로운 형식과 내용을 시도하는 만화들이 늘어났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후 거듭되는 불운으로 한국 만화의 전성기는 막을 내리고 슬슬 침체기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한국 만화는 나름의 길을 모색했고, 요즘 다시 살아나고 있다. 한국 만화를 사랑하는 팬으로도 참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다만 한국 만화 역사의 전체적 맥락에서 비중이 높고 중요한 만화와 캐릭터 들을 따라가다 보니 내가 기억하고 있는, 그야말로 내 인생에 기억되는 만화들과 겹치는 부분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예를 들어 이진주의 '하니'나 배금택의 '영심이'는, 초특급 스타인 '둘리'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티비 만화 영화로도 제작될 정도로 큰 인기를 누리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만화였음에도 이책에는 끼지 못했다. 물론 사람마다의 기준을 일일이 맞출 수가 없고, 또 그렇게 빠진 만화가 한둘이겠냐만은 그래도 섭섭한 걸 어쩌란 말인가. 하핫,

더불어 소위 '순정만화'로 분류되는 만화들에 대한 언급 또한 전혀 없는 것도 약간 서운했다. 한국 만화 계에서 순정만화라는 분야를 개척한 '순정만화 계의 대모'인 황미나 정도라면 이책에 한 꼭지 정도에 자리잡을 자격은 충분하지 않을까 싶은데 말이다. 다른 작가들처럼 매번 검은색의 긴 생머리 남자라는 중심 캐릭터도 있고, 현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도 적지 않다. 설마 그렇진 않았겠지만, 혹시라도 순정 만화라는 장르 때문에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살짝 들었다. 만약 그런 거라면 '내 인생의 순정만화' 같은, 순정만화의 캐릭터와 작품에 대해 본격적으로 다룬 후속편을 내는 어떨까. 당장 읽어줄 의향이 있는데 말이다. :)





날카로운 눈빛을 반짝이는 악역 고길동이 초기에는 저렇게 두루뭉술한 외모였다뉘! :)


이책을 읽는 동안 '내 인생의 만화책'들이 불쑥불쑥 떠올랐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그책을 보던 내 감성까지. 어린 나를 만화 세계로의 입문시킨 어린이 만화잡지 『보물섬』과 조금 머리가 굵어서는 또다른 세계로 인도한 순정만화 잡지 『르네상스』은 내 만화 인생에서 빼놓을 수가 없는 잡지들이다. 정말 재미있게 봤었던 김수정의 『아기 공룡 둘리』를 비롯해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 황미나의 『안녕, 미스터 블랙』 과 『레드문』, 강경옥의 『별빛속에』, 김혜린의 『불의 검』과 『북해의 별』, 박희정의 『호텔 아프리카』 등이 연이어 반짝반짜기 빛을 냈다. 아아, 적다보니 후반부엔 죄다 순정만화구나. 아, 이원복 교수의 학습만화인 『먼나라 이웃나라』도 빼놓을 수 없다. 하핫,

 

황민호의 『내 인생의 만화』 는 한국 만화의 100년 중 전성기였던 50년 동안의 시간들을 통해 다양한 캐릭터들을 보여주고, 그속에서 우리 만화의 풍성한 이야기 꺼리들을 끄집어내 들려주는 푸짐한 만화 이야기 보따리다. 익숙한 만화라면 그것들을 보던 어린날의 추억들을 새록새록 떠올리는 재미가 있고, 기억이 날듯 말듯하다면 흐릿한 기억을 좀 더 또렷하게 새길 수도 있다. 처음 만난 낯선 캐릭터라면 그전에는 몰랐던 것들을 이야기를 통해 경험하는 새로운 즐거움을 누릴 수도 있다. 즉,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캐릭터와 만화가 등장하든 크게 개의치 않고 즐겁게 읽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가 들려주는 만화 이야기들도 재미있지만 무엇보다 그것을 재미있게 들려주는 그의 글솜씨 또한 매력적이다. 그래서 한 번 잡으면 글의 재미와 추억의 맛에 푹 빠져 쉬이 내려놓지 않게 된다. 그러니 아예 화장실 다녀온 후 책을 펼치길. :)










이 책을 읽고는 예전에 열심히 모았던 '만화시리즈' 우표를 꺼내봤다.
어이쿠! 거기에 전설의 코주부, 고바우, 라이파이 등이 모두 있는 게 아닌가!

