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페이지 미스터리 연재 3화- 

복면의 의뢰인 

 

  설마 무죄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그녀에게 손을 댄 것은 사실이다. 물론 죽일 생각은 없었지만, 흥분하는 그녀를 달랠 생각이었는데도 결과적으로는 그 행동으로 그녀는 목숨을 잃었다. 벌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 

  사건에 대해서 나름대로 변명할 말은 있었지만, 결국 "제가 했습니다"라고 인정하는 말만 하고 이후로는 입을 다물었다. 이제 와서 무슨 말을 해도 그녀는 돌아오지 않는다. 

  국선변호인은 나보다 나이가 어려서 여러 모로 못미더웠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이제는 사형 판결이 내려져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 뒤로 의외의 국면이 전개되었다. 사정상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그녀에 관한 '비밀'이나 '증거'가 차차 발견되었고, 그것을 근거로 내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진상'이 만들어지기에 이르렀다. 

  그러더니 "먼저 손을 댄 것은 그녀이고 나는 자기 몸을 지킨 것뿐이다"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아닌가. 

  내가 일절 변호하지 않았던 것도 그녀를 감싸는 것으로 해석되어 나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그건 사실이 아니라고 유죄를 주장하려던 내게 변호사가 말했다. 

  "당신을 무죄로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보수 없이 협력해 준 줄 아십니까? 그 사람들의 노력을 헛수고로 돌릴 셈입니까?" 

  어째서인지 나보다 더 내 목숨을 걱정해주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게까지 생각해준다면, 하고 생각하니 조금 더 살아보자는 의욕이 솟아났다. 

  하지만 누가? 변호사에게 물어봐도 알려주지 않았다. 유일한 혈육인 형도 몇 안되는 친구들도 모른다고 했다. 

  "'그 사람들'에게 절대로 이름을 밝히지 말아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변호사는 말했다. "무죄 판결을 받은 뒤에 직접 당신에게 인사하러 갈 거라고 합니다." 

  그리고 정말로 나는 자유의 몸이 되었다. 판결 후 한동안은 매스컴의 취재가 이어져서 눈에 띄는 것을 싫어하는 듯한 '그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얼마 후 일단락되었다. 슬슬 뭔가 연락이 와도 괜찮을 시기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사건과 판결을 연극으로 상연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다. 

  "계속 구치소에 있다 보니 바깥세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전혀 모릅니다." 

  나야말로 '그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어떤 방법으로 그런 '진상'을 날조하고, 그 '증거'를 모았는가. 그리고 그런 일을 한 동기는 무엇이었나. 

  "당신에게만 협력을 의뢰한 것은 아닙니다. 다방면으로 취재하고 있습니다." 극단의 대표라고 말한 남자는 듣는 사람을 안심하게 하는 깊이있는 목소리로 설명했다. "다만 작품에 리얼리티와 긴박감을 주기 위해서는 사건의 당사자인 당신이 피부로 느낀 인상이 꼭 필요합니다." 

  가능하면 각본 단계부터 협력해주기를 바란다. 의논차 한 번 만남의 자리를...... 그런 말에 흥미를 느낀 나는 극단 사무소를 방문했다. 번화가의 구석에 있는 상가 빌딩의 3층이었다. 

  나를 맞이한 사람은 전화를 받은 대표까지 포함해 일곱 명이었다. 성별도 옷차림도 제각각이지만 어째서인지 전부 레슬러처럼 복면하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연습을 하고 있어서요." 법정 장면은 너무 단조로워질 수 있으므로 검찰 측과 변호 측의 공방을 프로레슬링에 빗대어 표현할 생각이라고 대표는 설명했다. 

  "재미있어 보이는군요." 

  복면으로 '정체를 가린다'는 것에 연상되어서 나는 문득 이렇게 말했다.

  "아십니까? 실은 이 사건의 숨겨진 주역도 어떤 의미에서는 복면을 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그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더라도 누구 한 사람도 놀라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미 변호사와 취재를 끝낸 것일까? 아니, 그게 아니면. 

  "...혹시 당신들이 그 봉사자들, '그 사람들'입니까?" 

  "그렇습니다." 대표는 간단히 인정했다. 

  나는 눈앞의 일곱 명을 바라보았다. 

  이 사람들이 내 생명의 은인인가. 

  "감사합니다." 나는 말했다. "저 같은 사람을 위해서 그렇게까지 해주시다니." 

  "감사는 필요 없습니다." 대표가 입을 열었다. "우리는 우리 자신들을 위해서 했을 뿐입니다." 

  자신들을 위해? 무슨 소리일까. 

  문득 엉뚱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혹시 '그 사람들'은 극단이 아니라 수상한 종교집단이 아닐까? 내 몸을 산 제물로 바치라고 '신탁' 같은 것을 받았다든가... 

  지나친 생각이다. 나는 그런 생각을 머리에서 떨쳐냈다. 

  "한순간이지만 무서운 생각을 했습니다." 나는 농담처럼 말했다. "석방시킨 뒤에 장기라도 빼내려던 게 아닐까 하고요." 

  "설마요. 그런 것은 전혀..." 

  "네 장기 따윈 줘도 안 받아." 대표의 말을 이제까지 침묵을 유지하고 있던 한 남자가 가로막았다. 어딘가에서 들어본 적 있는 목소리였다. "무죄가 되도록 공작한 건 검찰이 사형을 구형하지 않을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남자는 복면을 벗었다. 죽은 그녀의 아버지였다. 

  "어중간한 징역형 따윈 시간 낭비야. 나올 때까지 우리가 못 기다려." 

  나머지 여섯 명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위험을 느낀 나는 의자에서 일어서려고 했지만, 그들 쪽이 빨랐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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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사르 2011-10-13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역시나 이번에도 전편과 연결이..

이번 화는 끝까지 읽고서야 겨우 이해했네요. 볼드체를 보면서도 이해를 못하고, 그저 딸을 죽인 사람까지 구제해주는 마음이 넓디 넓은 아버지구나..했더니..하하..아니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