닌자걸스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37
김혜정 지음 / 비룡소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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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닌자걸스 | 김혜정 | 비룡소 | 2009년 6월 


생각해보니 나도 중3 때 소위 ‘ㅇㅇ여고반’이라는 이름의 심화반 보충수업을 해봤었다. 그곳은 비평준화 지역이었고, 때문에 고등학교도 성적별 서열이 매겨져 있었다. 하여 고입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던 중3 여름방학 때 성적으로 반을 나눠 보충수업을 진행했던 기억이 난다. 중학교가 이러니 고등학교는 말이 필요없다. 그래도 지역명문고교라는 자부심 하나로 버티던 우리 학교도 고3이 되어 입시체제가 바뀌고 일부 명문대에서 수능성적 외에 논술이나 본고사를 내걸자 그에 따라 특별 보충반을 편성했다. 일명 '본고사반'으로 불리던 그반에는 본고사를 대비하는 명문대 지망생들로 채워졌다. 아이들 사이에 특별한 부러움이나 시샘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성적에 따라 집단이 구분됐던 경험은 그리 유쾌하지 않은 기억으로 남았다.

배우가 되고 싶은 고딩 고은비는 오디션을 보러 다니지만, 매번 육중하고 개성적인 외모 때문에 제대로 연기를 해보기도 전에 퇴짜를 맞는다. ‘뚱뚱하고 못생긴’ 외모 때문에 연기는 해보나마나라는 것이 그 이유다. 어릴 때는 나름 잘 나가던 아역배우였지만 살이 찌기 시작하면서 모두 지난날이 됐다. 그 어떤 순간에도 심지어 체했을 때조차도 왕성한 은비의 식욕은 배우의 꿈을 점점 더 멀어지게 하지만 맛있는 음식은 연기 못지 않게 은비를 행복하게 만들기에 포기할 수가 없다. 함께 다니는 친구 지형이와 소울이가 고뚱땡, 고릴라라며 놀려도 은비는 꿋꿋하다. 

지형, 소울이와 함께 반에서는 물론 전교 꼴찌를 다투는 꽃미녀 혜지의 과외공부를 도와주던 은비는 영화감독인 혜지 삼촌의 소개로 연극에 캐스팅된다. 연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꿈만 같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가 않다. 의대 입학을 바라는 엄마의 반대와 상위권 성적의 아이들만 따로 모아 둔 심화반인 모란반의 보충수업 때문에 도저히 연극의 연습시간을 맞추기가 힘들어진 것이다. 은비의 딱한 사정과 평소 아이들 사이에 은근한 차별의식을 만들어내던 모란반의 존재에 불만을 품었던 모란여고 4인방은 이참에 아예 모란반을 폐지하고자 의기투합한다. 그러나 그들의 작전은 번번이 실패하고 어느새 연극 상연날짜는 코앞으로 다가온다. 최후의 카드를 꺼내든 아이들은 닌자걸스로 변신하고, 어른들을 향해 그동안 마음 속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들을 마음껏 소리높여 외친다.


- 모란반, 그거 확실히 차별이야. 어떻게 학교에서 차별을 하며 학생들을 교육한다고 할 수 있어? (중략) 솔직히 너네 기분 안 나빠? 똑같은 학생인데 왜 모란반 애들만 따로 보충 수업을 받고 따로 자습실을 써야 해? 공부를 더 시켜야 하는 건 잘하는 애들이 아니라 못하는 애들이라고. 공교육의 목적이 뭔데? 모란반 같은 건 싹 없애야 해. 왜 그런 걸 만들어서 위화감 조성하고 괜히 공부 잘하는 애들 특권 의식을 갖게 하는 거야? 정말 이상하다니깐. (97쪽)

- 나 자신에게 좋은 ‘나’가 되는 대신, 엄마에게는 나쁜 딸이 되어버렸다. 나에게도 좋고, 엄마에게도 좋은 ‘나’가 될 수는 없는 걸까? 이 문제는 너무 어렵기만 하다. (251)


