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토지 제1부 1 - 박경리 원작
박경리 원작, 오세영 그림 / 마로니에북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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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을 거론할 때마다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 바로 박경리 님의 <토지>다. 주권을 빼앗기고 억압과 수탈 속에 해방을 일궈낸 우리 민족의 가슴 아픈 수난사를 경남 하동의 조용한 시골인 평사리 마을 사람들의 굴곡많은 삶을 통해 생생하게 재현해 내어 거대한 감동과 교훈을 준 대하소설 <토지>는 말이 필요없는 '걸작'이자 한국문학의 든든한 기둥이다.

이런 작품이기에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토지>의 완독을 한 번은 꿈꾸어 보지 않았을까 싶다. 기나긴 여정 끝에 완독의 기쁨을 맛 본 사람들도 많겠지만, 방대한 분량의 기세에 눌려 나처럼 중도포기의 고배를 마신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10권 내외의 대하소설을 끝내기도 힘겨운 나에게 21권이라는 어마어마한 덩치를 가진 소설 <토지>의 완독은 하나의 로망이다. 쉽게 이루긴 힘들겠지만 그래도 그 언젠가 꼭 마지막 권을 손에 잡는 날이 올 것이라 믿고 있었는데 뜻밖의 소식이 들렸다. 바로 박경리 님의 원작을 그대로 살린 <만화 토지>가 출간된다는 것이다. 아뉘~ 이렇게 반가울 수가! 그와 동시에 '만화의 힘을 빌어 <토지>를 완독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발칙한 생각이 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후후후.

만화가 오세영 님의 손을 거쳐 '만화'라는 형식으로 새롭게 태어난 <만화 토지>는 '박경리 원작'이란 카피를 전면에 내세울 만큼 원작에 충실한 작품임음을 강조하고 있다. 대부분의 리메이크 작품이 원작을 그대로 옮기기 보단 각색자의 시선으로 재해석된 맛을 강조하며 자신의 이름을 내세우는 반면, <만화 토지>는 작가 스스로 '원작을 훼손하는 일은 스스로 용납하지 않았다'라고 말할 만큼 자신의 목소리를 최대한 낮추고 있다. 원작의 감동을 전해주는 그릇 역할에 만족하는 모습을 통해 <토지>에 대한 오세영 님의 깊은 애정과 신뢰를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다. 그런 이유로 <만화 토지>는 표현하는 형식이 만화일 뿐 마치 원작 소설을 그대로 읽는 듯한 느낌을 전해준다.

사실 <토지>가 만화로 나온다고 했을 때 원작 소설이 품고 있는 방대한 내용과 그 속에 등장하는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인물들을 과연 만화의 형식으로 잘 표현해 낼 수 있을지 좀 걱정스러웠다. 그러나 그건 기우엿다. <만화 토지> 1권만으로도 그런 의구심은 깨끗하게 해소된다. 작품 속 캐릭터들은 각각 고유의 성격과 특징들을 잘 나타내고 있고, 눈 앞에 펼쳐지는 그림과 글을 읽다보면 소설 속 본문이 그대로 머리에 떠오를 정도로 원작을 잘 살리고 있다. 

책의 앞머리엔 작가 오세영 님과 원작자 박경리 님의 글, 추천사, 그리고 <토지>에 대한 전반적인 작품 소개가 실려있다. 뒤이어 등장인물의 그림과 간략한 소개가 실려있는데, 다양하면서도 세심하게 표현된 캐릭터들이 인상적이다. 한 컷의 그림만으로도 그 성격을 짐작할 수 있는 얼굴들을 보며 작가의 역량에 감탄했고, 그 수많은 인물 중 어느 하나 겹쳐지는 특징이 없는 것을 보며 캐릭터 표현이 가장 힘들었다는 작가의 말이 새삼 가슴에 와 닿는다. 그 중 어린 서희와 귀녀는 단연 압권이다.

