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쟁이 유씨
박지은 지음 / 풀그림 / 2007년 9월
평점 :
품절


이제껏 염하는 장면을 실제로 본 건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딱 한 번 뿐이다. 벌써 10년이나 흘렀는데도 멀리서 본 그 장면들이 어린 마음에 꽤 충격적이었는지 아직도 비교적 또렷하게 남아있다. 무척 엄한 분이라 할아버지와 각별한 정이 남아있던 것도 아니었지만, 언제나 주변 사람들을 큰소리로 호령하던 분이 저렇게 맥없이 누워 삼베에 싸여지는 모습을 보며 아무리 대단한 인생이라도 죽음 앞에선 참 아무것도 아니구나, 허망하구나..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얼마전 영화 <행복>에서 염하는 장면이 나왔는데, 아무리 연기라지만 저렇게 무언가에 싸여 꽁꽁 묶이는 느낌이 참 묘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염이란 행위가 내겐 마치 삶의 끝과 비슷한 의미로 다가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책의 주인공 염쟁이 유씨는 죽은 사람들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는 행위인 염을 업으로 한 사람이다. 그런 그가 오늘이 마지막 염을 하는 날이 될 거라며 그동안 한사코 거절하던 잡지사의 인터뷰 요청에 응한다. 그리고 그와의 인터뷰를 위해, 며칠전 자신을 배신한 애인에게 상처를 남기려고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자살을 선택했다 운좋게 살아난 주기자가 그의 집을 찾는다. 삶을 포기해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왔던 주기자와 삶을 끝낸 사람들을 떠나보내는 염쟁이 유씨와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된다.

평생을 염쟁이로 살면서 수많은 시체를 염해왔던 유씨는 죽음뒤에 숨겨진, 또는 죽음이 남긴 수많은 사연들을 주기자에게 들려준다. 부모 자식간의 사랑, 가족의 사랑, 연인들의 사랑 등 유씨의 이야기는 큰 테두리에선 모두 사랑을 주제로 한다. 사실 인간사에서 사랑을 빼고 무엇이 남으랴. 여러가지 각양각색의 사랑을 담은 사연들이 많았는데, 그중 몇 해전 많은 이들에게 아픔을 남겼던 대구 지하철 방화사건을 모티브로 한 이야기와 주인공 유씨의 가족사에 얽힌 이야기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사실 다른 어떤 에피소드든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다는 것이 얼마나 아픈지 알게 하기에 충분했다.

처음에 '염쟁이'라는 직업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이야기도 너무 칙칙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러나 그의 말투는 유쾌했고 이야기는 담담했다. '죽음'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신파로 빠져 눈물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유씨의 경쾌한 말투는 죽음이란 무거운 소재를 좀 더 가볍고 일상적인 일로 변화시킨다. 유씨와 주기자의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는 유씨가 들려주는 사연들을 주기자가 정리하며 자신의 감상이 덧붙이는 패턴으로 이어진다. 에피소드 중간중간에 유씨의 가족사도 조금씩 언급되는데 그의 가슴 아픈 사연은 책의 말미에 밝혀지며 독자의 가슴을 찡하게 울린다.

<염쟁이 유씨>는 2007년 최장기 공연 기록을 세운 연극을 원작으로 좀 더 풍성한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라고 한다. 연극공연의 문화혜택을 받기 어려운 지방민인지라 연극을 직접 보지 못했지만 책의 내용으로 미루어 짐작해 볼 때 연극 또한 웃음과 감동이 함께 어우러진 작품이 아닐까 싶다. 염쟁이란 직업을 가진 유씨를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놓는 이책은 유씨가 들려주는 여러 삶의 모습을 통해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반성하게 만든다. 극한의 상황인 죽음에 이르러서야 자신의 잘못을 후회하는 것은 사연속 거의 모든 등장인물들의 공통점이다. 어쩌면 우리도 그들과 같지 않을런지. 책을 덮으며 곰곰이 생각해 본다. 


