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 연인이다.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리움 미술관, 무더운 가을 오후, 예술MD이니까

 미술을 사랑하는 남자, 이주헌을 인터뷰하다

 

  

-글 쓰는 사람, 이주헌

알라딘: 현재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미술 칼럼니스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비결이나 원동력이라고 하면 뭐가 있을까요?

이주헌: 좋아서 하는 일이라서 그래요. 재미있어요. 그래서 계속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책을 내고 나서는 늘 아쉬움이 남기는 하지만, 금방 또 새 책을 구상한다거나 머릿속에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발전시킨다거나 하게 돼요. 그 과정이 제게는 재미있는 일입니다. 그게 삶의 활력소가 돼요.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즐거운 일이죠. 처음에 미술 담당 기자로 시작했는데, 기사라는 게 정해진 형식이 있잖아요? 그 틀에 적응하는 게 쉬운 일만은 아니었지만, 제가 좋아하는 미술 얘기라서 더욱 좋았어요.

아, 처음에 책을 낼 때를 생각해 보면 처음에는 의무감이랄까 사명감도 있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좀 더 쉽게 그림에 친숙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생각만 하고 있으니 아무도 하는 사람이 없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직접 써 보자고 생각하게 된 거죠. 그 사명감을 성취하는 게 가장 즐거운 일이죠.

알라딘: 특별히 특화된 분야가 없는 다방면의 미술 칼럼니스트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이주헌: 음... 저는 처음에는 화가가 되려고 했었어요. 그게 주인공이고 주연 같잖아요(웃음). 화가의 그 창조성, 빛나는 어떤 것. 그 외의 비평가라든가 같은 사람들은 주변인처럼 보였달까? 그런데 기자 생활을 하면서 예술가와 사람들 사이의 매개체가 필요하다는 걸 느꼈어요. 그래서 미술을 친근하게 만들어주는 글을 썼는데 다행히 처음부터 반응이 좋았죠. 그때 가장 중요한 게 뭐냐면, 사람들에게 미술의 여러 채널을 알려주고 관심사를 확장시켜 줄 수 있는 다양한 시도예요. 그건 지금도 필요한 거고요. 

그러다보니 제가 전공이 없는 사람인데(웃음) 학술적으로 보면 그건 확실한 약점이에요. 그런데 그게 저를 겸손하게 해 줘요. 그리고 그 겸손함이 독자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 아닐까 해요. 

알라딘: 미술 분야 책을 쓰시는 분들 중에서는 다작하는 편에 속하시는데요, 혹시 슬럼프를 겪은 적은 없으세요?

이주헌: (단호히)없어요. 저는 열심히는 쓰지만 완벽주의자는 아니에요. 책이 완전히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지금이 이 책이 가장 필요할 때라는 생각이 들면 바로 냅니다. 일반 독자들이 원하는 지식이나 그 분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책은 그때그때 달라져요. 그 타이밍을 잡아서 바로 보여줘야 돼요.  

저는 쌓아놓은 지식보다는 어떤 순간의 영감을 중요시하는 편이거든요. 하나의 아이디어가 머릿속에서 자라나서 계속 가지를 치는 거죠. 책을 내고 나서는 늘 아쉬움이 있지만, 금방 다른 발상으로 머리가 가득 차서 아쉬움은 곧 잊어버려요. 슬럼프가 있을 수가 없죠. (웃음) 

 

 

 

 

 

 

 

 

등등등.....

 

 

 

알라딘: <지식의 미술관>에서 다섯 개로 나눠진 주제는 사회적 시선, 예술가의 자아, 도상학적 이야기 등 각각 미술을 바라보는 다른 방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 권의 책 속에서 미술을 둘러싼 여러 측면을 동시에 다룬 대중 미술서는 신선한 시도로 보이는데요. 구상하실 때 어떤 특별한 고민이 있었는지요?