만화 토지 1권은 토지의 주요 무대인 평사리와 주요 인물들이 소개로 시작된다. 곡식이 무르익는 풍요로운 한가위의 들판에서 시작되고, 주요인물인 서희와 봉순이, 길상이, 구천이, 윤씨 부인, 최치수 등을 비롯해 이용과 공월선, 강청댁과 임이네 같은 마을 사람들도 대거 모습을 드러낸다. 또한 거대한 파란을 일으키며 최첨판댁에 시련을 불러 일으킬 귀녀와 조준구도 등장한다. 상투를 자르고 양복을 입은 조준구의 등장과 함께 끝난 1권에 이어 2권에선 어떤 소용돌이가 평사리를 덥칠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만화 토지>의 장점으로는 작가의 충실한 묘사와 풍부한 상상력으로 원작의 감동을 충분히 전해준다는 점이다. 또한 그림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만화의 특성상 소설보다는 가독성이 훨씬 좋아서, 그동안 소설 <토지>의 방대함에 눌려 일독을 못했던 독자들도 비교적 수월하게 <토지>를 완독할 수 있게 해준다. 더불어 만화라는 형식으로 인해 책을 가까이하지 않는 청소년들에게도 보다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으며 내용 또한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내용이 원작에 충실하다보니 너무 어린 아이들이 보기엔 적절하지 않은(그 적절함을 누구의 기준으로 판단할 것인가가 문제이긴 하지만;;) 장면들이 나오기도 한다. 인물들이 구사하는 말들이나 그 내용까지 제대로 이해하려면 적어도 청소년 정도의 나이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만화라고 하면 으례히 아이들 책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내가 보기에 <만화 토지>는 아이들보단 오히려 어른들이 읽어야 할 책이 아닌가 싶다. 특히나 책이랑 안 친하고 게으른 어른들에겐 더없이 좋은 책일 듯 하다.

오세영 님이 4년여를 준비했고, 원작자 박경리 님이 더없이 흐뭇해하며 칭찬하셨다는 <만화 토지> 1부. 이제 겨우 1권을 읽었을 뿐이지만 이 한 권만으로도 앞으로 나올 2부, 3부를 기대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토지>라는 거대한 여행길에 발을 들여놓은 <만화 토지>, 한국 문학의 거대한 획을 그은 박경리 님의 <토지>처럼 우리 만화계의 거목이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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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서
무라카미 류 지음, 정윤아 옮김 / 문학수첩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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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무라카미 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고보니 무라카미 하루키도 그리 즐기는 편은 아니다. 하루키는 소설보다는 오히려 수필이 더 좋았는데 류는 소설 이외의 작품은 보지 못한 것 같다. 생각해보면 그의 소설을 많이 읽은 것도 아니다. 몇 작품을 읽다가 이건 내 취향이 아니자나~라는 생각이 들어 더이상 그의 책을 들지 않았었다. <교쿄>를 마지막으로 몇 년 동안 그의 책은 읽지 않은 것 같다. 어쩌면 작품 몇 편으로 너무 섣불리 그에 대한 선입견을 만들어 버렸는지도 모르지만 싫은 걸 억지로 읽을 수도 없는 것 아닌가.(류의 팬들에겐 미안할 따름이다;;) 

생각해 보면 무라카미 류의 문체는 조용하고 담담하며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지적이다. 내가 좋아하는 대부분의 특성을 갖고 있다. 심지어 그의 작품을 원작으로 했던 이상일 감독의 영화 <69-식스티나인>도 무척이나 재미있게 봤다. 그런데도 그의 작품을 보면 별다른 욕구가 생기지 않는다. 이거 뭔가 단단히 미운털을 박은 모양이다. 그런데 웃긴 건 그의 책을 피한지 오래라 그 이유조차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는 것이다.

파란색의 표지가 돋보이는 <공항에서>를 처음 봤을 때 무라카미 류라는 이름에 바로 지나치려 했다. 그러나 '희망을 이야기한다'라는 글귀가 눈에 머물렀다. 사회의 절망과 퇴폐를 그리는 것은 너무 진부한 시대가 되어 버렸다며 이젠 희망을 이야기 해보자고 말하는 무라카미 류. 그의 말을 듣다보니 아하~ 왜 그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가 살며시 생각날 것 같기도 하다. 절망과 퇴폐, 그 대신에 류가 희망을 이야기한다... '희망'이라는 한 단어에 맘이 동해 다시 그의 책을 읽어보기로 했다.

'어디에나 있지만, 그 어디에도 없는 나'라는 책띠지의 카피가 무척이나 인상적인 <공항에서>는 무언가를 꿈꾸며 제각기 자신만의 희망을 간직하고 있는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8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편의점에서, 술집에서, 공원에서, 공항에서 등등의 제목처럼 각 단편은 특정 장소에서의 짧은 시간 동안 일어나는 생각의 파노라마로 이루어져 있다. 각 편의 주인공은 다른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 머무르고 있지만 그들과 소통하기 보다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들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쫓아가는 주인공의 내면과 주변의 사람들을 살피는 외면이 적절하게 교차되며 점점 벌어지는 시간의 속도를 조절한다. 

