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이 깨어나는 마을


리뷰어: 유진(편집자)



《뱀이 깨어나는 마을》은 뱀과 개와 노인의 시체가 참혹한 모습으로 발견되는 충격적인 오프닝을 택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사실이 이 소설을 더 작게 만들지는 않는다. 사람과의 접촉을 피하며 사는 야생동물 전문 수의사 클래라 베닝은 내성적인 성격과 심한 콤플렉스의 소유자로 소개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독자들은 그녀의 경이로운 능력에 놀라게 된다. 자신의 두려움보다 언제나 더 강한 클래라는 박식하고, 목소리가 아름답고, 두뇌 회전이 빠르고, 쉼 없이 기민하게 반응하고 움직이고, 매력적인 두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심지어 육체를 이용한 행동이 필요한 장면(빈번하게 나온다)에서는 웬만한 남자보다 강한 액션을 연출하기도 한다. 


영국 미스터리계의 새로운 총아로 떠오른 샤론 볼턴은 고딕문학의 현대적 후계자를 표방한 이 작품에 자신의 로맨티시즘을 마음껏 녹여 넣었다. 바깥세상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조용한 시골 마을에 불타버린 교회가 있고, 가시덤불로 둘러싸인 음울한 저택이 있고, 비밀을 감춘 묘지가 있다. 수백 마리의 뱀들이 물결을 일으키며 밤의 들판을 질주하고, 사교(邪敎)의 그림자가 세월을 관통하며, 고대 로마의 형벌을 연상시키는 방법으로 사람들이 살해된다. 그리고 죽은 자가 살아 돌아온다. 


존 딕슨 카만이 해낼 수 있을 법한 곡예를, 볼턴은 영리하고 신비로운 주인공의 개성을 통해 그럴싸하게 소화해냈다. 강렬한 프롤로그를 통과하면 독자는 클래라가 살무사에게서 갓난아기를 구하는 장면을 보게 된다. 긴장을 요하기는 하지만 목가풍 에피소드에 가까운 이 장면은 클래라의 과거가 밝혀지는 후반부에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갓난아기 때 참혹한 사고로 얼굴의 반을 잃고 원망과 체념의 연쇄에서 쳇바퀴를 굴려온 클래라는 아기를 구하면서 시작된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자신을 구원할 단초를 잡는다. 클래라의 사고에 개가 얽혀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뱀과 개가 자루에 함께 넣어져 ‘처형’된 프롤로그 또한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사실, 이 작품 전체가 클래라 베닝이라는 주인공의 성장을 위한 상징의 직물로 읽히기도 한다. 모든 장치들이 그녀의 인생 궤적에서 작동하고 있다. 파충류의 껍질처럼 매끄럽고 얇은 실크로 피부를 덮는 것을 좋아하는 클래라는 뱀들이 저지르는 사건을 외면할 수가 없다. 클래라가 사랑과 원망으로 기꺼이 파괴하려 한 어머니의 장미 향기는 죽음에서 귀환한 노인의 정원에서 되살아나 그녀 곁을 맴돈다. 그녀를 키운 종교적 배경은 최후의 대결이 기다리는 사악한 신앙의 중심부로 돌진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그리고 로맨스가 있다. 살인은 클래라를 매력적인 경찰 맷 호어에게 이끌고, 치명적인 독사는 모험을 사랑하는 마초 숀 노스를 그녀 앞에 데려다놓는다. 그들이 얼굴의 반을 잃은 그녀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당신은 아름답다”고 말할 때 클래라가 자신의 감옥에서 한 걸음 나오는 장면은 진부하지만, 딱 필요한 만큼 로맨틱하다. 남성의 시선을 구원의 디딤돌로 삼는 것이 석연치 않을 수도 있지만, 클래라는 맹렬한 단독 액션으로 상대의 생명을 구함으로써 어쨌건 빚을 갚는다.


이처럼 모든 요소가 클래라의 생명력에 종속되어 있는 탓에, 미스터리를 위한 장치들은 다소 작위적으로 보인다. 살인자의 정체는 반전을 거듭하며 윤곽을 드러내는데, 저주받은 가계를 배배 꼬아놓은 매듭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반전이라 뒤로 갈수록 충격이 희박해진다. 과거에서 호출된 팜므 파탈은 짜증과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일 뿐이다. 한때 마을을 지배했던 잘못된 신앙의 그림자는 정신적 영향력을 상실했기 때문에 큰 위협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이는 고딕문학의 도구들을 현대로 끌어올 때 불가피하게 생기는 충돌이기도 하다. (존 딕슨 카도 여기에서 자유롭지는 못했다.)


설사 이 작품의 미스터리가 어느 여성의 통과의례에 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것이 《뱀이 깨어나는 마을》의 매력을 감소시키지는 않는다. 세상이 오직 그를 위해 움직이는 것처럼 만들 수 있는 주인공을 만나는 것은 늘 짜릿한 경험이다. 자신의 구속을 벗어던진 클래라의 미소를 보는 데 불과 600여 페이지밖에 들지 않는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내 말은, 앞으로 소개될 샤론 볼턴의 소설이 무엇이건 즐거운 마음으로 기대하게 되겠지만, 그 안에 클래라 베닝과 그녀의 두 추종자가 등장하는 속편이 포함되어 있었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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