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페이지 미스터리 연재 4화 

능숙한 거짓말


  
경찰서에서 나온 사람입니다. 십 분 정도만, 이라는 말을 듣고 어쩔 수 없이 문을 열었다. 들어온 사복형사는 멋대로 베란다로 통하는 창문을 활짝 열고는 길 맞은편에 있는 아파트를 가리켰다.  


“피해자인 오무라 키리 씨는, 이 맞은편 집에 살고 있었습니다. 지금 6층에서 유일하게 불이 들어와 있는 방입니다.” 형사는 일단 입을 다물고 내가 이해했는지 확인하듯이 얼굴을 들여다보더니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베란다 보이시죠? 그저께인 8월 3일에 피해자는 저곳에서 밀려 떨어졌습니다. 거의 즉사였다고 합니다. 검시 결과 사망 추정시각은 오후 아홉시 전후. 딱 이맘쯤입니다.”  


“거기에 뭔가 문제가 있습니까? 맞은편 아파트 주민은 한 사람도 모르는데요.”
 

“그렇게 짜증내지 말고 들어주십시오.”
 

“너무 더워서 거의 잠을 못 잤습니다. 에어컨을 틀면 바로 감기가 들어서 틀 수도 없고.”
 

몸을 비틀자 허리 부근에서 묵직한 통증이 느껴졌다. 형사가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주의해야 한다.
 

“수면부족입니까? 피곤하신데 죄송합니다만, 사건 해결을 위해 부디 협력해주시길 바랍니다.” 뭐, 금방 끝날 겁니다, 라고 형사는 달래듯이 내 어깨를 두드렸다.
 

“뭘 알고 싶으시죠?”
 

“이 집에서는 피해자의 집 베란다가 훤히 보입니다. 혹시 당신이 사흘 전 아홉시 무렵 이곳에 있었다면 사건에 관련된 뭔가를 보지 않았을까 해서요.”
 

“그 시간이라면 집에 돌아왔을 무렵일 겁니다. 여덟시 사십분 경일까요. 요즘은 일이 줄어 거의 잔업이 없으니까요.” 솔직하게 대답했다. 거짓말한들 보강수사에서 밝혀질 것이다. “돌아오자마자 창문도 커튼도 열었지만, 아무것도 못 봤습니다. 샤워를 했는지도 모르겠군요.”
 

“샤워할 동안에도 창문은 열어두셨겠죠?”
 

“열대야였으니…… 아, 비명 같은 걸 듣지 못했느냐는 질문인가요?” 기억을 더듬는다. “아무것도 못 들었습니다. 들리지 않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제 기억엔 아무도 비명 같은 건 지르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비명을 들은 사람이라도 있습니까?”
 

“아뇨, 없습니다. 빈틈을 찔렸다든가 공포에 질려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던 거겠죠.”
 

“밀어 떨어뜨리기 전에 범인이 기절시켰을지도 모르잖아요.”
 

“그럴 수도 있죠.” 형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수첩에 메모했다. “그 밖에는?”
 

“그렇게 물어보셔도, 지금 제 말은 그냥 상상일 뿐입니다. 그런 광경을 본 것이 아닙니다.” 그 점은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었다. 만약 범인이 붙잡혀서 내가 목격자였다는 게 알려지면 큰일이다. “정말로 아무것도 못 보고 듣지도 못했습니다.”
 

형사는 난처한 얼굴로 한동안 수첩을 뒤적이다가 이윽고 고개를 들었다.
 

“혹시 범인 쪽에서 당신을 보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불을 켜셨습니까? 당신이 이 방에 있는 동안에는 범인도 범행을 시작할 수 없었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왜냐하면…… 보세요, 훤히 보이니까요.”
 

“훤히 보이나요?” 몰래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기둥에 난 구멍은 그날 저녁 내가 갈고리를 걸었던 흔적이지만, 눈에 띄지 않아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번에는 안쪽의 부엌을 쓱 바라보며, “하지만 샤워한 뒤에 설거지를 했으니까, 밖에서 부엌은 보이지 않을 텐데요”라고 말했다.
 

“시간이 얼마나 걸렸습니까?”
 

“샤워에 십 분, 설거지에 십오 분일까요.”
 

“이십오 분입니까. 시간을 봐서는 충분하군요.”
 

이십오 분? 일 분만 있으면 충분하다.
 

그날 밤, 정결하게 몸을 씻고 난 뒤 여기서 목을 맬 때까지 몇 분이 걸렸을까. 몇 번이나 망설인 것 같기도 하고, 담담히 준비를 진행했던 것 같기도 하다.
 

확실히 기억하는 것은, 내가 디딤대를 찬 순간에 로프를 걸었던 갈고리가 빠져서 바닥에 꼬리뼈를 정통으로 내리찧으며 떨어졌다는 것이다. 목에 로프를 감은 채 괴로워하며 바닥을 굴러다니다가, 문득 바깥에서 시선이 느껴져서 고개를 들었다.
 

맞은편 베란다에 그 여자가 서 있었다. 우리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친 다음 순간, 그녀는 두 손으로 입을 막으면서 내게서 등을 돌렸다. 어깨가 들썩였다. 웃고 있는 것이다. 나를 비웃고 있는 것이다.
 

저 여자는 지금 본 것을 모두에게 퍼뜨리겠지. 그렇게 되면 나는 끝장이다. 이제 와서 자살해도, 꼴사나운 소문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불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되겠지.
 

저 여자를 죽여서 입을 봉할 수밖에 없다. 정말로 그렇게 결심하려던 그때, 구원의 신이 나타났다.
 

여자의 집 안에서 건장한 남자가 베란다로 나와서 웃고 있는 여자의 급소에 주먹을 날려 기절시키나 했는데, 그대로 안아 올려서 난간 밖으로 떨어뜨렸던 것이다.
 

단 일 분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유일한 목격자가 죽은 것을 깨달을 때까지, 일 분보다 조금 더 걸렸다.
 

자신이 치욕에서 구원받았다고 깨달았을 때의 강렬한 해방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몇 년이나 괴로워해왔던, 죽음을 바라던 우울한 기분조차 날아 가버렸을 정도였다.
 

살인자는 문자 그대로 나의 은인이었다.
 

그래서 형사에게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쨌든 건장한 남자라는 것밖에 몰랐지만.
 

“거짓말이 서툴군.” 형사가 고개를 저었다. “얼굴에 다 드러나잖아.”
 

낯익은 주먹이 내 배에 작렬했을 때, 나는 능숙한 거짓말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 깨달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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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yue12 2011-10-04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일간 다섯편의 단편 공개라고 하셨는데 아직 4개밖에 올라오지 않았네요ㅠㅠ 마지막 한 편은 언제 올라오나요?

외국소설/예술MD 2011-10-05 15:30   좋아요 0 | URL
아 네 요게 연재가 좀 늦어져서, 다음주에 공모전 1차 심사평과 함께 올릴 예정입니다. ^^

달사르 2011-10-13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처음 등장인물을 유심히 봐야겠군요. 4페이지 미스테리여서 흘낏 봐서는 끝에 가서야 정황이 이해되니까요. 처음부터 조목조목, 찬찬히 읽어야 후반부에 겨우! 범인을 알겠네요.

아..이번에도 역시나 다 읽고나서야 범인을 알았네요. 하하. 재미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