'만화시리즈 우표' 1회는 그 상징성을 생각해 최고의 수퍼스타 캐릭터인 '둘리'와
이책에도 처음에 등장하는 '고바우'가 그 모델로 나섰다.
아, 그리고 이책엔 안 나온 '하니'는 우표에서도 나왔다고! 그것도 3회 때!




위쪽 사진 아래쪽의 울긋불긋한 우표에 있는 것이 바로 산호의 '라이파이'다.
우표를 살 땐 저게 뭔지도 몰랐는데, 이제서야 오호!! 하고 감탄사를 내뿜는다.

독고탁과 고인돌, 일지매, 영심이, 꺼벙이 등등도 눈에 띄고.
무엇보다 황미나와 김혜린의 작품도 만화시리즈에 등장했다는 점!!
이젠 순정만화도 단순 로맨스가 아니라 작품 그 자체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본다. :)





→ 가끔 인용된 만화가 잘못 실려 같은 장면이 중복되어 나오기도 한다. 
    다음쇄에서는 수정되어야 할 듯. (초판 1쇄)

+ 270쪽 1번째줄 외 여러곳 : 어리숙해 → 어수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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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미용실을 다녀왔다!! 미용실 다녀온 게 뭐 그리 대수냐,라면 뭐, 그렇다. 그렇지만 머리 해야 하는데, 하는데, 하는데.. 만을 외치기를 수 주일이 지나 드디어 더이상은 손질이 불가한 지경에 이르러서야 겨우, 간신히 미용실을 향한 나와 친구에게는 앓던 이를 뺀 것처럼 일을 해치웠다!는 뭔가 후련한 마음이 있다. 드디어 끝냈어! 불끈! 뭐 그런.. ㅎㅎ

안경을 끼는 내가 라식이나 렌즈의 필요성을 급격히, 몹시도 절실하게 느끼는 곳 중의 하나가 바로 미용실이다. 머리의 모냥새를 바꾸기 위해 향기롭지 않은 화학약품을 잔뜩 바른 머리를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가 거의 대부분인지라 기다리는 시간 동안 내 눈은 항상 흐릿하다. 기다리는 동안 책이라도 읽을라치면 눈 앞에 바짝 들이대야 한다. 그러니 팔이 아픈 건 당연지사, 나쁜 눈 때문에 팔이 고생하는 셈이다.

가끔 아무런 준비없이 미용실을 가게 되면 무료한 시간 동안 친절한 직원님이 가져다 주신 패션 잡지들을 보곤 한다. 그런데 패션 잡지라는 것이 대개 광고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책이라 실린 내용에 비해 엄청~ 두껍고, 게다가 종이질은 또 어찌나 좋은지 한 무게 한다. 고로 현란한 모델들의 포즈에 눈은 즐거우나 두껍고 무거워 바짝 치켜들고 보다보면 팔뚝에 알통 생기는 건 시간 문제다.

그래서 미용실을 가겠노라 마음을 먹은 날에는 필히!! 가장 가볍고 가능한 작은, 그래서 장시간 들고 있어도 전혀~ 무리가 없는 책을 한 권 챙겨들고 간다. 그렇지만 가끔은 약간 두께있는 책이 필요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매직펌처럼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경우엔 얇은 책으로 그 시간을 다 채우지 못해 마지막 책장을 덮고 후회의 한숨을 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두께 대비 가벼운 책을 선택한다. 더불어 주위가 시끄럽기 때문에 전개가 빠른 소설류가 제격이다. 그래서 이번에도 역시나! 정말 작고 아주 가벼우며 쉽게 빠져들 수 있는 소설, 모리 에토의 신작 『다이브』 1권을 가져갔다.