이주헌: 특별한 고민이라기보다는... 제가 내는 책은 크게 세 종류로 볼 수 있는데, 기행문 형식을 띈 미술 탐방기가 있고요. 사는 이야기와 미술 이야기를 섞은 에세이 류의 책이 있죠. 그리고 마지막 종류가 미술과 관련된 역사-사회-문화 이야기죠. <지식의 미술관>은 세 번째 책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아마 앞으로는 세 번째 종류의 책을 내는 비중이 높아지겠죠. 그건 책을 내는 시기가 어떤 시기냐에 따라 늘 달라져요. 처음에 대중적인 미술 책이 없을 때는 보통 사람들이 자신의 느낌이나 감상에 확신을 갖지 못했어요. 뭐가 맞는지 틀린지를 궁금해 하고 자신감이 없었죠. 그럴 때는 사람들에게 미술 에세이 같은 책이 필요해요. 분석하고 비평하기보다 공감하고 공유하는 게 필요한 거죠. 일단 미술에 친숙해질 필요가 있으니까요. 이제 시간이 흐를수록 독자층이 넓어지기도 하고 깊어지기도 하니까... 앞으로 독자들도 앞서 말씀드린 세 번째 부류의 책들에 좀 더 주목하지 않을까 해요.

알라딘: 우리나라에서는 앞서 말씀하신 분류 중에 두 번째, 그러니까 미술과 일상의 삶을 합치거나 일종의 심리 테라피를 시도하는 책들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런 최근의 흐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주헌: 위로하는 책들이죠. 사실 위로가 가장 중요하죠. 그게 제일 중요한 거예요. 우리가 어떤 구조나 체계 안에 들어갈 때에는 억압을 느끼게 되죠. 그렇지만 그 체계에 익숙해지는 순간 그 체계가 자신만의 위로를 줄 수 있어요. 특히 예술의 위안이란 건 사람들에게 정말 커다란 힘이 되는 거예요. 

미술도 하나의 체계다보니 처음에는 벽 같은 게 있어요. 그렇지만 조금만 익숙해지면 돼요. 미술 테라피나 일상과 미술을 섞은 책들은 그래서 늘 가치가 있어요. 벽을 낮추고 예술의 위로하는 특성을 알려 주니까요. 사람들이 거기에서 위로를 얻고 힘을 얻으면 좋은 거죠. 매우 중요한 일이고, 언제나 중요한 일이죠. 

그렇지만 그게 다가 아니라 지식의 확충도 중요한 일이예요. 왜냐면 지적 호기심을 가장 재미있는 방식으로 충족시키는 게 미술이거든요. 언어와는 다른 감수성을 통해서 세계의 다른 면을 바라볼 수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지식을 쌓을 수 있는 책들도 중요해요. 우리나라 독자들도 점점 더 그런 종류의 책들을 좋아하고 있으니 좋은 책들이 더 많이 나올 겁니다.
 


한국 미술계를 긍정하는 웃음이다(웃음).


알라딘: 좀 더 풍부하고 다양한 지식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까지 다루신 적 없는 분야, 예를 들면 현대미술이나 사진 같은 분야의 책을 내 보실 생각은 없으신지?

이주헌: 아, 생각은 늘 하고 있어요. 막 보여드리고 싶죠(웃음). 그런데 그건 현실적인 제약이 아직은 커요. 일단은 책에 수록될 도판 가격이 비싸거든요. 현대미술이나 사진은 저작권이 거의 다 살아있어서 도판의 저작권 비용에만 돈이 많이 들어가요. 그러면 책은 그 단가 때문에 점점 커지고 비싸지거든요. 물론 그래도 사서 보는 분들은 사서 봐요. 그런데 보통 독자들이 그 책에 관심을 보이기는 너무 어렵겠죠? 그건 제가 원하는 게 아니에요. 앞으로 시장이 더 커져서 그런 걱정 없이 책을 낼 수 있는 날이 오겠죠(웃음).   

 

-책, 지식의 미술관 

알라딘: 깊이 있는 교양 미술서 얘기가 나왔는데요. <지식의 미술관>의 서문에서는 미술 감상에 있어서 직관적인 접근을 매우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책의 본문은 그 직관적 판단을 돕기 위한 일종의 자료집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여 집니다. 

