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소설은 일찍이 유행했던 다양한 종류의 문학 속에서 진화해 태어난, 보다 새롭고, 심오하고, 통렬한 문학이다. 일체의 예술의 전통정신과 형식에서 이탈하여, 인간의 심리를 보다 깊이 파헤치고, 분석하고, 극약화劇藥化하고, 독약화하고, 나아가 원자화하고, 전자화하기 위한 예술계의 이단아였다. 예술의 신을 모독함을 전문으로 하는 반역예술이었다.
과거의 예술은 겉치장을 예찬하는 데에만 몰두했다. 그것이 진화해 그 겉치장을 벗겨낸 육체미의 감상을 주류로 하는 중세 예술로까지 진화했다. 그것이 현대... 즉 탐정소설 시대에 들어와서는 더욱 진화하여, 그 육체를 갈기갈기 찢고 폐부를 끄집어내고, 해골을 토막 내, 혈액에서 분뇨까지 분석하고, 현미경으로 검사하여 그 기괴하고 추악한 아름다움을 폭로하고 전율하려 하는 것이다.
탐정소설의 사명은 거기서 탄생했다. 탐정소설의 진정한 사명은 이에 있다. (...) 이 때문에 이 천고불멸의 탐정본능을 과학이 낳은 사회기구로 향하게 하여, 이 양심없고 염치없는, 유물唯物 공리도덕이 낳은 사회악을 향해 잠입시켜, 그 기괴하고 추악한 아름다움을 드러내어 그 그로데스크하고 에로틱한 맛을 살린 변태적인 아름다움을 움직이게 하여, 결론적으로 그 깊숙한 곳에 숨은 양심과 순정을 밑바닥까지 전율시키고, 경악시켜, 실신시키지 않으면 만족할 수 없는 예술을 탐정소설이라 이름 붙이게 된 것이다. (...) 갖가지 허영과 허식에 우쭐대는 공리도덕과 과학문화의 장엄... 눈부시게 찬란한 과학문화의 외관을 찢어발겨, 그 밑바닥에 위축되어 꿈틀거리는 작은 벌레 같은 인간성...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초미세 현미경적인 양심을 절대적인 공포, 전율을 느낄 정도로 폭로하는 그 통쾌함, 심각함, 처절함을 마음껏 맛보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대중적인 읽을거리여야만 한다.
-유메노 큐사쿠, '고가 사부로 씨에게 답함' 중에서. (단편집 <소녀지옥> 역자 후기에서 재인용)
부담스러울 정도로 휘황찬란하고 자아도취적인 저 문장들. 범인류적인 사명감. 역시 희대의 괴작 <도구라 마구라>를 쓴 유메노 큐사쿠죠. 그러나 이 단편집 <소녀지옥>은 보다 '일반적'으로 매력적입니다. 정신이상 계열의 탐미주의랄까, 지옥 버전의 <설국> 이랄까 그런 느낌입니다. 예전엔 정말 간지라는 게 있었구나 싶네요. 20세기초의 로망이 이런 것이었겠죠. 비정상 전문가인 미치오 슈스케나 히라야마 유메아키도 아직 이런 기품(?)을 가지진 못했군요. 어쩌면 시대 탓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시 위의 발췌를 읽어 봅니다. 야 역시...(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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