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vs 영화 

원작- 시핑 뉴스 (애니 프루) 

영화- 쉬핑 뉴스 (라세 할스트롬) 

 

          

 기적을 다루는 능력

  

-삼류 신문기자 쿼일은 날라리 여자에게 넘어가 어쩌다 결혼을 했다. 그 여자는 다른 남자랑 바람이 나서 하나뿐인 딸을 '업체'에 팔아먹고 도망가다가 교통사고로 죽었다. 쿼일은 우여곡절 끝에 딸을 찾았지만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무능력한 인간 패배자. 그것이 쿼일이 생각하는 쿼일이다. 결국 그는 친척의 권유로 고향인 뉴펀들랜드로 돌아간다... 

애니 프루의 <시핑 뉴스> 초반부를 읽다 보면 이 소설의 나머지가 예측 가능할 것처럼 보인다. 작가의 단편집 <브로크백 마운틴>을 읽어 본 독자라면 더욱 그렇다. 척박하고 비린내 나는 뉴펀들랜드의 자연, 밥벌이의 지겨움, 사랑의 실패, 뒤틀어진 기억, 온갖 오해와 이루어질 수 없는 희망. 그리고 소설은 정말로 그렇게 진행된다. 순수 문학이 좋아하는 주제인 '생의 비루함' 따위를 향해 애니 프루는 부드럽게 클러치를 밟는다. '미국 현대소설들은 해피엔딩을 좋아하지 않는다.' 뉴펀들랜드의 거칠은 파도와 펄떡거리는 생명체들에 비해 인간의 삶은 얼마나 비루한가. 때마침 근친상간에 얽힌 과거가 터지고, 어지간한 막장 드라마는 찜쪄먹는 엉망진창 가족사가 등장하면서 스토리는 점입가경으로 치닫는다.

이 소설의 가장 매력적인 점은, 그런데 어느 순간 쿼일이 일어서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일어서기 시작하는 무렵부터 마술적 리얼리즘이 소설 속에 깃든다. 뭐? 애니 프루인데? <브로크백 마운틴>의 작가가? 그렇다. 애니 프루는 죽은 사람도 살리는 등의 예수님스러운 기적을 소설 속에 뿌려 버린다. 그런데 그 기적 배포 작업은 무척 매끄럽고 교묘해서, 독자들은 애니 프루의 묘기에 반하고, 쿼일은 이 신비들이 세계의 일부라는 사실을 깨닫고야 만다.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고, 기적이 왜 일어나는지 아는 사람도 아무도 없다. 가만, 그렇다면, 뭐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면, 이 삶이 앞으로도 꼭 불행하라는 법도 없지 않은가? 이 사람들, 다 살고 있잖아?

'고통이나 불행이 없는 사랑도 가끔은 있으리라.' 

모든 일들을 겪고 난 뒤, 쿼일은 저렇게 중얼거린다(혹은 생각한다). 동의할 수 있는 분 계십니까? 그러나 <시핑 뉴스>는 그 희망을 (대부분의)독자들에게도 안겨주고야 만다. 이 소설은 지금 '설마요'라고 생각하는 바로 당신을 위해 쓰여진 소설이니까. 그리고 애니 프루는 좋은 소설가니까. 

...영화는 길게 험담을 늘어놓으려고 했는데 굳이 그럴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케빈 스페이시 + 줄리언 무어 콤비에다가 <길버트 그레이프> 감독인 라세 할스트롬이라면 당연히 기대할 법하다. 그러나 라세 할스트롬은 조목조목 원작 장면들을 스크린으로 옮기는 성실하고 심심한 각색과 연출로 일관한다. <길버트 그레이프>는 그랬어도 됐지만, 아니, 차라리 브로크백 마운틴을 했어도 괜찮았을지 모르지만, 라세 할스트롬은 <시핑 뉴스>의 기적을 다룰 줄 몰랐다. 영화는 원작이 가속하는 부분에서 깜짝 놀라고는 쫓아가기에 급급하다가 헐떡이며 끝난다. 저 아까운 캐스팅을 감안할 때, 좋게 생각해도 범작 수준이다. 케빈 스페이시나 줄리언 무어의 팬이라면(나는 그 둘 모두의 팬이지만) 그냥 심심풀이로 보시기 바란다.

 

-외국소설MD 최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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