과거와 현재 속에 떠오르는 삶의 편린들을 들여다보던 주인공은 어느 순간에 이르러 그동안 잊고 있었거나 또는 오랫동안 마음 속에 품어왔던 자신의 꿈을 되새김질 한다. 그리고 꿈을 향해, 지금의 모습이 바뀌길 바라는 희망에 부풀어 떠날 준비를 한다. 전혀 다른 장소에서 다른 인물들이 등장하는 다른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이 책의 주인공들은 모두 '떠나기'를 갈망한다. 그리고 모두의 희망을 이루어주 듯이 마지막 편의 주인공은 공항에 선다. 그리고 떠나기 위해 발걸음을 내려놓는다. 이 책의 제목을 <공항에서>라고 정한 것은 이러한 주인공들의 마음을, 더 나아가 독자의 마음을 담은 것이리라.

절망과 퇴폐 대신 희망을 이야기하는 무라카미 류의 글은 조금 낯설지만 훨씬 푸근하다. 그래서 이제까지 읽은 작품들 중에 가장 마음에 든다. <공항에서>는 작고 얇은 책이지만, 그 속에 적지 않은 따뜻함을 담고 있다. 비록 신선했던 글의 구성이 각 단편마다 매번 반복되어 나중엔 조금 지루하게도 느껴지고, 몇몇 단편의 끝은 쉽게 이해되지 않으며, 등장하는 여자들마다 술집과 인연을 맺고 있는 점이 꽤나 거슬렸지만(여자는 술집 아니면 일할 곳이 없다고 생각하는 걸까;; -ㅅ-;),, 그럼에도 이 책에 공감하게 되는 건 우리 주변 어디에서나 흔하게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평범하고 소박한 인물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덮는 순간, 나도 떠나고 싶어졌다. 가슴 속에 품어만 왔던 나의 희망을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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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일간의 세계문화기행 - 아빠와 딸 세계로 가다
이희수 외 지음 / 청아출판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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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지 못함을 책으로나마 풀어내려는 마음 때문인지, 아님 언젠간 떠날 그 날을 위해 미리 준비하려는 철저한 준비성 때문인지 요즘 유난히 여행서적에 눈길이 꽂혀 헤어나질 못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아기자기한 표지와 함께 멋진 제목으로 나를 사로잡은 책이 있었으니 바로 <80일간의 세계문화기행>. 독특하게도 역사학자인 아버지와 그 딸이 80일간 함께 세계의 곳곳을 여행하며 기록한 결과물을 엮은 책이란다. (이왕이면 엄마도 끼워주시징~;; ㅎㅎ;;)

'세계 기행'도 아니고 '세계 문화 기행'이란 제목으로 급호감을 유발시키던 책이 도착했는데 생각 이상으로 두껍고, 묵직해서 깜짝 놀랐다. 책값이 괜히 비싼 게 아니었군! 하며 내심 흐뭇한 마음에 책장을 휘리릭~ 넘겨보니 책 구석구석에 각 나라의 멋진 사진들이 가득가득 채워져 있는 올컬러판이 아닌가! 와아~ 정말 신나겠는 걸! 맘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신나게 책장을 넘겨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기쁜 마음도 잠시.. 곧 심드렁해진 나.. 아놔~ 이건 아니자나;;; ㅡ.ㅡ;;


처음 이 책을 봤을 땐 세계 곳곳을 누비며 느끼는 그들만의 감상이나 타국에서의 경험 등이 듬뿍 담긴 사랑스런 여행기일 거라 (혼자 멋대로) 생각했다. 특히 아버지와 딸이 함께 한 여행을 통해 나온 책인 만큼 부녀간의 좀 더 특별한 이야기가 담겨져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80일 간의 세계 문화 기행>은 이러한 나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내용의 책이다. 이 책은 내가 기대했던 '여행을 통한 감상'이 아닌, 세계 각국의 다양한 '여행정보'를 알려주는 여행정보서적에 가깝다. 그것도 한 곳에 대한 깊이있는 정보가 아니라 '세계'라는 말에 걸맞게 넓고 얕은 지식들로 채워진 여행입문서. 


