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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만드는 소년 - 바람개비가 전하는 치유의 메시지 ㅣ 새로고침 (책콩 청소년)
폴 플라이쉬만 지음, 천미나 옮김 / 책과콩나무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 바람을 만드는 소년 | 폴 플라이쉬만 | 천미나 옮김 | 책과콩나무 | 2008년 11월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배웠듯이, 미국의 심리학자 스탠리 홀(Granville Stanley Hall)은 청소년기를 '질풍노도의 시기(a period of storm and stress)'라고 정의했다. 몹시 빠르게 부는 바람과 무섭게 소용돌이치는 물결만큼이나 불안정한 시기라는 뜻이다. 육체적으로는 성장했지만 정신적으로는 아직 미숙한 상태인 청소년기에는 이성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감수성이 예민해지며 점차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원하든 원치 않든 다양한 장애물을 만난다. 현명하게 이겨내기도 하지만 때론 자신의 생각이 완전히 깨져버리기도 한다. 그렇게 시리거나 알싸한 성장통을 겪으며 조금씩 성숙한 어른이 되어간다.
또래들처럼 자의식과 허영심이 강했던 브렌트는 어느날 친구에게 부탁해 참석한 부유층 자제들의 파티에서 평소 맘에 두고 있던 여자애로부터 공개적으로 큰 망신을 당한다. 홧김에 파티장을 뛰쳐나와 차에 오른 그는 술기운에 창피함과 분노가 더해져 충동적으로 자살을 결심하고 도로를 질주하다 정신을 잃는다. 그러나 브렌트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는 자기 자신이 아닌 모두에게 사랑받는 재능이 넘치는 소녀 '리'를 죽였음을 알게 된다. 다행히 감옥행 처벌은 면했지만 지울 수 없는 죄책감에 시달리던 브렌트는 리가 평소에 좋아하던 바람개비를 미국 땅의 네 끝에 세워달라는 리의 엄마의 부탁을 받고 속죄 여행길에 오른다.
마음의 죄책감을 덜고자 부모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집을 나섰지만 응석받이로 자란 그에게 혼자 떠나는 여행길은 순탄치 않다. 먹는 것과 잠자리 등 기본적인 것부터 낯선 장소와 사람들과의 관계 등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고, 무엇보다 이번 여행의 가장 중요한 임무인 바람개비를 만드는 일과 그것을 세울 장소를 물색하는 것도 녹록치 않다. 그러나 브렌트는 한번도 본 적 없는 리를 생각하며 정성껏 바람개비를 만들고 갈수록 솜씨도 좋아져 멋진 작품이 탄생한다. 리의 영혼을 위로하며 사람들이 아름다운 그녀를 기억해주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세운 브렌트의 바람개비는 그가 떠난 뒤에도 다시 누군가를 만나 또다른 삶의 이야기를 피워낸다.
<바람을 만드는 소년>은 브렌트의 속죄 여행과 그것에 얽힌 다른 시간과 공간을 사는 네 명의 이야기가 교차 진행된다. 처음에는 전혀 상관없을 것 같던 이야기들은 브렌트가 남긴 바람개비의 등장으로 서로 맞물려진다. 리를 위한 바람개비를 세우기 위한 브렌트의 속죄 여행은 철부지 십대 소년이었던 브렌트를 사색적이고 속 깊은 청년으로 변화시켜준다. 더불어 그가 만든 바람개비는 삶에 지치거나 휴식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다시 시작할 희망과 기쁨, 깨달음을 선사한다. 리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바람개비는 브렌트와 그것을 보는 누군가의 마음을 보듬어주는 치유의 메신저가 된다.
한손에 쏙 들어오는 앙증맞은 문고판 크기라 마음만 먹으면 앉은 자리에서 어렵지 않게 끝을 볼 수 있다. 브렌트의 이동 경로에 따라 연작소설처럼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고 에피소드들이 짤막해서 한눈 팔 겨를도 없다. 성장소설답게 여행을 통해 서서히 변화되어 가는 브렌트의 모습이나 바람개비를 통해 삶의 새로운 원동력을 찾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작은 감동을 전하기도 한다. 다만 이야기를 구성하는 에피소드들이 짧다보니 갈등이 너무 쉽게 해결되어 다소 밋밋하거나 심심하게 느껴지는 건 조금 아쉽다. 그럼에도 바람개비로 인한 브렌트와 다른 네 명의 인물들의 변화를 통해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따듯한 메시지는 책을 덮는 독자의 마음을 훈훈하게 데워준다.
철없는 소년의 실수로 한순간에 사랑하는 딸을 잃었지만 그에 분노가 아닌 용서로 대응한 리의 엄마 잠모아 부인의 지혜롭고 선한 선택은 바람개비라는 매개체를 통해 브렌트는 물론 삶에 지쳐가는 보이지 않는 많은 이들에게 희망의 씨앗을 뿌린다. 적절한지는 모르겠으나 이 이야기를 읽으며 ‘나비효과’라는 용어가 떠올랐다. 그녀가 딸을 잃은 분노를 그대로 분노로 갚았다면 어찌 되었을까. 브렌트는 물론이고 그녀 자신도 전혀 다른 삶을 맞게 되지 않았을까. 나의 작은 선한 행동이 무의미하지 않음을 이책 <바람을 만드는 소년>은 조용히 말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