<닌자걸스>는 평범한 네 명의 여고생들이 자신의 꿈을 지키기 위해 벌이는 한바탕 소동극을 유쾌한 시선으로 담은 성장소설이다. 개성있고 생기 넘치는 캐릭터인 모란여고 4인방 고뚱땡 은비, 꽃미남 밝힘증 지형, 땅꼬마 소울, 꽃미녀 혜지는 여고생 특유의 발랄함과 엉뚱함을 뿜어내며 이 소등극을 무겁지 않게 이끌어간다. 작가는 평범한 십대 소녀들의 발랄한 이야기 속에서 성적으로 아이들을 구분하고 차별하는 학교 교육과 미래를 담보로 공부만을 강요하는 현실의 문제점들을 끄집어낸다. 더불어 그 모든 원인이 성적 지상주의의 잘못된 입시 정책과 자신의 꿈을 아이들에게 투영하려는 부모의 욕심에서 비롯됨을 지적한다. 

아이들은 은비를 돕기 위해 모란반 폐지를 외치며 닌자걸스로 변신한다. 그들이 뭉친 계기는 은비의 연극 출연이지만 아이들은 저마다 어른들에게 전하고 싶은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다. 은비는 엄마가 원하는 의사가 아닌 연기 잘 하는 배우가 되고 싶고, 혜지는 4년제 대학에 못 가더라도 미국이 아니라 한국에서 살고 싶다. 시나리오 작가가 꿈인 지형이는 이상해 씨로부터 시나리오 공책을 되돌려 받길 원하고, 생각이 똑부러지는 소울이는 아이들이 성적으로 차별받지 않도록 모란반이 없어지길 원한다. 장난스레 시작한 소동극이 점점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버렸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자신의 꿈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노력했다는 점에서 만족한다. 피하지 않고 문제와 맞서는 용기를 가진 그들이 못내 사랑스럽다. 물론 아무 때나 옥상에서 시위를 하는 건 곤란하지만 말이다. :)


- 후유. 앞으로 살아가면서 얼마나 더 많은 장애물과 마주치게 될지는 알 수 없다. 때론 장애물을 피해 돌아가야 하는 일도, 적당히 타협해야 하는 일도 있겠지만, 할 수 있다면 장애물을 부술 것이다. 우리는 충분히 ㅡ래도 되는 나이니까. (중략) 저기, 내가 그토록 꿈꾸던 무대가 있다. (5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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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요리 상식 사전
윤혜신 지음 / 동녘라이프(친구미디어)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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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착한 요리 상식 사전 | 윤혜신 | 동녘라이프 | 2010년 1월 


윤혜신을 처음 알게 된 건 전작 《착한 밥상 이야기》를 통해서였다. 자연이 주는 먹거리로 만들어낸 정갈한 음식 사진들이 식욕을 자극했지만 정작 그보다는 자연으로 돌아가 소박한 맛에 기뻐하는 자신의 이야기를 맛깔스럽게 풀어내는 저자의 글솜씨가 더욱 침을 삼키게 했다. 착한 마음으로 자연의 밥상을 마련하는 그이의 건강한 이야기들은 그것을 읽는 이들까지 행복하게 만드는 묘한 힘을 갖고 있다고나 할까. 어쩌면 그건 자연을 닮은 착한 이야기의 힘인지도 모르겠다.

정혜신의 또다른 책이 나왔다. 전작을 너무 즐겁게 읽은 터라 냉큼 새책을 만났다. 비록 리뷰는 많이 늦었지만. 이책의 제목은 《착한 요리 상식 사전》. ‘행복한 밥상을 꿈꾸는 딸에게 주는 소박한 요리책’이라는 부제처럼 엄마가 딸에게 말하는 듯한 문체로 씌여졌다. 전작 《착한 밥상 이야기》에서 들려주었던 이야기들과 요리들에 대한 실용지침서란다. 혹시 사전이냐고? 무슨 말씀을, 딱 봐도 요리책인 것을! 그런데 막상 책을 펼쳐보면 요리책이되 요리 사전이고 동시에 에세이다.