이 책엔 그들이 80일간 지나왔던 47개국에 대한 정보가 비슷한 비중으로 실려 있다. 그들의 여행 코스와 동선에 맞춰 대륙별로 지중해, 중동,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 중앙아시아, 아메리카로 나뉘어져 있는데, 각 카테고리는 그 대륙에 속한 나라들로 채워져 있다. 각 나라의 소개로 들어가면 그 나라에 대한 간략한 소개말과 지리적 위치를 한 눈에 알 수 있는 지도, 가볼만한 주요도시와 간략한 설명이 이어지고, 한쪽 귀퉁이엔 면적, 인구, 수도, 언어와 같은 그 나라의 대외적인 정보들도 자그만하게 실려있다.

하나의 나라에 대한 개략적인 정보를 보고나면 이제 본격적인 세부 탐방으로 접어든다. 그 나라에 대한 정보를 역사, 주요 도시, 자연, 사람들, 신화나 전설, 놓치지 말아야 할 여행지 등으로 나누어 소개하고, 각각의 설명 옆에는 그와 관계되는 다양한 사진들을 첨부해 그 곳의 생생한 모습을 통해 본문의 이해를 돕는다. 또한 간헐적으로 tip이란 꼭지를 마련해 그 나라 만의 매력을 좀 더 풀어놓기도 한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책 한 권으로 세계의 다양한 나라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그들의 모습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진자료들이 풍부한 점이 가장 맘에 든다. 여행 정보는 대륙별ㆍ나라별로 나뉘어져 있고, 다시 주제별로 각 나라의 정보를 분류해 놓아 내가 원하는 나라의 원하는 정보를 찾기에도 간편하다. 또한 책의 순서대로 다양한 나라를 여행할 수도 있지만, 특별히 관심 가는 나라들을 먼저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러나 책 한 권에 47개국의 이야기를 모두 담으려고 하다보니 정보의 폭이 넓은 반면 그 깊이가 얕다. 그런 까닭에 대부분의 내용들이 굳이 이 책이 아니라도 다른 곳에서 충분히 얻을 수 있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한 마디로 이 책만의 특화된 정보가 거의 없다. 객관적인 정보를 나누되 짧은 분량이라도 주관적인 감정이 담긴 에세이를 함께 첨부해줬다면 더 좋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으로는 여행 에세이가 아닌 점이 가장 아쉽지만 그건 기획부터가 다른 거니,, 쩝..


<80일간의 세계문화기행>은 세계의 여러 나라에 대해 이제 막 관심을 보이는 청소년들이 보기에 알맞은 세계문화 입문서다. 많은 나라들이 소개되어 있고, 다양하고 적당한 양의 정보를 제공하며, 볼거리가 많아 아이들이 별다른 지루함 없이 재미있게 볼 수 있다. 그러나 나처럼 여행 에세이를 기대하시는 분이라면 절대 비추다. 여행자의 개인적인 감상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책이기 때문이다. 취향이 확실한 편이라면 책의 제목에만 이끌려 결정하지 말고 직접 책을 펼쳐본 후 구입할 것을 권해본다. 중고등학생이 읽기엔 나쁘지 않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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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들지 않는다는 것 - 하종강의 중년일기
하종강 지음 / 철수와영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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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이 든다는 게 뭘까.. 한편으론 세상의 이치를 깨달았다는 뜻으로 쓰이고, 다른 한 편으론 세상에 물든었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어쩌면 우리는 철이 들면서 두 가지를 동시에 직면하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나이가 들고 철이 들면 우리는 세상에 적당히 물들고,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자신은 아직 철이 들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남자가 있다. 중년의 나이에 스스로 철없다고 선언하다니 신선하다. 그의 중년 일기에는 이렇게 철들지 않은 그의 일상과 일과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 가족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의 글을 읽다보면 철들지 않은 자의 행복을 가늠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하종강이란 이름 옆에 한울노동문제 연구소 소장, 한계레 신문 객원논설위원 등등의 직함들이 줄지어 있다. 그 중 '노동상담가'라는 단어가 유난히 눈에 띈다. 그 개념이 명확하게 잡히진 않으나 노동운동의 연장선이 아닐까하고 조심스레 예측해 보며 책을 넘긴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시작한 건 순전히 '노동상담가'라는 그의 직업 때문이었다. 고도로 자본주의화 되어가는 사회에서 가진 자들의, 힘 있는 자들의 시선과 논리에 익숙해져 가는 내 좁은 시야를 철없음으로 사회에 대거리를 하는 그를 통해 좀 더 넓혀보고자 하는 마음이 동했기 때문이다. 