겉옷과 가방을 건네고 폰과 책을 들고 안내하는 자리에 앉았다. 마주하고 있는 거울 속의 헤어드자이너~ 님이 내 머리를 한참 요리조리 보더니 뒷머리는 세팅펌을 하고 앞머리는 살짝쿵 펴서 가지런하게 자르잔다. 사실 마음 같아서는 고속도로처럼 쭉쭉~ 뻗은 국수머리를 하고 싶었으나, 피부에 좋다고 시작한 '아침엔 검은콩'으로 그나마 얼마 남지도 않은 얼굴살이 급격히 빠져버린 탓에, 흑, 그리할 수가 없었다. 시원하게 뻗는 생머리는 송곳처럼 뾰족해진 내 얼굴을 더욱 여위어 보이게 만들기도 하고, 또 풍성한 머리숱의 축복을 누리지 못해 숱이 더 적어보일 우려도 있으니 말이다. 에휴~

세팅펌을 하다보면 미용실마다 이용하는 기기가 조금씩 다르다. 어떤 곳은 외계인 교신용 같은 해괴한 거대 기계에 포로 붙잡듯 온 머리를 다 묶어버리는(?) 곳이 있는가 하면, 또 다른 곳은 묵직한 돌덩어리(?) 롤로 머리를 감아 목에 과부하를 주는 곳도 있다. 그 다음 신상 제품을 사용하는 곳도 있었는데, 너무 오래되어 기억이 안 난다. -_-; 여튼, 이곳은 전자, 즉 전형적인 외계인 교신기(?)형이었다. 바로 사진의 저것!

머리끝을 대충 정리한 뒤 매직펌처럼 파마약을 잔뜩 바른 채 한참을 내비두더니만 머리를 감고는 이 세팅기 아래에 앉혔다. 그리고는 기계의 집계들을 잡아당겨 내 머리의 끄트머리를 꾹! 잡는다. 커다란 기계에 머리채를 전부 묶인 채 앉아 있는 거울 속 내 모습은, 내가 봐도 완전 웃긴다. 무슨 영화 속 세뇌 장면도 아니고, 왜 있지 않은가, SF영화나 만화영화를 보면 UFO의 외계인들이 납치한 지구인을 기계에 가둬 세뇌하는 장면, 셋팅기 아래 앉아있는 내 모습이 딱 그렇다. 세팅기의 포로랄까. ㅎㅎ

사진의 오른쪽을 보면 또다른 세팅기에 묶인 포로의 뒷통수가 보인다. 바로 미용실을 함께 간 내 친구다. 거울에 비친 모습을 통해 슬쩍 보니, 명랑한 친구는 폰카로 셀카찍기에 여념이 없다. 예전에 몇 번 이 기계에 매달려 본 경험이 있는 나와는 달리 이런 요상한 기계에 머리채를 잡히긴 처음인 친구는 여간 불편한 게 아닌 모양이다. 세팅기에 붙잡혀(?) 본 이들은 알겠지만, 저렇게 머리를 매달고 있으면 목 한 번 까딱~하지도 못한 채 긴긴 시간을 목에 깁스한 것처럼 꼿꼿하게 버텨야 하니 말이다. 한 번 잡히고 나면 목디스크의 초기 증상을 느낄 수 있을지도. 여튼 그 인고의 시간을 외계인 같은 몰골을 한 자신을 찍으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진정 고통을 즐길 줄 아는 그녀다. 그나저나 나중에 그때 찍은 셀카 사진들을 봤는데, 헉, 왜 즐거운지 알았다. 사진 속 그녀는, 그야말로 딱~! 외계인이었다. 큭큭,


긴긴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려 책을 절반도 읽지 못했는데 세팅펌 시술이 끝났다. 헤어 드자이너 님이 머리 손질 못하겠다는 나의 질문에 요래요래~ 하면 된다고 일러주는 시범을 유심히 살핀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경을 낀 후 거울 속 내 모습은, 흠냐, 음. . . ! 머리에 바른 돈이 얼마고, 굳어오는 목과 허리의 고통을 견딘 게 얼만데, 그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다. 곱슬곱슬한 펌을 안은 까만 머리는 여전히 부스스한 그대로다. 흑,

그나마 가장 눈에 띄는 변화라면 앞으로 가지런히 낸 앞머리인데, 그 앞머리의 모냥새가 제대로 나오려면 따로 펌을 해야 한다길래 기꺼이 추가비용까지 감수했는데, 아아, 모든 걸 끝낸 후에도 나의 앞머리는 여전히 힘없이 살짝 무너지고 적당히 굽슬거린다. 결정적으로!! 피 같은 돈을 앞머리에 바른 나나, 그냥 내비둔 친구나 결과는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거! 오히려 친구 머리가 더 윤기가 나다뉘, 우씨, 뭐냐 이거! OTL