개인적으로는 혹시 선생님의 다음 책이 ‘직관적으로 그림 보기’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가 아닐까 매우 궁금한데요. 어쩌면 그건 교양 미술서의 궁극이 아닐까(웃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기존에 철학자들이나 학자들이 쓴 비슷한 테마의 책들이 있습니다만, 혹시 일반 독자들을 위해 그런 글을 써 보실 생각이 있으신가요?

이주헌: 네, 매우 관심 있어요. 정말 관심이 많은 분야죠(웃음). 어떤 파편화된 지식이 아니라 본질을 어떻게 순간적으로 낚아챌 것인가, 기존의 논리를 넘어서 사물의 본질을 잡아낼 수 있을까. 저도 늘 궁금해요(웃음). 심리학이기도 하겠고, 미학이라든가 역사에도 관련이 있고... 정말 많은 공부가 필요하겠죠. 

특정한 분야의 학문 대신 그저 이미지를 계속 봐 오고 그걸 전달해 온 사람으로서, 직관, 이미지를 사유한다는 것, 그리고 거기에서 시작하는 상상력, 그런 것들의 시스템이 늘 궁금해요.  

이건 매우 중요한 거거든요. 창의력, 틀을 뛰어넘는 것들의 발상은 어디에서 올까요? 직관에서 오죠. 직관은 말, 언어, 문장이 아니라 이미지적으로 사고하는 거예요. 그래서 기존의 논리적 사고 체계와는 다른 방향에서 접근할 수 있는 거죠.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에서 유추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 속에 있는 어떤 상(像)에서 갑자기 출발하는 거예요. 갑작스러워서 기존의 세계와 충돌할 수밖에 없죠.

알라딘: 비언어적인 사고의 필요성에 주목하고 계신 거군요?

이주헌: 그렇죠. 성경에서는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잖아요. 그건 종교의 순수함에 대한 문제라기보다는 상의 위력 때문이에요. 상을 만드는 순간, 인간의 지적 능력과 창의력은 급속히 성장하게 되거든요. 그건 결국 전복적인 사고와 이어지게 되죠. 모든 지배층은 그걸 두려워할 수밖에 없어요. 어떤 시대든, 어떤 예술이든 마찬가지에요.  

연상은 상에서 상을 잇는 거죠. 그건 언어와는 달리 논리나 체계를 선호하지 않아요. 그걸 뛰어넘는다고 할까... 다른 세계에 있어요. 충격적이고 강렬한 세계죠.

알라딘: 예술의 전복적 성향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는데요. <지식의 미술관>의 4,5장에서는 정치권력과 결탁하거나 자본 등의 세력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예술 자체의 성향과는 별개로 예술가의 사회적 의무 같은 것도 있을까요?

이주헌: 사실 미술은 권력과 결탁하지 않은 적이 없었어요. 어떻게 보면 뗄 수 없는 관계죠. 미술 역시 소통과 사유를 위한 수단이라는 점에서는 언어와 마찬가지의 매개체에요. 그래서 모두들 그 소통 매체를 선점하려고 하죠. 민중이든 권력이든, 그 수단을 장악하려는 방식은 서로 다르겠지만 그 목적은 같아요. 서로 자신의 계층에 유리하게 작용하도록 하려는 거죠. 

예술가는 모두가 자기 자신의 목적을 위해 작업할 수 있다고 봐요. 그게 돈이 될 수도 있겠고 권력이 될 수도 있겠죠. 그들도 똑같은 인간이니까요. 그렇지만 시간이 흘러 살아남은 작품이나 작가들은 하나같이 보편적인 매력을 갖고 있어요. 시대를 불문하고 전 인류와 소통 가능한 보편성이죠.


알라딘: 사회적 의무와 예술가적 자의식은 별개의 문제라는 거군요. 피카소와 공산당처럼 말입니다. (우측은 피카소가 1953년에 그린 스탈린의 스케치)

이주헌: 그렇다고 봐야죠. 피카소가 투철한 정치의식으로 공산당에 가입했느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고 봐요. 자의식의 연장 같은 거였죠. 제스추어라고 할까.