- 이제는 죽음을 너무 가볍게 여기지도, 너무 두렵게 느끼지도 않는다. 죽으면 모든 게 끝이라고도 생각지도 않는다. (중략) 어제는 결코 기대하지 않아던 오늘이지만, 난 어느새 내일을 기대하고 있다. 난 이제 내일을 힘차게 살아갈 것이다.언제 찾아올지 모를 죽음, 그 순간이 부끄럽지 않기 위해. 죽음, 그 뒤에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남기기 위해. (204쪽)

아쉬운 점이 있다면, 연극의 에피소드 형식을 가져온 탓인지 유씨의 입을 통한 이야기들은 모두 너무 단순한 구조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몇 장 안에 끝나는 짧은 이야기들을 줄줄이 보이려다보니 등장인물이나 사건의 전개, 갈등 양상과 결말 등이 대부분 예측가능하다. 죽음을 맞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에 초점을 맞추려는 의도에 따르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겠지만 그 중 몇몇 이야기는 좀 더 복합적으로 깊이있는 사연을 전해도 좋지 않았을까. 물론 주인공 유씨의 이야기가 그런 형식에 가깝긴 하나, 그마저도 유씨의 아들에게 일어난 일들에 대해 함구한 채로 이야기를 마무리지어 버려 허전함을 채울 수가 없었다. (물론 아들에게 일어난 일을 독자의 몫으로 넘겼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허전한 건 어쩔 수 없다;)





- 유씨가 주기자와 만난지 얼마 안되어 하는 대사. 무심히 읽었다가 참 많이 웃었다. ^^

"말 나온 김에 우리나라 어린이 사망 원인 1위가 뭔 줄 알어?"
"뭔가요?"
"운동장에 금 그어 놓고 놀이하다가 금 밟고 죽는겨. 제일 원통한 일이지. 누구나 한번씩은 경험해 봤을겨." (중략)
"그럼 어른들의 사망 원인 1위는 뭔지 알어?" (중략)
"광 팔고 죽는 거지! 그란디 난 당최 이해가 안 가. 왜 넘 죽은 상갓집 가서 제우 광 팔고 죽어? 그냥 곡이나 혀 주다 오면 되지. 허허 참~ " 
"그러니 한삼해 죽겠는 거죠." (20~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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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갱의 일상과 습격
이사카 고타로 지음, 오유리 옮김 / 은행나무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의 속편인 <명랑한 갱의 일상과 습격>이 나왔다. 제목 또한 여전히 명랑하다. 이사카 고타로를 처음 만났던 책이 <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였는데, 그의 최고의 작품은 아니지만 첫만남으론 충분히 즐거웠다. 적당히 가볍고 코믹하며, 미스터리적 형식을 취한 전개는 나름 치밀하게 전개되다 적당한 반전을 보여주고, 내용의 큰 줄기에 사회문제가 적당히 끼워져 있다. 발랄한 문체로 무거운 문제를 가볍게 툭툭 건드리며 던져주는 그의 작품 경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작품으로 초기작치곤 꽤 잘 쓴 작품이었다. 소설의 인기에 힘입어 일본에선 영화로도 만들어졌다고 하는데(우리나라에서도 곧 개봉 예정이다) 영화가 소설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을 받았다고;(하긴 그 많은 이야기를 두 시간 안에 압축하려면 쉽지는 않을 듯;)

속편인 <명랑한 갱의 일상과 습격>에도 주인공인 명랑발랄 은행강도 4인조는 여전히 총출동한다. 상대방의 거짓말을 알아차리는 것은 물론 침착함을 무기로 치밀한 계획을 세우는 팀의 리더 나루세, 입만 열었다하면 거짓말을 줄줄이 사탕으로 쏟아내지만 거짓말과 잡학다식함을 엮어 유창한 달변으로 승화시키는 팀내 분위기 메이커인 교노, 인간보다 동물을 더 사랑하는 동물 애호가로 수시로 '신의 손'으로 변신하여 팀을 위기에서 구하는데 제 역할을 톡톡히 하는 천재 소매치기 구온, 선천적으로 타고난 생체시계로 모든 시간을 초단위까지 계산해 팀원들을 수송하는 팀내 홍일점 유키코. 한층 업그레이드된 그들의 재능은 여전히 눈부시게 빛을 발한다. 

그리고 새로운 소재를 들고 달려온 뉴페이스 조연들이 이야기의 물꼬를 틔운다. 시청 공무원인 나루세의 부하 오쿠보는 주택가에 수상한 사람이 돌아다닌다는 제보자와 실랑이하고 자신을 탐탁찮아하는 여자친구의 아버지로 인해 고민하며, 교노의 가게 손님 후지이는 술만 먹으면 필름이 끊어지는 탓에 묘령의 여인을 찾아나서며, 유키코의 직장 동료 아유코는 연극 티켓만 남기고 홀연히 사라진 남자의 존재를 궁금해하며 연극관람 여부를 고민하고, 와다쿠라는 밤중에 길거리에서 갑작스런 폭행을 당하다 때마침 지나가던 구온의 등장에 위기를 넘기고 자신을 폭행한 사람을 추적한다. 그리고 그 뒤엔 더 큰 사건이 기다리고 있는데..

