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페이지 미스터리 연재 2화

냄새 나나요?

 

출장에서 돌아와 아파트의 홀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비상계단에서 몸집이 작은 남자가 나왔다. 관리인인 소 씨다. 더러운 형광등을 들고 있었다.

“이가미 씨, 지금 오십니까?” 소 씨는 붙임성 있는 미소를 보이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나는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형광등을 교체하셨나 봐요? 고생 많으십니다.”

“마침 예비 형광등이 다 떨어져서 골목의 편의점까지 갔다 왔지 뭡니까.” 소 씨는 땀을 닦았다. “오늘은 아직 여덟시니까 그나마 나은 편이죠. 요전에는 새벽 두시에 전화가 걸려왔으니까요. 복도가 어두워서 위험하니까 당장 새것으로 바꿔달라더군요.”

그렇게 말하면서 지나가려던 소 씨가 문득 내 옆에 멈춰 서서 코를 벌름거렸다.

“어라, 좋은 냄새가 나는데요. 기분 좋은 일이 있었나 봅니다.”

가슴이 덜컹했다. 실은 스케줄을 잘 맞춰서 여자를 만나고 온 참이었다. 게다가 상대인 타카코는 이 관리인의 부인이다. 일단 손은 써두었지만…….

“역시 냄새가 나나요?”

“걱정 마세요. 정말로 ‘좋은 냄새’니까요. 전혀 퀴퀴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향기롭죠. 불고기 소스와 기름과 연기 냄새…… 이 소스라면 가게는 ‘노스리’겠군요.”

소 씨는 근처의 불고깃집 이름을 댔다.

그렇다면 작전대로이군, 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바로 맞히셨군요. 돌아오던 길에 잠깐 들렀습니다.” 나는 입고 있던 양복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았다.

“그건 그렇고, 정말 대단한 후각을 지니셨군요. 어떻게 냄새로 가게 이름까지 알 수 있죠?”

“좋아하거든요, 한국요리를……. 하지만 제 집사람이 고기를 싫어해서 요즘엔 거의 들르지 못했어요.”

“제 집사람도 김치 같은 음식을 전혀 입에 못 댑니다. 그래서 결국 혼자서…….”

소 씨의 부인인 타카코와 만난 뒤, 혼자서 불고깃집에 간 것은 향수나 체취 같은 흔적을 없애기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 내가 만난 상대가 고기를 싫어하는 타카코는 아닐 거라고 생각하게 만들기 위한 심리적인 위장을 하는 의미도 있었다.

게다가 아내가 김치에 거부반응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원래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고, 현재 임신 4개월째라서 입맛이 평소와 달라져 있는 탓이다.

그래서 오늘의 나는 출장을 빌미로 평소에 집에서 먹을 수 없는 한국요리를 맛보았다……라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소 씨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들었을 때는 역시나 당황했지만, 아무래도 이 남자는 후각만 예리할 뿐 다른 감각은 완전히 먹통 같아 보인다.

마음의 여유가 생긴 나는 그제야 소 씨의 오른쪽 팔꿈치에 갓 생긴 듯한 지렁이 같은 흉터 몇 줄을 보았다. 자기도 신경이 쓰였는지 소 씨는 손끝으로 상처를 쓰다듬었다.

“긁힌 건가요, 그 상처?”

그렇게 물어보자, 소 씨가 한순간 날카롭게 나를 쏘아보았지만, 곧바로 너털웃음을 지었다.

“네, 그 고양이가 좀…….” 소 씨가 말한 것은 이 아파트를 근거지로 삼고 있는 얼룩고양이를 말한다. “사람을 잘 따르면서도 발톱이 날카로워서 참 난감하지요. 잠깐 방심했는데, 아까 할퀴어서…….”

아무래도 길고양이 같지만, 꽤 깔끔하고 애교가 있어서 다들 이 아파트의 마스코트처럼 여기고 있었다.

“귀엽게 생긴 녀석이라 자기도 모르게 다가가고 싶어지죠.” 대강 말을 맞춰주고 있는데 간신히 엘리베이터가 내려왔다.

“그러면 실례하겠습니다.” 옆을 지나갈 때, 다시 소 씨가 코를 벌름거렸다.

“오, 오, 오…… 고구마 소주도 드셨군요. 이 향기는……‘십억 년의 축제’인가요.”

분명 나는 아연실색하며 그 자리에 못 박혔을 것이다. 소 씨는 부끄러운 듯이 손사래 쳤다.

“아뇨, 우리 집사람이 좋아하는 술이어서 알고 있던 것뿐입니다. 딱히 이가미 씨에게 술 냄새가 난다는 말은 아닙니다.”

“……정말이지, 텔레비전에 출연하셔도 되겠네요, 그 코.” 나는 정신을 차리고 4층 버튼을 눌렀다.

문이 닫히는 것과 동시에 나는 목덜미의 땀을 닦았다. 설마 타카코와 함께 마신 술까지 알아맞힐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위험했다, 위험했어. 더 조심해야 한다.



집의 문을 열자마자 강렬한 카레 향기가 코를 찔렀다.

“어서 와요.” 앞치마 차림의 동글동글한 아내가 맞아주었다. “오랜만에 카레를 만들었어요.”

포옹하고는 키스를 기다린다. 출장 기간 동안 상당히 외로웠나 보다.

“불고기를 먹어서 냄새가 날 거야.”

“이젠 괜찮아요. 안정기에 들어가서 그런가?”

아내의 손가락이 내 등과 팔을 더듬을 때, 장미 형태를 한 반지가 내 오른쪽 팔꿈치를 긁었다. 아프니까 빼라고 몇 번을 말해도 행운의 반지인데 무슨 소리냐며 아내는 통 말을 듣지 않는다.

“저기, 그 얘기 알아요?” 아내가 말했다. “아파트의 주인처럼 굴던 얼룩고양이 있잖아요? 그 고양이, 그저께 죽었어요.”

“……그저께?”

“네. 관리인 아저씨의 부인이 정원에 묻는 모습을 봤어요.”

아내의 두 팔에 다시 힘이 실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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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사르 2011-10-13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1화와 2화가 소재만 연결되어 전혀 다른 내용으로 넘어가는군요. 와..이런 식의 연결이라니요. 대박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