알라딘: 책이나 그림, 영화 등을 통틀어서 요즘 인상 깊게 접한 작품이 있는지요?

이주헌: 아주 신작이라고는 할 수 없고, <괴짜 경제학>이란 책을 인상 깊게 읽었어요. 제가 경제학에 대해 특별히 아는 건 없지만요(웃음). 독창적인 사고로 경제 문제에 접근하는 점이 좋았어요. 기존에 경제학 입문에 대한 선입견을 부수고 새로운 길을 찾아낸 거죠. 어떤 문제에 마주쳤을 때 그 문제 자체만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인데, 그러면 자신만의 독창적인 시각을 발휘할 수 있거든요.

 

 

-For Fan 

알라딘: 책을 읽을 때의 습관이라거나 규칙이 있으신가요? 선호하는 작가라던가...

이주헌: (웃음) 중구난방이에요. 닥치는 대로 아무거나 읽어요. 여러 분야의 책들을 읽으면서 새로운 느낌, 영감 같은 걸 얻으려고 해요. 

방금 영화 하나가 생각이 났어요. 얼마 전에 개봉한 <서로게이트>라는 영화인데, 영화 자체의 완성도가 높으냐 하면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런데 그 영화의 아이디어는 좋았어요. 보통 영화에서 로봇이라고 하면 독립적인 지능을 갖고 있잖아요? 그런데 그 영화에서는 로봇은 각 인간의 완전한 복제품이 되어서 그 주인에게 직접 조종되는 일종의 대리 인간이에요. 이런 것처럼 제가 기존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아이디어를 보게 되면 즐거워져요. 나중에 글을 쓸 때도 그런 아이디어들이 좋은 소재가 되고요. 

박찬욱 감독의 <박쥐>도 논란이 좀 있지만 저는 참 좋게 봤어요. 이미 대중적인 부담을 상당히 떠안고 있는 감독이잖아요. 그런데 자기 나름의 스타일을 가지고 그걸 밀어붙였어요. 그런 장면장면들, 특히 몇몇 디테일들은 잊을 수 없는 것들이죠. 첫 장면에 나무의 그림자가 비칠 때부터 좋았어요(웃음).

알라딘: 네, 인터뷰를 관통하는 어떤 지론이 느껴지네요(웃음). 혹시 사람들에게 이 작품은 꼭 봤으면 하고 추천하고 싶은 게
있으시다면?


이주헌: 하나를 정하기는 참 어렵네요. <지식의 미술관>에도 나오는 마티스의 성 프란체스코. 로제르 예배당의 벽화죠. 근처를 지나갈 기회가 있다면 반드시, 무조건 봐야 할 그림이에요. 선 몇 개로 이루어진 단순한 그림이지만, 가만히 보고 있으면 꼭 천국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그리고 모네의 수련 연작. 오랑주리 미술관에 있죠. 수련 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예술이 왜 좋은지 저절로 알게 되는 것 같아요. 

마크 로스코의 그림들도 상당히 좋죠. 꼭 보셨으면 좋겠어요. 


로제르 예배당 내부 전경
 



알라딘: 저도 꼭 보고 싶었던 것들이네요. (웃음) 마지막으로 알라딘 독자분들께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이주헌: 미술은, 사귀어서 손해 볼 게 없어요. (웃음) 애인은 배신해도 미술은 배신하지 않거든요. (웃음) 그렇게 곁에서 항상 위로와 깨달음을 줘요. 그러니 망설이지 말고 한 번 사랑해 보셨으면 합니다. 

알라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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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랑 2010-03-10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마지막 문장 참 좋네요. 망설이지 말고 한 번 사랑해 보라는......미술과 사랑에 빠져볼까요

외국소설/예술MD 2010-04-09 15:19   좋아요 0 | URL
네 뭐든 망설이는 건 좋지 않은 것 같아요. 살다보니깐요.