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남 작가기 때문에 사진은 따로 싣지 않겠습니다. 마침 책 이미지 하단에 조그맣게 보이는군요.


조엘 디케르는 1985년에 태어난 젊은 작가입니다. 국내에는 올해 <HQ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로 처음 소개됐죠. <HQ>는 영리한 전개를 보여주는 소설이었습니다. 범죄 미스터리 소설이면서 소설에 대한 소설이었죠. 아직 젊은 작가가 열성적으로 배치한 장치들이 기특하게(?)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독자들을 소설 속으로 더 끌고 들어올 것인가를 고심한 흔적이 역력한 작품이었죠. 물론 꽤 성공적이었습니다. 아직 대가들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그는 확실히 가능성을 보여 줬습니다. 재미있는 작품으로요.


통속소설이냐 순문학(?)이냐를 쉽게 구분지을 수 없는 이 '재미난' 소설을 쓴 젊은 작가는 어떤 사람일까. 제가 직접 만나서, 는 아니고 서면으로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고작 열 개의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입니다만, 이 작가가 얼마나 젊고 패기 넘치는지, 그리고 그만큼 얼마나 더 많은 것들을 자기 안에 채워 넣을지를 기대하게 만드는 인터뷰였던 것 같습니다. 보기 드물게 순진합니다. 이건 사람에 따라서는 단점일 수도 있겠지만, 조엘 디케르는 확실히 이런 쪽이 어울립니다. <HQ>의 작가다워요(웃음).


아래는 인터뷰 전문입니다. 번역 및 편집은 문학동네에서 맡아 주셨습니다.



1. 『HQ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이하 『HQ』)은 ‘위대한 업적을 남긴 스승과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제자’라는 미국식 드라마의 한 타입을 잘 표현했습니다. 작가의 국적을 모른 채 본다면 프랑스 소설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미국에서 공부한 경험이 여기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요? 타국을 배경으로 외국인들만이 등장하는 작품을 쓰는 데 곤란함이나 어려움은 없었는지?


-저는 북미 지역이 낯설지 않습니다. 어렸을 적 부모님과 함께 토론토에 거주한 적이 있고, 메인 주에 친척이 살고 있어서 20년 넘게 매년 갔었습니다. 이 책을 쓰기 시작했을 무렵 저는 미국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곳을 배경으로 소설을 쓰기로 했습니다. ‘영어로 쓰이지 않은 미국의 분위기’를 표현해내고 싶었는데, 영어로 펼쳐졌을 이야기를 프랑스어로 표현하는 것은 스타일 면에서 흥미로운 작업이었습니다. 



2. 『HQ』는 거듭되는 반전을 보여줍니다. 여기에 쓰인 장치들은 대부분 범죄소설에서 주로 쓰이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그 주제나 전개 방식을 볼 때, 범죄 스릴러로 분류하기는 어렵습니다. 범죄소설의 요소는 이 작품에서만 특별히 소설 기법적인 장치로 사용된 것인가요, 아니면 이 분야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도전해볼 예정인가요?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있다면, 그 계기는 무엇입니까?


-사실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스릴러 요소가 가미된 소설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처음 썼던 버전에는 살인사건이 등장하지 않지요. 소설을 써나가는 동안 작품 속에 살인사건을 배치하면 긴장감이 더해져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소설을 계속 수정하면서 제가 잘 알지 못하는 세계, 제가 읽지 않았던 추리, 범죄소설의 세계와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을 쓰는 건 저에겐 매우 흥미로운 도전이었습니다. 



3. 『HQ』의 남녀 주인공 이름이 각각 롤리타, 험버트를 떠올립니다. 주인공들의 이름이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악의 기원』의 서간체 또는 독백형 문장들이 『롤리타』를 환기시키기도 하는데, 『롤리타』가 이 작품에 특별히 끼친 영향이 있나요?


-이 소설은 『롤리타』와 상관 관계가 높은 작품은 아닙니다. 그저 하나의 암시일 뿐입니다. 처음에 저는 놀라가 마커스를 사랑하게 되는 설정을 해봤습니다. 이야기 구성이 지금과 전혀 달랐죠. 그러다 놀라가 해리와 사랑에 빠지는 편이 훨씬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연히 『롤리타』가 떠올랐고요. 독자들도 이런 연상이 가능하게 놀라의 이름을  L-O-L-I-T-A처럼 N-O-L-A라고 적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HQ』를 쓴 건 『롤리타』를 읽은 지 15년이 지나서였습니다. 그후로는 다시 읽지 않았던 터라 그 책의 스타일이나 구성이 큰 영향을 끼쳤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4. 작품 안에 등장하는 세기의 걸작 『악의 기원』의 발췌 부분은 어떤 작품을 상상하면서 썼나요? 희대의 걸작이라고 설정된 글을 작품 속에 직접 등장시킬 때 압박을 느끼지는 않았는지? 일반적으로 이런 경우 ‘세기의 걸작’은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습니다. 수록된 본문이 정말로 위대해 보이지 않으면 몰입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기 때문인데요. 이러한 고민을 넘어서 직접 『악의 기원』의 일부를 본문에 수록한 의도 또는 결심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악의 기원』의 발췌 부분을 쓰는 것은 딜레마였습니다. 저 역시 위험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으니까요. 단지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 아니라, 낭패가 될 수도 있는 일이라고까지 생각했었습니다. 소설 속에 또다른 소설 내용을 그대로 삽입한다는 것은 미리 실패를 예상할 만큼 어려운 일이지요. 하지만 이 발췌 부분은 마커스 골드먼의 수사 내용을 비롯해 사건이 해결되는 구성 전반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부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독자들이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필요하다면 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악의 기원』의 발췌 부분을 없애고 모호하게 넘어가는 것보다 독자들이 내용을 잘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했습니다. 