은행강도가 아닌 평범한 사회인으로 일상을 보내던 우리의 주인공들은 착하게도 그냥 지나쳐도 되는 주변인들의 이런 고민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해결의 길을 모색한다. 그들의 가담으로 제각각 따로 놀던 이야기는 어느새 하나의 사건에 모아지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각 사건의 정보들은 중요한 핵심정보로 부상하며 사건 해결에 박차를 가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건이 점점 걷잡을 수 없게 커져가지만 우리의 주인공들은 시종일관 명랑함을 유지하며 주인공답게 위험에 처한 인물을 구해내는 것은 물론 악의 무리(?)까지 깔끔하게 처리하며 사건을 마무리 짓는다. 명랑할 뿐만 아니라 이야기의 주인공답게 정의감까지 넘쳐 위험에 처한 사람들까지 구해내는 멋진 갱들이다. 정작 자기들이 은행의 돈을 훔치는 것을 비도덕적 행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게 유일한 문제지만;

이책은 갱의 멤버들이 각각 접한 작은 사건들이 제공한 실마리를 발판삼아 중심사건을 멋지게 해결하는 전편의 포맷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지만, 특별한 능력을 지닌 주인공은 전편과 같지만 새로운 등장인물들과 소재들이 합세해 전편과는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기에 결코 지루하거나 식상하지 않다. 개별적이었던 소소한 사건들이 보이지 않는 끈으로 서로 얽히고 설켜 후반부에 뻥~하고 터져줄 때의 그 쾌감 또한 여전하다. 시종일관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숨막히는 스릴러가 아니라, 웃어가며 쉬어가며 조금은 느슨하게 퍼즐을 맞추는 미스터리의 재미 또한 전편 못지 않다.

이렇듯 <명랑한 갱의 일상과 습격>은 인기작가 이사카 고타로의 매력이 곳곳에 담긴 책이다. 대개 그렇듯 그의 문체는 여전히 가볍고 발랄하며 웃음을 머금게 한다. 그러면서 그 속에 사회의 진지한 문제들을 부담스럽지 않게 포장해 드러낸다. 심각하지 않게 진지하지 않게 그렇게 생각할 꺼리를 던지는 그의 솜씨는 이책에서도 여전히 빛난다. 기존의 그의 작품을 좋아했거나 전작을 즐겁게 본 독자라면 이책 또한 충분히 즐겁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즐길 준비가 되었다면 이제 4인조 은행강도의 인질 구하기 프로젝트에 함께 참여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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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페라 굿바이 선 SPF34/PA++
클리오
평점 :
단종


예전엔 선크림이 너무 끈적이고 기름져서 쓰기가 꺼려졌었어요. 이것저것 좋은 제품들 찾다가 그나마 덜 끈적이는 제품이 입큰이었죠. 아, 랑콤도 참 좋았는데 그건 가격이 너무 비싸서;; 근데 입큰도 막상 여름이 되니 끈적이더군요. 글서 다른 제품을 찾다가 엄청난 입소문에 믿고 산 것이 이니스프리 선크림이었어요. 가격도 무척 저렴한데 자외선 차단 지수도 높고, 순해서 트러블도 없고, 무엇보다 로션처럼 흡수가 빨라 끈적이지 않는 것이 가격대비 가장 마음에 드는 제품이었죠. 써보고 좋아서 엄마, 언니, 친구 등등 주변 사람들에게 권해줬더니 다들 저처럼 맘에 들어하더라구요. ^^

그러다가 얼마전 선크림을 다시 주문하려고 봤더니 제가 그렇게 좋아하던 이니스프리 선크림이 리뉴얼되면서 가격이 확~ 올랐더군요. 급좌절. orz 뭐 그래도 품질이 맘에 들어 충분히 재구입 의사가 있었지만 다른 제품으로 한 번 바꿔볼까~하고 둘러보다 만난 것이 페리페라의 굿바이 선이에요. 이 제품 또한 상품평들이 하나같이 어찌나 좋은지. 무엇보다 페리페라도 이니스프리처럼 끈적이거나 기름지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더군요. 케이스도 이쁘고. ^^ 페리페라 제품을 한 번도 써본 적이 없지만 사용자평이 한결같이 좋아 속는 셈치고 주문을 했답니다.