책을 펼치면 본문에 앞서 이책에서 말하는 착한 요리에 대한 다양한 정의가 적혀 있다. 착한 요리란 모든 먹을 거리의 생산, 유통 과정과 그것을 구입하여 요리로 만들어 먹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사람과 자연에게 해가 되지 않는 요리이며, 또한 그 과정에서 정당한 노동력이 사용되고 그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가 지불되며 인간과 지구에 해로운 것들이 없는 요리를 말한다. 좁게는 신선한 재료로 우리 몸에 이로운 조리방법으로 만들어진 요리를 뜻하기도 한다. 그리고 오랜 세월 음식을 만들고 가르친 경험을 바탕으로 저자는 착한 요리란 소박한 음식, 자연의 맛 그대로인 음식들이라고 정의한다.

《착한 요리 상식 사전》은 제목 그대로 ‘착한 요리’를 하기 위한 거의 모든 과정들을 사전처럼 알알이 담아둔 책이다. 착한 밥상을 만들기까지의 일련의 과정들, 즉 재료를 고르고 그것들을 다듬어 썰고 익히거나 삭히거나 갈무리한 다음 상차리기까지의 모든 것들에 대해 담겨 있다. 재료 고르기와 다듬기는 채소, 해산물, 육류, 과일, 건어물 등 모든 식재료를 간략하게 또는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각 재료의 특성들도 함께 담았음은 물론이다. 썰기와 익히기 또한 그에 속하는 다양한 기법들이 죄다 실려 있는데, 마치 학창시절 배웠던 가정ㆍ가사 교과서가 떠오르기도 했다.

삭히기에서는 우리 고유의 전통음식인 장류나 김치, 젓갈을 만드는 방법을, 갈무리에서는 제철 재료들을 저장해두는 방법들을 소개한다. 상 차리기에서는 계절별 상황별 상차림과 간략한 조리법이 실려 있고, 그외 양념이나 조미료 만들기, 알아두면 요리 상식 등도 덧붙여 놓았다. 요리 사전에 걸맞게 다양하고 자세한 내용들을 잔뜩 담았지만 그래도 그냥 끝내기가 아쉬웠는지 제일 마지막 꼭지에는 착한 밥상의 기본이 되는 요리 레시피 135개를 소복하게 차려놓았다. 사전답게 끝머리에는 찾아보기도 마련해 두었다. 각 꼭지 사이에는 저자의 이야기나 지인에게 보내는 편지가 끼여있어 보는 재미를 더한다. 사전과 요리책, 에세이가 서로 사이좋게 공존하는 책이다. 

‘상식 사전’이라는 단어처럼 이책은 착한 요리를 위해 알아야 하는 아주 기초적인 내용들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그런 까닭에 이제 막 요리를 시작해 모르는 것도 많고 궁금한 것도 많은 요리 새내기에게는 여간 유용한 정보들이 아니다. 반면 이미 어느 정도 요리에 숙달된 독자라면 책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재료 다듬기나 썰기, 익히기 등에 수록된 내용들은 그다지 새로운 것들이 아니어서 조금 아쉬울지도 모르겠다. 요리 초보인 나와 베테랑 주부인 언니의 시선이 갈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착한 요리 상식 사전》이라는 제목이 전하는 이책의 뜻을 다시 한 번 떠올린다면 충분히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먹거리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지만 정작 건강한 먹거리를 찾기는 쉽지 않은 요즘이다. 그래서 더욱 똑똑해질 필요가 있다. 저자는 생명이 없는 가공식품, 식품첨가물에 첨가된 음식, 수입되어 오는 동안 수많은 방부제와 합성보존료에 노출되는 수입 먹거리 등은 가급적 멀리하라고 당부한다. 동시에 안전하고 건강한 먹거리를 제공하며 환경까지 지키는 생협에 가입하기를 권유한다. 착한 요리의 시작은 착한 재료이기에 저자의 말이 가슴에 와닿았다. 또한 얼마전에 읽은 손미나의 아르헨티나 여행책에서 아르헨티나 소고기가 맛있는 이유는 그곳의 소들이 행복하기 때문이라던 글도 떠올랐고. 저자의 권유처럼 조만간 지역 생협이나 인터넷 생협을 한 번 찾아봐야겠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첫번째가 밥이고, 그 다음이 된장찌개다. 물론 엄마표 된장찌개! 한때 주식처럼 매일 먹어대던 부동의 1위였던 떡볶이는 여전히 좋지만 이젠 순위가 조금 밀렸다. 사실 엄마가 해주시는 음식은 무엇이든 다 맛있다. 어렸을 때부터 먹고 자란 익숙한 것이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그 소박한 음식 속엔 아무리 유명한 음식점에서도 흉내낼 수 없는 엄마만의 사랑이 가득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것이, 엄마가 손수 다듬고 썰어 익혀서 만들어주신 그 음식들이 바로 착한 요리들이라고 생각한다. 엄마의 사랑과 정성이 담긴 그런 밥상 말이다.


