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원을 걸으며


아무도 밟지 않은 설원에 어떻게 길을 밟아 다질까? 한 사람이 앞장서 걸어간다. 땀 흘리고 욕하며, 겨우 발걸음을 옮기며, 부드러운 깊은 눈 속에 계속 푹푹 빠지며 걸어간다. 피곤하면 눈 위에 드러누워 담배를 한 대 피운다. 마호르카 연기가 반짝이는 흰 눈 위로 푸른 구름처럼 퍼져 나간다. 그는 다시 앞으로 나아가지만 담배 연기는 쉬던 곳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 공기가 거의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길 만드는 일은 바람이 인간의 노동을 휩쓸어 가지 못하게 언제나 고요한 날에 한다. 그 사람 자신은 끝없는 설원에 서 있는 암벽이나 키 큰 나무를 지표로 삼는다. 조타수가 곶에서 곶으로 강을 따라 배를 몰고 가듯 자기 몸을 눈 위로 이끈다.


첫 사람이 지나간 좁고 불확실한 발자국을 따라 대여섯이 일렬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간다. 그들은 앞사람의 발자국을 그대로 딸아가지 않고 그 옆으로 걸어간다. 예정된 곳에 도착하면 되돌아와 아직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설원을 짓밟으러 다시 걸어간다. 길은 개통되었다. 그 길로 사람이, 짐 썰매와 트랙터가 다닐 수 있다. 만약 첫 사람의 뒤를 그대로 따라간다면 그 길은 눈에 잘 띄겠지만 통행이 거의 불가능한 좁은 오솔길일 뿐 길이 아니다. 아무도 밟지 않은 설원보다 지나가기 어려운 구덩이다. 선두는 어느 누구보다 힘들고, 힘이 다 빠지면 그 5인조 중 다른 이가 선두에 선다. 발자국을 따라가는 사람은 누구나 제일 작고 제일 약한 사람이라도 남의 발자국이 아니라 아무도 밟지 않은 설원의 일부를 밟아야 한다. 그러나 트랙터와 말을 타고 이 길을 지나다니는 건 작가가 아니라 독자이다.







네.. 그렇습니다. 이 소설이 소위 '수용소 문학'에 속한다는 사실은 중요하면서도 거의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이유는 수용소의 참혹한 삶이 간결하고 조용한 서술과 대비되면서 자연스럽게 부각되기 때문이며, 거의 중요하지 않은 이유는 이러한 대비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홀로 충분히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바를람 샬라모프의 작품집 출간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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