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리즈키 린타로의 모험>


리뷰어: 홍지로 (번역가)




‘고뇌하는 작가’ 노리즈키 린타로는 일본 신본격 미스터리 작가 중에서도 창작과 평론 활동을 꾸준히 병행하면서, 미스터리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고 이를 자기 작품에도 반영하는 유형의 창작자다. 그는 본격 미스터리의 세계를 검토하고 재구축하는 데에 주력하는데, 특히 그 방면의 선배 엘러리 퀸을 어찌나 존경하는지 틈만 나면 작품 속에서 퀸의 작품을 인용하고 분석한다. 노리즈키 린타로라는 이름을 필명인 동시에 작품에 등장하는 탐정의 이름으로 정한 것부터가 엘러리 퀸의 사례를 따른 것. 


존재 자체가 메타적인 이 작가의 작품은 종종 미스터리라기보다는 미스터리에 관한 에세이나 콩트, 독후감을 읽는 듯한 기분마저 선사한다. 나쓰키 시즈코의 『그리고 누군가 없어졌다』(추지나 옮김, 엘릭시르 펴냄)처럼 선배 작가의 설정과 구조, 트릭을 자기 작품에서 차용하는 정도로 만족하지 않고 아예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미스터리에 관한 이론을 설파하는가 하면 ‘엘러리 퀸은 왜 국명 시리즈 중 『샴 쌍둥이 미스터리』(배지은 옮김, 검은숲 펴냄)에서만 독자에의 도전을 넣지 않았지?’ 같은 오타쿠다운 의문을 미스터리의 원천으로 삼아 이야기를 쌓아 올리는 식이다. 한국에 먼저 소개된 린타로의 단편집 『녹스 머신』(박재현 옮김, 반니 펴냄)이 그 가장 과격한 예로, 거기 실린 네 단편 중 세 편은 사실상 고전 미스터리에서 발견되는 규칙과 변화 및 허점의 원인을 규명하는 개그 에세이나 다름없다. 사전 지식이 없는 독자라면 머리만 긁적일 테고, 내용을 이해하며 즐긴 독자라고 해도 내심 ‘이건 미스터리는 아니잖아!’라며 배신감을 느낄 만하다.


제목에서부터 『엘러리 퀸의 모험』(엘러리 퀸 지음, 장백일 옮김, 동서문화사 펴냄)을 염두에 둔 노리자키 린타로의 첫 단편집 『노리즈키 린타로의 모험』 역시 작가의 태도는 뚜렷하지만, 『녹스 머신』 수준으로 연구가의 자세를 견지하며 독자에게 사전 지식을 요구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노리즈키 린타로 입문서로는 좀 더 나은 선택이다. 여전히 본격 미스터리에 관한 지식이 조금이나마 있는 편이 좋을 테지만, 평범한 ‘추리소설’을 기대하고 책장을 펴든 독자라도 망연자실할 염려는 없다. 「사형수 퍼즐」, 「상복의 집」, 「카니발리즘 소론」, 「녹색 문은 위험」처럼 미스터리의 매무새를 갖춘 작품들은 후더닛(누가 범인인가), 하우더닛(어떻게 범행을 저질렀나), 와이더닛(왜 범행을 저질렀나)을 고루 건드리고 있고, 「도서관의 잭 더 리퍼」나 「토요일의 책」처럼 미스터리 향유자로서 떠올림직한 콩트 혹은 메타 구조를 이용해 미스터리를 빙 둘러 피해가는 한가로운 작품들도 사전 지식 없이 무난하게 즐길 만하다. 


작가가 직접 쓴 30쪽에 달하는 후기가 압권인데, 각 작품에 얽힌 뒷이야기를 제공해주는 역할을 넘어서서 노리즈키 린타로의 성격을 말해준다는 점에서 간접적인 작가 소개로 읽힌다. 특히 문헌정보학 전공자인 독자에게서 도서관 묘사에 대한 지적을 받은 뒤, 해당 쟁점을 연구하여 기나긴 인용도 불사하며 도서관의 자유와 윤리에 관한 논의를 펼치는 대목을 읽고 있노라면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으면서도 이렇게까지 하고야 마는 진지함이 이 작가의 원동력임을 실감하게 된다.


한 편 한 편이 짧은 만큼 각 작품의 세부를 소개하는 일은 피하고 싶지만, 수록작 중 유일한 중편인 「사형수 퍼즐」은 가장 정석적이면서도 노리즈키의 관심사를 집약한 수작인 만큼 대표 삼아 강조해둬도 좋겠다. 사형수가 사형 직전에 살해당한다는 설정을 바탕으로 한 이 후더닛 미스터리는 작가 자신도 본문에서 암시하듯 엘러리 퀸의 『Z의 비극』을 다시 쓴 것이지만, 원전에 대한 지식이 없더라도 즐기는 데에는 무리가 없다. 범행의 동기를 비롯한 감정적인 요소를 일단 배제한 가운데 사건의 물리적 조건을 점검하고 소거해 나가는 탐정 노리즈키 린타로의 추론 과정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흥미진진하며, 사형 집행에 관한 사법 절차를 주석까지 곁들여 가며 꼼꼼히 다룸으로써 사형장을 둘러싼 심리적 스트레스를 서서히 부각시키고 범행 동기로까지 연결해 내면서 어느새 와이더닛의 장으로 옮겨가는 대담함 또한 눈여겨볼 만하다. 신본격 미스터리에서는 종종 논리적 추론에만 지나치게 매달리느라 감정과 동기의 문제를 소홀히 하는 현상이 나타나곤 하는데, 그것을 사형장이라는 특수한 공간과 사형제도라는 절차, 다시 말해 추론의 기반이 되는 구체적 조건 속에 귀속시킨 셈이다. 심지어 환경과 심리의 밀도 덕분에 작가의 당부와는 달리 작품 전체를 사법제도의 딜레마에 관한 사회파 미스터리로 읽고 싶은 충동을 느낄지도 모른다. 일단 미스터리의 다양한 맛이 두루 담긴 이 한 편을 믿고 노리즈키 린타로의 과잉 고뇌 속으로 들어가보시는 것은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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