- 엄마가 무척 존경하는 여성 신학자이면서 평화운동가이신 현경 선생님은 ‘살림이스트’란 말을 만드셨어. ‘살리다’의 명사형인 ‘살림’에 사람을 뜻하는 ‘이스트’를 붙여서 ‘생명을 살리는 사람’이라는 뜻이지. 죽어 가는 많은 영혼들과 이 지구의 부당한 제도와 훼손되어 가는 자연을 살라자는 뜻으로 말이야. 우와, 정말 기막히게 멋진 말이지. 우리는 그냥 여자, 그냥 주부, 그냥 딸과 며느리가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사람들인 거지.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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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만드는 소년 - 바람개비가 전하는 치유의 메시지 새로고침 (책콩 청소년)
폴 플라이쉬만 지음, 천미나 옮김 / 책과콩나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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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을 만드는 소년 | 폴 플라이쉬만 | 천미나 옮김 | 책과콩나무 | 2008년 11월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배웠듯이, 미국의 심리학자 스탠리 홀(Granville Stanley Hall)은 청소년기를 '질풍노도의 시기(a period of storm and stress)'라고 정의했다. 몹시 빠르게 부는 바람과 무섭게 소용돌이치는 물결만큼이나 불안정한 시기라는 뜻이다. 육체적으로는 성장했지만 정신적으로는 아직 미숙한 상태인 청소년기에는 이성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감수성이 예민해지며 점차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원하든 원치 않든 다양한 장애물을 만난다. 현명하게 이겨내기도 하지만 때론 자신의 생각이 완전히 깨져버리기도 한다. 그렇게 시리거나 알싸한 성장통을 겪으며 조금씩 성숙한 어른이 되어간다. 

또래들처럼 자의식과 허영심이 강했던 브렌트는 어느날 친구에게 부탁해 참석한 부유층 자제들의 파티에서 평소 맘에 두고 있던 여자애로부터 공개적으로 큰 망신을 당한다. 홧김에 파티장을 뛰쳐나와 차에 오른 그는 술기운에 창피함과 분노가 더해져 충동적으로 자살을 결심하고 도로를 질주하다 정신을 잃는다. 그러나 브렌트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는 자기 자신이 아닌 모두에게 사랑받는 재능이 넘치는 소녀 '리'를 죽였음을 알게 된다. 다행히 감옥행 처벌은 면했지만 지울 수 없는 죄책감에 시달리던 브렌트는 리가 평소에 좋아하던 바람개비를 미국 땅의 네 끝에 세워달라는 리의 엄마의 부탁을 받고 속죄 여행길에 오른다. 

마음의 죄책감을 덜고자 부모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집을 나섰지만 응석받이로 자란 그에게 혼자 떠나는 여행길은 순탄치 않다. 먹는 것과 잠자리 등 기본적인 것부터 낯선 장소와 사람들과의 관계 등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고, 무엇보다 이번 여행의 가장 중요한 임무인 바람개비를 만드는 일과 그것을 세울 장소를 물색하는 것도 녹록치 않다. 그러나 브렌트는 한번도 본 적 없는 리를 생각하며 정성껏 바람개비를 만들고 갈수록 솜씨도 좋아져 멋진 작품이 탄생한다. 리의 영혼을 위로하며 사람들이 아름다운 그녀를 기억해주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세운 브렌트의 바람개비는 그가 떠난 뒤에도 다시 누군가를 만나 또다른 삶의 이야기를 피워낸다.