쉬운 문체로 씌여진 그의 글들은 '일기'라는 제목처럼 편안하다. 그래서 금새 친근함을 느낄 수 있다. 글의 길이도 대체로 한두 장을 넘기지 않아 읽기에도 별다른 부담이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글 속에는 현 사회에 대해 항거하는 그의 목소리가 크고 작게 실려있다. 그러나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밀어부치지 않아 큰 부담은 없다. 독자는 그의 말에 동조할 수도 있고, 다른 의견을 내놓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시선이 사회의 주류적 시선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그래서 그의 글이 좀 더 재미있는지도 모르겟다.

30년째 노동운동에 대한 상담을 해오고 있는 그는 학생시절 소위 운동권이었단다. 그의 글에서 학생운동 이야기가 스쳐가면 대학시절 전혀 뜻하지 않게 경험했던 매캐하고 따끔해 눈물콧물 다 빼던 최루탄의 기분나쁜 감각이 되살아나곤 했다. 노동운동과 민주화 운동을 이야기할 때면 분신자살했던 전태일과 올초에 본 영화 <오래된 정원>과 곧 개봉할 영화 <화려한 휴가>도 덩달아 연쇄작용을 일으킨다. 직접 경험해보지 못했던 치열했던 80년대의 노동운동과 민주화 운동. 책에서 스크린에서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했던 그 일들이 아직도 이 땅 곳곳에 남아 계속되고 있다고 생각하니 새삼 기분이 묘해진다. 

<철들지 않는다는 것>은 '노동상담가' 하종강의 글이지만 '자연인' 하종강의 일기이기도 하다. 빡빡하게 사회비판적인 글로 점철되어 있지 않을까 염려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의 일상에서 만난 소소한 것들이 그의 글에 담겨 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대부분의 글들에서 달지 않은 문장이 한두 줄 발견되곤 하지만 그 점이 바로 그의 글이 매력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것들로 다시 한 번 그런 문제들을 생각해 볼 계기를 마련해주니 그또한 나쁘지 않다.

이 책에는 일상적인 개인글, 노동상담을 직업을 통해 만나는 일과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의 가족에 대한 에피소드, 마지막으로 철들지 않은 그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여러가지 이야기 중에 그의 유머가 가장 잘 살아나는 가족이야기가 가장 재미있었는데, 쉽지 않은 길을 가는 남편에게 힘을 주는 그의 아내와 아이들이 누구보다 멋져 보였다. 항상 바쁜 남편과 아빠를 이해하는 그의 가족들을 위해 그가 조금은 덜 바빠도 되는 세상이 어서 왔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본다. 그 밖에 가난한 사람들끼리 서로의 정을 나누는 '고무장갑 할인 판매'나 일상의 웃음을 전해주는 '진돗개'ㆍ'누워서 깨닫다' 등이 재미있었다.

무엇보다 책의 앞머리에 나오는 '비'에 관한 이야기가 가장 가슴에 박혔다. '굵은 비'가 내릴 때 농민들은 자식처럼 키운 작물들이 이리저리 휩쓸려가고 상처입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데, 라디오에선 한가하게 낭만 운운하며 비오는 창가에서 커피 한 잔 어떠냐는 소리를 할 때 욕이 나왔다는 이야기. 물론 각자의 입장에 따른 차이겠지만 먼저 가지지 못한 사람들, 힘든 사람들을 생각하지 못하는 우리의 마음이 부끄러워졌다. (어제 밤에도 비가 무척 많이 왔는데 별다른 비피해 없으시길 기도한다!)

하종강은 자신을 가르켜 철들지 않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철들지 않았다는 의미가 그의 모습과 비슷한 것이라면 그것 또한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다만 용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든다. 모두가 철이 들고 세상과 타협하며 살아갈 때 철들기를 거부하고 자신의 뜻을 펼쳐나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중년, 하종강. 그의 바람대로 철없는 그의 삶이 오늘도 굳건히 이어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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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멋대로 행복하라 - 꿈꾸는 사람들의 도시 뉴욕
박준 지음 / 삼성출판사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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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너무나 재미있게 읽었던 <on the road -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의 저자 박준 님의 신작이 나왔다. 가슴 설레며 단숨에 읽어버렸던 전작이 너무 좋았던 터라 그의 이름만으로도 이 책을 선택하기에도 조금의 망설임이 없었다. 오히려 이번엔 어떤 설렘을 전해줄지 궁금한 마음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였다.