머리를 다 하고 일어서려는데, 헤어 디자이너 님이 친구를 가리키며 가족이세요?,하고 묻는다. 아뇨, 친군데요,라며 대답하니 두 분이 워낙 닮으셔서,란다. 맹과 닮았다는 얘기는 처음인뒈~하며 뒤를 돌아보니, 헉! 중간 웨이브 세팅펌에 가지런한 앞머리까지, 나와 친구의 머리 모양이 똑.같.았.다!! -_-; 볼살의 급가출로 동그랗던 내 얼굴이 점점 뾰족해져 이젠 친구의 얼굴형과 비슷해졌다. 볼살 가출형 얼굴에 검은 안경, 이젠 머리 모양까지 똑같아져 친구와 나는 어느새 '닮은꼴'이 되었다.

오래 함께 한 부부가 서로 닮는다는 얘기가 있듯이 오랜 시간을 함께 한 사람들끼리는 자기도 모르게 조금씩 닮아가나 보다. 초딩 친구인 쏭과는 어렸을 때부터 닮았다는 이야기를 참 많이 들었다. 키도 비슷, 체격도 비슷, 둘 다 안경잡이에 얼굴도 (그때는) 동글, 코도 동글. 자매냐는 이야기를 수없이 듣던 우리는, 서로 조금씩 변한 지금도 종종 닮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아마도 꼭 얼굴이 닮아서라기 보다는 그 분위기가 비슷하다는 말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좋아하는 사람들과 서로 닮아간다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닐까 싶다. 피를 나눈 가족은 아니지만 함께 한 세월로 서로의 유전자를 바꿔가는 것이니 말이다.


세팅기에 매달린 내 모습을 찍은 폰사진 두 장과 함께, 내 꼴이 마치 외계인과 교신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시작했는데, 구구절절 이야기가 길어져 버렸다. 미용실에 가기 싫다는 얘기법, 거대 세팅기에 머리를 매달린 모습, 그리고 똑같은 머리 모양에 닮은 꼴이 되어버린 나와 친구의 이야기까지. 이야기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왔다리갔다리 하느라 처음 적었던 제목과는 별 상관없는 내용들로 채워졌다. 더불어 'KT 멤버쉽 카드 30% 할인'에 낚여 들어갔는데, '오픈 기념 할인 중이라 더이상 할인은 안 된다'며 할인 못 받아 조금 억울했노라고, 그래도 가격 자체는 크게 비싸지 않아 노여움을 참았다는 이야기는 결국 하지 못한 채로 마무리를 짓는구나. 켁,

아침에 본 내 머리는, 그러니깐, 집으로 돌아온 이후 내 앞머리는 시간이 갈수록 헤어 드자이너~의 이야기와 달리 제 갈길로 꿋꿋하게 가고 있는 중이다. 그야말로 대략난감 상태로, 제멋대로 떠들기 시작한 뒷머리와 함께 총체적 난국이고, 거울 속에는 얼굴과 머리가 따로 노는 낯선 얼굴이 동그래진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다. 내, 다시는!! 앞머리 내라는 말에 넘어가나 봐라!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그나저나 이꼴로 어딜 다니냐고. 주말에 서울 가려고 했는데. 아, 뭐냐고!

마지막 문장까지 일관성을 유지하지 않는 나의 글이란! 뭐, 이런 게 내 글의 매력이라고 믿어볼란다. 누구 맘대로? 내맘대로!! 흐흐. 그나저나 글 다 올리고 보니 잡담글 길이가, 헉, 긴긴 책 리뷰 길이 만큼이나 된다. 이거 쓰느라 걸린 시간도! 헉. 밀린 리뷰도 산더미인데, 이 시간에 리뷰를 한 편 더 썼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3초간 후회했다. 그래도 이미 다 쓴 걸 어쩌겠는가.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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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지너 - 다음 세대를 지배하는 자
김영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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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매지너 : 다음 세대를 지배하는 자 | 김영세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10 


오랜만에 만난 후배의 목에 삼각형 프리즘 모양의 신기한 기기가 걸려있었다. 그게 뭐냐고 묻는 내게 의기양양한 후배의 대답, '언니, 이거 몰라요? 이거 요즘 장안의 화제인 아이리버의 프리즘 mp3 플레이어잖아요!' 귀에 뭔가를 꽂고 다니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 CDP나 MP3P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던 나는 그날 후배에 의해 유행에 뒤쳐진 선배가 되어버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후배의 엠피뜨뤼~는 기능은 어떤지 몰라도 디자인은 정말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독특했다. 누가 디자인 했을까 궁금하던 차에 아이리버를 만든 레인콤을 소개하는 티비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고, 프리즘 mp3가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디자이너 김영세의 작품이라는 걸 알게 됐다. 