<바람을 만드는 소년>은 브렌트의 속죄 여행과 그것에 얽힌 다른 시간과 공간을 사는 네 명의 이야기가 교차 진행된다. 처음에는 전혀 상관없을 것 같던 이야기들은 브렌트가 남긴 바람개비의 등장으로 서로 맞물려진다. 리를 위한 바람개비를 세우기 위한 브렌트의 속죄 여행은 철부지 십대 소년이었던 브렌트를 사색적이고 속 깊은 청년으로 변화시켜준다. 더불어 그가 만든 바람개비는 삶에 지치거나 휴식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다시 시작할 희망과 기쁨, 깨달음을 선사한다. 리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바람개비는 브렌트와 그것을 보는 누군가의 마음을 보듬어주는 치유의 메신저가 된다.

한손에 쏙 들어오는 앙증맞은 문고판 크기라 마음만 먹으면 앉은 자리에서 어렵지 않게 끝을 볼 수 있다. 브렌트의 이동 경로에 따라 연작소설처럼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고 에피소드들이 짤막해서 한눈 팔 겨를도 없다. 성장소설답게 여행을 통해 서서히 변화되어 가는 브렌트의 모습이나 바람개비를 통해 삶의 새로운 원동력을 찾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작은 감동을 전하기도 한다. 다만 이야기를 구성하는 에피소드들이 짧다보니 갈등이 너무 쉽게 해결되어 다소 밋밋하거나 심심하게 느껴지는 건 조금 아쉽다. 그럼에도 바람개비로 인한 브렌트와 다른 네 명의 인물들의 변화를 통해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따듯한 메시지는 책을 덮는 독자의 마음을 훈훈하게 데워준다.

철없는 소년의 실수로 한순간에 사랑하는 딸을 잃었지만 그에 분노가 아닌 용서로 대응한 리의 엄마 잠모아 부인의 지혜롭고 선한 선택은 바람개비라는 매개체를 통해 브렌트는 물론 삶에 지쳐가는 보이지 않는 많은 이들에게 희망의 씨앗을 뿌린다. 적절한지는 모르겠으나 이 이야기를 읽으며 ‘나비효과’라는 용어가 떠올랐다. 그녀가 딸을 잃은 분노를 그대로 분노로 갚았다면 어찌 되었을까. 브렌트는 물론이고 그녀 자신도 전혀 다른 삶을 맞게 되지 않았을까. 나의 작은 선한 행동이 무의미하지 않음을 이책 <바람을 만드는 소년>은 조용히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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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여행 2 : 희망 - KBS 1TV 영상포엠
KBS 1TV 영상포엠 제작팀 지음 / 티앤디플러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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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상포엠 내 마음의 여행 2 : 희망 | KBS 1TV 영상포엠 제작팀 | 티앤디플러스 | 2009년 7월 


일요일 오전에는 대부분 부담없이 늦잠을 즐기곤 한다. 어렴풋이 잠이 깨어 한참을 뒹굴다가 겨우 일어나면 문틈으로 부모님이 즐겨 보시는 퀴즈 프로그램 소리가 새어 들어온다. 그렇다면 대략 10시를 넘긴 시간인 셈이다. 그러니 일요일 오전 8시도 전에 전파를 타는 《영상포엠 내 마음의 여행》을 어찌 볼 수가 있겠는가. 게다가 저녁 시간대의 챙겨보는 몇몇 프로그램 외에는 티비를 거의 안 보고 사는지라 이런 멋진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조차 몰랐었다. 책으로 출판된 뒤에야 뒤늦게 알았으니, 한마디로 완전 뒷북이시다.