<꿈꾸는 사람들의 도시, 뉴욕 - 네 멋대로 행복하라>. 멋진 제목의 이 책은 외모가 꽤나 근사하다. 또한 책을 싸고 있는 책 표지가 아주 인상적이다. 하나의 큰 그림으로 이루어진 표지를 펼쳐보면 한 면에는 뉴욕의 지하철 지도가, 다른 한 면에는 멋진 뉴욕 풍경 사진이 박혀 있다. 뉴욕의 지하철 지도엔 책의 인터뷰에 응한 인터뷰이들의 집이나 작업실 등이 표시되어 있고 책 속에도 나왔던 뉴욕의 존재하는 여러 모습들의 사진들도 덧붙여진 느낌으로 꾸며져 있다. 다른 면엔 록펠러 센터 전망대 'Top of the Rock'에서 바라본 맨해튼의 전경이 담겨 있다. 마치 그 전망대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멋진 사진이다.


책을 읽는 동안 당장이라도 배낭을 짊어지고 떠나야 할 것만 같은 마음을 품게 했던 <온 더 로드>가 배낭 하나 짊어지고 '카오산 로드'에 모여든 각양각색의 국적과 직업의 장기배낭여행자들의 인터뷰한 책이라면, <네 멋대로 행복하라>는 세계의 축소판으로 불리는 '뉴욕'이라는 도시에 모여든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는 책이다. 이 책은 크게 뉴욕을 소개하는 부분과 뉴요커와의 인터뷰한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네 멋대로 행복하라>의 앞부분은 여행관련 책자에 빠지지 않고 소개되는 자유의 여신상, 록펠러 센터,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타임 스퀘어, 현대미술관 등의 너무나 유명한 관광명소가 아닌, 뉴욕에 사는 사람들이 즐겨찾는 그들만의 보물창고들과 진정한 뉴욕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곳곳을 소개한다. 관광객들이 다니는 일반적인 동선인 화려하고 근사한 최첨단의 거리를 벗어나 진짜 뉴요커들이 움직이는 뉴욕의 낡고 후미진 구석구석으로 들어가다보면 또다른 뉴욕을 만나는 재미가 쏠쏠하다. 꿈틀대는 뉴욕의 에너지와 열정이 느껴져 더욱 즐겁다.

뉴욕의 골목 훔쳐보기가 끝나면 책의 중반부터는 전작에서도 빛을 발한 박준의 인터뷰가 독자를 기다리고 있다. 꿈을 품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뉴욕으로 향한 사람들, 13명의 뉴요커들은 인터뷰를 통해 뉴욕으로 온 이유, 그곳에서의 치열한 삶, 자신의 꿈에 대한 열정, 뉴욕을 향한 애정, 자신이 생각하는 뉴욕, 앞으로의 삶의 계획 등을 털어놓는다. 그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뉴욕을 찾았고 뉴욕에서는 그것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는 것이다.


사실 난 '뉴욕'이란 도시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 특별한 관심이 없었다는 말이 더 정확할 듯 하다. 어떻게 그럴수가 있냐고 묻는다면,, 그럴 수 있다고 답할 수 밖에;; 솔직히 세상의 모든 도시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내게 뉴욕은 미국의 거대한 도시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러나 이 책은 내게 뉴욕을 좀 더 흥미로운 곳으로 바꿔놓았다. 뉴욕이란 곳에 대해 호기심이 조금 돋아났다고나 할까.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어 자신들의 에너지를 뿜어내는 곳, 여러 인종들이 모여 사는 까닭에 미국의 다른 곳에 비해 다른 인종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적은 곳, '다름'과 '차이'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대하는 곳, 그래서 어디에서 왔고 무슨 피부색을 가졌든 자신의 꿈을 향해 좀 더 다양한 기회와 경험을 접할 수 있는 곳, 학연이나 지연이 없어도 실력으로 승부할 수 있는 곳, 자신만의 자유를 맘껏 누릴 수 있는 곳, 그래서 가난한 아티스트들이 자신만의 꿈을 머금고 있는 곳.. 그곳이 바로 '꿈꾸는 사람들의 도시' 뉴욕이다.

