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이벤트가 있습니다. -> 바로가기


작년에 유빅 소환 용기를 보유하신 분들로부터 많은 질문을 받았습니다. 전자레인지에 돌려도 안 터지냐는 등의 실용적인 질문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종종 저희 회사의 영업 비밀에 대해서, 즉 유빅의 작동 원리에 대해서 묻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어떻게 엔트로피 역행이 가능한가? 열역학 제2법칙은 광속불변의 법칙만큼이나 명확하지 않은가?


물론 다 알려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유빅이 열역학 제2법칙에 위배되지 않음은 알려 드리고 싶습니다. 유빅이 흡수한 혼돈 에너지는 질서를 향해 '되돌려지는' 것이 아닙니다. 유빅은 '교환'합니다. 유빅은 자신이 흡수한 혼돈 에너지를 중화할 만큼의 질서 에너지를 '기증 우주'로부터 가져옵니다. 그리고 자신이 흡수한 혼돈 에너지를 기증 우주의 질서 에너지와 맞바꿉니다. 말하자면 다른 우주의 생명력을 가져다가 여러분이 사용하는 셈입니다.


이런 시스템이 착취가 아니냐고 의심할 수도 있겠습니다. 원론적으로는 그렇습니다. 그러나 본사는 '기증 우주'를 조심스럽게 선별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평행우주 중에 생명체가 하나도 발생하지 않은 우주는 거의 없습니다만, 본사는 가능한 단순한 생물들만이 존재하는 우주를 세심하게 고릅니다. 평행우주의 갯수는 셀 수 없이 많습니다. 하나의 우주가 가진 질서 에너지 역시 무궁무진합니다. 유빅은 여러분이 지구의 지하수를 쓰는 것보다 환경에 덜 영향을 끼치며, 여러분이 다른 종의 생물들을 여러 목적으로 사육 도축 실험하는 것보다 고등 동물에 끼치는 폐해가 적습니다.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생물이 살지 않는 우주라도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극우 우주보호론자들의 주장은 여기서는 논의하지 않겠습니다. 또한 기증 우주를 선정하는 자세한 기준을 완전히 알려드릴 수 없는 점 역시 양해를 부탁 드리는 바입니다.


그렇습니다. 평행우주입니다. 그래서 본사는 이번 선물로 평행우주에서 가져 온 기념품을 드리기로 했습니다.


기념품을 가져 온 우주는 여러분의 우주와 많이 닮아 있습니다. 20세기로 들어설 무렵까지는 거의 같은 우주였기 때문입니다. 분기점은 20세기 들어 발생했습니다. 그 또다른 지구에서는 유럽의 한 국가가 '빅 브라더'로 상징되는 완전한 관료주의 감시체제를 실현해 내면서 성공적인 국가사회주의 체제를 확립했습니다. 그들은 지금까지도 번영하면서 통제 시스템을 수출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일본과 그 식민지들의 운명입니다. 이토 히로부미 암살 실패를 기점으로 조선 독립 운동은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으며, 조선은 일본에 흡수된 뒤 역사 자체를 수정당했습니다. 현재 조선은 그저 본토와 다른 '반도'로, 마치 처음부터 일본의 일부였던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1988년에 올림픽이 개최된 곳은 서울이 아니라 경성이었습니다.


어딘가 익숙한 설정이 아닌가? 맞습니다. 조지 오웰의 <1984>와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지요. 소설적 상상력이 영향력을 발휘하는 우주가 존재 가능한가? '실재'하는 존재들의 선택 분기로만 우주가 분열하는 게 아닌가? 그러나 거꾸로 생각하시면 간단합니다. 위대한 작품은 일종의 보다 날카로운 예감이라고 말입니다. 단지 이 우주에서 실현되지 않았을 뿐이지요. 위대한 작가들은 보이지 않는 '가능성의 광경'을 발견하고 목격합니다. 신비로운 능력이죠. 비단 SF작가들에게만 국한된 능력은 아닙니다만.




          




해서, 이번 선물은 이렇습니다. 한글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라서 일본어로 쓰여져 있습니다.

전면 문구: 헤이세이 26년, 세계사상경찰 경성지부 창설30주년 (1984-2014)

우측면 문구: 전쟁은 평화다 / 자유는 굴종이다 / 무지는 힘이다


아시다시피 우측면 문구는 <1984>에서 확인하실 수 있는 슬로건입니다. 1984년에 일본이 빅 브라더 시스템에 참여하면서 일본 내 주요 도시에 세계사상경찰 지부가 생겼습니다. 2014년은 그 30주년으로, 저희가 이번에 드리는 선물이 바로 세계사상경찰 경성 지부가 직원 배포용으로 제작한 자축 기념품입니다.


<비명을 찾아서>를 읽어보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식민지였다는 기억조차 제거당한 조선 반도에서도 사람들은 나름대로 적응하고 살아갑니다. 그곳에는 한반도도 없고 한글도 없으며 반도인들은 2등 국민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만 삶은 어지간해서는 좀처럼 꺼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동정하실 필요도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컵이 온 세계를 해방시키기 위해 떠날 수도 없고 어떤 지원도 할 수 없지만, 다른 우주 어딘가에 우리와 닮은 이들이 나름의 의지에 따라(그것이 때로 삐뚤어진 탐욕에 기인했다 하더라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좀더 어둡고 치열한 세계에서 온 이 컵이 종종 여러분에게 다른 세계의 수없이 많은 의지들을 되새겨주신다면 본사에게는 더없는 영광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민주 국가의 인민 여러분들께 행운만큼의 영광이 있기를.




p.s: 아래 링크는 여러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평행우주 및 각종 기초적인 우주론 학습용으로 선정한 도서들입니다. 이 도서들은 이벤트 대상에 포함되며, 당연히 컵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PKD Corporation 추천도서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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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10 20: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7-11 11: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7-12 1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유호정 2014-08-21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최근에 바빠서 알라딘에 자주 못왔는데, 알라딘의 이벤트는 항상 놀랍네요~ 재미있어요^^ 책을 스스로 집어내는 것을 즐겁게 만드시다니...ㅎ

외국소설/예술MD 2014-09-22 14:06   좋아요 0 | URL
이걸 한 달이 지나서야 확인하다니 저도 참.. -_-;;;
재밌으셨다니 다행입니다. 담에는 좀더 유쾌한 걸로 해 볼까 합니다. 많이들 좋아해주셔야 할 텐데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