독특한 디자인으로 큰 주목을 받은 레인콤의 아이리버 프리즘 mp3와 함께, 세로로 보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던 휴대폰의 액정을 가로로 돌리는 파격을 실천한 삼성 애니콜의 가로본능폰과 콤팩트를 열지 않고도 바로 거울을 볼 수 있게 슬라이드 형식으로 디자인해 뜨거운 반응을 얻었던 아모레 퍼시픽의 라네즈 슬라이드 팩트 또한 김영세의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이렇게 그의 디자인들은 하나같이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는 신선한 파격과 독특함을 자랑한다.

그러나 그의 디자인이 빛을 발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겉으로 보이는 파격이 그저 '튀기 위함'이 아니라 그것을 직접 사용할 사람들의 편의를 위한 실용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콤팩트를 열지 않고 화장을 고치고 싶어하는 여성들의 마음을, 멀티미디어기로 진화하고 있는 휴대폰에서 영화를 즐기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불편함을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 슬라이드 팩트와 가로본능폰으로 탄생했다. 또한 핸드백처럼 가벼운 노트북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샌드위치처럼 접히는 노트북이 출시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틀을 깨는 창의적인 생각은 도대체 어디에서, 어떻게 나오는 걸까? 저자는 그 답을 '이매지닝'에서 찾고 있다. 『이매지너』는 창의적인 생각을 현실로 이끌어 내는 사고법인 '이매지닝(imagining)'을 통한 창조적인 인재 '이매지너(imaginer)'가 되는 방법에 대한 책이다. 처음 『이매지너』라는 제목만 보고는 이미지와 그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사람들, 즉 디자이너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책인 줄 알았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근본적으로 저자는 이책을 통해 이미지를 그려내는 디자이너 뿐만 아니라 문제에 부딪친 모든 사람들이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궁극적인 방법을 제시하려 한다. 그것이 바로 '이매지닝'이다. 

- 이매지닝은 우리들을 특별한 세상으로 안내하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다. 나만의 상상력과 잠재력을 마음껏 펼쳐 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아무도 간섭할 수 없는 나만의 세계 속에서 이 세상을 위한 놀라운 가치를 창조하는 일, 이것이 바로 이매지닝이다. (107쪽)

저자는 '이매지너'의 개념과 이매지너가 되기 위한 사고 방법인 '이매지닝'의 구체적인 과정과 실천 방법들을 김영세 자신과 그가 이끌고 있는 이노 디자인의 여러 작품들을 예로 들어 쉽게 설명해 준다. '이매지너'란 미래를 이끌어갈 진정한 리더로서 강력한 상상의 힘으로 미래의 가치를 현실의 성공으로 이끌어 낼 수 있는 사람들을 칭한다.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상상의 밑그림들을 바탕으로 현실에서 혁신적인 디자인을 뽑아내는 디자이너 김영세가 바로 대표적인 이매지너라 할 수 있다. '이매지닝'은 이런 이매지너들이 사용하는 창의적 생각의 방법으로, 동시에 그들 같은 이매지너가 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 이매지닝이란 '전략적 상상'을 의미한다. 우리 일상 속에서 남는 시간에, 혹은 의도적으로 시간을 할애하여 우연히 머릿속에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하나의 가치 있는 생산물로 탄생시켜 나가는 과정이다. 사람들은 종종 나에게 그렇게 끊임없이 혁신적인 디자인을 해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냐고 묻곤 하는데 나의 창의의 원동력은 바로 이매니징이다. (96쪽)