반면 좁은 땅에 꾸역꾸역 모여드는 사람들로 인해 살인적인 물가와 렌트비를 자랑하는 곳, 그래서 엄청난 집세와 기타 생활비로 수입의 대부분을 지출해야 하는 곳, 주어지는 기회는 많지만 경쟁 또한 엄청나게 치열해 절대 만만하지 않은 곳, 무한히 자유로울 수 있지만 또한 극단적으로 개인주의가 존재하는 곳 또한 뉴욕이다. 그러나 뉴요커들에겐 이런 단점보다 뉴욕만이 뿜어내는 장점이 더욱 매력적인가 보다. 여전히 열렬히 뉴욕을 예찬하고 있으니 말이다.


책 속에 소개된 뉴욕의 모습이나 열정적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니 뉴욕에서 분출되는 그 열정이,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그 열기가 내게도 느껴지는 것 같았다. 박준의 전작 <온 더 로드> 만큼은 아니지만 <네멋대로 행복하라> 또한 정체된 내 삶에 자극을 준 책이다. 항상 변화하고 발전되는 삶을 산다는 것, 멈추기를 거부하고 뉴욕으로 떠난 그들의 삶의 자세일 것이다.

뉴요커들이 꼽는 뉴욕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보다 세계 여러 나라의 여러 인종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문화의 다양성과 그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열린 마음이다. 그래서 어떤 피부색을 가졌든, 어떤 옷을 입었든 자신의 꿈을 향해 열정적으로 나아갈 수 있는, 꿈꾸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도시 - 뉴욕.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의 행복을 좇는 그들의 모습이 아름답다. 


열정의 도시 뉴욕을 향한 사랑을 쏟아내는 뉴욕 예찬서 <네 멋대로 행복하라>
이 책을 읽는 당신도 당신 멋.대.로. 행복해지길 바란다!









* 오탈자, 하나 : (84쪽) 피카소는 고흐와 더불어 사람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작가일 듯. 이를 반증(→방증)하듯 피카소의 전시는 뉴욕에서 갖가지 명목으로 끊이지 않는다.
→ 피카소가 사람들의 사랑을 많이 받기 때문에 전시가 끊이지 않는다고 했으니 '반증 → 방증'으로 고쳐야 옳지 않을까 싶다.

- 반증 : 어떤 사실이나 주장이 옳지 아니함을 그에 반대되는 근거를 들어 증명함. 또는 그런 증거.
- 방증 : 사실을 직접 증명할 수 있는 증거가 되지는 않지만, 주변의 상황을 밝힘으로써 간접적으로 증명에 도움을 주는 증거.


* 오탈자, 둘 : 오탈자는 아니지만.. 176쪽 위에서 3 번째 줄의 질문 혼자 색깔이 안 입혀져 있다. 담엔 입혀주세요~ ^ ^




* 군소리, 하나..

뉴욕의 숨겨진 명소를 소개하는 부분에 숱하게 등장하는 단어 '힙한~'. (힙한 장소가~, 가장 힙한 곳이~ 등등)
힙한? 그게 뭐징? ㅡ.ㅡ? 책의 뒷부분에 이르러서야 '힙한 = hip한'이란 걸 알았다;;
hip한? 사전을 찾아보니 hip의 다섯 번째 단어에 '최신 유행에 밝은ㆍ앞서는, 통달한, 진보한' 등의 뜻이 달려있다.
내가 너무 무식한 건지는 모르겠지만(영어에 약한 건 사실; -ㅅ-;) 굳이 이런 표현까지 영어로 써야 하나;;
기분좋게 읽었지만 책 속에서 남발되는 영어가 조금은 유감스럽다. (인터뷰들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 군소리, 둘..

13명의 인터뷰이들 대부분이 아티스트들이다. 다들 예술가들 뿐이잖아! ..라고 할 때 펀드회사에서 일하는 린댕이 등장! 그러나 린댕을 제외하곤 모두 예술관련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물론 예술가들이 다른 직종의 사람들보다 모험적이고 열정적인 삶을 살긴 하지만 '뉴욕'이란 도시에 머무르는 좀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들긴 한다. 물론 그들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지만 말이다. ^ ^


* 군소리, 셋..

책 속에 미드 'sex and the city'가 어찌나 자주 등장하는지.. 드라마 안 본 나는 뻘쭘;;
이 드라마의 유명세를 다시금 온 몸으로~~ 확인시켜 주는 계기가 됐다. 
지금이라도 찾아서 봐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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