『내 마음의 여행 : 희망』은 ‘주제가 있는 영상에세이’라는 부제를 내건 KBS 1TV의 시사교양 프로그램 《영상포엠 내 마음의 여행》에서 방영되었던 것들 중 많은 이들이 좋아해주신 곳들을 두 번째로 엮은 책이다. 이책이 출간되기 반년 전쯤에 『내 마음의 여행 : 그리움』이란 제목의 첫 번째 책이 출간됐었다. 일요일 오전을 꿈나라에서 헤매던 내가 첫 책을 통해서 한 번 들어본 적도 없던 그 프로그램의 존재를 알게 됐고, 그 책에 대한 훈훈한 입소문 덕분에 이책을 만나게 되었다. 참 고맙고 다행스런 일이다.

- 비틀거리는 그림자를 붙잡아 주는 건 뭔가가 자신에게 남아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희망입니다. (중략) 그동안 영상포엠 《내 마음의 여행》을 통해서 나눈 우리들의 희망은 무엇이었을가요? 낯선 길 위에서, 처음 가 본 들판에서, 혼자 걸었던 해변 가에서, 나를 감싸던 청정계곡의 고요함 속에서, 주고 받았던 희망의 총량과 내용들을 다시 꺼내 담아봤습니다. (머리말 中)

첫 책의 주제 ‘그리움’을 이어받아 이번 책에서는 ‘희망’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것을 보여줄 열여섯 곳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각기 다른 색깔을 가진 네 개의 꼭지에는 다시 네 개의 이야기들이 채워져 있다. 새파란 물결치는 사진을 보며 언젠가 꼭 가보리라 다짐했던 청보리밭이 있는 고창의 봄에서부터 온세상을 하얗게 뒤덮고 눈꽃을 피운 화절령의 겨울까지, 이책에는 우리가 미처 몰랐던 또는 무심히 지나쳤었던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면면들을 담아냈다. 아름다운 사진에 시적 감수성이 물씬 풍기는 글이 촉촉함을 더한다.

책에 실린 사진과 글은 모두 방송에 나왔던 영상과 거기에 입혀졌던 내레이션이다. 그것들이 책으로 묶이면서 아름다운 영상들은 멋진 사진이 되었고, 감성적인 내레이션은 촉촉한 한 편의 시가 되었다. 마음이 따듯하고 아늑해진다. 각 글의 말미에 방송 날짜와 작가의 이름이 엔딩 크레딧처럼 실려있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야기의 끝에 이르면 방송에 흐르던 음악에 대한 짧은 코멘트와 곡들을 소개해 주는 ‘손지명의 음악여행’과 연출가의 짧은 감상이 담긴 ‘Director's View’라는 짧은 코너가 마지막 아쉬움을 채워준다. 

처음에는 《영상포엠 내 마음의 여행》을 한 번도 보지 않은 상태로 이책을 읽었다. 책을 읽으며 방송을 챙겨봐야겠다 생각했는데 역시나 그 이후에도 한 번도 그러질 못했다. 책을 읽은지 한참이 지난 얼마전에야 불현듯 생각이 나서 바로 방송국 홈페이지로 달려가 다시보기를 봤다. 책에서 따로 또 같이 하던 영상과 글과 음악이 함께 어우러진 앙상블이, 오오, 감동이다. 왜 이제껏 이런 멋진 프로그램을 몰랐던가 크게 후회도 했다.

그런데 방송날짜가 좀 이상해 찾아보니 해당 프로그램은 이미 한참 전에 종영되고 지금은 더이상 방송을 하지 않는단다. 날짜를 찾아보니 대략 첫 번재 책이 나온 한달 뒤쯤이다. 그렇다면 이 두 번째 책은 프로그램이 종영되고 몇 달이 지났을 쯤 세상에 나온 셈이다. 우리 땅 곳곳의 소박한 아름다움들을 이토록 아름답게 담아낸 좋은 프로그램이 많은 이들이 보기 힘든 일요일 오전에 편성된 것도 안타까운데, 그나마도 시청률 부진 같은 이유로 밀리듯 종영되었다니 마음이 아팠다. 나부터도 본방송을 봐주지 못했으니 미안했다.