『이매지너』에서 저자는 '이매지닝'을 문득 떠오른 생각이나 해결하고자 하는 어떤 문제를 현실에서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해결책으로 변화시킬 때까지 계속해서 머릿속으로 상상하고 그려보는 것으로, 공상과는 다른 '전략적 상상'이라고 정의한다. 상상속에서 우리는 보다 자유로워진다. 머릿속에서 이루어지는 상상은 현실과는 달리 어떤 제약이나 한계가 없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마음껏 상상력을 발휘하다 보면 수많은 아이디어들이 떠오르는데, 그것들을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단련시키다 보면 어느 순간 현실과의 연결점을 찾게 된다. 저자는 이런 이매지닝을 통해 창조적인 사고를 하는 연습을 꾸준히 하다보면 누구나 창의적인 인재인 '이매지너'가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세계적인 디자이너'라는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은 김영세,라는 인물에 대해 막연한 동경과 아직 읽어보지 못한 그의 전작 『이노베이터』에 대한 사람들의 찬사에 힘입어 이책 『이매지너』를 먼저 만나보게 되었다. 디자인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평소 관심은 많았던 터라 그의 대표적인 작품들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과 설명, 그외 디자인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흥미롭게 읽어내려갔다. 생각의 틀을 깨는 혁신적인 디자인들과 디자인 하나로 전혀 다른 상품으로 재탄생되는 상품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혁신적인 디자인을 가능하게 하는 창조적인 생각의 중요성을 새삼 다시 느낄 수 있었다.

모든 자기계발서들이 그러하듯 『이매지너』의 내용 또한 궁극적으로 창의적인 인재인 '이매지너(imaginer)'가 되기 위한 창조적 사고법인 '이매지닝(imagining)' 방법으로 요약될 수 있다. 저자는 책의 전반에 걸쳐 이매지닝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는데, 머릿속의 상상을 통해 숨겨진 잠재력을 이끌어내어 문제를 해결한다는 점에서 '이매지닝'은 '몰입'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저자가 말하는 이매지닝은 분명 창조적인 사고법이지만 그것 자체가 획기적인 사고 방법은 아닌 셈이다. 비슷한 내용을 이미 출간된 책에서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다. 그럼에도 디자인이라는 창조적인 작업의 과정과 저자의 다양한 디자인 경험을 바탕으로 독자들의 관심을 이끌어낸다는 점은 이책이 가진 장점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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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발, 자신을 비워 세상을 담는다
타니 아키라, 신한균 지음 / 아우라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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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신의 그릇〉이라는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임진왜란을 '도자기 전쟁'의 측면에서 보고 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사기장들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었는데, 그전까지는 가볍게 생각했던 왜란과 도자기의 관계를 자세히 그려내 꽤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다른 소설에서 만나보지 못했던 사기장(도공)들의 이야기라는 점도 새로웠지만, 무엇보다 소설의 저자가 현직 사기장이라는 사실이 더욱 놀라웠다. 직업 소설가가 아닌 터라 문체나 짜임새는 다소 투박한 면도 있었지만, 도자기 전문가인 만큼 소설 속에 등장하는 그릇이나 그것을 만드는 과정 등에 대한 묘사가 무척이나 생생해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던 책이었다.

그 소설로 처음 만났던 사기장 신한균 님이 이번에 조선의 전통 사발에 대한 책을 펴냈다는 소식을 접했다. 일본인 전문가 타니 아키라와 함께 공저한 〈사발, 자신을 비워 세상을 담다〉가 바로 그것이다. 소설 속에서 수없이 등장하며 온갖 찬사를 받던 조선의 사발들을 소개한 책이라니 호기심이 생겼다. 또한 일본에서는 국보로 지정될 정도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소중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조선의 사발들이 정작 그 본고장인 우리나라에서는 왜 제대로 된 분류명이나 이름조차 갖지 못한 채 무시받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들을 이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풀 수 있을 것도 같아 책을 잡았다.


한일 양국의 전문가가 함께 한 〈사발, 자신을 비워 세상을 담다〉는 조선에서 만들어졌지만 일본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아 지금까지 이른 여러 조선의 명품 사발들에 대해 한국과 일본의 시선으로 바라 본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두 저자가 함께 한 1장 한일의 차문화와 사발로 시작된 책은 이어 2장 한국의 명품 사발, 4장 한국 사기장이 바라본 조선사발은 우리나라의 사기장 신한균이, 3장 일본인이 애호하는 명품 조선사발 5장 명품 조선사발의 현재와 미래, 6장 일본의 조선사발 수용사는 일본인 저자 타니 아키라가 저술한 꼭지들이 서로 교차 구성되어 있다.