5. 해리 쿼버트는 글이란 인생에서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마커스 골드먼 역시 은사를 돕고 싶다는 강렬한 내적 에너지로 인해 글쓰기의 슬럼프를 극복해나갑니다. 『HQ』에서 글쓰기란 인생과 계속 부딪혀가면서 그 고통과 극복의 과정을 각자의 방식으로 기록하는 작업입니다. 당신도 그렇게 생각합니까? 삶이 글쓰기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칩니까? 그렇다면 당신에게도 『HQ』를 구상하고 집필하는 데 영향을 끼친 사건 또는 기억이 있나요?


-책 속에 자신의 고통과 극복 과정을 꼭 기록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 저로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책에 그런 내용을 담다보면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그것이 과연 좋은 결과만을 낳게 될까요? 이야기를 만들어내려면 자신의 경험들을 통해 특별한 소재, 무언가 새롭게 창조하는 데 쓰일 수 있는 어떤 것이 필요합니다. 책의 소재로 삼기 위해 자신의 경험만을 직접적으로 끌어들여서는 안 되고, 글을 쓰기 위해서는 자신의 경험과 영감이 한데 어우러진 별개의 소재를 만들어야 합니다. 



6. 앞선 질문의 순서를 바꾸어서, 글쓰기는 당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까? 당신이 창조한 당신의 또래 캐릭터인 마커스 골드먼은 당신에게 무엇을 보여주었습니까?


-글쓰기는 제 인생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글쓰기와 인생은 서로 아주 강한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제가 인간적으로 성숙할수록 글쓰기도 한층 성숙해지고, 글쓰기가 원숙해질수록 인생에 있어서도 더욱 원숙한 인간이 됩니다. 작품 속에서 마커스는 저와 같은 세대에 있는 사람들이 흔히 경험할 수 있는 혼란을 맛보게 됩니다. 우리는 때때로 자신이 누구인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왜 하고 있는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지표를 잃어버린 세대인 것이죠. 우리 부모 세대의 지표는 더이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합니다. 전쟁 이후 무엇이든 새로 만들어야 했고 무엇이든 가능했던 그 세상은, 가능성이 사라져버린, 과소비의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분명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더이상 지표가 없으니 우리만의 삶의 방향과 목표를 찾아야 합니다. 



7. 앞선 질문에 이어서, 당신은 해리 쿼버트가 깨달은 삶과 글쓰기 간의 상호관계를 마커스 골드먼의 나이에 어떻게 찾아냈습니까? 그 깨달음은 당신 안에 있습니까, 아니면 일종의 목표로써 다다르고자 하는 곳입니까? 만약 앞으로 다다르고자 하는 곳이라면, 그 목표는 어디서 발견했습니까? 또는 누구로부터 당신에게 주어졌습니까?


-작품 속에서 해리가 하는 조언들은 모두 제가 만들어낸 것입니다. 제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된 생각들이 그 조언들을 통해서 드러납니다. 책과 인생에서 중요한 것들을 해리의 관점에서 표현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 모든 것은 해리의 입을 통해서 나오고, 인생에 대한 이런 철학들은 모두 해리의 것입니다. 완전히 저의 생각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글쓰기에 대한 조언들이 글을 쓰는 데 도움을 준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조금 도움이 될 수도 있고, 방향을 잡아줄 수 있을지 모릅니다. 글을 쓰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좋은 일이고요. 하지만 글쓰기에는 단순한 조언들 그 이상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저는 글쓰기가 정신의 반영이라고 생각합니다. 



8. 당신은 어떤 작가가 되고 싶습니까?


-‘좋은’ 작가가 되고 싶지요. 독자들에게 에너지와 꿈을 주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독자들이 제 작품을 통해 에너지를 전달받고, 꿈을 꿀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독자들도 그것을 느낄 수 있었으면 합니다. 



9. 당신이 현재 삶 속에서 가장 아끼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당신의 글에는 어떤 식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나요?


-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우리 생의 마지막까지 남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고, 사랑받기. 이것이 바로 제 인생에서 없어서는 안 될 두 가지입니다. 나머지 모든 것은 부차적인 것입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내가 누구였는지 생각해볼 기회가 있다면, 저는 단지 제가 사랑했고, 저를 사랑해준 사람들에 대해 생각할 것 같습니다. 



10. 한국에 처음으로 소개된 『HQ』를 좋아하는 국내 독자들에게, 그리고 글쓰기를 열망하는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신지요. 


-열심히 글을 쓰시고, 특히 포기하지 마세요. 원하는 걸 얻을 때까지 매달리세요. 꿈을 버려선 안 됩니다. 오스카 와일드는 말했습니다. “꿈을 좇으려거든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을 만큼 충분히 큰 꿈을 가져야 한다”고. 용기를 내고, 꿈을 꾸세요. 





여러분의 좋은 꿈들도 오래도록 깃들어 머물기를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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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SEWOOD 2013-11-13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이제 젊은이라고 하기엔 좀 애매하지만.. (슬프네요..ㅜㅜ) 용기를 내고.. 꿈을 꿔봐야 할 때가 다시 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