프로그램 종영의 미안함과 아쉬움을 다시 책으로 달랜다. 다소 급하게 읽어내려갔던 첫 번째와 달리 이번에는 사진 하나 글 하나를 천천히 음미하며 보고 있다. 덕분에 예전엔 몰랐던 또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고, 각자의 이야기를 품고 있는 우리 땅에 새삼 애정이 솟아난다. 방송을 그대로 책으로 옮겨둔 『내 마음의 여행 : 희망』은 방송을 본 독자는 물론 그렇지 않은 독자들도 충분히 그 맛을 느낄 수 있다. 직접 여행을 가진 못하지만, 책 속의 따듯한 사진과 글 들로 잠시나마 지친 마음을 달래본다.









마음 노니는 곳에
경계를 두지 않는다.
소유와 집착을 풀어
넓어진 마음 한 자리
홀연히 깃든 삶을 위해 비워둔다.

- 서장석 PD (경남 창원 끝머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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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네버랜드 클래식 1
루이스 캐럴 지음, 존 테니엘 그림, 손영미 옮김 / 시공주니어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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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네버랜드 클래식) │ 루이스 캐럴 글, 존 테니얼 그림 │ 시공주니어 │ 2001.4월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오랫동안 꾸준히 사랑받아온 고전동화답게 여러 출판사의 다양한 버전으로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 원작에 충실한 완역본부터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의역본, 책 내용보다 몇 배 많은 주석을 품고 있는 주석본, 2차원의 책에서 3차원의 모습을 구현해내는 팝업북, 그리고 원작에 있는 존 테니엘의 삽화 대신 인기 그림책 작가의 그림으로 새롭게 꾸민 일러스트본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마니아들이 종류별로 소장할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최근 화제를 모았던 팀 버튼 감독의 영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개봉하면서 서점가의 이런 '앨리스들'이 한층 분주해졌다. 영화 매체의 파급력은 이미 많은 이들이 읽어온 고전 분야에서도 예외는 아니어서 영화 개봉에 맞춰 집중 마케팅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덕분에 독자들은 각양각색의 앨리스들 중 취향에 따라 골라 읽는 재미를 어렵지 않게 누릴 수 있다. 나 역시 이번 기회에 앨리스를 종류별로 여럿 데려왔으니 말이다.

얼마전에 평소 좋아하는 그림책 작가인 앤서니 브라운이 삽화를 그렸다는 소식에 『앤서니 브라운이 그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살림어린이,2009)를 장만했다. 앨리스 이야기를 제대로 읽기는 처음이었는데, 아무래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의역본이다 보니 재미는 있으나 다소 아쉬운 점도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원작에 충실한 완역본이 읽고 싶어졌다.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도 너무 좋았지만, 책이 출간될 때 함께 실렸던 존 테니엘의 원작 그림이 궁금하기도 했고. 그래서 여러 앨리스들 중에 고른 책이 바로 네버랜드 클래식 시리즈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시공주니어,2001)다. 이미 네버랜드 클래식에서 나온 고전동화들을 차근차근 모으고 있던 중이라 오래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이미 많은 이들이 알고 있듯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작가 루이스 캐럴이 몸담고 있는 대학 학장의 딸이자 자신의 꼬마 친구인 '앨리스'에게 들려주던 이야기를 책으로 펴낸 것이다. 앨리스를 만날 때마다 진짜 앨리스는 어떤 아이일까 궁금했었는데, 이책의 가장 앞장에는 수줍은 미소를 머금은 까만 단발머리 소녀의 사진이 실려있다. 그녀가 바로 루이스 캐럴의 앨리스였던 것이다! 그동안 그림이나 만화, 영화 등에서 보아왔던 앨리스와는 꽤 다른 이미지라 조금 놀랐는데, 원작의 그림을 그린 존 테니얼은 캐럴의 친구 앨리스가 아닌 다른 소녀를 모델로 삼아 그림을 그렸단다. 어쨌든 궁금했던 그녀를 만날 수 있어 반가웠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예측할 수 없는 엉뚱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시도때도 없이 이상하고 황당한 일들이 벌어지는 모험소설이다. 그런 '이상함' 자체가 이책의 가장 큰 즐거움이지만, 곳곳에 숨어있는 장난기 가득한 말장난은 또다른 재미다. 책을 읽다보면 앨리스가 발음이 비슷한 단어를 잘못 알아듣고 엉뚱한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데, 발음이 비슷하나 뜻은 다른 동음이의어를 활용한 루이스 캐럴의 언어유희라 하겠다. 원어민이 아닌지라 그 재미를 원어 그대로 즐기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네버랜드 클래식의 충실하고 친절한 번역 덕분에 그런 소소한 것들까지 놓치지 않을 수 있어 좋았다.

