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평 _ 이기웅
<사우스포 킬러>를 처음 발견했을 때 사실 그리 큰 기대는 없었더랬습니다. 평범한 야구팬으로(그렇습니다, 전 일 년 중 가장 슬픈 날이 야구가 끝나는 날인 흔하디흔한 야구, 아니 두산 베어스 팬입니다!), 그리고 일본 소설을 번역하며 생활을 건사하는 몸으로, 언젠가는 근사한 야구소설을 번역해보겠노라는 소소한 바람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여 야구를 소재로 한 작품이라면 제법 구해 봤습니다만, 아, 이거다 싶은 작품과 만나는 행운은 그리 쉽게 오지 않더군요. 그렇다면 <사우스포 킬러>가 제가 그리 바라 마지않던 작품이었을까요? 꼭 그렇다고 고개를 주억거리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또 아니라고는 고개를 젓기도 힘듭니다. 어찌 됐건 <사우스포 킬러>의 몇 대목, 특히나 마지막 승부 장면은 꽤나 근사하니까요. 이만한 야구 소설과 만나기가 그리 쉽지 않다는 건 확실한 것 같습니다. 그만큼 야구란 소재를 가지고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이 만만찮은 노릇이라는 이야기겠지요.
그러니 4페이지짜리 미스터리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이 보통 어려운 노릇이 아닐 터인데, 소재를 야구로 했으니 또 얼마나 지난했을까요. 그렇기에 이번 공모전에 응모한 편수가 지난 회에 비해 현격히 줄어들었다는 점, 그리고 전반적인 수준 또한 지난번에 미치지 못했다는 점은 어느 정도 예상 가능했습니다. 야구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깊이 있는 내공을 짧은 분량 속에서도 번득번득 내비치는 야구팬은 분명 계셨습니다. 포수 사인, 투구 폼, 그리고 누의 공과 같은 야구 규칙, 거기에 한국과 미국 프로야구 역사까지 다루는 소재는 참으로 다양했습니다. 허나 그 소재를 한 편의 근사한 미스터리로까지 매끈하게 잇는 이야기의 ‘프로’는, 안타깝게도 그리 많지 않았다고밖에 말씀드릴 수 없겠습니다.
그런 관계로 아쉽게 이번 공모전에 대상 해당작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야구가 하나의 쇼임을 서술트릭을 통해 멋들어지게 보여주신 「어떤 투수와 타자」에게 우수상을, 그리고 야구의 묘미는 스릴에 있음을 긴박감 넘치게 그려주신 「Happening in the Elevator」와 복수극을 그라운드 안으로 끌어들여서 재치 있게 표현하신 「마지막 승부」에 가작을 드립니다.
메이저리그 시카고 컵스의 전설적인 유격수 어니 뱅크스는 그랬다지요.
“야구하기 정말 끝내주는 날이군. 한 게임 더 하자고!(It's a beautiful day for a ballgame. Let's play two!)”
자, 어쭙잖은 심사평 따위는 잊고 야구를 즐기시죠. 최근 개봉했던 야구 영화 〈머니볼〉에도 이런 근사한 말이 나오잖습니까.
“어떻게 야구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How can you not get romantic about baseball?)”
* 이기웅
출판 편집자 출신의 번역가. 『사우스포 킬러』, 『가모우 저택 사건』, 『통곡』, 『유코의 지름길』, 『은폐수사』,『제복수사』,『불야성』, 『체인 포이즌』, 『우행록』 『신들의 봉우리』 등 다수의 일본 작품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