오오~ 이 제품 대만족입니다! ^^
우선 사진처럼 케이스가 정말 예뻐요. 분홍빛이 감도는데 촌스럽지 않고 은은하고 뚜껑도 고급스러워 보이네요. 크기도 적당하고 두께도 옆으로 적당히 날씬해 맘에 드네요. 용량도 70ml라서 넉넉하게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선크림은 일년 내내 자주자주 쓰는 제품이라 넉넉하면 더 좋겠지만 사은품으로 20ml 여행용이 함께와서(접때 주문할 땐 여행용이 왔어요; ^^;) 충분히 만족스럽습니다. (언니 걸로 샀더니 비구매자로 분류되는군요;;)

선크림은 아주 연한 분홍색을 띄고 있는데요(색깔 표현을 제대로 못하겠네요. 흰색에서 연한 분홍빛이 돈다고 생각하시면 될 듯. ^^;), 로션처럼 부드럽게 아주 잘 발려요. 발림성 정말 좋구요, 흡수도 빨리 되네요. 펴바른뒤 몇 번 톡톡 두드려주면 얼굴에 거의 흡수가 되더군요. 전에 쓰던 이니스프리나 랑콤만큼 발림성이 좋네요. 더불어 리뷰에서 많은 분들이 칭찬하셨 듯이 향이 참 좋네요. 분홍 케이스처럼 향도 은은한 장미향이 나는데 바를 때마다 향 때문에 더 즐겁답니다. ^^

저는 기초 손질 후 선크림 바르고 (그 전에 프라이머를 바르기도 하구요) 비비크림을 바른 후 파우더를 치는데요. 전혀 밀리는 거 없네요. 더울 때 땀이 나도 예전 기름진 선크림처럼 끈적대거나 번들거리는 거 없구요. 하긴 요즘은 기술이 좋아져서 거의 다 그런지도 모르겠네요; (좋아하는 제품만 쓰고 다른 제품은 별로 안 써봐서요. ^^;)

참, 색상이 연한 분홍빛?살구빛?이라 얼굴에 바르면 메베처럼 약간의 피부보정 효과도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선크림인 만큼 큰 효과가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약간 화사해지는 느낌은 있답니다. ^^ 전에 쓰던 건 연두빛이었는데 페리페라 굿바이 선을 바르니 그 제품보다 얼굴이 좀 더 환해지는 것 같네요. ㅎㅎㅎ

말이 길어졌는데요. 어쨌든 저는 이 제품 참 맘에 드네요. 정리하자면.. 로션처럼 가볍게 발리고, 발랐을 때 흡수도 빠르고, 들뜨거나 번들거리지 않아요. 그래서 기초화장만 하고 선크림만 바르고 밖에 나가도 기름져 보일까 걱정할 필요 없답니다. ^^ 그리고 메베처럼 피부보정 기능도 조금 첨가된 것 같구요. 자외선 차단 지수도 적당해서 수시로 부담없이 바를 수 있는 제품인 것 같네요. 은은한 장미향이 좋아서 더 좋답니다. 이제 주변에서 선크림 산다고하면 굿바이 선을 권해줘야겠어요. 추천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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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 시티 - 트렌드 세터를 유혹하는 감각의 여행지
정기범 지음 / 시공사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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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여행서적을 좋아한다. 미처 가보지 못한 곳을 작가의 눈을 통해 함께 들여다보는 느낌이 참 좋다. 그들의 감상을 공유하거나 때론 상상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떠나고 싶다!'라는 내면의 욕구가 '그럴 형편이 못 된다'라는 현실을 만나 좌절할 때 그런 내게 대리만족을 주는 책 또한 여행서적들이다. 책을 보는 동안만이라도 떠날 수 있으니. 비록 직접 그땅을 밟고 온 저자들이 질투나게 부러운 마음은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여행서적에 빠져들어 이책저책을 집어들다보니 때때로 나의 의도와 다른 책을 만나기도 한다. 나는 여행지만의 매력을 충분히 소개하면서도 자신의 감상이 적절히 조화시키는 그런 기행문을 좋아하는데 반해, 직접 여행지에 갔을 때 요긴하게 쓸 수 있는 실용적인 '정보'들을 담아둔 '정보서' 또는 '실용서'들은 그리 즐기지 않는 편이다. 이유는 (슬프게도) 당장은 그곳에 갈 수 없기에, 또한 언제 갈지 기약할 수 없기에 현지의 정보를 알려주는 책들은 내게 별다른 의미가 없다. 여기 가면 커피가 맛있고, 저기 가면 분위기가 좋고, 요기로 가면 무슨 쇼핑이 좋다 등등의 정보는 지금 아무리 기억하고 있어도 막상 그곳을 밟을 때가 되면 무용지물이 되어버리기 일쑤이니 말이다. 그래서 그런 책들은 내게 여행을 떠날 계획을 잡은 후에나 둘러봐야 할 책들로 분류되고 있다.