더불어 앨리스에는 여러 노래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오랫동안 영국 어린이들이 불러오던 것들이라고. 그것들을 그대로 살리기도 했고 때로는 중간중간을 바꾸어 재미를 주고 있단다. 자신이 알던 노래들을 살짝 비틀어 놓은 걸 읽으면서 박장대소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대충 상상이 된다. 나의 경우엔 일러스트로 노래의 상황을 함께 보여주던 '윌리엄 신부님, 신부님은 늙으셨고'가 가장 재미있었다. 또한 루이스 캐럴은 이책에서 당시 사회, 특히 지배계층의 모습들을 우스꽝스럽게 풍자해 놓기도 했다. 오랜 세월 동안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이책을 연구 대상으로 삼아온 것도 그 때문이란다. 단순히 앨리스의 신기한 모험을 담은 이야기 정도로만 생각했었는데 여러 면면에서 의미있는 작품이라니 새삼 달리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앨리스가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아이들의 변함없는 사랑을 받아온 가장 큰 이유는 뭐니뭐니해도 예측불가능한 일들이 벌어지는 신기한 나라 원더랜드와 거기서 벌어지는 온갖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은 호기심 충만한 소녀 앨리스가 아닐까 싶다. 앨리스는 작은 것도 아는 척하길 좋아하고 끝없이 수다를 늘어놓는 평범한 소녀지만, 원더랜드의 황당한 상황에서도 울면서 후회하기보다는 그 자체를 받아들여 즐기며 앞으로 어떻게 해결할지를 고민한다. 그런 엉뚱함과 당당함이 앨리스의 가장 큰 매력이다. 독립적이고 모험심 강한 앨리스의 모습은 아이들의 공감을 얻는 것은 물론 새로운 롤모델이 되기도 한다.

사실 다른 건 다 차치하고 그냥 이야기 자체로만 봐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일상을 벗어나 원더랜드라는 이상한 세계에서 만나는 일들은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하고 독특하고 개성적인 캐릭터들은 이야기의 재미를 더해준다.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이 읽어도 즐겁다. 고전이 달리 고전이 아니라는 것을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몸소 보여준다. 그래서인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고전 동화의 완역본을 선보이고 있는 네버랜드 클래식 시리즈에서 나온 가장 첫 번째 책이기도 하다. 『거울 나라의 앨리스』, 『나니아 나라 이야기』 시리즈가 그 다음을 잇고 있다.





▲ 네버랜드 클래식의 '앨리스' 세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 나라의 앨리스』가 함께 묶였다.







+ 오탈자 (초판 35쇄) 

- 51쪽 13번째 줄 : 날 →

- 74쪽 밑에서 2번째 줄 : 왼손 버섯 → 오른손 버섯 
   ☞ 70쪽에는 오른손 버섯을 먹으니 몸이 커지고 왼쪽 버섯을 먹으니 몸이 작아진다는 내용을 볼 때 74쪽이 잘못된 듯. :)

- 20쪽 : 호기심꾸러기호기심(이) 많은 
   ☞ '호기심꾸러기'라는 말이 낯설어 찾아봤더니 현재 국어국립원의 우리말대사전에 등재되어 있지 않는 단어라고 나온다.  
       아직 확신할 수는 없으나 '호기심꾸러기' 대신 '호기심(이) 많은' 정도로 고치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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