2장의 '한국의 명품 사발'에서는 현재 우리나라나 대영박물관에 보관중인 조선사발들을 그 사진과 함께 설명해 놓았고, 3장 '일본인이 애호하는 명품 조선사발'에서는 일본에 남아있는 조선사발들이 일본인들의 분류와 명칭으로 소개해 놓았다. 그런데 소개된 그릇수가 일본의 조선사발이 우리의 그것보다 3배를 훌쩍 넘긴다. 수량 뿐만 아니라 그 종류나 색깔, 모양 등도 훨씬 다양하다. 조선사발이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중기에 이르러 점차 사라지며 쇠락의 길을 걸은 반면 왜란을 통해 조선에서 사기장을 잡아간 일본에서는 그것을 더욱 발전시켰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기분이 씁쓸한 건 어쩔 수가 없었다.

4장에서는 한국 사기장인 신한균이 바라본 조선사발에 대한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저자는 조선사발을 크게 8개로 분류해 각각의 특징과 재료, 모양 등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해 준다. 중기 이후 차문화 점차 사라진 우리나라와 달리 현재까지 차문화를 계승해오고 있는 일본에서는 차사발에 대한 관심도 그만큼 높았다. 그리고 일본인들이 애지중지하는 조선사발들은 대개 그들의 기호에 맞았던 차사발들이고 그들의 방법에 따라 분류해 놓았다. 

그래서인지 책에 소개되는 사발은 대부분 일본식 이름과 분류로 되어 있다. 공저자인 사기장 신한균이 우리의 분류와 이름을 적어두고 있긴 했지만, 아직도 우리나라에는 조선사발에 대한 이름은 고사하고 제대로 된 분류조차 없는 경우가 태반이란다. 일본에서 인정받는 우리의 사발들이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이렇게 푸대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이에 사기장 신한균은 조선사발에 대해 설명하면서 기존의 잘못된 분류나 이름이 아닌, 제대로 된 새로운 분류와 명칭들을 제안한다.



책을 읽다보면 신한균의 소설 〈신의 그릇〉에 나왔던, 조선에서 건너온 차사발의 최고작으로 칭송되던 '이도 다완'이 등장한다. 일본인들이 지금까지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국보로 소중히 보관하고 있는 이도 다완은, 저자에 따르면,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제대로 된 이름조차 없단다. 이에 신한균은 노란색을 띠는 이 그릇을 '황도사발'로 부를 것을 제안한다. 그에 의해 비로소 이도 다완이 우리 이름을 가지게 된 셈이다.

여튼 소위 '신의 그릇'으로 불리는 그 '이도 다완'을 이책을 통해 처음으로 접했는데, 소설에 등장했던 것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바쳐진 걸로 보아 '츠츠이츠츠 다완'이 아닐까 싶다. 작은 차사발 하나로 자신의 성을 지켰다니 가히 '신의 그릇'이라 칭할만 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또한 차사발에 대한 일본인들의 엄청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기도 했고. 글로만 묘사되던 조선사발들을 직접 사진으로 보며 그 특징과 차이점을 비교해 보는 것도 이책을 보는 또다른 재미였다.