<스타일 시티>는 아쉽게도 후자 쪽이다. 각 도시들의 특징적인 스타일에 대해 논하는 책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각 도시에서 '스타일을 찾는 쇼핑법'을 알려주는 책이었다. 이 책의 저자는 유럽의 내로라하는 도시인 런던, 파리, 로마, 프라하를 중점적으로 돌아보고 그곳이 자랑하는 박물관, 미술관, 유적지 등 유명 관광지는 물론 체험해 볼 만한 문화공연, 현지인의 숨결을 느껴볼 수 있는 시장, 분위기 좋은 카페나 맛난 음식점 등에 관해 개략적인 정보를 먼저 알려준다. 그리고 몇 가지의 간단한 스케줄을 알려주며 본격적으로 카페나 옷집, 맛집 등의 쇼핑 정보를 쏟아낸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 책은 런던, 파리, 로마, 프리하에서 현지인처럼 즐길 수 있는 카페와 식당, 그들의 스타일을 접할 수 있는 각종 쇼핑가게들에 대한 정보를 소개하는 책이다. 이런 정보 위주의 책들이 그러하듯 이 책 또한 한 번 스쳐가는 여행자들은 알기 어려운, 그곳에 사는 현지인들의 정보들을 책을 통해 공유한다. 그래서 런더너와 파리지앵들이 선호하는 카페나 음식점, 쇼핑 스타일 등을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다. 가게를 소개하는 사진들 또한 어찌나 예쁜지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겁기도 했다. 특이한 물건이나 스타일로 꾸며놓은 가게들도 있었고 꼭 한 번 찾아가보고 싶은 욕구가 절로 드는 곳도 있었다. 간간이 한국인들의 가게가 나오면 그게 또 그리 반갑기도 했다.

화려한 사진들이 멋드러지게 수록되어 있고, 각 도시에서 소문난 장소들에 대한 정보가 빼곡히 담겨있는 책, <스타일 시티>. 곧 유럽으로 여행을 떠날 계획이 있거나 유럽 도시의 스타일이나 쇼핑 등에 관심이 많다면, 유럽을 여러 번 다녀와 이젠 관광지 중심이 아닌 다른 여행 테마를 잡고 싶거나 잠시나마 현지인들의 생활을 몸으로 느껴보고 싶다면, 또는 여행이나 쇼핑과는 별개로 스타일 자체에 관심이 많아 유럽의 가게들을 구경해 보고 싶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독자라면 이 책은 여러모로 유용한 정보를 줄 것이다. 그러나 나처럼 언제 몸을 날려 그곳에 발을 디딜지 기약할 수 없다면, 그러면서도 쇼핑엔 그리 큰 관심이 없다면, 또는 여행 정보서보다 여행기에 더 관심이 많다면.. 그렇다면 이 책은 그리 큰 감흥을 주지 못할 것이다. 기호에 따라 잘 선택하여 보시길.

