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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자걸스 ㅣ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37
김혜정 지음 / 비룡소 / 2009년 6월
평점 :
- 닌자걸스 | 김혜정 | 비룡소 | 2009년 6월
생각해보니 나도 중3 때 소위 ‘ㅇㅇ여고반’이라는 이름의 심화반 보충수업을 해봤었다. 그곳은 비평준화 지역이었고, 때문에 고등학교도 성적별 서열이 매겨져 있었다. 하여 고입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던 중3 여름방학 때 성적으로 반을 나눠 보충수업을 진행했던 기억이 난다. 중학교가 이러니 고등학교는 말이 필요없다. 그래도 지역명문고교라는 자부심 하나로 버티던 우리 학교도 고3이 되어 입시체제가 바뀌고 일부 명문대에서 수능성적 외에 논술이나 본고사를 내걸자 그에 따라 특별 보충반을 편성했다. 일명 '본고사반'으로 불리던 그반에는 본고사를 대비하는 명문대 지망생들로 채워졌다. 아이들 사이에 특별한 부러움이나 시샘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성적에 따라 집단이 구분됐던 경험은 그리 유쾌하지 않은 기억으로 남았다.
배우가 되고 싶은 고딩 고은비는 오디션을 보러 다니지만, 매번 육중하고 개성적인 외모 때문에 제대로 연기를 해보기도 전에 퇴짜를 맞는다. ‘뚱뚱하고 못생긴’ 외모 때문에 연기는 해보나마나라는 것이 그 이유다. 어릴 때는 나름 잘 나가던 아역배우였지만 살이 찌기 시작하면서 모두 지난날이 됐다. 그 어떤 순간에도 심지어 체했을 때조차도 왕성한 은비의 식욕은 배우의 꿈을 점점 더 멀어지게 하지만 맛있는 음식은 연기 못지 않게 은비를 행복하게 만들기에 포기할 수가 없다. 함께 다니는 친구 지형이와 소울이가 고뚱땡, 고릴라라며 놀려도 은비는 꿋꿋하다.
지형, 소울이와 함께 반에서는 물론 전교 꼴찌를 다투는 꽃미녀 혜지의 과외공부를 도와주던 은비는 영화감독인 혜지 삼촌의 소개로 연극에 캐스팅된다. 연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꿈만 같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가 않다. 의대 입학을 바라는 엄마의 반대와 상위권 성적의 아이들만 따로 모아 둔 심화반인 모란반의 보충수업 때문에 도저히 연극의 연습시간을 맞추기가 힘들어진 것이다. 은비의 딱한 사정과 평소 아이들 사이에 은근한 차별의식을 만들어내던 모란반의 존재에 불만을 품었던 모란여고 4인방은 이참에 아예 모란반을 폐지하고자 의기투합한다. 그러나 그들의 작전은 번번이 실패하고 어느새 연극 상연날짜는 코앞으로 다가온다. 최후의 카드를 꺼내든 아이들은 닌자걸스로 변신하고, 어른들을 향해 그동안 마음 속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들을 마음껏 소리높여 외친다.
- 모란반, 그거 확실히 차별이야. 어떻게 학교에서 차별을 하며 학생들을 교육한다고 할 수 있어? (중략) 솔직히 너네 기분 안 나빠? 똑같은 학생인데 왜 모란반 애들만 따로 보충 수업을 받고 따로 자습실을 써야 해? 공부를 더 시켜야 하는 건 잘하는 애들이 아니라 못하는 애들이라고. 공교육의 목적이 뭔데? 모란반 같은 건 싹 없애야 해. 왜 그런 걸 만들어서 위화감 조성하고 괜히 공부 잘하는 애들 특권 의식을 갖게 하는 거야? 정말 이상하다니깐. (97쪽)
- 나 자신에게 좋은 ‘나’가 되는 대신, 엄마에게는 나쁜 딸이 되어버렸다. 나에게도 좋고, 엄마에게도 좋은 ‘나’가 될 수는 없는 걸까? 이 문제는 너무 어렵기만 하다. (251)
<닌자걸스>는 평범한 네 명의 여고생들이 자신의 꿈을 지키기 위해 벌이는 한바탕 소동극을 유쾌한 시선으로 담은 성장소설이다. 개성있고 생기 넘치는 캐릭터인 모란여고 4인방 고뚱땡 은비, 꽃미남 밝힘증 지형, 땅꼬마 소울, 꽃미녀 혜지는 여고생 특유의 발랄함과 엉뚱함을 뿜어내며 이 소등극을 무겁지 않게 이끌어간다. 작가는 평범한 십대 소녀들의 발랄한 이야기 속에서 성적으로 아이들을 구분하고 차별하는 학교 교육과 미래를 담보로 공부만을 강요하는 현실의 문제점들을 끄집어낸다. 더불어 그 모든 원인이 성적 지상주의의 잘못된 입시 정책과 자신의 꿈을 아이들에게 투영하려는 부모의 욕심에서 비롯됨을 지적한다.
아이들은 은비를 돕기 위해 모란반 폐지를 외치며 닌자걸스로 변신한다. 그들이 뭉친 계기는 은비의 연극 출연이지만 아이들은 저마다 어른들에게 전하고 싶은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다. 은비는 엄마가 원하는 의사가 아닌 연기 잘 하는 배우가 되고 싶고, 혜지는 4년제 대학에 못 가더라도 미국이 아니라 한국에서 살고 싶다. 시나리오 작가가 꿈인 지형이는 이상해 씨로부터 시나리오 공책을 되돌려 받길 원하고, 생각이 똑부러지는 소울이는 아이들이 성적으로 차별받지 않도록 모란반이 없어지길 원한다. 장난스레 시작한 소동극이 점점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버렸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자신의 꿈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노력했다는 점에서 만족한다. 피하지 않고 문제와 맞서는 용기를 가진 그들이 못내 사랑스럽다. 물론 아무 때나 옥상에서 시위를 하는 건 곤란하지만 말이다. :)
- 후유. 앞으로 살아가면서 얼마나 더 많은 장애물과 마주치게 될지는 알 수 없다. 때론 장애물을 피해 돌아가야 하는 일도, 적당히 타협해야 하는 일도 있겠지만, 할 수 있다면 장애물을 부술 것이다. 우리는 충분히 ㅡ래도 되는 나이니까. (중략) 저기, 내가 그토록 꿈꾸던 무대가 있다. (52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