이책에는 여러가지 다양한 조선사발들이 등장한다. 하나같이 '명품 조선사발'이라고 하는데,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는 그저 투박한 질그릇 같은 사발들로 보였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신의 그릇으로 불리는 황도사발(이도 다완)까지도 평범한 밥그릇으로 보일 정도니 할 말이 없다. 그러나 그도 그럴 것이 책에 등장하는 조선사발들은 '명품'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고려청자나 조선백자처럼 화려하지도 곱상하지도 않다. 부드럽기는커녕 흙의 질감을 그대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투박하고 소박하다. 시골집의 부엌에서 흔히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평범한 그릇들처럼 보인다. 어쩌면 그 소박한 그릇 속에 담긴 자연의 깊은 맛을 높게 산 것인지도 모르겠다.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명품 조선사발 사진들을 보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웃기게도, 얘들은 차를 무슨 밥그릇 만한 그릇에 마시나 하는 거였다. 일본인들이 차사발로 애용했다던 조선사발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밥그릇으로 써도 무방할 정도로 꽤 큼직한 크기를 자랑하고 있다. 물론 사진이라 그 정확한 크기를 가늠할 수는 없지만, 일본인들이 최고로 치는 황도사발(이도 다완)만 하더라도 원래는 제사상에 올리는 밥그릇(제기)이었을 거라 추정하는 것만 봐도 적지 않은 크기임을 알 수 있다. 일본에 건너간 조선사발들은 대개 밥이나 반찬을 담는 제기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밥이나 반찬을 담았지만 일본인들의 차 취향과 맞아떨어진 셈이다. 그리고 차후 다도에 맞게 점차 변형되어 갔다. 일본의 주문에 만들어진 어본 다완들이 그 예이다.



조선사발은 원산지인 한국과 수출된 일본에서 전혀 다른 운명을 맞는다. 생활그릇으로 사용된 조선에서는 사발의 맥이 점차 쇠락하여 점차 사라진 반면 일본에서는 원래의 용도와 전혀 다른 용도인 차사발로 일본인들의 기호와 맞아떨어지면서 새로운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 것이다. 그결과 일본에서는 조선사발을 최고의 명품으로 치며 지금까지 소중하게 간직하고 그 명맥을 이어온 반면 한국에서는 안타깝게도 제대로 보관중인 조선사발이 턱없이 부족함은 물론 분류나 명칭 등 조선사발에 대한 체계조차 제대로 잡혀 있지 않다. 그런 가운데 그 존재조차 사라질 위기에 처한 조선사발을 다시 되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연구하는 사기장 신한균의 노력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이책에 등장하는 명품 조선사발들은 일본인의 차문화와 맞아떨어져 지금까지 높은 가치를 인정받으며 전해오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즉 우리의 시선이 아니라 일본인의 눈높이에서 명품으로 등극된 것들이다. 그 자체로 훌륭하기도 했겠지만, 그것들이 지금의 명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 일본인들의 차문화가 선호하는 특징들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보존하지 못한 조선의 훌륭한 사발들을 일본인들이 잘 간직한 것이 고맙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본인들의 다도 취향에 맞춰 평가된 그것들이 절대적 명품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 명품 조선사발은 다도를 위해 생산된 것이기에 다도를 이해하지 못하면 그 미학을 잘 알지 못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다도는 일본 차문화의 한 형태일 뿐이다. 한국에는 한국의 차문화가 있고, 중국에는 중국의 차문화가 있다. 타국의 차문화에 대해 존중과 이해를 보이지 않는다면 차문화의 국제교류란 요원한 일일 것이다. 한국의 차문화에 입각한 명품 조선사발의 이해가 마땅히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일본의 다도 취향에 맞춰온 명품사발이 아닌, 다양한 차문화에 맞춘 새로운 명품사발이 나타날 가능성도 있게 된다. (173쪽, 타니 아키라)


16세기 말까지 중국과 겨루어도 손색없는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가진 도자기 종주국이었던 조선은 이후 도자기 기술이 점차 쇠락해 18세기 중반에 이르러서는 일본에마저 밀린다. 왜란을 통해 조선에서 도자기 기술자인 사기장들을 끌어오고 국가적 지원을 통해 전략적으로 도자기 산업을 육성해 지금까지 도자기 강국으로 군림하는 일본에 비해 기술을 빼앗기고 원래 갖고 있던 것마저 제대로 계승하지 못해 쇠퇴의 길을 걸어온 우리나라의 도자기 현실을 생각하면 안쓰럽기 그지없다. 

우리나라에서 태어났으나 타국인 일본에서 그 가치를 더욱 인정받고 있는 조선사발의 존재 또한 이땅의 후손으로서 안타깝고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의 전통사발을 계승ㆍ재현하기 위해 대를 이어 노력하는 신정희ㆍ 신한균 부자 같은 이들이 있기에 그 앞날이 막막하지 만은 않을 듯하다. 그와 함께 우리 사발에 대한 대중의 관심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우리 것을 바로 알아야 그것을 지켜나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책이 우리 사발에 대한 관심과 사랑에 작은 밑거름이 되어 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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