참, 책 속의 글자가 참으로 깨알같다. 노안이신 분들은 미리 돋보기를 준비하시길. ㅎㅎ





* 오탈자) 338쪽 6째 줄 : 결핵 → 결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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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구나무선 신데렐라와 변소 귀신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스토리우스 이야기 탐험대 1
최수영 지음, 이강훈 그림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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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너무나 재미있게 봤던 동화나 만화영화들을 나이가 들어 다시 보면 예전엔 미처 생각지 못한 것들이 보이기도 한다. 영리한 쥐 제리의 꾀에 넘어가 매번 골탕 먹는 고양이 톰의 모습이 웃음을 자아내는 만화영화 <톰과 제리>만 해도 몸개그를 걷어내면 제리가 톰을 괴롭히는 방법이 생각외로 무섭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또한 고전명작동화에 등장하는 여자 주인공들은 예쁘고 순종적이며 남성의존적인 것을 미덕으로 삼으며, 남성과 여성의 역할을 명확히 구분짓고 여성의 존재를 무시하는 경우가 많이 보인다. 백설공주나 신데렐라, 콩쥐팥쥐 등처럼 계모들은 나쁜 사람으로 묘사되어 있고, 선과 악을 구분이 뚜렷한 상황에서 악당들을 처치하는 방법들은 잔인하지만 정의를 위한 것으로 간단히 마무리되어 버리는 경우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어린이들에게 편견없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을 알려주어야 할 어린이책이 정작 그안에 수많은 편견과 차별을 품고 있는 걸 심심찮게 보게된다. 해피엔딩의 과정에서 적당히 정당화 되거나 미화되어 버리는 그런 잘못된 생각들은 아이들에게 그대로 받아들여져 버린다. 이 책의 저자가 머리글에서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책들에 약자에 대한 배려가 없고 여성을 무시하는 내용과 말들이 많은 책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는 말에 깊이 공감한 건 위와 같은 생각 때문이었다. 자신의 아이가 봐도 부끄럽지 않은 어린이책을 쓰고 싶었고 그렇게 노력했다는 저자의 말은 이 책을 읽기 전 약간의 믿음과 기대감을 더해줬다.


<물구나무 선 신데렐라와 변소귀신>은 독특한 제목부터 흥미를 자아낸다. 세상의 수많은 이야기 속으로 탐험을 떠나기 위해 이야기 탐험대를 모집하는 스토리우스와 탐험대에 지원한 버들(일명 콩쥐), 홍길뚱, 깨비가 중심인물로, 그들은 시대와 장소를 넘나들며 수많은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 수 있는 최첨단 장비인 티앤에스큐에 승차해 흥미진진한 이야기 탐험을 시작한다. 등장인물들의 이름에서 눈치 챌 수 있듯이 이 책은 기존 이야기의 비틀기를 시도한다. 등장인물부터 순종적이었던 콩쥐가 활발하고 적극적인 버들로, 세상을 뒤엎었던 홍길동이 스트레스로 인한 폭식으로 뚱뚱해진 홍길뚱으로, 그리고 친근한 도깨비를 약간 비튼 깨비로 변화시켰고, 그들이 탐험하는 이야기도 다른 시각으로 접근함으로써 기존과는 다른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이야기 탐험대가 떠나는 이야기의 영역도 넓어서 유리구두로 유명한 신데렐라의 다른 버전을 찾기 위해 인디언의 이야기 세계를 탐험하다 중국시대로 날아가 증자의 돼지 이야기를 엿보는가 하면, 우리나라 화장실을 지킨다는 변소귀신인 측신에 얽힌 전설 속으로 빠져들었다가 검투사들이 있었던 고대 로마로 날아가기도 한다. 심지어 바그너의 오페라인 '니벨룽겐의 반지 이야기'를 탐험해 불을 뿜는 용을 만나기도 한다. 짧은 분량으로 옴니버스식으로 구성되어 있는 아이들이 지루해하지 않도록 배려하며 다양한 시대와 장소를 소개해 호기심을 자극한다.


앞서 언급한 저자의 말처럼 이책은 자극적이거나 작위적인 내용이나 설정이 별로 등장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선 꽤 신경쓴 면이 보여 나름 만족스럽다. 그러나 이야기 탐험을 떠나는 차의 명칭인 티엔에스큐처럼 충분히 우리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들에 필요 이상으로 영어를 남발한 점이 좀 아쉽다. 세계화를 지향하며 영어조기교육이 시행되고 있는 요즘이지만 책 속에서 우리말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잘 전달하는 것 또한 어린이책이 기억해야 할 점이 아닌가 싶다. 더불어 이야기 탐험대가 떠나는 이야기에 우리의 이야기가 좀 더 많이 실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탐험의 형식과 재미난 이야기의 내용을 적절히 조화한 초등학생들의 눈높이에 잘 맞춘 책, <물구나무 선 신데렐라와 변소귀신>. 곧 이어질 2권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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