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vs 영화 

원작- 렛 미 인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 

영화- 렛 미 인 (토마스 알프레드슨/ 스웨덴 버전)  

 

            

피와 눈송이

 

 
-생각해보면 이 책을 읽는 동안 사랑에 대해 거의 떠올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다들 성별과 연배와 종족을 뛰어넘는 사랑에 감탄한 것 같은데 나는 그렇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다들, 그 하얀 눈에 튀던 피에 반한 거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어감부터 멀어보이는 스웨덴의 교외. 블라케베리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의 시작은 하얀 눈송이고, 마지막은 아시는 대로 커다란 수조 속에서 (붉은 연기처럼) 피가 느리게 퍼져나가는 장면이다. 아니 기차가 떠났고, 또 눈이 내렸던가.

이제와서는 정확히 떠오르지 않는 기억에 대해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특히나 그 기억이 제법 찬란한 (그래서 희미한, 노출이 많이 들어갔으니까) 종류라면? 잊기는 쉽지만 기억하는 것은 부단한 노력을 요하므로, 게으른 사람들은 통상 말해지는 황홀을 모두 잃어버리고 마는 게 아닐까? 나 또한 그렇고, 그래서 아쉽다.

묽게 퍼지던 피처럼, 녹아 사라져버리는 눈송이처럼, 그런 성질을 가진 것이야말로 사랑이라고 불리는 것일 테다. 당시엔 감각하지 못했던 감정들이 쏟아져나와 아우성치는 풍경은 얼마나 아름답고 또 끔찍했던가 이 말이다. 용솟음치는 기억들이 거창하고 담백하지 못한 어휘와 얽히는 장면들.

너와 나의 사랑, 흘러가버린 기억, 기억을 품은 공간과 그 공간 속에 무수하던 인간들의 속삭임. 어린 사내아이를 탐하는 늙은이, 얼큰하고 부패한 실업자, 다소 헤픈 여자의 우는 소리와 철분 섞인 도시 먼지가 나뒹구는 느낌이 영화에서는 꽤 탈색되어 있는 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두 이 끔찍한 전제를 깔고서도 오히려 순결해보이는 영화에 감탄했고 찬양을 바쳤던 게 아닐까? 나 또한 이 영화를 사랑하지만 말이다. 소설에는 고요하고도 시끄러운, 파랗고도 빨간, 차갑고도 뜨거운 이야기가 좀 더 가까운 거리에서 들린다. 양쪽 모두 좋지만 소설에 영화보다는 좀 더 찐득한 피가 흐른다는 얘기다. 영화가 첫사랑이라면, 소설은 조금 오래된 연애라고 말해보는 건 어떨까.

해서 이 사랑 같으면서 사랑이 아니고, 사랑이 아닌 것 같으면서도 통째로 사랑인 이야기의 정체는 가늠하기 힘들게 되었다. 인터뷰를 보아하니 아마 작가도 잘 모르는 듯 싶다. 때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우연처럼 일어나 사람들을 감흥시킨다. 그런 것들은 보통 기적이라고 불린다. 대수로울 것 없으면서도 소중한 기적이란 게 세상에 있다면, 이게 바로 그런 이야기다. 뱀파이어와 관련된 것들은... 취향에 따라 취사선택하면 되시겠다

 

-만화MD 김재욱 님의 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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